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한참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데 처가 아파트 토요시장엘 간다 한다.
보통때는 벌떡 일어나 따라 가나 오늘은 아직 눈꼽도 떼지 않고 빈둥대다가,
'혹 생선 아줌마가 대구을 갖고 왔으면 큰 놈으로 한마리 사오지' 하고 부탁한다.
한 겨울 세시 음식으로 그래도 큼지막한 대구 한마리는 먹어야지.
우리 어릴 적에는 대구라기보다 통대구라고 하였는데.
얼마있다가 '올해는 대구가 상당히 비싸요' 하며 처가 집으로 들어온다.
'원가 3만원짜리를 사왔어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 콩나물을 같이 다듬자고 부른다.
야채나 멸치를 다듬는 지루한 일에는 군말없이 선뜻 도와주어야 한다.
다년간, 아니 곧 결혼 39주년을 맞는 나의 경험 상 절대 필요한 일이다.
같이 다듬어면서 여러 이야기도 하고.
대구는 내장, 특히 간과 부레, 곤과 살코기, 무, 대파, 팽이버섯, 두부를 넣고,
멸치, 표고와 다시마를 넣고 만든 국물에,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지리(생선 맑은 국)을 끓여 낸다.
여기에 까실이(홍조류의 일종)가 들어가면 더욱 좋으나 없으니 할 수 없지.

다른 각도로 한장 더.


여기에 곁들이는 술은 작년 9월 일본 카와코에에 갔을 때 동경사는 친척 여동생이 선물한 일본 사케 네병 묶음의 하나.
대구는 버릴 게 없는 생선이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내가 부르는 노래가 ‘우리 대구 한 마리 사자’
숫놈은 고니를 넣고 끓인 대구지리. 우리집에서는 대구 매운탕은 잘 하지 않는다.
암놈은 알을 따로 빼내어 아가미와 염장을 하고
또 포를 뜨고, 말려서 먹기도 하고 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대구알젓과 장자젓, 작으면 둘을 같이 섞어 무를 나박썰기로 넣고
양념 후 젓을 담그면 채 익기도 전에 다 먹어 버린다.
또 대구의 간은 간유로 만들어 6.25 동란 후 영영상태가 나빴던 시절,
각진 커다란 병에 들어간 간유를 티 스푼으로 떠 먹이곤 했었다.
그 비릿한 내음은 아직도 코 앞에 풍기는 듯하다..
대구포라면 겨울에 부산의 장모님이 부쳐주시던 그 대구포.
부산 좌천동 언덕배기에 있는 처가의 넓은 마당의 그늘에서
해풍에 씌어 말리는 정성깃든 포는 그대로, 아니면 간장양념으로 한,
긴 겨울에 살짝 구워 먹으면 이보다 더 좋은 술안주는 먹어 보질 못하였다.
시중에서 파는 대구포라는 가짜 대구포는 아니다
.
이건 찢으면 그대로 결을 따라 찢어진다.
아는 생선가게에 미리 주문을 하면 괜찮은 크기의 대구를 살 수도 있다.
몇 년전 현대백화점에 갔다가 커다란 알만 꺼집어 내어 팔아
이게 무슨 횡재냐? 하며 사와 젓담아 먹은 적도 있다.
용산병원 부근 한강변의 자주가는 일식당에서 맛이 간 생선으로 매운탕을 끊였다가
우리에게 혼나고 그 후로는 다시 그 집을 가지 않았다.
나중 알고보니 한창 골프에 재미를 붙여 주방장이자 주인이 자리를 지키지 않은 것.
일반적으로 생선의 가장 좋은 부위로 초밥을, 다음부위가 생선회를, 그리고 지리,
마지막으로 양념에 쎄게 들거 간 매운탕이다 보니까.
쓰레기 통으로 들어갈 생선을 매운탕으로 만들어 내온 것이었다.
87년 런던의 제 10차 세계신장학회에 참석 후 파리를 들렀다가 독일에 왔다.
프랑크푸르트의 역 앞 동아식당의 대구 매운탕은
대서양에서 잡힌 대구에 얼큰한 양념의 그 맛으로 일행들 모두 밥그릇을 비우기 바빴고,
25년이 지난 그 식당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런던의 학회장 바비칸 센터 옆의 어설픈 한식당 '초원'
여러분 혹시 런던에 가시면 절대 여기는 가지 마세요.
파리의 전채와 후식까지 곁들이는 서구식 한식을 먹다가
역시 우리 교민들이 많이 사는 곳의 한식이 맛이 있다.
식성은 어릴 적에 만들어진다.
나는 다행히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나중에는 처가 끓여준 대구 지리를 좋아한다.
언젠가 읽은 책이 생각난다.
그런대로 이민생활에 성공을 하여 미국인 부인과 또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미국의 한인 교포들이 거의 없는 중부 소도시, 동양 그로서리도 없는 곳에 살던 친구가
생태를 사 가지고 뉴욕의 여동생 집을 방문하여 찌개를 부탁한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같은 책에 나오는 기맥힌 이야기 다른 하나는
런던에서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던 환자가 깨어나면서 무슨 말을 하는데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나라는 다국적 언어를 해독하는 사람들이 있어 부탁을 하였더니 ‘엄마’란 걸 알았다.
나중 연락이 되어 찾아온 부인은 너무나 분하여 결국 이혼하였다.
왜 자기와 그토록 오래 살았으면서도 자기를 찾지 않고 엄마를 찾았냐고.
첫댓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대구에 대한 지식도 얻고.... 난, 멀건 지리는 구미가 안 당기고, 더구나, 창자같이 생긴 것은 구미를 떨어뜨립니다. 어릴적부터 습관이 되지 않아서 입니다.
맑은 대구지리의 국물에 청주 한 잔 모든 남자의 로망, 저녁 끼니 때가 되어서 그런가 ?
음식점 하나 내도 잘 될 것 같다. 워낙 발이 넓으니 손님으로 늘 가득할 것 아닌가?
어릴적 먹던 대구포, 대구 아가미 젓이 생각나 군침이 돕니다. 시원한 대구 지리, 아침부터 술 생각도 나네요.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굴비 알젓도 좋은데.
앞으로 대구를 낚으면 경산님 생각이 제일 먼저 날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