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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이야기/ 정희 5
https://youtu.be/WVNWHiJ01MI
소설이 지루해질까 고민 많이 했습니다.
제가 살아가고 싶었던 삶이고 . 또 누구라도 동경하던 삶이었기에 그 어느 한쪽을 올려 보았습니다
🍀
" 이름이 .... 수연양이었지요 ?"
" 네. 맞아요 ."
" 그런데 어떤 일로 전화를 하셨나요 ?"
수연은 머뭇거림없이 대답을 하였다.
" 엄마가 아저씨를 찾으셔요"
순간 수연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 어머니가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
전화기 너머로 가볍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 엄마가 지금 병원에 입원을 하셨어요 "
" 그랬군요 . 먼저 그 병원인가요 ?"
" 네 . 지금 너무 무서워요 "
" 그래요 . 엄마곁을 지키고 있어요. 아저씨가 금방 갈께요 .
" 네 . 빨리 와 주세요 "
전화를 끊고 나는 재빨리 집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며 회사의 관리담당에게 급한 일로 연차를 부탁한다고 전화를 했다 .
이른 아침의 도로는 아직 한적했다.
SM3 는 나의 맘을 아는지 비어있는 도로를 막힘없이 질주했다.
도착했을때는 이미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긴 뒤라 불안한 발걸음으로 그곳으로 올라갔다.
대기실에 몇 사람들이 피곤한 몸을 벽에 기대거나 좁은 바닥에 누워 잠에 빠져 있었다
" 아저씨 . 저 수연이예요 . 정현아저씨 맞지요 ? "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부어 있는 수연은
복도 의자에서 일어나 나를 맞았다.
수연은 엄마인 정희를 그대로 빼 닮았다
" 어떻게 된거예요 ?"
" 계속 치료를 잘 받아 오시다 며칠 전부터 아주 힘들어 하셨어요 "
정희는 그때 퇴원을하고 집에서 안정을 취하며 잘 지냈다고 했다 .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살려는 의지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식사조차 제때 챙겨 먹지않던 습관도 버리고 세끼를 영양식으로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던지 잔잔한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수연과는 예전에 나누지 못했던 대화도 많이 했다한다
화제꺼리도 다양해서 오빠와 식구들의 이야기부터 잡다한 이웃의 흉을 비밀을 공유하듯 털어놓으며 . 티비드라마. 책 . 연예인들의 가쉽꺼리. 그리고 정치 . 부동산가격등 너무나 많아서 어떤 때는 수연이 귀찮아 먼저 제 방문을 닫고 들어가기도 하였다.
수연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삼십년 가까이 정희와 살아 오면서 했던 대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거라 했다.
차츰 건강도 나아지다가 한 달여 전부터 갑자기 가벼운 통증이 느껴져 병원에서 며칠씩 입원치료를 했다.
병세는 오르락내리락 부침을 반복했다 .
어제 퇴원을 하고 집에 온 후 밤부터 극심한 통증이 몰려와 한 밤중에 응급차로 급히 병원으로 옮겼다고 하였다.
"평소에 엄마는 늘 아저씨 생각하셨어요. 그런데 어제는 정말 엄마가 돌아가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저씨를 제가 오시라 한거예요 . 미안해요 .아저씨 "
" 그랬구나 . 괜찮으실거야 . 너처럼 착한 딸이 있으니 엄마도 힘이 나실거야. 고맙다 "
" 죄송해요 . 바쁘실텐데 "
" 그래요 . 엄마 보려면 두시간 정도 기다려야하니 좀 쉬도록 해요 "
" 괜찮아요 , 아저씨, 아침도 못드셨지요?" 올려다보는 수연의 눈망울 속에서 정희의 얼굴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 정현씨 .고마워 .찾아와줘서 ...."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
입맛이 없다고 사양하는 수연을 끌다시피 데리고 나와 병원 앞에 있는 식당에서 설렁탕 한 그릇을 먹여서 올려 보냈다.
수연은 정희의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언젠가 문학클럽에서 인천 월미도를 갔을때 둘이 나란히 서서 찍었던 프로필사진이었다.
" 그래서 아저씨 얼굴을 단번에 알 수 있었어요"
뭉클하게 무너질 것 같은 가슴이었지만 수연에게 미소로 답을 대신하고 말았다.
초가을의 아침햇살이 병원 뜰에 고적하게 내려 앉고있었다 .
< 정현씨 . 환갑이 며칠 안 남았네. 미안해 . 내가 이런 모습이라 생일상도 못 차려주네 . 이렇게 글로나마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어. 축하해.
나 많이 좋아졌어. 당신이 기도하는 것 알아.
더많이 기도 해주길 바래.
난 기도 할줄 몰라서 마음만 보낼뿐이야.
내 환갑때는 당신 생일상하고 같이 차려줄께 . 언제나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래 >
지난해 생일 며칠전 그녀가 보낸 문자가 떠올랐다.
오는 전화를 받지 않으니 문자로 보낸 그녀의
안부였다.
중환자실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
" 아저씨 . 여기예요 "
수연은 그녀 옆에 서있는 두 여자를 소개했다.
정희의 모친과 올케였다 .
" 할머니, 엄마 친구분이셔요 "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정희의 모친은 나보다는 딸의 환후가 먼저 걱정되는 눈치였지만 나에게 향한 시선도 거두지 못했다
병실 문이 열리고 먼저 수연과 모친이 병실로 들어갔다 .
그들이 나온 후 나는 맨 마지막으로 방문자 옷으로 갈아입고 병실로 들어 갔다
많은 환자 사이에서도 나는 정희를 한 눈에 알아 볼수 있었다 .
" 정희씨 , 나 현이예요. 보고 싶어서 왔어요. "
팔에는 링거와 여러가지 약이 주사바늘을 통해 천천히 몸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산소 호흡기를 대고 있는 정희는 약기운 탓인지 아주 깊은 잠을 자고 있는듯 하였다 .
나는 정희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파리한 손목은 야위고 메말랐다
그때 그녀의 눈에는 가느다란 눈물 한줄기가 이슬처럼 빛을 내고 떨어져 내렸다.
" 정희야 . 어서 일어나야지 ."
미약한 힘이 나의 손에 전해졌다.
" 그래 . 정희야 . 늦게 와서 미안해. "
지나가던 간호사가 환자에게 떨어지라고 말리는 손짓을 보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희의 뺨에 입맞춤을 하였다 .
그녀의 깊은 숨소리가 나의 심장을 울리게 하고
있었다.
" 정희야 . 어서 이겨내고 우리 함께 나야가지 . 알았지 ?"
병실입구에서 수연이 그들의 모습을 애처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 아저씨 . 엄마가 일반병실로 올라오셨어요 .
한고비는 넘겼다고 해요 "
전화기를 타고 넘어오는 수연의 음성이 들떠 있었다.
" 그래 . 고생했다 . 아저씨도 끝나는대로 찾아갈게 "
중환자실에서 정희를 보고 온 후부터 나는 일상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
그런 모습에서 다시 회복하려면 또 얼마나 긴 고통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녀의 아픔을 나눌 수 없음에 혼자 괴로워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면 후회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탁자위에 촛불이 펄럭인다 .
병실안에는 그녀의 모친과 오빠 . 올케와 수연이 깨어난 정희를 에워싸고 있었다 .
내가 들어가자 수연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초췌한 정희의 얼굴이 더 창백하게 비쳤다
" 잘 이겨냈구나 . "
" 오랫만이야 . 어떻게 왔어 바쁠텐데 "
정희는 힘없는 음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 우리 공주 아프다는데 어떻게 안 올수있니 ?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어 "
" 바보. "
" 바보니까 너 좋아하지 ."
주위의 식구들이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수연이 음료수 하나를 꺼내서 내게 건네주었다.
" 정희야 . 너 딸 하나는 잘 뒀더라 . 딱 너 닮아서 이쁘고 똑똑해보이더라 "
" 응 . 수연이가 말했어 . 당신 오라고 했다고 "
나는 정희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얼굴은 마른 꽃 같았다
손을 대면 바삭하고 부셔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바라보는 눈빛은 고요한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전처럼 요란하지도 길지도 않았다
눈빛으로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마음은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꼬물거리는 손에서 힘이 서서히 빠지면서 다시 깊은 잠속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 조금전에 진통제 주사를 맞았어요 "
수연이 담요를 덮어 주었다.
나는 정희가 잠을 자는 동안 한치도 떠나지 않았다 .
마침 다음날은 휴무일이어서 나는 새벽부터 병원으로 향했다.
어제 저녁 그녀의 오빠에게 들은 이야기는 일단 검사를 해보아야 하지만 암의 재발과 전이가 의심된다는 담당의사의 말을 전했다.
나는 병의 진전에 대해 확실히 알고 싶었다.
아침 식사가 각방마다 배달이 되고 있었다
정희는 오늘 아침은 금식이었다
각종 검사에 시달릴 그녀에게 가혹한 일이었다
" 잘 잤어 ?"
링거줄을 팔에 꽂고 앉아있던 그녀는 나의 등장에 놀란듯했다
" 웬일이야 ? 이 새벽에 "
" 응 . 오늘 비번이라 간병하러 왔지 "
예전 같았으면 농담이라도 던졌을텐데 지금 그녀 앞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
" 하룻밤새에 안색이 많이 좋아졌어 "
사실 정희의 얼굴에는 홍조가 일고 있었다
나의 미소에 그녀는 가슴을 여미며 부끄러워했다
" 바깥 주인 되시우 ? "
우리의 대화를 듣고있던 건너편 침상의 간병인이 끼어들었다.
" 네 . 남편되는 사람입니다 "
정희는 나에게 눈을 홀겼다.
마침 담당의사와 회진하는 일행이 들어왔다.
" 구 정희씨는 오늘 검사 마치고 식사하세요 "
나는 의사의 사무적이고 건성건성한 권위를 부리는 말투에 정내미가 떨어졌지만 회진을 마치고 나가는 그녀의 뒤를 쫒아가 정희의 병에 대해 물었다
" 어떤 사이시지요 ?"
" 늦었지만 결혼할 사이입니다 ."
의사는 눈을 치켜뜨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잠깐 입술을 깨물더니 , 잠시후 자신의 진료실로 내려 오라하였다 .
" 아직 확실한 결과는 안 나왔지만 제 경험으로는 왼쪽 유방까지 절제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악화될 경우에는 다른 부분 예를 들어 폐나 림프선을 따라 뇌까지 갈 수도 있어요 "
" ..... "
나는 여의사의 말이 끝날때까지 묵묵히 듣고 있었다 . 그녀의 말은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 이럴때는 의사라는 직업에 자괴감을 느끼지요. 다만 환자가 살려는 의지를 갖는다면 저희들은 그냥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만 할 뿐이예요 "
결국 정희의 검사 결과는 아주 안 좋은 쪽으로 나오고 말았다.
결과를 모르는 정희도 한마디 묻지 않았다.
또한 식구들 그 누구도 정희에게 그말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 해야할지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은 수연이나 나 뿐이었다.
그녀도 자신이 어떤 상황이란것을 모르지 않겠지만, 무거운 가족들의 분위기를 보고 자신의 병의 심각함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희는 되려 어머니와 딸에게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
그런 얼굴을 마주하면서 매정하게 말할 수 있을까 ?
나머지 한쪽 가슴을 도려내어야 한다고 , 그래야 생명을 유지하고 . 삶을 이어간다고 감히 말 한마디 붙힐 수 있을까 !
나는 정희의 손을 잡았다.
차갑게 식어있었다
" 정희야 . 또 수술해야 할것 같아 . 너도 이미 어느만큼은 예상하고 있었겠지만 .
정희 네가 이 병마를 이겨내길 간절히 바래 . 이유가 있다면 네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너는 네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 "
나는 그녀의 손을 다시 힘주어 잡았다 .
정희에게 어떠한 말도 정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말없이 듣고 있던 그녀가 내게 쓰러져왔다
내 품안에서 떨면서 오열하고 말았다.
" 다 알어 . 다 알어 . 그러고도 살아야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 . 어떻게 살아야 해 ?. "
나는 그녀의 유방에 손을 대었다.
심장이 쿵쿵 폭포수처럼 울리고 있었다.
유방안의 그녀를 위협하는 암세포가 모두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안아 주었다
내가 정희를 사랑한다고해도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안타까움만 가득했다.
수술은 긴 시간이 걸렸다
암세포를 제거하고 다른 부위로 전이된 작은 세포까지 찾아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정희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그녀가 공포에 떨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었다
떨리는 손을 놓지 않았다.
서늘한 공기와 소름끼치는 수술도구의 날카로운 소리. 혼자 이겨내야하는 외로움 .
수술실 밖에서 나는 정희와 함께 긴 시간을 한몸처럼 지키고 있었다.
정희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지옥문 같았던 수술실 문이 환히 열렸다
이동용침상에는 그녀가 죽은듯 누워있었다.
주렁주렁달린 링거줄들이 유일한 생명줄처럼 처연히 생의 시간을 이어주고 있었다
파리한 얼굴. 하얀 입술. 저 뺨에 붉게 핏기가 돌고 그 입술에 미소가 다시 돌아 올수만 있다면 ......
하늘을 날다 지치고 비에 젖은 새 한마리.
울지도 못한채, 자신의 힘으로는 날개짓조차 할 수없는 그녀는 지금 스러지고 있었다.
병실 창밖은 벌써 깜깜한 어둠이 내려 있었다.
그녀 곁을 조금도 떠날수 없었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냄새가 남아있었고 나는 그녀가 마취가 풀리는 순간까지 곁에서 한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
자정이 다 되어 정희의 첫 음성이 졸음과 싸우는 내귀에 나직히 들려왔다.
" 현이씨 . 나 목말라 "
간절한 소리는 어둠을 가르듯 빛처럼 들려왔다
나는 얇은 가제솜을 물에 적셔 그녀의 입술에 물릴 때마다 안타까움으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 살려만 주십시요 . 당신이 언제나 가르쳐 주신 사랑이 무언지 알고 싶습니다 . 이 사람 살려주세요 . 이사람 꼭 살아야 합니다 "
졸음과 싸우는 그녀를 위해 나는 쉼없이 말을 걸어야했다 .
" 누가 제일 보고 싶어 ?"
" 가고 싶은 곳이 어디니 ?"
" 먹고 싶은 것은 ? 동해바다가 좋아 ? 서해 일몰이 좋아 "
심지어는 나와의 첫키스의 느낌을 말해보라고 까지 하였다 .
그러면서도 정희의 타는 입술을 식혀주려 물에 젖은 가제솜을 번갈아 물려 주었다
햇살이 창문을 핧으며 아침을 알려주었다
그제서야 깊이 잠든 정희 곁에서 나도 잠이 들기 시작했다
" 어머니 . 정희씨는 제가 살리고 싶습니다 .
정희씨의 마지막 사랑 . 마지막 행복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 그동안 행복이란 것을 잊고 살아왔던 정희씨에게 저의 진심과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정희씨의 앞날을 함께 살아가면서 잃었던 행복을 다시 찾아 주고 싶습니다. "
나이가 많은 노모는 나의 말귀보다는 간절한 눈빛과 몸짓에서 진실을 받아 드리고 있었다.
" 아저씨 . 저희는 아무것도 준비 된것이 없어요. 엄마의 생명이 바람 앞의 촛불보다 더 위태로운것도 알지만 아저씨라면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실거예요 .....엄마를 살려 주세요 흑흑 흑 ......"
어깨를 떨면서 오열하는 수연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수술이 끝난 후 . 담당의사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자기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을뿐 이제는 하늘의 뜻에 맡길 수 밖에 없노라고 했다 수술은 정희가 암을 이겨낼 수 있는 마지막 저지선이었다 한다
그녀의 몸 안에는 암세포들이 여기저기 스며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 그 모든 것을 일일히 제거하기에는 환자가 버텨 낼 수 없었을거라 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약물과 방사선 치료로 생명의 끈을 이어가는 길 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정희의 의지가 얼마만큼 강하게 살려 하는것이 생을 연장하는 관건이라 하였다
사형선고는 내리지 않았지만 이미 그들은 정희의 의학적인 치료를 포기한 것이다.
나는 기적을 원하지 않는다.
신에게 기적만을 구하는 자는 기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을 비난하고 등을 돌린다
나의 신앙이 비록 뜨겁지 못해도 내가 정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뿐임을 알고 있었다.
처음 . 수술을 받았을 때 나는 그녀의 행복을 빌면서 그녀의 곁을 떠났다.
내가 그녀를 간절히 원하는 것보다, 내가 없는 정희의 삶이 더 행복하다면 그녀 곁을 떠나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비겁하고 소극적이고 나만을 생각하는 행동이었다
아파하는 사람의 마음 조차도 몰랐던 우둔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내미는 손을 외면한 위선의 행위에 스스로 괴로워했다
그러나 이제 이 사람은 내가 없으면 두번 죽을 죽을 것이다.
정희가 필요로 하는 곳에 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도 나의 손길을 거부할 것인가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알수 없는것이 사람의 운명이라지만 생과사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걷는 사람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사람은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고 지금도 . 나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제 그녀가 거부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뜻대로 해야만 할 것이다. 그 거부의 손짓이 무얼 의미하는 줄 알기에 더 사랑해야만 한다
영원히 후회하며 내 영혼까지 죽음으로 몰아 갈수는 없었다
마지막 까지라도 사람답게 살아가며 그녀의 병마와 싸워내고 싶었다.
그녀에게 단 한사람이라도 그녀의 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만이 내가 세상에 살아야 하는 마땅하고 당연한 이유였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 형님 , 먼저 말씀드린 그런 집이 있을까요 ?"
" 왜 ? 여기 내려와 살려구 ?"
" 네 . "
" 정말이야 ? 먼저도 말했지만 쉽지않을텐데 ...."
" 알아봐 주세요 . 자세한 이야기는 후에 말씀드릴께요 . 오늘이라도 알아 보시고 답장주세요 "
나는 몇 해전 부터 강원도 양구로 내려가 살고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넣었다 .
그리고 부동산 사무실을 들러 살고 있는 집을 내놓았다 .
급매물이라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빨리 팔아야했다
그리고 회사를 들러 사직서를 냈다.
함께 일하는 민춘식이 나를 말렸다
" 형 . 다시 생각해봐요. 무슨 일로 그러는지 모르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
나는 대답없이 춘식의 어깨를 툭툭쳤다.
" 내가 전화할게 .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 "
나의 급작스러운 행동에 회사직원들과 십년 가까이 살았던 이웃사람들은 한결같이 의아스러워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 .
" 야 . 너 정신 차려."
나의 결정을 듣고 친구는 대뜸 화를 내었다
" 너의 사랑과 이상이 옳다한들 현실을 알아야지. 또 한번 쓰라린 아픔을 당할거니 ?"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심정도 잘 알고 있다
" 이건 아니야.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나는 고개를 가로 져었다.
" 저 사람은 나 아니면 두 번 죽게돼
후회하며 남은 삶을 살 수는 없어 "
말없이 맥주잔만 거푸 비워댔다.
결국 나의 성격을 알고 있는 친구도 동의하고 말았다.
" 그래 . 너랑 정희씨랑 인연인가보다 . 하늘이 그렇다 하면 그런거야 . 하찮은 일로 걸핏하면 찢어지는 세상에 너 같은 놈도 있어서 보기좋다 . 언제든지 이 형아가 필요하면 불러라 .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 너의 생각과 행동을 모두 이해하지만 응원하기에는 친구로서도 엄청 부담스럽다 "
오랜 벗은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었다 .
마음이 든든했다. 누군가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응원을 해주면 힘이 솟는다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양구의 일이 어느정도 진행될 때였다
그녀의 오빠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었다.
정희와의 저간의 지나온 일을 들려 주었다.
" 정현씨 . 제 동생을 그렇게 아껴 주셔서 고맙습니다 . 하지만 정현씨가 감내할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셨는지요 ?"
" 저는 아무것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정희를 만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 저의 마음 안에 가득 채워져있는 한 여인을 알고 . 사랑하고 . 그 여인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등을 돌릴만큼 저의 사랑은 , 비겁하고 값싼 사랑이 아닙니다 .
동정도 연민도 아닙니다 .
정희씨는 내 사람입니다 . 정희는 나예요 . 나를 살게하는 사람이라구요 "
마음 속에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녀일 수 밖에 없었기에 숨김없이 나의 심경을 말했다.
나이 예순을 훌쩍 넘어서도 사랑의 감정이 생길 수 있고 무한한 삶에의 도전이 생길 수 있음에 나 자신도 스스로 놀라웠다 .
그 힘은 정희가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오빠도 차츰 의혹을 풀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포장마차의 시계는 술병처럼 쌓여져갔다.
" 저도 정현씨 마음을,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 제 누이를 부탁드립니다 "
그리고 남자는 나의 손을 억세게 잡았다 .
" 참 힘들게 살아왔던 누이입니다 . 착해서 자기 것을 한번도 자기 손에 쥐어본적이 없었지요.
순탄치 못했던 결혼생활도 제가 억지로 말렸어요 .
살면서 행복이란 것 한번도 받아 본적이 없는 누이 입니다.
왜 그런 천사같은 아이에게 이런 형벌이 내렸는지 모르겠어요 ..... "
그는 누이의 아픔이 모두 자신의 탓인냥 흐느끼고 있었다.
" 형벌이 아닙니다 . 죄없는 이에게 형벌은 없습니다. 다만 살아가는 과정일뿐이지요 .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말을 해 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
" 아 미안합니다 제가 그만 감정이 격해졌나 봅니다"
" 모든 일은 제가 처리해 나가겠습니다. 어머니와 수연이를 안심 시켜주십시요 "
그는 내 어깨에 머리를 파묻고 오열하였다.
" 아 . 선배 고마워요 "
산골 선배의 전화를 받고 그길로 강원도로 달려갔다 .
지난해 가을, 머리를 식히려고 방문하였다가
여유가 된다면 이곳에 와서 글을 쓰면서 말년을 보내고 싶을만큼 마음에 쏙 들었던 곳이었다
그때와 다름없이 하늘은 티없이 맑고 푸르렀다
우람차게 솟은 북쪽의 산들은 병풍처럼 둘러 서있고 . 구릉을 따라 내려가면 밤새 시끄러운 개울의 울음소리 . 억새가 한들거리고 가을 햇살에 단풍이 눈부신 골짜기들 .
한잎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려올 듯한 고적한 산골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아서 집 안팍은 손을 봐야 할 곳이 많았다.
전기와 수도를 다시 연결시켜 놓고 겨울의 추위를 대비해야 할 곳도 수리를 해야 하였다
" 너무 걱정말어 . 제수씨가 마음 편하게 생활하도록 내가 손을 봐놓을게 "
나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선배 역시 아픔을 안고 이곳에 들어와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기에 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였다.
사소한 일까지 자기 일처럼 신경을 기울여 주었다.
선배는 늘 그렇듯 사람을 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
내놓은 집은 다행히 빠른 시일에 매매가 되었다
양구의 농가주택도 적당한 가격으로 치룰수가 있었다.
남은 돈들은 한동안 정희의 치료비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되었다.
밝은 색으로 도배를 한 침실과 거실은 마음까지 평온하게 만들어 주었다.
거실 창은 통유리로 앞마당을 한 폭의 그림으로 볼 수 있게끔 넓게 만들었다
그리고 선배는 환자인 그녀를 위해 사소하고 눈에 띠지 않는 부분까지 찾아내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내 집의 집기들과 책 .그리고 육십평생 아껴 온 물건들을 옮겼다. 홀가분했다.
어릴적 친구가 수도원을 들어갈 때 처럼 달랑 가방 하나로 줄이고 싶었지만, 육십여 성상의 세월의 손때가 묻고 , 정이든 물건들은 차마 버릴 수 없었다 그녀를 위한 가구나 물건들도 차근차근 준비했다.
침대도 새로 구입을 하였다.
정희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을 찾아 시골집으로 날랐다 .
오랜 친구도 동행을 해 주었다
직업이 목수였으니 척척 필요한 곳을 손봐 주었다ㅣ
마뜩치 않은 나의 결정이었지만, 내 뜻대로 따라 주는 것에 고마움을 감출 수 없었다.
보름동안 몇번에 걸쳐서 꾸며놓은 집은 그런대로 정희의 마음에 들도록 신경을 기울였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곳으로 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녀에게 나는 귀찮을 정도로 묻고 또 물었다.
" 정희야 . 이거 내방에 꾸밀건데 괜찮어 ?"
" 뭐야 ? 남자가 ? 그건 내 취향인데 "
" 그럼 .이건 어때 ?"
휴대폰을 통해 보여주는 모든 것은 정희에게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 어머 ! 칸딘스키 !! 내가 좋아하는 그림인데."
정희는 칸딘스키의 푸르름을 사랑했다.
날마다 힘든 일상에 " 푸른하늘 " 을 대하면 피로도 풀리고 희망도 생긴다 하였다.
나는 칸딘스키가 어떤 화가인지 모른다 .
시중에 찾기 어려운 그림의 복제품을 힘들게 구해서 그녀가 눈을 뜨고 일어나면 볼수 있는 곳에 걸었다.
거실에는 정희가 편안히 앉을 안락의자와 쿠션이 좋은 쇼파와 음악을 듣기에 편리한 오래된 앰프와 레코드판. 그리고 부르투스 스피커와 언제든지 나를 부를수 있는 최첨단 호출기까지 어느 작은 부분까지 소홀하지 않았다
그밖에 주방용품이나 식기 . 하다못해 수저와 수저통까지 꼼꼼히 챙겨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든든한 이웃이 있다는 것이었다
선배 역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중이라 그의 경험이나 이곳에서 자리잡은 이웃 사람들에게 나를 제법 글 좀쓰는 작가라고 띄어줄 때는 숨고만 싶었다
그만큼 내게는 크나큰 힘이었고 비빌 언덕이 었다 .
문학카페에서 알게 된 여자. 지금은 형수라고 불러야하는 속 깊고 따듯한 마음을 갖고있는
제이가 있어서 정희에게도 든든하리라 생각했다.
정희가 퇴원하고 두달이 지났다
빠르게 겨울이 찾아오는 강원도라 나뭇잎들은
벌써 바스락거리며 지난 여름의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
우리는 .
우리는 함께 강원도로 향해 달려갔다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날들이 시작되는 곳으로 달려갔다
기운을 차릴만하면 찾아오는 항암치료도 끝나갈 무렵, 기진맥진했던 그녀는 조금씩 붉게 물든 미소로 피어나고 있었다.
자동차의 히터를 조절하며 가볍고 따듯한 담요를 둘러싼 그녀에게 빨간색 비니를 씌워주었다.
" 후훗 ~ 정희야 . 싼타 할머니 엠티 가는것 같아 ."
지루한 자동차 여행에 그녀가 지루할까봐 나는 끝없이 말을 걸었고. 음악을 들려 주었다.
정희는 그저 내말에 빙긋 웃을뿐 무심히 창밖만 응시하다 피곤한지 눈을 감고 겉잠에 빠졌다
11 월의 짧은 햇살이 낙엽처럼 붉게 물들며
서산에 걸려 있었다 .
첫댓글
무슨 말이 필요 하겠어요
노래나 한곡 들어 봅시다
https://youtu.be/GsIbYLXUfDk
PLAY
https://youtu.be/0uWiZ_C56mo
답가도 들어 보시지요 ~^^
PLAY
쉬는시간이 이제 십여분 남았네요
4편도 또 5편도 마음 졸이며 읽어내렸네요
부디 정희씨 건강해지길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짜여진 시간 속에서 함께 해주셔서 ~
혹시 고흐를 좋아하시는지요 ?
@오분전 아 이 댓글을 지금에사 봤네요
화가들을 동경 하는 편 입니다
어릴때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ㅎㅎ
그림 하고는 영 딴판의 삶으로......
내년엔 하고싶은것 하나씩 해 보려 마음 먹습니다
그리 될지 모르겠지만......
@석 우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했습니다
하나 하나씩 성취감을 맛보는 즐거움도 여간 행복하지 않겠어요 ?
^^
평안한 휴일 되소서 ~
4편 5편 내리 읽으면서
이렇게도 사는구나..
안타깝기도..
소설이지만 반전이 있길 바래봅니다.
자연을 품고 열심히 산 으르내렸더니
암이 뭣이다냐...달아났다는...뭐 그런요ㅎ
넘겨 짚기 있기없기 ?!!
ㅎㅎ~
어떤 때는 글 쓰는 특권 같아요
죽이고 살리고 찢고 붙혀놓는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
늘 댓글 보내주셔서 고마울 뿐입니다
응원에 감사합니다 ~
아마도 작가님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정희와 정현의 고통보다 그들의 사랑에 마음이 더 가는 내가 좀 이상해 보이네요..
제가 바라는 바도 그 점이에요.
처음에 제목을 ' 사랑' 으로 하려했거든요 ㅋ
쫌 진부하고 세속적인 단어가 되었지요 .
마치 오래 지난 신문지처럼 말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