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누나랑은 얘기 많이 했냐? “
“뭐, 우린 항상 그러니깐. 여기 나타났다고 특별히 얘기 많이 하고 그런건 없어. “
“좀 쌀쌀해졌다. 난 그만 들어가 자야겠다. 감기걸리겠어. 너도 빨리 들어가라. “
하면서 일어나는 현준을 나는 당황해서 불러세웠다. 이대로 가면…
“야, 잠, 잠깐.”
“어? 왜?”
“아..아니…잘 자라구.”
결국 물어보지 못했다. 아니, 물어보는게 아니라 전혀 어떻게 됐는지 파악도 못했다. 근데,
아무래도 진짜 모르는 듯. 앞이 깜깜하다. 그렇다면….앞으로 한 달 될 때까지 이대로 끌려
다녀야 한다는 건가? 휴우…. 차라리 잘됐다. 차가운 데서 머리라도 식혀야지, 이대로
갔다간 주전자 뚜껑열려 물 넘친다. 결국 오늘도 새벽녘이 돼서야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또 나는 아침을 차렸다. 어제와 다름없는 메뉴지만, 나도 뭔가는
해야겠기에… 모두들 맛있게 먹고, 또 정리를 하고, 각자 차에 나눠 타고 집으로 향했다.
시연언니도 자기가 끌고 온 차를 타고는 손을 흔들면서 사라져 버렸다. 나도 또한 현준이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젠 머리아프게 이런 저런 생각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이 녀석이 연극하는대로 받아주기로 말이다.
“우리, 오늘은 어디서 만날까? “
“뭐? 만나긴 또 뭘 만나? 지금 헤어지는 참이잖아? “
“이건 데이트가 아니잖아. 지금 그대로 가도 되고, 아님, 집에 갔다가 한 숨 자고, 저녁에
또 만나도 되고, 어떡할래?”
이 자식은 진짜 제정신이 아니야. 휴우.. 쇳뿔도 단김에 빼랬다구, 그래. 그냥 지금 가자.”
“그래. 어디로 갈까?”
“점심이나 먹으러 가지 뭐.”
“그럴까? 뭐 먹고 싶은데?”
“오랜만에 짱깨나 먹으러 가자. “
“그럴까? 그럼….홍루몽으로 갈까? 거기 잘 하는 덴데. “
“그래라.”
난 중국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그런데 꿈속에서 방동호대리를 보았다.
보았다기 보다는, 엊그제 있었던 일이 그대로 꿈 속에 재현되어 나온 것 뿐이지만 말이다.
거…꿈이란 게 참 신기하다. 내가 현실에서 보지 않았던 것, 아니, 보고 있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즉, 내가 미처 의식하지 않았던 것이 그대로 나온다. 마치, 1인칭
관점에서 보고 있던 소설을, 3인칭 시점에서 같은 스토리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내가 알고 싶지 않은 나조차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아니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그냥
개꿈같이 말이다. 내 의식이고 뭐고 와는 진짜 전혀 상관없는 그냥 개꿈 말이다. 어쩌면,
그런 점이 꿈다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방대리님, 이거 한 번 먹어보세요]
꿈 속에서도 지수씨는 방대리한테 적극적이다. 그에 반해, 방대리는 약간 경직돼 있다.
그렇게 알아듣게 얘기했는데도 스스럼없이 이것저것 권해오고, 또 아양떠는 걸 멈추지 않는
지수씨. 어쩌면 그게 지수씨 다운 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방대리도 요즘 점점 그런
지수씨에게 경계를 늦추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좀 망설이긴 하지만 곧 지수씨가
내미는 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받아 낼름 먹는다. 난 그런 방대리를 보고 있다. 둘이
이젠 아예 대놓고 깔깔 웃기도 하고 왠지 다정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 머리속에선
계속해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답을 찾고 있었다. 가끔가다 번뜩이던 지수씨의 그
사나운 눈빛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지수씨의 눈꼬리가 찌익 옆으로 늘어나더니
아까 본 교활한 눈빛이 되는 걸 보았다. 그러더니 눈이 점점 더 찢어지더니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는 내 시야가 꺼멓게 흐려져서는 더이상 꿈이 생각 나지
않는다. 그 다음이 어떻게 됐을까는 별들에게 물어봐가 돼 버렸다.
***
홍루몽 앞에 차를 세우고 보니, 요원이가 곤하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미간을
약간 찌푸린게, 고개를 살랑 살랑 흔들고 있다. 뭔가 꿈을 꾸는걸까. 하지만 깨우기로 했다.
현준은 살짝 요원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살살 흔들어 본다.
“으….어….”
요원이 살짝 눈을 떴다.
“요원아, 다 왔어. 일어나.”
“어…응….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미안.(입 가리고 하품)”
“아니. 어제 많이 못잤지?”
“어……(둘러보며) 여기야?”
“응. 내리자.”
벌써 점심때가 훨씬 지나 마침 출출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눈 앞에 진수성찬이
차려지자 요원은 정신을 못차리고 마구 퍼먹고 있었다. 짜장면에 탕수육, 이것 하나면 정말
행복한 요원이었다. 짜장면을 거의 다 먹을 때 즈음해서 약간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요원. 문득 앞에 앉아 있는 현준이의 존재를 느낀다. 입을 쓰윽 닦으며 빤히 쳐다본 현준은,
아까부터 짜장면을 음미하듯이 천천히 먹으면서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요원을 미소지으면서
주욱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됐다.
“뭘 봐? “
요원이 무안해서 한마디 했다.
“예뻐서.”
빤~히 쳐다보았다. 얘가 정말 왜 이래? 난 약간 무안했지만 오히려 무시하고 다시
짜장면에 고개를 숙였다. 현준은 화제를 돌린다.
“우리 말인데, 앞으론 밖에서 자주 만나자.”
“밖에서?”
“응.”
“안돼.”
“왜?”
“지난 번처럼 방대리나 다른 회사사람들이라도 마주쳐 봐. 끝장이야.”
“뭐 어때?”
“어떻긴? 누구 죽는 꼴 보고싶어?”
“그럼 지난번처럼 변장하고 나오면 되잖아.”
“변장? 그게 뭐 애 이름이냐? 그 꼴 하고 나가느라고 시간이 얼마나 걸린줄 알아? 내가
원래 화장도 못하는 거 너 몰라서 하는 말이야?”
난 입에 들어간 짜장면이 튈 정도로 열받으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난 내가 지난번에 널 다신 안만나겠다고 소리소리 지른 걸 잊어버리고, 지금,
만난다는 전제하에 어디서 만날까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지난 번에 키스당한 걸
까발리면서까지 다시 문제를 들추는건 너무 쫄팔린거 같다. 그래서 그냥 가만 있기로 했다.
“시연이 누님한테 좀 배우면 되잖아?”
자기 얼굴에 튄 걸 손으로 대충 쓰윽 닦으면서 현준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다.
“언니가 뭐 봉이냐? 그리고 언니도 나름 바빠.”
말은 그렇게 둘러댔지만, 사실, 내가 생각해도 언니는 정말 널럴한 사람이었다. 집안일
아줌마한테 맡기고, 애들도 하나와 두나도 정말 착한 애들이어서 속 한번 썩이는 일 없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단지 언니가 바쁠 때가 있다면 애들 학교 행사때문에 행차하셔야 할
때 정도일까?
“뭐 어때? 너도 좀 배워 봐. 나쁠 거 없잖아? 너 화장하고 가발쓰니까 진짜 딴 사람 같더
라. 진짜 예쁘더라. 물론 뭐, 지금도 예쁘지만. “
현준은 씨익 웃으면서 칭찬해준다. 왠지 머슥해지지만 그래도 예쁘다니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다.
“흠.흠.. 내가 왜? 누구 좋으라구.”
궁시렁 거리면서 다시 짜장면에 고개를 숙이는 요원.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식사를
대충 마치고나서 피곤하다는 걸 핑계로 바로 집으로 돌아온 요원. 그러나 그런 요원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시연이었다.
“어, 언니, 웬일이야? 집으로 들어간거 아니구?”
“아니, 잠깐 들렀어. 근데 넌 어디까지 갔다오니? 점심 같이 먹고 온거야? “
“응. 나 기다렸어? “
“어. 얼굴 보고 가려고.”
“얼굴은 뭐, 아까까지 계속 봐놓고는 새삼스럽게…”
“그게 아니구, 꼭 해야할 말이 있어서.”
“꼭 해야할 말? 뭔데? 해 봐.”
“여기선 안되구. 니 방으로 들어가자.”
“그래 그럼.”
우린 방으로 들어왔다.
“할 얘기가 뭔데? 해봐.”
“뭐, 특별한 건 없구.”
“뭐? 꼭 해야할 말이 있다며?”
“뭐, 그건 그냥 핑계고. 어땠어, 오늘?”
“뭐, 그냥 짱깨먹고 헤어졌는데?”
“그리고?”
“그리고?”
“응. 다른 말은 없어?”
“어….아, 언니한테 화장 좀 배우고 맨날 변장하고 만나자던데?”
“오…역시 남자들은 은근히 꾸미는 걸 좋아한다니깐?”
“형부도 그래?”
“글쎄… 특별히 그런 말은 안하는데, 아무래도 집에서 부시시하고 있는 모습 보는 것보다는
좀 꾸미고 있는 걸 좋아하겠지? 그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면
말이야. 너도 너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집에서 부시시하고 츄리닝 입고 있는
것보단 정장이라도 잘 차려입고 있는 편이 더 좋지 않겠어?”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네? 그냥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도 말이다.
출처:죠이꼬의 소설카페
첫댓글 꼬이네요 꼬여...
ㅋㅋㅋ 담편 원츄!
지수가 왠지 걸리네요.
흠...심오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