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기 예술품의 탄생
중국에서는 기원 전 3000년 경(5000년 전)에 옥을 가공하여 예술품을 만들었다. 설문(說文=한나라 때의 사전 형식의 책)에 의하면 ‘옥(玉)은 돌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돌’이라고 하였다. 석기시대란 돌을 다듬어서 사용하던 시기이다. 5000년 전 쯤에 드디어 아름다운 돌인 옥돌을 가공하여 사용하였다. 고대인이 옥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돌이 아닌 ‘아름다움’을 선택한 것이다.
고대 중국인은 인간세상에서나, 환상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이나 사물을 옥의 아름다움과 연계하여 표현하였다.
중국에서는 신석기 초, 중기에 옥을 가공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활발하지는 않았다. 주로 장식품이었고, 구멍을 뚫어서 끈으로 꿰도록 하였다. 양저 문화기(양즈강 하류에 발생한 신석기 문화로, 특히 옥기를 많이 만들었다. 뒤로 따로 다루겠습니다.)에는 옥 제품을 많이 만들었다. 양즈강 하루 지역에서 옥제품이 제일 많이 발굴됨으로 상해 박물관에 많이 수장되어 있다.
옥기의 용도는 옥이 아름답기 때문에 장식품으로 만든 것이 제일 많다. 한편으로 고대인은 옥의 재질이 단단하고, 영롱하게 빛을 냄으로 몸에 착용하면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나서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로서 특별한 형태의 옥 가공품은 벽사의 기능을 가진다. 발전하여 종교적인 신앙의 상징물이 되었다. 옥으로 만든 신앙의 상징물도 많이 출토 되었다.
옥기는 귀한 물건임으로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옥기를 가질 수 있으려면 권력자이거나 부자여야 했다. 옥기는 사회적 신분을 계충화 하는데도 이용되었다. 지배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다. 제사를 지내는 것과 관련이 있는 옥벽이나 옥종을 지닌 자는 부족의 지배자이다. 도끼는 권력의 상징물이다. 옥으로 만든 도끼 (옥월-옥도끼)를 가진 사람이면 군사적 권능을 가진 사람이다.
무덤의 시신 좌우에 조개로 용과 호랑이 형상을 만들어두었다는 것은 중국미술사를 시작하면서 첫 이야기로 했다. 호랑이는 현실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이지만 용은 상상의 동물이다. 중국인은 아주 옛날부터 용을 신성시 하였다. 신석기 시대의 옥기 출토품에는 용이 많다. 옥룡도 많이 출토된다. 특히 요하 지방의 홍산문화에서 검은 옥돌로 돼지 모양의 용을 만들었다. 이 흑룡(사진)은 중국의 용 형상의 기원 중의 하나라고 한다. 홍산인들은 신석기 시대에도 돼지를 가까이하고, 토템시하였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내가 어릴 때 동네 어른들이 중국사람을 비하면서 ‘돼놈(만주인)은 돼지 기름에 절어 있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돼지와 중국인의 관계도 신석기 시대에 이미 단단하게 맺어져 있었을 보여준다.
조개로 용 형상을 만든 무덤의 주인은 주술을 전업으로 하는 종교 지도자이거나 부족의 지배자일 가능성이 높다. 무덤의 주인이 남자라는 것은 이미 이 시기에는 부계사회였음을 말해준다. 중국인의 용 신앙은 그 뿌리가 신석기 시대까지 뻗어있음도 말해준다. 홍산문화는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깝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 용 신앙이 나타난 것은 훨씬 뒤 이라고 한다.
옥기 문화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