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평생 살면서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부검실과 재판정이다.
부검실, 예전엔 자주 부검에 참여했었지만 지금은 일년에 한두번 정도만 한다. 부검의 목적은 사인 규명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무지막지하게 칼을 대고 몸속 곳곳을 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검집도의는 오직 정해진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할 뿐이다. 나는 부검대 위에 시신으로든, 시신의 유가족으로든 절대 그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
재판정, 아직 한번도 피의자나 피해자로 혹은 방청객으로 조차도 가본 적이 없기에 그곳의 분위기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의 죄를 묻고 벌을 정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지극히 비정하고 잔인한 곳이라고 생각된다.
재판정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 살벌한 느낌마저 드는 이름이 검사이다. 검사라하면 왠지 검객이 연상되어 칼을 제법 쓸 것 같은 착각도 든다. 검사는 그저 냉철하고, 논리적이고, 인간적인 약점을 공격하면서도 표정하나 흐트러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현직 검사가 쓴 책을 읽고는 나의 선입견에 다소 혼란이 왔다.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재판정에서 우는 검사를 본 적이 있는가? 범죄 사실의 확인과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떠나 마음이 먼저 다가가는 검사를 본 적이 있는가? 그런 검사 이야기이다.
사실, 나는 재판장에 가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법조인이라고 해봤자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가끔 보는 전직 판사와 현직 변호사들이 전부다. 그들은 그저 한때 공부 허벌나게 잘했고, 지금은 그냥 술잔 마주치는 50대 아저씨일 뿐이다.
요즘 매일, 전직 법조인과 법조계의 유쾌하지 않은 미스터리들이 뉴스의 반 이상을 채우고 있다. 피의자의 잘못은 옳든거르든 그렇게나 잘 밝혀내는 그들이 자기조직의 치부는 그렇게나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오늘날의 국민들이 법을 우습게 보게 만든 이들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지방에서 근무하는 검사이다. 책에는 엄마로서 검사로서의 갈등과 고민을 솔직담백하게 담겨있다. 물론 법조계의 현실은 법원의 소파색깔만큼이나 아직도 깜깜하지만, 그래도 사람냄새 나는 따뜻함을 담아낸 검사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면서, 자꾸만 어느 선배의사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