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김 난 석
박태원의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주인공 구보씨는 정오에 이르러서야 집을 나선다. 막상 갈 곳도 없다. 천변 길을 터덜터덜 걷다가 종로 네거리로, 화신상회로. 다시 전차에 올라타기도 하고 조선은행 앞으로, 다방으로, 경성역으로, 식당으로, 술집으로, 거리로...
거리에서 선을 봤던 여인을 만난다.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외면하지만 그러다가 후회도 한다. 중학시절 열등생이었던 친구는 예쁜 여인과 동행한다. 그 모습을 보고 물질에 넘어가는 허영심 가득한 여성을 생각한다. 혼자 다방에 앉아 차를 마시며 노자만 있으면 어디론가 떠나리란 생각도 하고, 즐겁게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전보 배달하는 차가 지나가는 걸 보고 자신도 전보 한 장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거리에서 옛 친구를 만나지만 그 친구는 그냥 지나가버린다. 경성역에 가서 기웃거려보나 마주치는 시선들이 모두 싸늘하기만 하다. 여급이 있는 종로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는 중에 모든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취급하고 싶은 충동도 일어난다.
하얀 소복 입은 여인이 창문에 붙은 <여급 대모집>이란 광고를 보고 물어오던 일을 떠올리며 가난의 서러움을 생각한다. 다시 종로 네거리를 거쳐 새벽 두시에 집으로 돌아온다. 구보가 외출할라치면 어머니는 늘 언제 돌아오려는지 걱정인데 이젠 어머니가 혼인을 이야기해오면 거절하지 않으리란, 그리고 소설도 써보리란 다짐을 한다.
박태원은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1934년도에 펴냈으니 구보씨의 하루 일과는 아마 그해이거나 그해 이전의 어느 날일 것이다. 당시는 일제 강점기이기도 한데 구보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스물여섯 살의 엘리트 남성이다. 허나 일자리도 없을뿐더러 결혼도 안 하고 어머니에 얹혀사는 이를테면 룸펜에 가깝다.
평자들은 이 소설을 박태원의 자전적 소설이라 한다. 일본 압제시대에 희망 잃은 젊은이들의 방황을 그렸다고도 한다. 그러나 구보씨는 대낮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오면서 이젠 결혼 해 가정도 꾸미고 일도 시작하련다고 다짐한다. 시대가 아무리 암울하다해도 독자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정작 작가 박태원은 한국전쟁 당시에 월북하고 만다.
세상이 온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 28개국에 병증이 퍼져있고 282,758명이 감염되어있으며 그 중 565명이 사망했다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23명이 사망하고 유증상자가 696명에 달한다고 한다.(2020. 2. 6. 10시 현재)
2020년 오늘도 나는 자유의 시대를 살아간다. 나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민주적 의사표시를 제약하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가고 싶은 곳 가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그 자유는 하고 싶은 걸 모두 무차별적으로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하고 싶지 않은 걸 안 할 자유일 뿐이라고 제한하기도 한다(루소). 그래서 요즈음엔 나가고 싶지 않아서 안 나가고, 어울리고 싶지 않아서 칩거하고 있을 뿐이다.
자유는 신체적 자유만 있는 게 아니다. 경제적 자유도 있다. 신체적 자유는 남녀노소 귀천 없이 신체에 귀속하지만 경제적 자유는 소유하고 있는 교환가치에 상응한 만큼만 보장된다. 그래서 요즈음엔 앉은자리에서 맨손으로 지내는 데에 익숙해지려 한다. 왜? 형편대로 살아야 하니까.
눈을 떠보니 여덟시다. 아내는 아직 자는지 미동도 없다. 아침은 된장찌개와 김치만 있으면 된다. 특별히 마늘 한 통을 전자레인지에 구워 밥상을 차려놓고 아내를 깨운다. 설거지는 물론 내 차례다. 아내는 수저를 놓자마자 늦었다면서 외출을 서두른다. 나는 마스크 잘 챙기라는 말만 던질 뿐이다. 아내는 그런다, 찌개가 남아있으니 데워서 점심 들라고. 저녁에 들어 올 텐데 도시락 싸들고 나가는 것도 아니면서 남편 걱정을 한다. 돈 쓰지 말라는 뜻일 게다.
식탁을 훔치니 앉은자리가 책상이 된다. 신문을 펴들고 굵직한 타이틀을 훑어본다. 오늘도 신종코로나가 잦아들 줄 모른다는 뉴스다. 스마트폰을 열어보니 여기도 신종코로나소식과 정치판의 어지러운 뉴스뿐이다. 오늘의 일기를 검색하니 영하의 날씨다. 그래도 산책은 해야 한다. 둔부와 대퇴부가 퇴화하면 끝장이라 하지 않던가.
찬바람이 코끝에 싸아 하다. 아차, 마스크를 안 챙겼구나. 그렇다고 다시 들어갈 건 아니다. 석촌호수를 걸으려면 롯데타워를 지나야 한다. 그런데 17번째 신종코로나 확진자가 롯데 직원이라니 내키지 않는다. 돌아서서 아파트 샛길을 걷기로 한다. 국민연금공단서울지부, 홈플러스 매장, 향군회관, 한국방송광고공사, 다시 내 집 앞이다. 간간 롯데 주변의 지리에 대해 묻는 사람도 있으련만 거리는 뜸하기만 하다. 잠시 걸었다고 훈훈하기는커녕 이렇게 을씨년스러울 수가 없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신종코로나 때문이리라.
점심 뒤에도 또 걸었다. 오전에 걸은 그 길이다. 패트릭 쥐스킨트의 좀머씨는 눈만 뜨면 직선 위를 왔다 갔다 했는데 그래도 나는 사각형 둘레를 돌고 돌았으니 그보다 낫다고 해야 할까.
자유를 제약하는 건 인간들의 압제 때문만은 아니다. 자연으로부터의 재앙이 인간의 자유스런 활동을 제약한다. 그러나 자연으로부터의 재앙은 그저 닥치는 게 아니다. 인간이 불러들이는 경우가 많다. 과다한 에너지 소비, 불결한 환경과 환경 훼손. 그 중에서도 이번 신종코로나는 불결한 취식환경에서 초래되었다는 게 중론인 것 같다.
자유를 한껏 구가하지 못하는 건 경제사정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땐 롯데월드타워 123층 건물에 올라가 쾌적하게 보내는 것도, 극지방엔 바이러스가 없다니 그곳에 둥지를 트는 것도 활개 치며 사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나가 외식할망정 서너 번 데워 먹는 찌개와 김치 하나로 요기를 해결하는 형편에야 날개 접고 지낼 수밖에 없다.
구보 씨는 시대를 아파하진 않았다. 자신의 무력감을 술회했을 뿐이다. 서양보다 비교적 늦게 도래한 자본주의 초기에 생산력을 쥔 경제인들에 비해 지식인들은 상대적으로 궁핍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격차가 크고 급변할수록 궁핍한 자들은 또 무력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구보 씨의 불만도 그런 상황에서 표출된 것이리라.
이젠 실물경제가 아니더라도 문화산업 또는 지식산업이라 하여 모두 경제활동영역에 합류한다. 각 부문별로 소득격차는 있을망정 몸과 머리를 써 궁핍은 자신이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다. 그런고로 나는 나의 상대적 궁핍을 기꺼이 감수하고 칩거를 즐겨야 한다.
박태원은 구보 씨를 탄생시켜 결혼도 하고 글도 쓰리라 했지만 한국전쟁 중에 혈육을 남겨두고 월북하고 말았다. 나는 늙은 아내 외에는 남겨놓을 것도 없다. 갈 데도 없고 부르는 사람도 없다. 가만히 들어앉아 내 집 지킴이가 될 뿐이다. 허나 신종코로나가 사라지는 날,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2020. 2. 7.)
지난 10개월 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전 세계적으로 282,758명에서 65,553,479명으로 늘어나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696명이던 것이 36,332명으로 늘어났다 한다.(2020. 12. 3, 현재) 그 증가추세는 여전한데 아직 치료약이나 예방백신은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니 그저 격리생활 하며 조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 딱하기만 하다. 허나 긴장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코로나의 전염력이 강해져 그런 것인지 요즘 들어 하루 확진자가 5백명 대 이상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런 현상이 나에게도 나타난 것인지 어제는 오랜 칩거에서 이탈해 작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느 친선모임에서 12월 모임을 갖는다 했다. 친한 사람이 별로 없지만 막판에 참여의사를 내비쳤다. 월드컵공원 근처 수산시장에서 만나 점심을 먹는다는데 생선회도 못 먹는 주제에, 술도 못 하는 주제에, 이야기도 잘 못하는 주제에, 또 친한 사람도 없는 주제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건 왜인지 모르겠다.
점심 뒤에 바람이나 쏘이자고 했다. 자연 가까운 하늘공원이 목적지가 되었다. 억새숲을 따라 걷고 걷고, 다시 두리번거리다가 걷고 또 걷고, 그러다가 아이스크림 하나씩 쥐어들고 쉬었다 내려왔다. 오후 네 시까지 걸었으니 둔부 대퇴부에 부하는 적당히 걸렸을 것이다. 하체 검증도 되었을 테니 그걸로 만족해야겠는데, 박태원의 구보 씨는 하루를 걷고 나서 결혼도 하고 소설도 쓰리란 마음을 먹었지만 나는 또 걸을 생각이나 할뿐이다.
2020. 12. 4.
첫댓글 선배님 오셔서 반갑습니다.
네에 고마워요.
마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는듯 합니다.
석촌님의 일상이 다소 무료해 보이기도 하지만,
구보씨가 살던 세상에는 코로나가 없었으니,
자신의 무력함만을 탓하며 다른 세상을 꿈꾸지 않았을까요?
한편의 멋진 꽁트 잘 읽었습니다..늘 건강하시길~~^^
정말 국민들이 모두 무력감에 빠져드는 것 같아 걱정이예요.
세월의 모퉁이를 돌고 돌아,
지금쯤은 자유의 몸으로 살아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오산이었는지요.
배움이나 경제력, 가족의 화기애애한 모습이면
잘 산다고 생각했던 것도 얼마만큼의 오차인지를
계산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어찌 되었던, 저는 코로나로 인해
새벽 5시30분에 집을 나서 양재천을 걷고
아침식사는 준비를 해 놓고 나가긴 합니다.
아침상 차리는 것은 남편 몫입니다.
이 것이 나의 첫 자유이지요.
날마다 차려놓는 밥상만 보다가
아침상 차리는 것에 불만을 가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즐거워 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것도 나는 모르고... 내 방식대로만 하고 살았거던요.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기분도 상쾌 하거던요.
코로나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더 알찬 생활을 하는데,
제일 갑갑한 것은 대화 할 상대가 없으니
우울증 올까 봐, 걱정입니다.
그럴 땐, 할 수없이 동창들에게 소식 전하지요.
전화 수다도 꽤 재미 있습니다.
아무쪼록, 코로나19는 하루 빨리 물러나고
석촌님 건강하셔요.
수필방에 와 주시고 좋은 글 남겨주심에
감사합니다.
일상이 조금은 변한 모습이 엿보이네요.
사실 여성들에게 참 고맙지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네에 반갑습니다..
이곳 수필방에서 다시 만나뵙게되어
반갑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
네에 여전하지요?
얼핏 봐도 그런 것 같네요.
@석촌
네 ~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방가방가 에요 선배님 닉을 보니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 주시고요
비록 제가 잠수힘 타고 있지만
들어와서 글은 읽어요 ㅎㅎ
네에
내가 갚을 게 있는데..
미쿡에 가 계신 줄 알았는데
꼭꼭 숨어 계셨군요
.
장미나와라 ........ 뚝딱!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에 반갑습니다..
인사까지야 뭐
뵐 날 있겠지요.
잘 오셨습니다
수필방이 풍성할 듯합니다
네에
건강하시지요?
오셨군요.석촌님!
반갑습니다.
자주자주 뵙겠습니다.
네에
건강하시죠?
반갑습니다.
석촌님의 글을 보니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다 나려 합니다.
건강하신 모습으로
글 쓰시는 활동
오래 오래
뵙고 싶습니다.
네에 고마워요.
그런데 눈뭀씩이나요?
저도 반갑습니다..
넉넉하신 품으로
고급스러운 글을 보듬어
수필방을 밝혀주시니
주말 아침 눈 비비고 카페로 나들이
정신이 번뜩입니다.
사람 삶 의 공간에
어른도 계셔야 하고 잘난사람
조금 부족한 사람 두루두루 섞여서
어우리고 아우르고 배려심도 생겨나고
배움과 깨달음이 흡족하게
탄성이 생겨납니다.
머리숙여 반가움 인사드립니다.
건강하게 기쁨 충족되는 수필방
함께 오래오래 머무십시요.
네에 반가워요.
잘지내시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이구 별말씀을요..
코로나가 잦나들 줄 모르네요..
기온이 차갑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어 늘 건안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네에 오랜만이에요
고맙습니다.
"구보"의 삶이 나의 삶과 교집합을 이루네요.
세월이 흘렀다 하더라도
"술도 못하는 주제"
사실이 아니길 기도합니다.
얼라.
요는 갚아라 이거네 ..
하긴 세상에 공짜는 없다지요.
@석촌
아뇨.
태풍에 벼 다 엎쳤다고
재해 보험금이 좀 나왔거든요.
제가 쏘겠습니다.
그리움의 추억만 주시면....
석촌님
그동안 건강하셨지요?
시원한 폭포수 같은 글을 다시 볼수 있겠지요?
반가움 에 인사드립니다^.^
네에 반갑네요 리즈향님..
고맙기도 하고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랬군요
차 한 잔 하는건데요..
오~석촌님 언제 왔습니까
요기서 보니 억수로 반갑습니다
이젠 가출 하지 마십시요^^
네에
잘지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