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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거울단계
1교시 편집증적 구조
▲ 『에크리』의 발표
오늘은 이제 세 번째 시간인데 거울단계에 대한 라캉의 논문을 중심으로 해서 상상계에 대해서
오늘 좀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 라캉은 1932년에 의학
박사 논문을 쓰지만 32년 이 당시에는 아직 완전히 정신분석가로서 자기의 어떤 이론적인 위치라
든지 여러 가지 제도적인 위치가 마련이 안 되어 있었을 때였죠? 의학박사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
제 루돌프 뢰벤슈타인하고 분석을 시작합니다. 정신분석가가 되기 위해서 이제 교육 분석을 받아
야 되는데 이 루돌프 뢰벤슈타인과의 분석이 좀 많이 삐그덕 거렸죠. 그런데 어쨌든 중요한 건
의학박사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제 라캉의 관심이 정신의학에서 정신분석으로 이렇게 옮겨오게 된
다는 것들이죠. 그러면서 이제 이 때 몇 가지의 두 가지 정도의 사건이 있게 되는데, 첫 번째로
이제 자기의 박사논문을 프로이트한테 보내게 됩니다. 뭔가 이제 정신분석의 스승한테 인정을 받
고 싶었던 라캉 나름대로 뭐 소망이 있었겠죠? 근데 기대와 다르게 프로이트는 '논문 잘 받았습
니다. 딱 한 줄을 써서 답변을 보내고, 그 다음부터 라캉은 프로이트와의 만남에 대해서 신경
을 안 쓰게 되죠. 나중에 프로이트가 런던으로 망명을 갈 때 파리를 거쳐서 가게 되는데 파리의
정신 분석가들이 다 모여서 정신 분석의 대가를 보려고 하는데 라캉은 거기에 가지 않습니다. 그
러면서도 이제 정작 자신은 '프로이트를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 사람이다.' 라고 자기 자신의 위
치를 자리매김하죠. 이는 마치 기독교에서 예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제치고 예수를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던 사도 바울이 기독교 이념에 대해서 재창조 한 것이나 마찬가지 사건이라고 볼
수가 있죠.
근데 어쨌든 이 의학박사 논문 이후로 라캉은 정신 분석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경도를 하게 되는데,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프랑스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정신분석이 수용된 나라 중에서 프랑스가 가장 늦었습니다. 프로이트가 생전에 자기의 책들이 불
어로 번역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개탄을 했다고 하는데, 늦었다고 하는 것들이 그만큼 프랑스에
서 정신분석에 대한 저항이 많았다는 거죠? 그리고 당시 이제 정신분석을 수용하는 사람들이 주로 정신과 의사였는데, 이 사람들은 정신분석이 정신의학에 보조적인 수단으로 활용이 될 수 있
는 가능성을 보았지만 그것의 위치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습니다. 라캉 의학박사 논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러다보니까 정신분석이 본래의 어떤 의도라는 것들이 충실하게 전달이 되지
못하고, 마리 보나파르트를 비롯해서 이제 정신분석 1세대들이 프로이트 저작을 번역을 하고 정신분석 쪽에 관심을 갖지만 여전히 정신과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될 지가 굉장히 고민거리가 되죠? 그리고 60년대 초반까지 정신의학에 의해서 정신분석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렇게 호의적이
지 않았습니다. 이런 배경 하에서 라캉이 정신과 의사로서 출발을 했지만 정신분석으로 경도된다
는 것에 좀 나름대로 독창성이 있다고 이제 볼 수가 있는 거죠. 이미 라캉은 정신분석적인 관점은 없지만 정신의학 논문의 주제가 편집증이었는데 여성 편집증 그것도. 편집증을 독자적인 시각
으로 분석을 하면서 당시 정신의학의 주류 경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기관장애론적 입장에 대해서 반대를 하게 됩니다. 기관장애론은 선천적으로 어떤 체질적 이상 같은 것 때문에 정신병이 발생한다는 이런 입장에서 보시면 돼요. 라캉은 그런 개념 대신에 주체가 자라나면서 겪게 되는 사건들 그 경험들을 통해서 자의식이나 주체개념이 만들어지고 거기서 정신병적인 요인이 여러
가지 생활 속의 사건이나 경험들과 결합되면서 발생할 수 있다고 봤죠. 그래서 인격개념이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 여겼어요. 그래서 다른 정신과 의사들과는 조금 관점의 차이를 보이게 되죠.
그러면서 이제 정신의학박사 논문에서 드러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정신분석에 대해서 공부를 하
게 되고. 그러한 결과들이 1936년에 IPA 그러니까 국제정신분석학회가 국제회의가 개최가 되는데,
처음으로 라캉이 그 자리에 참석을 해서 논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 논문의 주제가 바로 '거울
단계' 라는 논문이었죠. 근데 아까 두 가지 사건이라는 게 이것이 두 번째 사건인데. 라캉이 발
표를 한지 십 분 만에 의장에 의해서 중단이 됩니다. 근데 의장이 라캉에게 억하심정을 가졌다기
보다 아마 발표시간이 10분으로 엄격하게 제한이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10분이 초과하니
까 의장이 사기의 권한을 발휘해서 이제 딱 발표를 중단 시킨 기죠. 그러자 라캉은 화가 나가지고 발표문도 안내고 그냥 그 길로 베를린으로 가서 올림픽 경기를 참관을 하게 되죠. 근데 이건
자존심 강한 라캉한테 두고두고 상처가 되었던 것 같아요. 30년 후에 에크리」를 쓸 때도
당시 사건을 언급하면서 격노하게 되는데 사실 어니스트 존스가 당시 의장이었는데, 어니스트 존
스는 뭐 라캉한테 직접적으로 개인적인 감정이나 이런 게 있었던 사람은 아니죠.
오히려 당시 분위기가 그 IPA에 커다란 줄기가 이렇게 서로 대립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1) 그 중에 하나가 프로이트의 어떤 제도적인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안나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정신분석 이론과
2)또 하나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영국으로 건너갔던 멜라니 클라인을 중심으로 한 영국학과가 격돌했던 시기가 바로 마리엔바트 회의였습니다.
근데 격돌의 중요한 이유가 마리엔바트 같은 경우는
아동 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을 했어요. 아이들을 치료를 하는 것들은 또 다른 테크닉과 또 다른 임상이론을 필요로 한다.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런 것들로 요약이 된다고 할 수가 있는데, 안나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주류세력은 여기에 반대를 했죠. 아동 정신분석의 영향은 어쨌든 성인을 대상으로 한 정신분석의 영역에 하나의 보조적인 영역일 뿐이지 그게 독자적으로 개발이 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까 두 세력이 격돌하는 와중에 라캉이 거울단계' 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 아무도 라캉에 대해서 주목을 안 했다고 볼 수가 있죠. 그리고 그 정도의 비중도 없었던 사람이고 하니까. 근데 어쨌든 라캉은 나중에 에크리』에서 자기가 정신분석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던 것은 바로 마리엔 바뜨 국제회의에서 '거울단계' 에 대해서 발표한 거였다. 그러면서 '거울단계' 야 말로 자기가 '프랑스 정신분석에 가져 온 어떤 새로운 이론적 기여고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라고 자평을 하게 되죠. 처음에 에크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서 시간적으로 보면 사후작용. 그리고 66년이라는 시점에서 무의식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인 시간성. 무의식이 가지고 있는 시간성이란 게 뭐냐면 프로이트는 그렇게 정리했습니다. '무의식은 시간이 없다. 흔히 말하면 어렸을 때 뭐 억압이 된 사건이 흔적처럼 남아가지고 그게 성인이 됐을 때 어떤 정신적인 장애가 나타나고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무의식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되면 무의식의 경험들을 너무 특수하게 좁히는 경우가 나타나요.
사건이나 트라우마를 겪지 않으면 무의식적인 게 별로 없는 것처럼. 근데 사실은 '무의식은 시간 개념을 초월해 있는 게 바로 무의식의 본성이다.'라는 게 바로 프로이트가 얘기를 했죠. 이
런 게 바로 라캉이 문체에도 영향을 주게 되는데, 66년에 에크리』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비
로소 거울 단계가 자기의 어떤 커다란 공헌이었고, 그리고 36년에 발표했던 거울단계 논문은 아까 제출을 안했다고 그랬죠? 그리고 49년에 취리히에서 다시 IPA회의가 열리게 되는데 이때 다시 거울단계와 똑같은 주제로 해서 논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에크리』에 실린 글이 바로 그 글이죠. 36년 당시 글이 아니라 49년에 발표했던 글. 그리고 또 한 번 수정을 해서 66년에 글이 실리
게 되는데, 거기 이제 나의 전력이라는 어떤 다섯 편의 머리글이 있고, 그 밑에 논문들이 배치되
어 있는 게 글의 구조라고 첫 시간에 말씀을 드렸죠? 여기서 보면 두 번째 머리글에 해당하는
'나의 전력에 대하여」에서 두 가지 얘기가 나오게 되는 거죠. 거울단계가 자기가 정신분석에
기여한 첫 번째 공로였고, 근데 사실 이건 조금 왜곡이 있습니다.
왜냐면 거울단계라는 개념은 라캉이 처음 만들어낸 말이 아니에요. 심리학에서 이미 자아라는 것들이 어떻게 발달되는가? 여기서 이제 거울이미지가 비치는 효과라는 것들이 정신의 발달과정에서 굉장히 분석되고 중요시 됐는데, 인격이 총체적으로 발달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이걸 마치 라캉은 자기의 고안물인 것처럼 은연중에 소개를 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또 자기가 박사논문을 쓸 당시에 실질적인 지도교수였던 가티앙 클레랑보, 클레랑보랑은 나중에 사이가 굉장히 틀어졌었어요. 클레랑보가 자기의 책이 어떤 인용된 것을 발견하고, 사실 라캉은 굉장히 정중하게 인용을 했는데, 라캉이 토론 모임을 하는데 (클레랑보가) 거길 들어가서 이제 논문을 집어던지면서 '너 내 논문 표절했지? 라고 막 화를 냈어요. 라캉도 맞받아쳐서 '내가 아니라 당신이 내 입장을 표절한 것이다.' 라고 이런 식으로 갈라섰던 경우죠. 근데 이제 나의 전력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보면 자기의 '유일한 스승은 클레랑보였다.' 라고 이제 거기다 얘기를 하게 됩니다. 이것도 이제 어떻게 보면 사
후자용의 에로써 우리가 들어볼 수가 있는 거죠?
▲ 거울단계의 이론화
어쨌든 그 두 가지가 나의 전력에 대하여」에서 자세히 분석이 되면서 비로소 거울단계라는 첫
번째 개념과 더불어 라캉의 독자적인 이론화가 시작이 됩니다. 왜 독자적인 이론화냐면 상상계라
는 하나의 개념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이것이 기존의 정신분석 이론이나 그 정신과 이론에서
는 없었던 이론이에요. 예를 들어서 프로이트의 후기위상학, 프로이트는 1920년대에 와서 첫 번
째 위상을 수정해서 두 번째 위상학을 내놓죠? 두 번째 위상학의 내용이 정신의 구조는 자아
초자아 이드 이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물론 나누어져 있는 게 공간적으로 분리되
이 있다는 게 아니라 은유적 자원에서 이해를 해야 되죠? 근데 "자아라고 하는 것들이 흔히 이
성과 어떤 상식을 대변하는 부분이다" 라고 프로이트는 얘기를 했습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의식이라든지 합리성 같은 것이 사이에 속한다고 할 수가 있죠. 왜냐하면 사는 이드로부터 분화 되어서 나온 것들인데 현실과 관계를 갖는 게 사이의 기능입니다. 우리는 원래 본능적 존재죠?
근데 이제 성장하면서 본능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특히 이제 성발달 이론에
서 보면 항문기 때 최초의 사회적 규율에 대해서 체험을 하게 되죠. 용변 훈련이라는 것들이 단
지 어떤 용변을 가리는 것들이 아니라, 자기의 어떤 본능적 요소들을 통제를 해야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시기가 됩니다. 이 때 발달하게 되는 게 자아죠. 이제 더 이상 이드의 어떤 정령들
이라는 건 무원칙하게 독자적으로 수용 되서는 안 된다는 걸 배우게 됩니다. 이드는 어떤 정념적
인 요소, 그리고 이제 무의식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제 초자아는 양쪽을 매개 하
면서 이 외부로부터 부모의 어떤 요구에 의해서 수용되는 부분으로서 특히 양심과 도덕에 관련이
되는 게 바로 초자아입니다. 이 세 가지를 프로이트가 후기에 구상하게 되는데 이 세 가지는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어지는 게 아니라 다 무의식에 뿌리를 박으면서 분화되는 그 정신기관들로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근데 특히 국제 정신 분석학회는 이 자아라는 것들을 강화하는 게 정신분석의 목표가 된다. 이런 생각들을 강하게 가졌어요. 실제로 자아가 강하지 못하면 현실에 적응을 못하면서 어떤 이드적인 것 초자아적인 것에 쉽게 굴복할 것이라는 걸 생각할 수가 있죠. 그러다
보니까 분석이라는 것은 이게 허약한 자아를 강화시켜주고, 사회적인 것들에 잘 적응하게끔 해주
는 게 분석의 목표다 그러면 분석은 굉장히 교육적이고, 그리고 좀 사회적인 규율들이나 사회
적인 관계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다.' 라고 얘기 할 수가 있겠죠. 이런 걸 대변
하는 게 바로 특히 '자아 심리학' 이런 걸 강하게 대변했습니다. 그런데 라캉은 상상계라는 걸
통해서 자아의 본질에 대해서 공격을 하게 되면서 '자아라는 것들이 결국 주체성이 소외된 부분
이다.' 라는 것들을 얘기 하죠. 바로 여기서 거울 단계의 중요성이 대두가 된다고 볼 수가 있
습니다. 거울단계는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구체적으로 앙리 발롱(Henri Wallon)이라는 사람이 라캉의 친구이기도 했죠? 심리학자인 앙리 발롱이 최초로 제안했던 개념들이었는데, '거울 효과'라는 말을 썼죠? 침팬지와 어린아이 6~18개월 된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데 둘 다 거울
에 비친 이미지를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가? 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근데 침팬지는 거울에 비친
이미지가 자기의 것이라는 걸 굉장히 빠르게 알아내요. 근데 중요한 건 침팬지는 그걸 아는 순간
에 거기에 흥미를 보이지 않고 그냥 딴청을 피운다는 거죠? 근데 어린아이는 자기 이미지가 거울에 비쳤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이미지에 굉장히 매혹이 되가지고 그걸 막 붙잡으려고 한다든지 막 좋아서 친다고 한다든지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앙리 발롱같은 경우는 이 거울에 비쳐진 이미지라는 것은 원래 외부현실과 하나로 융합되어 있는 덩어리들인데 아이는 최초의 자아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구분을 못하죠. 그러다가 어느 틈엔가 자기라는
하나의 독자성들을 외부세계로부터 분리하는 걸 배우게 되는데 이때 중요한 게 거울의 이미지입
니다. 거울에 비쳐지는 자신의 신체를 보면서 그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이러한 효과를 통해서 거울이라는 것은 어떤 자아의 원형으로서 작용하게 되고, 인격발달에 있어
서 하나의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고 이러한 것들이 거울 단계의 이념인데, 라캉은 거울단계가 바
로 이제 인간의 어떤 정신구조를 상상 계에 고착화 시키고, 특히 상상계의 본질일 수 있는 어떤
자아. 여기서 이제 소외 단계가 벌어진다는 것을 이제 중심적인 내용으로 얘기를 하죠. 근데 라캉
이 상상계 자아를 겨냥한 것은 단지 프로이트의 위상학만이 아니라 합리적 이성의 대변자로 자처
하는 철학에 대한 재수정을 겨냥을 한 겁니다. 아까도 거울단계에 대한 논문에서 앞부분에 분명
히 그렇게 얘기하는 데 '정신분석의 경험은 거울단계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목하게 해준다. 근
데 그 중요성이 뭐냐면 코기토로부터 나오는 모든 철학에 대해서 반대하게끔 만들어 준다.'
“흔히 말하는 어떤 이성의 합리성이라는 것은 결국 '거울적 이미지' 에서 비롯된 허상들에 매
혹되면서 그것을 주체의 본질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라고 비판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
은 세계를 하나의 이성이 그리고 어떤 의식이 비추어보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들은 사실은
기술적인 작용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종의 어떤 편집증적 구조라고 얘기를 하죠.
▲ 에메의 사례
여기서 이제 자기가 박사 논문에도 분석했던 편집증의 중요성들이 다시 한 번 활용이 되는데, 박
사 논문은 여러 가지 얘기가 있지만 대표적인 게 박사 논문에서 기울 단계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얘기를 할 때는 짧게 그 얘기를 드릴게요. 여성 편집증에 대해서 라캉이 굉장히 관심을 갖게 되
는 계기가 당시 파리에서 하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가리트라는 여성이 있었는데, 마가리드가
이찌 보면 평범한 여성이죠. 낮에는 파리의 우체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고, 일이 마치지고
나면 도서관이나 뭐 카페 같은 데를 다니면서 책도 보고, 글도 쓰고 하면서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는 그런 여성이었습니다. 근데 어느 날 이 이성이 이제 당시 파리의 유명한 배우였던
위게트라는 어배우가 공연을 하러 왔는데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 여배우를 공격을 하게
되죠. 칼을 가지고 찌르려 하다가 여배우가 칼날을 딱 잡았어요. 손으로. 그래가지고 막는 바람
에 손이 베이고, 마가리느라는 이성은 바로 잡혀서 구속이 됐죠? 근데 정신감정을 해보니까 '정
상상태가 아니라 편집중적인 기질이 있다. 그래가지고 정신병원에 수용이 되게 되는데, 라캉이
이 여성 환자를 만나게 되면서 이 여성 환자와 대화를 하고, 여러 가지를 분석을 하게 됩니다.
마치 이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안나 오' 라는 여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라캉의 정
신분석의 출발점에는 바로 여성 편집증이 있었죠? 근데 당시 편집증이라는 게 (오늘 날에도 마찬
가지지만) 정신병의 커다란 두 영역이 편집하고 정신분열증입니다. 그리고 이제 조울증 정도를
추가할 수 있다고 말씀 드리는데, 특히 편집증의 특징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게 바로 망상입니
다. 그래서 외부 현실과 자기의 관계가 보통 정상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합리적이고 어
면 관계성에 입각한 게 아니라 자기의 생각들이나 자기의 경험들을 통해서 재구성 되는 게 바로
편집중의 특징이죠. 마가리트 같은 경우는 자기는 십자군적인 사명을 띠고 있다.'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 아들을 소련의 비밀경찰인(당시는 뭐 소련의 비밀경찰
이 이름이 정확하지는 않을 텐데) KGB가 자기의 아들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 그리고
온통 주변사람들이 자기를 핍박을 하는데 그 핍박하는 길 보기 위해서는 다른 길 할 필요가 없어
요. 신문을 펼쳐보면 신문에 자기를 비방하는 기사가 난다.' 라고 믿고 있었던 거죠. 그러면서
적들의 적대적인 음모에 맞서서 자기는 세계를 구원할 어떤 이상들을 글을 써가지고 표현하면서
글들을 영국의 황태자에게 보내게 됩니다. 황태자를 위해서 헌정하는 글들이죠. 그리고 나중에
소설을 두 편을 쓰게 되는데, 소설의 제목이 비방자였어요. 비방자』 바로 이 「비방자』
라는 소설에서 여주인공의 이름이 바로 '에메' 라는 이름이었는데, 예전에 우리 프랑스 축구 감
독이 '에메 자키' 인가 뭐 이랬었어요. 근데 이 에메가 가명이죠? 근데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임
상사례들을 소개 할 때는 신원이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명을 쓰는 경우가 많죠. 그
래서 원래 본명인 마가리트보다 에메로 알려지게 되는데, 바로 이제 여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에
메라고 붙인 사례가 라캉 박사논문에서 주된 분석의 소재가 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편집
중의 특징 중에 하나는 일상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겁니다. 보통사람은 자기가 어떤 환
상을 품을 수도 있고, 꿈을 꿀 수도 있지만 그것과 현실을 구분할 줄 알죠? 내가 세계적인 인물
이 되고 싶지만 나의 현실을 비추어서 여러 가지를 판단을 하거나 타인과의 관계들을 되게 우선
시 여기는데 편집중의 망상은 이런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게 있어요. 내가 탄압받고 있다고 생각
하면 바로 적들의 음모가 곳곳에서 보이는 게 편집증 환자의 특징이죠.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 모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기랑 별 상관없는 얘기도 언제나 자기를 모함하는 얘기들로
듣게 됩니다. 그래서 에메 사례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에메는 어렸을 때부터 약간 좀
불행했던 가족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 초반까지는 커다란 증상이 없었는데, 아이를
낳게 되면서 편집증적 증상이 시작이 되요. 첫째 딸을 낳게 되는데, 딸을 낳자마자 사산을 하
게 됩니다. 딸이 탯줄에 목이 감겨서 죽었다고 하는데, 그걸 적들의 박해라고 믿기 시작하죠. 그
러면서 그 때부터 혼자서 중얼거리거나 실없이 웃거나, 미친 듯이 거리를 다니거나 이런 증상들
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근데 라캉이 주목했던 건 이런 편집증적 증상보다는 에메가 글을 통해
서 자기의 어떤 인물들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바로 여기서 나중에 라캉이 무의식 언어적 작용이라고 말하는 초기 모습이 보이죠. 아직은 그런 개념이 없지만 환자가 하는 말, 그리고 그것
이 갖는 어떤 효과들에 주목하는 라캉 특유의 이론들이 초기 편집증의 치료에 있어서도 나타나게
됩니다. 사실 에메와 라캉의 관계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요. 약 1년 정도를 만나긴 했지만 사실
라캉은 탐욕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가져
야지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죠. 예를 들어서 가지고 있는 게 맘에 든다고 하면 “나 잠깐 빌려
주지" 하고 안 돌려주는 식이에요. 끝까지. 이게 라캉의 특징이고, 뭘 먹고 싶다고 그러면 오
늘 가서 우리 맛있는 것 먹자. 오늘은 당신이 사고 내일은 내가 살게." 다음에는 사라져 버리죠.
안 나타나고,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 그런 식의 사람이 라캉인데, 여기서 에메가 쓴 글, 그리
고 에메의 말을 기록한 여러 가지 기록물들을 라캉이 나중에 박사 논문 때 활용을 하면서 에메한
테 끝까지 돌려주지 않죠. 그래서 에메는 자기가 하나의 이용물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분개를 하게 됩니다. 자기를 인격적 존재로 보는 게 아니라 실험 대상처럼 보면서 더구나 자기가
쓴 글을 다 빼앗아가서 돌려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이 에메 사건이 묻힐 뻔했는데, 나중에 이게
또 운명의 장난일 수도 있는데, 에메가 어떻게 해서 라캉의 아버지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게 돼요.
거기 가서 또 만나게 되고, 또 에메가 낳은 아들이 정신분석가가 되면서 분석을 받으면서 어머니
얘기를 듣게 되죠. 어머니가 라캉이 얘기하는 그 에메가 바로 자기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디디에
망시오라고 하는데 이 사람도 유명한 분석가입니다. 이제 가족사가 굉장히 복잡하게 읽혀있죠.
이든 그건 중요한 얘기는 아니고. 근데 이제 첫 번째 말을 사산하면서부터 이 증상이 시작되게
되고, 바로 1년에 두 번째 아들을 낳게 되는데, 아들이 생기면서 굉장히 아들에 대해서 집착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죠. 첫째 딸이 죽었으니까 그릴 수도 있는데. 너무 과
도하게 보호를 하면서 주변으로부디 차단을 시키려고 하게 되는데, 이런 와중에서 불안한 중세를
보이니까, 나중에 과부가 된 언니가 에메의 집에 들어오게 돼서 에메의 가족을 돋보고 특히 조카
죠? 조카를 키우게 됩니다. 이러면서 언니에 대해서 굉장히 이중적인 대도를 가져요. 한편으로는
언니의 말에 복종을 하고, 언니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언니가 사기를 다 망쳐놓는다는 이떤
질투심. 어떤 이중적인 대도를 동시에 보이게 되는 기죠. 그러면서 나중에 소설을 갔다가 써가지
고 편집 출판을 하려 하는데, 그 출판이 기절이 되죠. 출판사에서 그러니까 출판사 편집장을 만
나겠다고 쫓아가지고 편집장이 바빠서 직원을 내보내니까 직원의 목을 조르고 '왜 이것을 안 내
냐?' 막 이러면서 난리를 치고, 결국은 안 내죠. 그래서 다시 영국의 황태자에게 보내는데, 영
국 왕실에서도 “우린 이걸 받을 수 없습니다." 하면서 다시 돌려보내게 되죠. 그러면서 나중에
여배우를 공격하게 되는데, 라캉은 결론적으로 여배우를 공격한 행위가 어떤 편집 중에 기초한 공
격성이라기보다는 '자기 처벌 증후군'으로 해석했어요. 왜 여배우를 공격했냐? 여배우를 죽이
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녀를 공격해서 잡히는 게 목적인거죠. 구속돼서 자기 스스로를 처벌하고
싶었던 거예요. 실제로 구속이 되면서부터 침착해지기 시작했고, 어떤 편집증적 혼란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으니까. 여기서 에메의 사례가 중요한 게 뭐냐면, 편집증의 특징인 어떤 세계와
의 관계에 있어서 망상적인 특징. 그리고 또 하나는 동일시 실제로 에메가 사기를 박해한다고
믿었던 일린의 인물들을 재구성 해보면 최초의 어배우가 있었고, 그 이전에 우체국에 근무하던
어배우를 자기가 굉장히 좋아했어요. 동성애적으로 사랑을 했다는 얘기죠? 이 여직원은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인데 굉장히 허임이 많았던 그런 여자 같아요? 라캉은 이 여자녀 교환한 음모가
라고 하는데, 만날 예매를 부추겨가지고 세상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얘기도 해주고 그러면서 '내
가 이런 하찮은 인간들 틈에서 얼마나 자존심을 손상하면서 살고 있냐?? 막 이런 식으로 하면서
에메가 거의 추종하게 만들죠. 나중에 에메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죽은 날 그 여자한테 마침 전화
가 오니까 그 여자가 음모의 배후에 있다고 생각을 했죠. 이중적 특성을 보이는 거예요. 자기가
미워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은 한 때 자기가 닮고 싶어 하고 모델적인 사람들인 거죠. 그리고 아까
말한 위게트라는 여배우 이전에 다른 두 명의 여배우가 있었어요. 다 보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
자들이고 글을 통해서 혹은 활동을 통해서 이름을 날렸던 사람들입니다. 바로 에메가 꿈꾸었던
것이 그런 상들이죠. 바로 이런 사람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타인이 아
니라 타인이면서 동시에 자기의 이상적인 모델, 자아의 또 다른 상이라고 볼 수도 있죠. 자기 스
스로를 공격한다고도 볼 수 있는 거예요. 에메는, 바로 이런 모습을 라캉이 관심을 가졌던 거죠.
물론 박사 논문에서는 그런 식으로 상상계니 이런 개념을 통해서 분석 되는 게 아니라, 정신 의
학적 메커니즘을 통해서 분석이 되는데, 어쨌든 이 편집증을 통해서 나중에 라캉은 상상계라는
개념들을 끌어내면서 그걸 발전을 시키게 되고, 그래서 라캉의 박사 논문은 프로이트한테도 정신
의학계도 정신분석가들도 아니라, 초현실주의자들한테 굉장히 환영을 받았어요. 초현실주의자들
이 생각하는 게 일상 속에 내재하고 있는 환상, 꿈, 그리고 죽음. 이런 것들을 표현의 소재로 삼
아서 표현하고 때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환상들이 현실보다 더 실제적이다.' 이런 것들이 초현
실주의자들이 노리는 효과들이잖아요? 바로 이런 것들이 편집증이 보여주는 논리랑 똑같죠. 살바
도르 달리 같은 경우는 이중 이미지를 작품의 소재로 많이 썼습니다. 이렇게 보면 제가 나중에
그걸 보여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달리 그림 중에 하나가 있어요. 산 속의 호수를 그린 그림
인데, 어떻게 보면 호수 같고 어떻게 보면 생선 같고, 또 어떻게 보면 남근 같고, 어떻게 보면
여성의 성기같이 생겼고, 이런 걸 즐겨 그렸던 사람이 달리적 이중 이미지. 그리고 일상적인 물
건이 악몽처럼 변해가는 과정. 흔히 볼 수 있는 식탁같은 것들이 가을날의 카니발이라는 그림을
보면 서로 잡아먹는 식으로 나오고, 이런 것들이 초현실주의자들에 강조되는데, 바로 라캉의 박
사논문이 편집증에 대해서 나름 독자적으로 다루니까 초현실주의자들한테 환영을 받았죠. 라캉은
초기에 초현실주의자들하고 많이 어울리게 됩니다. 특히 초현실주의의 창시자인 앙드레 브르통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 이런 사람들하고 친하게 되죠. 그래서 사실은 초현실주의자들은 프로이트
보다는 어떻게 라캉과 더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라캉 스스로가 초현실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초기에 초현실주의자의 그룹에 속했던 파울로 피카소의 주치의도 하고 그랬었으니까
초현실주의자들하고는 관련이 많죠. 그래서 이 편집증의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하나의 예시적인
걸로 이해를 하면서 거울 단계에 대해서 얘기를 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나중에 일곱 번째인가 여
덟 번째 강의에 세 가지 인상에 대해서 할 겁니다. 그 때 편집증과 정신분열에 대해서 얘기를
하도록 할게요. 어쨌든 그것 정도만 명확히 이해를 하시면 되는데, 프로이트같은 경우는 히스테
리 환자가 자기의 이론의 모든 출발점이었어요. 근데 라캉 같은 경우는 가장 애착을 가졌던 게
바로 편집중, 편집중은 정신병이 아니에요. 정신병은 정신병이지만 임상으로 보면 사실은 우리
의 의식구조 자체가 편집증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이게 라캉의 생각이었기 때문에 거울단계
이론이 겨냥한 게 바로 그거죠. 일상과 정상과 비정상 혹은 광기와 어떤 합리성의 구분이라는 건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가 잠재적으로는 그런 편집증적 사고의 본질
을 똑같이 갖고 있다. 바로 그게 자아다. 라고 얘기 할 수가 있는 거죠.
▲ 상상계의 중요성
원래 프로이트의 이론에 의하면 그건 자세히 설명 안 하겠습니다. 그게 수가 아니니까. 자아라는
것은 마부에 비유가 됩니다. 두 마리 말을 끌고 가는 마부죠. 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안 됩니
다. 초자아도 잘 다뤄야 되고, 이드도 잘 다뤄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 자아의 기능이라는 게 평
장히 강화가 되지만 또 말기에 프로이트는 죽음 충동 타나토스적인 것에 주목을 하면서 이가
다스려지고 제어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깃들에 주목을 했어요. 바로 이런 가능성이 라캉한테는
자아의 어떤 호소성 내지는 자아를 강화한다는 분석의 목표에 대한 명시적인 거울 이런 것들로
나타나게 되죠. 그리고 IPA를 국제 정신 분식 협회를 공격하는 가장 주된 논거로서 활용되었던
게 바로 상상게입니다. 상상계에 불과한 자아적인 것을 정신분석이 강화해야 된다고 주장하니까
라캉이 보면 이건 프로이트의 가르침을 뒤집은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 거죠. 바로 이런 것들에
상상계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얘기했지만 라캉이 세 가지 구도, S는 상징계를 얘
기를 드리죠? 상징계의 약칭 심볼릭, 그 다음에 I는 상상계입니다. 이마지낸 그 다음에 R은 실
재계죠? 레알, 이 세 가지의 관계를 저런 식으로 표기를 했는데, 나중에는 표기를 바꿔서 RSI로
바꾸게 됩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라캉의 관심이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실제로 옮겨가지만 이
세 가지는 항상 동시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라캉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자아가 상상계의
구조고, 기만하는 구조라고 해서 자아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주제를 찾아야 한다라고 라캉은 주장
하지 않았다는 말이죠? 상상계는 벗어던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상상계를 벗어 던지고 진짜 주
체를 한번 찾아보면 좋겠다. 분석은 그런 목표를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상상계에 갖혀서 소외되
면서 살고 있는 거죠. 그리고 상상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타자적인 이미지에
지배를 받는다는 겁니다. 이건 무슨 얘기냐면 우리가 꿈꾸는 욕망들은 타자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거죠. 주체가 가지는 자기 고유한 욕망이라는 것은 사실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상상계의 분석을 통해서 규명이 될 수가 있죠. 그래서 최초의 6개월 정도 된 아이가 6~18개월 된
아이는 거울의 이미지를 보면서 열광을 하게 되는데, 아까 그 심리학자들은 이걸 통해서 이미지
가 우리의 어떤 자아구성에 미치는 어떤 역할들에 대해서 굉장히 강조를 한다고 그랬죠? 라캉은
여기서 강조하는 게 뭐냐면 거울적 이미지가 최초의 어떤 주체성을 형성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
을 하긴 하지만 동시에 최초의 주체성에 대해서 소외를 발생시키고 오인하게 만든다. 실제로는
이미지 부위에 불과한 것들에 대해서 고착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거울단계의 본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게 뭐냐면 바로 거울단계라는 말입니다.
▲ 거울단계의 이미지
미러 스테이지라고 영어로 그러는데, 거울단계라는 말이 왜 중요하냐면 단계라는 말은 흔히 그런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키기가 쉬워요. 하나하나 밟아나가는 과정처럼. 마치 거울단계는 아이가 어
렸을 때 겪고 나서 그것이 극복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라캉은 거
울단계를 심리적 원형이다라고 얘기를 해요. 이 말은 아이 때 한 번 겪고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
가 세계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인식을 할 때 계속해서 작용하는 원형이 바로 거울적 이미지라
는 거죠. 이건 뭐냐면 주체는 언제나 타자를 통해서만 자기의 내면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거죠.
타자를 통해 그리고 타자에 의해. 타자라는 게 없고서는 주체성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게 나중에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론이다.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 라고 정식
화 되죠. 아직은 대타자라는 개념이 없지만. 대타자는 55년 이후에 상징계라는 개념이 정교화 되면서 나오게 되는 거죠. 그 전에는 타자라는 말을 가지고 대타자 소타자 적인 것을 라캉도 섞어
쓰게 됩니다. 그래서 단계라는 것을 심리적인 원형의 차원에서 이해를 해야지 발달론적 차원에서
이야기 하면 안 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안 된다는 거죠. 거울단계라는 말은 이런 오해를
가져오기 쉽기 때문에 특별히 거기에 대해서 주목을 해야 되고, 라캉이 그것을 강조를 합니다.
근데 아까 왜 원형이 될 수 있냐고 한다면 심리학자들은 거기서 자아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구성되는가? 라고 한다면 라캉은 여기서 분열을 봐요. 왜냐면 6~18개월 된 아이는 아직 자기 몸에 대해서 완벽하게 통제를 할 수 없는 아이입니다. 아직 운동신경이 발달하지 못한 아이죠. 뭐 조금
일어서서 걸어 다니긴 하겠지만, 1년 정도 되면, 아직 완전하게 자기 몸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오히려 단편적인 운동자극과 감각에 덩어리 이런 것들이 아이의 신체적인 현실
이라고 할 수 있죠. 근데 거울에 비처진 모습은 완벽한 상으로 다가옵니다. 바로 이렇게 완벽하
게 다가오는 상, 이상적인 이미지와 실제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몸의 분리 간격. 이게 바
로 거울단계에서 겪게 되는 경험이죠. 이게 아이는 어떤 식으로 겪게 되냐면 완벽한 이미지에 대
해서 굉장히 열광을 하고, 저게 나라는 것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근데 완벽한 이미지는
실제 몸의 현실을 반영해주고 있지는 못하죠. 바로 여기서 예기의 기능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라는 것은 지금 도달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예측하면서 모든 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사후작용하고 짝을 이룬 개념이죠. 자아라는 것들이 완성은 안 되었지만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처럼 예기가 이미 되고 있다는 거예요. 투사가 되고 있는 것들이죠. 그렇지만 실제
몸은 계속해서 여기에 대해 불일치를 보여주게 됩니다. 이건 아이는 어떤 식으로 경험 하냐면 마
치 완벽하게 주어져 있는 이미지가 한편으로는 자기 이상적인 모델로서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자
기 실제 몸이라는 것을 위협하는 존재처럼 느끼게 되죠. 우리가 타자에 대해서 갖는 이미지가 그
겁니다. 나랑 닮은 사람을 볼수록 굉장히 사랑스럽고 존경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위협적으로 느끼게 되죠. 라이벌이라는 게 항상 이렇죠. 제가 있으므로 해서 내가 있기 때문에 나한테는 나를 확인해 주는 게 라이벌이에요. 근데 또 라이벌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죠. 근데 제거가 되면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의미가 없어지는 거에요. 항상 라이벌이 있기에 자기가 돋보이는 거지, 라이벌이 없이 혼자 막 주어지는 존재라는 깃들은 주목을 못 만료. 바로 거울의 이미지는 이런 겁니다.
비춰지는 자기의 완벽한 이미지. 이건 실제 나이면서 내가 아니죠. 나의 이미지이면서 실제 내가 아니라는 거죠? 나이면서 내가 아닌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서 내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아가 주축이 되는 주체성의 내용이 출발부터 어떤 불일치를 안고 갈 수 밖에 없다는 것, 바로
여기서 욕망의 시작이 비롯되는 거죠. 완벽이 보어주는 타자의 이미지와 실제 몸의 괴리감. 이걸
예기를 통해서 극복을 하는데, 이걸 라캉이 얘기하는 '조각난 몸의 환상으로서 경험이 된다.'
라고 얘기를 하죠. 꿈에 그리고 어떤 무의식적인 환상 속에서 항상 자기 실체를 드러내는 어떤
조각난 몸의 모습들. 바로 이런 것들이 거울의 이미지가 주는 어떤 위험으로서 아이는 받아들여
지게 되는 거죠. 바로 여기서 나르시시즘의 본성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르시시즘
은 한편으로는 자아를 어떤 이상적 대상으로 성에 적으로 좋아하고, 성애 적으로 집착하는 거지
만 동시에 그러한 자아에 대해서 또 불안해하고, 위협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아까 에메를 얘기
했지만 에메가 공격한 사람들은 자기랑 동떨어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닮고 싶어 하는 거
울적 이미지였어요. '나도 저런 여자들처럼 되어 봤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대상들이 항상 예
메한테는 동시에 자기를 핍박하는 대상들로서 설정이 되었다는 거죠. 이런 이중적. 그게 가장 전
형적으로 드러나는 게 바로 언니와의 관계죠. 언니는 어떻게 보면 자기의 엄마, 보호자의 역할이
면서 동시에 자기를 방해하는 그런 자에요. 그러니까 언니에 대해서 이중적 태도를 갖게 되는 것
들이죠. 실제 남편과의 사이는 그렇게 좋지 못했어요. 결혼 초기부터 서로 기질이 다르다보니까
아이까지 낳았지만 남편과는 원만하지 못하고, 나중에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가게 되죠. 거기서
우체국 일을 하면서 그 때부터 망상을 본격적으로 발달을 시킵니다. 도서관가서 책보고, 시험을
계속 보는데, 번번이 떨어지죠. 우리로 말하면 대입 시험 같은 것. 그리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공부를 하는데 시험에 계속 안 되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기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
계가 있고, 자기가 몸담고 있는 현실적인 세계가 있고, 이 두 가지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어느 틈
엔가 경계가 무너지는 것들이 에메의 사례에서 나타나는데, 바로 거울적 이미지는 이런 이자관계.
이자관계를 다른 말로 유사 자와의 관계라고도 합니다. 닮은 꼴의 사람이라는 거죠. 타자. 타인
이 바로 유사 자적인 이미지입니다. 나랑 가장 닮아 있고, 거울. 동시에 나의 이상이면서 나를
위협하는 자. 그게 바로 유사 자료. 상블랑, 다시 한 번 보시면 저번에 도식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죠? 이렇게 되어 있는 게 바로 도식인데 그 때 주체는 네 군데에 다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
다. 여기서 A'와 A의 관계가 유사 자와의 관계죠. 상상적 관계라고 그 때 말씀 드린 것. 바로 비
춰져 있는 타인의 이미지가 그겁니다. 근데 여기서 타인이라고 해서 꼭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
요.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타자적
인 거죠. 바로 이 거울단계가 원형으로 작용하는 것은 하나는 인간의 인식구조를 기본적으로 오
인의 구조로 다 고착화 시킨다는 말하고, 또 하나는 인간이 가진 자기의 욕망을 언제나 타인적인
것에서 타인이 욕망하는 것에서 가져오는 '인간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에 대한 욕망일 수밖에 없
다.'라고 라캉은 얘기하죠. 이 욕망이 주체의 내면적인 어떤 것. 주체의 자율적이고, 주체가
생각하는 어떤 자기의 어떤 고유한 실현과는 거리가 멀다.' 라는 것과 통하게 되는 거죠. 실제
로 이런 유사 자와의 관계. 이런 건 라캉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이 분석을 했습니다. 근데
정신분석의 개념이 뚜렷하게 보여주죠.
▲ 르네 지라르
예를 들어서 혹시 그 철학자에 대해 알고 계신지 모르는데 르네 지라르라는 철학자가 있어요. 르
네 지라르는 희생양 개념을 통해서 사회가 왜 폭력을 구조적으로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는가? 예
대해서 잘 분석한 사람이죠. 그에 의하면 폭력은 우연이 아닙니다. 항상 집단,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폭력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죠. 왜냐면 폭력은 집단의 내부의 갈등을
특정한 대상으로 전가시킴으로 해서 집단의 결속력을 유지하고, 갈등들을 조절할 수 있게 하는
기죠. 그래서 항상 유태인, 집시, 이런 사회적인 공동체 불만을 전가시킬 수 있는 희생양들이 필
요했다라는 게 르네 지라르의 생각인데, 희생양이 아니라 희생양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에서 르네
지라르가 정신분석을 많이 활용합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은 타인에 대한 모방에서부터 시
작됩니다. 그래서 욕망과 본능을 구별하죠. 예를 들어 우리가 먹는 것은 본능에 속합니다.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는 것. 그런데 예를 들어서 좋은 에는 아니지만 어떤 부정한 체인점 같은 데 가
서 지정된 메뉴를 먹고 싶어 하는 건 모방이죠. 이 때 욕망은 본능에서부터 구별이 됩니다. 먹고
싶은 데시 출발하지만 타인이 가지를 부여한 것을 따라하면서 거기서 만족감을 느끼려는 것에서
본능이 아니라 욕망에 속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욕망은 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타인에 대한 모방
에서부터 나오게 됩니다. 근데 타인을 모방할수록 서로간의 관계가 갈등이 생기게 되는 데, 왜냐
면 똑같은 대상을 두고 서로 다둬야 되는 거니까. 타인은 나에게 있어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존
재이면서 욕망의 방해자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타인과 나의 관계가 갈등의 단계로 들
어가게 되는데 이건 바로 짝패라는 말을 써요. 더블이 바로 그거죠. 이게 바로 거울 단계에서 라캉이 얘기하는 유사 자와 똑같은 의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타인은 바로 나의 분신인기죠. 그러니까 바로 이러한 짝패간의 갈등은 나중에 공동체 전체를 붕괴시킬 위험으로 발달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짝패가 하나의 갈등을 해소시켜 줄 제 3의 인물이 필요한 기죠. 바로 그게 희생양이 필요한 기죠. 그래서 폭력은 어떻게 보면 사회를 유
지해주는 배출구로서 항상 기능을 하고, 그러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는다는 게 르네 지라르의 이
돈입니다. 근데 어기서 더블, 짝패라는 것들은 라강이 강조한 거울단계의 유사 사와의 관계 이미
지금을 보면 되죠. 바로 에메가 공격하려 했던 대상과의 관계. 이런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