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 이승환이 '과소평가'된 아티스트라고 한다면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까?
그는 이미 자신이 만든 음반 제작사인 '드림 팩토리'를 통해
자신은 물론 자신의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음악인들에게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자유'를 안겨준 흔치않은 음악인이고,
근 10여년간 밀리언셀러는 기록하지 못했어도
매번 수십만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발라드계의 선봉에 서 있는 가수이고, 여전히 음악계에 큰 영향력을 가진,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갖춘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이정도면 더 이상 좋은 평가를 받을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이승환의 외적인 성공에 비해 그가 만들어낸
'내용물'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가 있었는가?
예를들어 서태지나 신해철의 경우는 그 음반 발매에 있어
그 음반 자체가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사회적,
음악적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각종 논쟁이 나오며,
여러각도에서 그 음반평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승환은?
그는 대중에게서건 비평가에게 서건 그저 '괜찮은 발라드 가수'이고,
그의 음악이 좋은 이유는 '노래를 잘 불러서'일 뿐이다.
정말 그런걸까?
물론 그의 음악은 앨범에 있어 많은 변화를 주는
서태지와 신해철과 같은 음악인과는 달리
자신의 독특한 발라드 멜로디에 기초를 둔 음악을 하고 있고,
가사 역시 사회적 논점들을 제공하는 이들 두 아티스트에 비해
상당히 개인적이고 사랑 중심의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그는 데뷔당시부터 혁신적인 스타일로 인기를 끈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스타일의 발라드로 인기를 모았다.
그만큼 친근하고 대중적인 성격이 강해 그의 음반은
그저 '좋은 발라드'정도로만 평가받을 수 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의 독특한 점은 이런 대중적인 출발점을 기반으로 해서
거기서 부터 끊임없이 발전해왔다는데 있다.
자신의 스타일을 우직하게 지켜나가 면서도
이전 앨범에서 번 수익을 거의 몽땅 새 앨범에 쏟아붓는
'투자'를 통해 발전을 이뤄내는 것이다.
데뷔시절 '텅빈 마음'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같은 곡과
'그대는 모릅니다' '당부'등의 곡을
'같은' 발라드라고 할 수 있을까?
큰 변화는 없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발전해나가 면서
'일가'를 이루는 것이 이승환의 스타일이고, 이승환의 '힘'이다.
서태지가 매 앨범마다 새로운 나무를 심었다면,
이승환의 경우는 일단 한번 심은 나무를 끊임없이 바꿔서
해마다 그 크기를 키워나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커지고 단단해진 줄기와 뿌리는 보지 못한채
'같은 모양'의 나무로만 보는 것이다.
이를 쉽게 증명할 수 있는 것으로
그의 라이브 무대와 뮤직비디오를 들 수 있다
(음반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내용이
너무 길어질 수 밖에 없어 이것으로 대체했다).
우선 그의 라이브 무대에 있어서,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라이브의 제왕'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이유를
그가 단지 '3시간동안 쉴새 없이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가창력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언론에서도 흔히 그의 라이브 무대라고 한다면
뛰어난 가창력에 무게 중심을 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물론 1,2집 당시의 이승환 라이브는
라이브 뮤직비디오 'THE SHOW'가 증명하듯이 몇몇곡의
눈에 띄는 편곡을 제외한다면 말그대로 '무대에서 뛰어 다니는'
이승환이 공연의 전부라고 해도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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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그의 라이브는 말그대로 '종합예술'로서의 라이브 무대이다.
유명 디자이너가 오직 공연을 위해 디자인한 옷을 입고
거대한 공중 구조물에 매달려 있는 채로 시작되는 오프닝을 비롯해
공연 중간중간에 각종 음향 및 시각효과,
그리고 관객들이 즐거워할 코믹스러운 쇼(?)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편곡은 앨범과 비슷한 곡을 찾기 힘들만큼
다양하고 재미있게 변화 되어 있으며,
갑자기 관객석의 중앙에 위치한 소무대로 옮겨가
마치 소극장 라이브같은 무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는 그동안 '수백번' 공연을 하면서 쌓인 노하우를 통해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라이브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가를 연구한 결과이고,
거기에 그에 맞는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여전히 이승환의 카리스마적인 무대가 공연의 핵심이지만
이렇듯 소극장에서 대형무대의 라이브로 넘어오면서 그에 맞게
공연의 규모와 내용까지 바꾸는 것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승환의 '밀어붙이기'식 발전은
그의 뮤직비디오에서 보다 극적으로 나타난다.
그가 데뷔 이후 만든 최초의 제대로 된 뮤직비디오는
'천일동안'과 '제리제리 고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이승환의 음악적 두 성향을 말해준다.
하나는 지극히 멜로디 중심의 서정적인 발라드이고,
하나는 이승환의 '비정상', 즉 뭔가 깨고, 썰렁하고, 유치한,
조금 더 과장되게 말하면 전위적인(?) 성향 말이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이 뮤직비디오들의 완성도는
그다지 높은 평점을 받을 만한 것이 못되었다.
'천일동안'은 그당시 수준으로는 거의 최초 이다 싶을 정도로
완결된 스토리 구조를 가진 뮤직비디오였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노래의 분위기와 그 표현 방법이 너무 어색했고,
'제리제리 고고' 는 말그대로 '썰렁' 그 자체였다.
작은 몸에 이승환의 큰 얼굴을 갖다 붙인 이 뮤직비디오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왜 이승환이 저럴까'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시간적으로 '천일동안'의 바로 다음 작품이며,
성격으로는 이승환 특유의 유머감각을 보여준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그보다는 조금더 발전한 모습으로,
여전히 과장되긴 했지만 깨끗한 톤에 부드러운 색감,
그리고 각종 코믹한 캐릭터의 모습들로 재미를 이끌어 냈고,
후에 이어지는 5집 '가족' '애원'등은
스토리형 뮤직비디오에 보다 영화적인 색감과
단순한 드라마식 스토리 구조에서 탈피, 이미지의 비중을 높여
그 완성도에 있어 그해의 수작이라할만한 수준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는 이승환의 뮤직비디오외에도 계속 윤상, 유희열등
소속사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에서 거듭되 국내 뮤직비디오로서는
보기 드물게 '난해한' 성향의 이미지 중심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냈고,
이는 이번 6집 앨범에서 '그대는 모릅니다'에 그대로 이어졌다.
과연 한국에서 이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엔딩장면,
즉 사랑하는 이를 대체하는 마네킹이 여주인공의 염원
-혹은 꿈속에서 -으로 사람으로 변해 물속에서 만나는 그 장면만큼
음악의 의미와 시각적 이미지를 잘 전달한 작품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그의 '깨는' 성향은 '세가지 소원'에 이르러 그 완성을 보여준다.
황당한 스토리에 코믹스런 장면들의 연속이지만
그것이 이전의 작품들처럼 순간순간의 코믹함으로 파편화 되지 않고
스토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이전과 달리 발라드 스타일의 음악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뮤직비디오에 관한 노하우가
상당히 축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승환의 진정한 발전과 '투자의 필요성'을
절감케 하는 것은 최근 발표한 뮤직비디오인 '당부'이다.
이 작품은 중국악기 '이호'의 연주가 들어있는 곡답게 배경을 중국으로 하고,
내용은 가사에 맞춰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음악, 가사, 뮤직비디오가 '삼위일체'가 된 작품이란 의미다.
그리고 그 영상에 있어 이 작품은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와 '투자'가
없다면 상상하기 힘든 것들을 보여준다.
중국 풍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 디자인한 옷들이나
스케일 큰 야외촬영, 그리고 영화를 보는듯한 깨끗한 화질의 영상은
'뮤직비디오는 공짜 홍보물'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금전적인 투자가 가능했기에 이룩된 것이다.
'노하우'를 보여주는 부분은 더욱 놀랍다.
소년을 청색으로, 여인을 적 의 의복으로 설정한 것을 시작으로,
'푸른' 꽃을 쥔 소년의 손에서 나는 '붉은' 피,
결혼식을 기다리는 여인의 목욕 장면에서
물을 가득채우고 있는 붉은 꽃잎과 목욕후 여인의 등에 써지는
붉은 글자들등으로 시종일관
강렬한 색채 이미지의 대비를 만들어내며
헤어지는 연인들의 감정을 표현해낸 것이나,
한자로 가득채워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는 여인의 방등은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 - 여인의 결혼식 직전부터 직후까지의 과정을 담은 -
임에도 불구하고 음악과 합쳐지면서
그 정서를 파악하게 하는데 부족 함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의,
여인의 붉은 꽃신이 소년이 놓고간 푸른 잎사귀로 인해
내리는 비를 맞지 않는 그 장면은
그 설정 자체가 주는 애절함과 처마끝으로 표현된 배경이 주는
황량한 분위기로 인해 곡이 끝나도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명장면이다.
이정도의 은유와 영상미로 마무리를
시도한 뮤직비디오는 이전까지 없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만들고
또 만들면서 결국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데뷔 당시부터 놀랄만한 음악성으로 대중을 휘어잡고,
획기적인 변신으로 큰 족적을 남기는 '천재'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승환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 안에서 거듭된 노력과 투자로
조금씩, 그러나 끊임없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우직한 바보'
(?:그는 이제서야 드림팩토리 설립과 앨범 제작에 들어간 돈을
모두 갚았다고 한다)도 필요한 것 아닐까.
꾸준한 노력없이 단지 유행만을 '1회용'으로 받아들이는
'범재'가 판치는 지금 가요계엔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