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내용을 입력해주세요. (위 저작권멘트는 여러분의 소중한 저작권물을 지키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삭제하지말아주세요)
대보름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경성 치정루.
대모大母 월매는 기방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의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촛불아래 집중하여 꽃잎에 앉는 벌을 그리려 하였다. 그 옆은 시중을 들고자 앉아 있는 사월이, 여우가의 피를 물려받은 막내로써 이제 막 낭랑을 지났다. 사월이 지루했는지 잠깐 조는 사이에 붓끝을 흐리고 말았다. 월매는 마음을 가다듬고 자세를 고쳐 잡아,
"네 이름이 무엇이랬느냐."
"사월이라 하옵니다."
"그래, 사월아. 너는 네 몸에 흐르는 여우의 피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월매가 손을 내밀자 사월은 익숙한 듯 곰방대를 준비하였다. 월매는 잔주름이 가득한 입으로 곰방대를 빨며 만족해했다.
"네가 열여덟에 받는 여우구슬이 뭘로 만들어졌는지 아느냐?"
"모르옵니다."
월매는 살며시 웃으며 사월에게 손짓하여 가까이 오게 하였다.
"네가 처음으로 달걸이 하는 것을 받아 다음 보름이 뜨는 날까지 묵히면 그것이 단단하게 굳어져 평생을 함께할 여우구슬이 되는 것이란다. 하지만 그것을 잃는 순간 넌 인간이상의 능력을 잃고 여우로 살다 죽어야 한다."
사월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월매는 그 마음을 읽고 있었으나 버릇처럼 계속 이야기를 하였다.
"그럼,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 알고 있느냐?"
"인간이 되기 위해 살아간다고 알고 있사옵니다."
사월의 대답에 월매는 곰방대를 힘껏 빨아 독한 연기를 뿜어내었다.
"아니다. 우리는 구미호가 되기 위해 사는 것이다. 왜 약한 인간이 되고자 하겠느냐?"
"그럼 저희는 구미호가 아니옵니까?"
"맹랑한지고. 구미호란 이름을 함부로 올리지 마라. 구미호는 너 같은 여우가 천년을 수도하며 살아야 이룰 수 있는 경지이다. 구미호가 되기 위해서는 깨끗한 정기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게지. 행여, 중간에 나쁜 마음에 유혹당하면 구미호가 되지 못하고 화호火狐가 되고 말지."
"화호요?"
"그렇다. 타락한 불여우가 되는 것이다. 너무 많은 피와 악한 것을 보고 살아가면 불을 품은 여우가 되는 것이다. 그럼 결국 구미호와는 정반대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지."
사월은 월매의 말에 동공이 떨렸다.
"그럼 화요의 징조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제일 확실한 것은 네가 가진 여우구슬이 어떤 색을 띄느냐 인 게지. 구미호가 되기 위해서는 여우구슬이 맑고 투명한 백색을 띄어야 하지. 화호의 조짐이 있는 자의 구슬은 붉은 빛을 띄고 그게 짙어지면 화요火妖, 불을 다루는 요괴가 되는 것이다."
“그럼 구슬은 두 가지 색뿐입니까?”
“난 한 번도 본 적 없으나 검은색을 띈 여우구슬이 있단다. 그 옛날 여우전쟁에서 구미호에 대항한 세력이 있었지. 구미호를 숭상하던 부족은 분열되기 시작하였고, 그중 사악한 기운을 품고 있던 흑자호黑紫狐를 축출하기 시작하였지. 하지만 흑자호는 빠른 속도로 자신의 세력을 넓히며 구미호 부족을 위협하였고 결국 구미호가 분열이 되었단다. 그 흑자호가 고구려부흥기에 왜로 넘어갔다 들었어.”
사월은 불안한 듯 가슴에 살짝 손을 얹고 침을 꼴깍 삼켰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처음에는 붉은색을 띄는 게 당연한 것이다. 네가 살아가면서 그 색을 어떻게 지우느냐가 네 인생을 가늠하는 것이지. 본디 여우는 유혹에 약해서 인간과 같이 사리사욕을 탐하다가 죽는 게 허다하단다.”
사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얘야, 인간 남자를 사랑하지마라.”
월매의 말에는 심경에서 섞여 나오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였다.
그 시간, 만주 심양.
심양은 흑룡강 왼쪽에 있는 부락으로, 지금의 요동성 인근에 있다. 강을 끼고 있어 문물의 왕래가 잦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만주와 한반도, 중국의 왕래가 잦은 곳으로 조선족이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또 남으로 길게 철도가 놓여있어 요순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 군대에 왕래가 잦았다.
비가 그치고 황혼이 질 무렵 뒤늦게 일본군 한 소대가 나타났다. 일본군의 등장에 주민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버렸다. 춘향에게 당한 마적단의 시체 앞에 선 일본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군용 차량에서 여성이 내렸다. 기모노를 입은 여자는 게다발로 시체를 건드려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때 병사가 생존자를 데리고 왔다. 손가락에 응급치료를 한 뒤 기모노의 여자 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다.
“말해봐라!”
일본인 통역이 어설프게 조선말을 했다.
“그 년이 우리 형제들을 죽이고 제 손가락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혹시 모래마녀? 그래 그 년이 뭐라더냐?”
통역을 들은 기모노는 모래마녀를 언급하였다.
“‘키쯔네, 죽고 싶으면 요령으로 오너라. 기다리고 있겠다’라고 했습니다.”
기모노는 치를 떨며 광분하였다.
“살려주십시오.”
그 모습을 보고 겁에 질린 생존자는 손이 닳도록 빌었지만 살려줄리 없었다. 옆의 일본인 장교가 칼을 뽑아 죽이려 들자,
“잠깐, 너희 마적단 이름이 뭐였지?”
“호구단狐狗團, 호구단입니다.”
생존자의 말이 통역을 통해 전달이 되자, 기모노를 입은 여자는 장교의 칼을 막았다.
“살려라. 이놈은 내가 데리고 가겠다.”
여자는 생존자의 앞에 다가가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키쯔네 일족의 히토네 쯔네시다.”
통역보다 유창한 조선말이었다. 그녀는 생존자를 데리고 차에 올랐다.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리가또...”
생존자는 거듭 고마워하며 쯔네시를 뒤따랐다.
키쯔네일족, 일본 열도를 뒤흔든 어둠의 세력. 끝없는 전쟁을 불러일으키며 메이지유신까지 움직여 온 정치세력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부축여 조선을 치게 하였고 다시 메이지유신을 움직여 조선을 재침공하였다. 키쯔네 일족도 명목상으로는 최고급 기방을 운영하며 극우파의 중심에 서있었다. 기방에서 선출된 고급 기녀들이 조선의 재상들을 꼬시고 자신들의 의지대로 핵심인물들을 움직여 권력의 중심에 설수 있었다.
기모노의 히토네 쯔네시. 도쿄 최대의 기방 사쿠라기의 얼굴마담으로 짙은 화장으로 요염한 20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그의 정확한 나이는 알기 힘들었다. 천하일색 그녀의 얼굴에 생존자는 푹 빠져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져 쯔네시의 화려한 기모노에 수놓인 꽃들이 살아 움직은 듯하였다.
"다 왔어, 따라와."
그녀의 소대가 일본군 주둔지에 도착하자 그녀는 생존자를 데리고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막사에 들어서며 불을 피웠다. 아직 전기가 모자란 시절 등불에 의지하고 있었다.
"앉아."
막사 가운데에 놓인 의자에 생존자가 앉았다. 잠깐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고치더니 생존자를 향해 뒤 돌았다. 다가와 요염한 자태로 생존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생존자는 그녀의 기모노 사이로 보이는 앙가슴을 보자 침이 고여오기 시작하였다.
"대동아제국을 세우기 위해 우리 자랑스런 황군은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 황무지까지 오게 되었지. 처음엔 천항폐하를 향한 일념 하나만으로 고국을 떠나 오게 되었지만..."
쯔네시는 다시 자리를 옮겨 생존자의 뒤에서 유혹하며 말했다.
"인간이란.... 특히 남자란 것들은, 밥만 먹고 살지 못하더군. 그래서 천황폐하는 여자란 선물을 안겨주었지."
그녀가 생존자의 가슴을 고운 손등으로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조센징과 댓 놈들을 종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착출하였지. 지금도 공동막사 뒤편에서 굶주린 남자들을 맞고 있어. 나도 여자로써 기분이 썩 좋질 않아."
순간 아름다운 쯔네시의 흰자위가 동공이 확장된 것처럼 검게 변하였다.
"네가 호구단만 아니었어도 그 자리에서 죽였겠지만.... 우리가 만주에 심어놓은 놈인 만큼 날 위해 충성을 다해야 겠어."
"도대체, 쯔네시상은 누구시기에...."
허리 뒤쪽 간이 위치한 자리를 쯔네시가 쓰다듬는다.
"인간들은 우리가 간이나 먹는지 알더군. 우린 사냥을 해서 피와 고기만 취하면 돼. 굳이 인간이 아니어도 되는데 유별난 것들이 오해를 하는 거지. 하지만 생간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야. 우리는 인간의 정기를 모아야해. 더 강해지기 위해 정기를 모으는 것이지. 어떻게 정기를 모으는지 알고 싶지?"
"구미호?!"
생존자가 말하는 가운데 쯔네시는 입을 맞추었다. 진한 입맞춤이 오고 간 뒤 생존자는 동공이 풀린 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나 같은 미녀가 너 같은 버러지한테 입 맞추니까 기분 좋지? 지금 술에 취한 듯, 맨발로 풀밭을 걷듯 기분이 좋을 거야."
"사, 사랑합니다...."
"난 역겨운 남자의 정기를 얻는 게 너무 맘에 안 들어."
남자의 입안으로 들어간 쯔네시의 여우구슬이 생존자의 목뼈에 걸리면서 목이 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구슬이 정기를 뽑아 모음에 따라 구슬이 점점 커지고 기도를 막기 시작하였다.
"우웩- 우웩-"
생존자은 토하고자 하였으나 구슬이 정기를 다 흡기할 때까지 토해지지 않았다. 피와 살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피부에 청색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생존자는 휑한 눈으로 쯔네시를 바라보았다.
"죽기만큼 행복할 거야."
끝내 생존자가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에 쓰러졌고 그가 죽으며 구슬을 토해냈다.
"굿바이, 사요나라."
쯔네시는 토해낸 검은 구슬을 꺼내 이물질을 닦고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