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태풍●
1959년 9월 17일 (음력 8월 추석날)
남해안 거제*통영*고성*에 태풍이 상륙했다.
그때 내 나이 17세 사춘기를 지나고 있을 때다.
전날 밤 우리는 소를 집으로 몰고 오지 않고 산에다 두고 왔다.
아침 먼동이 틀 때부터 모진 비바람이 불어 바다는 엄청난 해일을 몰고 왔고
웬만한 초가지붕은 모두 날려갔다.
소를 찾아 산으로 가는 길에 바람에 날려 나락 논에 처박히기도 하면서 근근이
산 정상까지 어른들을 따라 올라갔다.
산에 있으니 해군 함정에서 사이렌 소리가 자꾸 들리는데
아름드리 소나무가 들썩거리며 넘어젔다. 소들은 먼저 올라간 사람들이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가고 우리 일행은 자갈이 날리어 눈도 뜰 수 없는 산등성이를 따라 기어서 근근이 내려오는데
계속해서 세찬 비바람에 제법 큰 소나무가 바로 코앞에서 넘어지곤 했다.
그때 내보다 한 살 위인 집안 누님이 함께 갔는데 옷은 속옷도 갈기갈기 찢어져 하얀 깊은 속살과 함께
옥당목 흰 저고리는 비바람에 날리어 찢어져서 몽실한 젖가슴이 드러났다
보기가 민망해서 내가 삼베 등지 개를 벗어줬다. 그래도 보이는 건 다 보이더라
한참을 비바람을 뚫고 집에 오니 마구간에는 소가 먼저 와 있었다.
해일이 일어 동네는 쑥밭이 되었다. 집집이 명절 제삿밥도 못할 정도였으니
그때의 참상은 말할 수 없었다.
오전 10시쯤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드러나고 주위는 웅성웅성했다.
바닷가 우리 논에 해군 수송선이 밀려들어 앉았다고 아버지는 거기로 갔다.
나도 따라가 봤더니 사실이었다.
오후가 되니 사람들이 군함 구경을 한다고 몰려들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81 함정이 쇠줄로 당겨도 줄만 끊어져서 그때 처음 본 불도저가 왔다.
우리 논을 파서 물때를 기다렸다가 3척의 함정이 줄을 연결해서 함정은 바다로 나가고 3일간 논을 정비했다.
통영 안정에도 수송선이 논으로 올라와서 난리를 피웠는데 우리 마을에서 실종사고가 생겼다.
온동리 사람들이 무너진 집을 파서 실종자를 찾는데 바로 내가 쇠스랑으로 내려앉은 지붕 서까래를 걷어내니
집이 무너지면서 깔려 변을 당한 집안 형님뻘 되는 시신이 나왔다.
섬뜩해서 뒷걸음을 치니 어른들이 달려들어 시신을 수습했다.
그 다음 날 아침밥을 먹고 들에 나가봐도 나락은 수확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바람을 맞아 하얗게 말라 들어갔다.
고랑 물이 터져 밭이 냇고랑이 되고 온 바다는 각종 쓰레기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바닷가에서 낚시하니 살감싱이 새끼 15cm만 한 게 엄청나게 덤벼들어 약 100마리 정도를 낚았다.
큰 바구니에 가득 채워서 집에다 비워놓고 다시 가득 잡았으니 그때 그놈들을 키워서 잡았다면 한 10상자는 될 거다.
천재지변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때 그 모진 비바람 속에서 동생인 나에게 속살을 몽땅 보여준 그 누님이 지금도 곱게 늙어가고 있다.
가끔 그때 얘기를 먼저 끄집어내면서 우리가 집안이 아니었다면 나에게 등지 개를
벗어 주었겠느냐는 얘기를 하면서 지난날을 생각하기도 한다.
올해는 슈퍼급 태풍이 오려나?
첫댓글 아주 오래된 이야기..
자연을 거스르면 재앙이 온다는..
사하라태풍으로 인해 보릿고개라는 말도 있었답니다
올여름엔 슈퍼태풍이 두어개 온다고 들었는데 어쩌죠?으~~~~무섭다
오래 전 참상을 생생하고 재미있게 쓰셨네요....스 상황을 연상해 보며 잘 읽었습니다
태풍 이름이 사라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