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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51
#.1 씬. 민속촌 일각.(낮)
단아, 삼월 나란히 앉아있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서있는 강석.
삼월 : (망연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하며) 단아야?
단아 : (보며) 응. 할머니?
삼월 :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다른 소원 하나 없이, 사는 동안 하씨 가문에 폐만 끼치지 말고 살자 그랬는데.
어째 그 소원 하나를 안 들어주시는지.
단아 : (삼월의 손을 잡으며) 할머니? 할머니, 우리 집안에 폐 끼치는 거 아니야.
할머니 평생 우리 식구들을 위해서만 사셨잖아요?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다고, 너무 수고하며 사셨다고,
이젠 조금 받아도 된다고, 그래서 할머니 조금 아프신 걸 거야.
삼월 : (울먹이면서) 단아야?
단아 : 응. 할머니?
삼월 : 난.....난.....겁이 나 죽겠다.
단아 : (울먹해서 보는) 할머니, 그러지 마. 겁날 게 뭐 있어요? 우리가 있잖아요?
삼월 : 이렇게 정신이 자꾸 빠져나가면......나중엔....아무도 못 알아보게 될 텐데.
그럼 나....그때는 사람이 아니잖아? 그럼 나 어쩐다니?
단아 : (삼월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만약에....만약에....할머니 애기처럼 되면,
할머니가 오빠들이랑 나 키워주신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할머니 돌봐드릴게.
그러니까 제발 할머니, 걱정하지 마.
삼월 : 조금이라도 정신 온전할 때.....목이라도 매야 하는데. 그 정신마저 없으면.....
단아 : 할머니. 왜 그런 생각을 해? 그럼 난 어떡하라구? 우리 애기들 할머니 보셔야 하잖아?
삼월 : (단아 머리 쓰다듬으면서) 그러게 말이다. 우리 단아 애기들은 꼭 보고 눈을 감아야 하는데.
이 정신으로 우리 단아 애기들이나 알아볼는지.
단아 : 괜찮아지실 거야. 치료 받으면, 나아지실 거예요.
강석, 다가서는.
강석 : 할머님, 뭐라도 드시게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단아 : (강석을 보고, 삼월을 보면서 애써 밝은 표정으로) 할머니, 우리 밥 먹어요.
우리 예전에 왔을 때 국밥 사먹었잖아요? 그때 맛있다고 하셨잖아?
할머니, 우리 국밥 먹자, 국밥, 응?
삼월 : ......
#.2 씬. 민속촌 내 장터.(낮)
삼월, 단아, 국밥을 먹고 있는.
단아 : (삼월의 밥 위에 김치를 손으로 찢어서 놓아주며) 할머니, 김치가 잘 익었어요.
삼월 :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끄덕이는)
강석, 도토리묵과 부침을 사서 가져오는.
강석 : (상 위에 놓아주고 앉으며) 할머니, 이것도 드셔보세요. 도토리묵하고 파전이 아주 먹음직스러워요.
삼월 :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요?
강석 : (웃으며) 할머니? 저 돈 많아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시면 뭐든지 말씀 하세요. 제가 뭐든 다 사드릴게요.
삼월 : 말이라도 고맙네요.
강석 : 말이 아니에요. (단아 보고) 말해드려요. 당신 신랑 빈말 절대 못하는 사람이라구.
단아 : (웃으며) 빈말은 못하는데 헛소리만 가끔 해, 우리 신랑.
삼월 : (웃는)
강석 : 이 여자가, 이렇게 가끔 저를 가지고 놉니다.
삼월 : 우리 단아 신랑하고 이렇게 깨소금 볶는 거 보고 사니 이제 죽어도 여한은 없는데.
단아 : 할머니, 그런 말 하면 나 삐친다.
강석 : 그래요, 할머니, 이 사람 삐치면 골질 상당하니까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삼월 : (두 사람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3 씬. 만기의 방.(낮)
만기, 석호, 영인, 수영, 태영, 진아, 말순, 주정, 동동 모여 앉아 있는.
만기 : 단아하고 이서방이 찾았다니 다행이구나.
태영 : 아니, 여기서 민속촌이 어디라고 왜 거기까지 가셨을까요?
주정 : 온전한 정신이면 그러셨겠어? 아니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렇게 정신을 놓으시지.
영인 :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신 건 아니신 거 같아요.
주정 : 왜요? 조카댁? 그동안 뭐 이상한 낌새가 있었어요?
영인 : 단아 결혼 시키고 호되게 앓고 나신 다음부터 좀 이상해지신 거 같아요.
그래서 (진아 보면서) 큰 애한테 잘 좀 살펴보라고 일렀었거든요.
석호 : 이 사람이 삼월 할머니가 좀 이상하신 거 같다고 해도 나이 드셔서 그럴 거라고만 했습니다.
워낙 총기가 좋으신 어른이시라 별 일이야 없겠지 했는데.
만기 : 생각해보면 참 고단한 인생이셨다. 아무 것도 없는 나한테 시집오는 니들 할머니 따라
열일곱 어린 나이에 우리 집안으로 들어와서 배도 많이 곯고 사셨고,
집안이 일어날 때는 니들 할머니하고 같이 공사장 인부들 밥해 먹이느라
하루에 몇 시간 잠도 못자 고 고생을 하셨다.
니들 할머니 떠나고, 니들 어머니까지 일찍 세상 뜨고 나선 집안 대소사 혼자 다 챙기면서
있는 듯 없는 듯 힘들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사신 양반이다.
주정 : 대체 왜 삼월 할머니는 시집도 안가셨대요? 제일 답답한 게 그거예요.
이 집안에서 무슨 영화를 보시겠다고 처녀로 이날 입때껏 그러고 사셨는지.
오빠랑 언니가 너무 이기적이셨던 거 아닌가 싶어요, 저는.
우리 집안을 위해서 희생하는 거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하신 거 아니세요?
만기 : 니 언니가 몇 번 혼처를 주선해서 혼인을 시키려고도 했었다.
주정 : 그런데 왜 안 가신 거예요?
만기 : 늘 같은 말이셨지. 전 애기씨 곁 못 떠나요.
#.4 씬. 민속촌 장터.(낮)
강석, 단아, 삼월 걸어오는데.
단아 : 할머니, 이 바구니 너무 이쁘다.
삼월 : 그렇구나.
강석 : 살까?
단아 : 그래요. 할머니, 이런 바구니 좋아하세요.
강석, 주인에게 얼마냐고 묻고, 돈을 꺼내는데.
삼월 : (고무신 가게 앞에 쪼그리고 앉는)
단아 : (그런 삼월을 보고 옆에 가서 앉는) 고무신 살까? 할머니?
삼월 : 애기씨. 서방님 고무신이 다 헤졌는데, 이거 한 켤레 사가요.
단아 : (암담해지는)
삼월 : (고무신을 만지작거리며) 저는요, 애기씨, 중신 선 어른께서
신랑이 참 인물도 좋고 성품이 강건하다고 해서 그냥 중신에비들 말이려니 했어요.
단아 : (울먹해서 보고)
강석, 바구니를 들고 뒤에 와서 서는.
삼월 : 그런데 정말 어쩌면 그리 관옥 같으신지. 근방에 그만한 인물 없으실 거예요.
인물만 좋으신가요. 애기씨 몸종으로 딸려온 저한테까지 한번도 하대 안하시는 거 보세요.
삼월아 하고 부르셔도 될 것을 꼭, 이봐요, 그러시잖아요.
단아 : (눈물이 그렁해서 보는)
#.5 씬. 길.(낮)
달리는 강석의 차. 뒷좌석에 앉은 삼월과 단아.
단아, 삼월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고, 삼월 잠이 들어 있다.
단아 : (삼월의 손을 만지면서) 너무 많이는 아프지 마, 삼월씨.
아무리 많이 아파도 우리가 보살펴드리겠지만, 삼월씨 힘들어서 안 되잖아.
그러니까 삼월씨.....조금만 아주 천천히 조금씩만 아파. (눈물을 흘리는)
강석 : (그런 단아를 룸미러로 보면서 마음이 무거운)
#.6 씬. 마루.(낮)
석호, 영인, 수영, 태영, 진아, 말순, 주정, 동동, 조만 서있는데.
강석, 단아, 삼월 들어오는.
조만 : (울면서 삼월에게 매달리며) 할머니? 우리 할머니 불쌍해서 어쩐대요?
어쩌다가 이렇게 되셨대요, 할머니?
석호 : 소란 떨지 마라.
삼월 : 면목 없어, 하사장.
석호 :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희가 면목 없습니다. 편찮으신 것도 모르고.
할머니? 아무 걱정 마세요. 병은 고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삼월 : ......
#.7 씬. 만기의 방.(낮)
만기, 삼월, 강석, 단아 앉아있는.
만기 : 이봐요?
삼월 : 네, 회장님.
만기 : 사람이 어째 그리 무던하신 게요? 어디가 안 좋으면 안 좋다고 말을 했어야지.
삼월 :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이제 이 댁과의 인연이 다한 듯 싶습니다.
만기 : 무슨 말인 게요?
삼월 : 우리 단아 시집가는 것까지 봤으니 이젠 제가 이 댁에서 할 일은 다 한 거 같습니다.
더이상 폐 끼치기 전에 떠날까 싶습니다.
단아 : 할머니?
만기 : 참으로 모진 사람이구만. 우리 모두를 인두겁을 쓴 짐승으로 만들고 싶은 게요?
삼월 : 회장님.
만기 : 내가 이 집안에서 눈을 감아야 하는 것처럼, 댁네도 그래야 한다는 것만 새겨두시구려. 단아야?
단아 : 네, 할아버님.
만기 : 할머님 고단하실 테니, 모시고 나가서 쉬게 해 드리거라.
단아 : 네.
#.8 씬. 삼월의 방.(낮)
이불 깔려져있고, 단아, 삼월을 누이는.
조만 옆에서 숨이 찰 정도로 울고 있는.
단아 : 할머니, 푹 주무시고 일어나세요. 그럼 한결 개운해질 거예요.
조만 : 치매가 푹 자고 난다고 나아지니.
이젠 집도 못 찾아오시는데, 우리 못 알아보는 것도 시간문젤 거야.
단아 : (흘겨보는) 조만이 너 나가 있어.
조만 : 나나 우리 할머니나 이게 다 하녀 콤플렉스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거야.
시집가라고 할 때 가셨으면 오죽 좋아.
아무리 이 집안에 뼈를 묻을 각오로 사셨으면 뭐하냐구? 우리는 윤씬데.
할머니, 인생 정말 너무 잘못 사신 거라구요.
삼월 : 어디 초상났냐? 골 울린다. 그만 좀 울어.
조만 : 할머니, 인생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서 그러잖아요.
단아 : 할머니, 주무셔야해. 제발 좀 나가, 너.
조만 : (울면서 뛰쳐나가는)
삼월 : 저 놈의 하녀 컴플렉슨가 뭔가는 왜 시시때때로 들먹이는지.
단아 : (미소 짓고, 삼월 팔 주무르면서) 쟤 취미잖아. 할머니. 내가 자장가 불러드릴까?
삼월 :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단아 : 그럼. 잘 자라. 우리 아가......(노래 부르면서 삼월 다독이는데)
삼월 : (웃고) 다른 건 나무랄 데 하나 없는데 노래는 어째 좀 그렇다.
단아 : (웃으며) 우리 삼월씨 유머 감각 돌아온 거 보니까 다 나으셨나보다.
삼월 : 웬만해야지, 듣고 있지.
단아 : 왜 이래, 삼월씨. 우리 신랑은 내가 자장가 불러주면 얼마나 잘 자는데.
삼월 : 그 사람 참 비위도 좋네.
#.9 씬. 수영의 방.(낮)
수영, 태영, 강석 앉아있으면, 영인, 진아, 말순 찻상을 놓아주는.
진아, 말순 나가면, 영인 앉고.
영인 : 씨암탉이라도 잡아서 사위대접 하려고 했는데, 집안 분위기가 이래서 어쩌지?
강석 : 씨암탉 잡아주고 싶으신 마음은 있으신 거예요?
영인 : 내가 결혼 전에 좀 까칠하게 굴었다고 시비 거는 건가? 지금?
강석 : (웃으며) 제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맺힌 게 많습니다.
영인 : 뭔가 깜빡한 모양인데, 결혼 전에 내가 까칠하게 굴게끔 했거든, 자네?
태영 : 넌 본전도 못 찾을 말은 왜 꺼내고 그러냐? 얘 가만 보면 진짜 머리 나빠.
강석 : 제가요, 살면서 머리 나쁘다는 소리는 진짜 안 듣고 살았는데
왜 처가에만 오면 그 말을 듣게 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영인 : 억울하면 물러줄까? 단아 찾아와?
강석 : 어머니. 왜 이러세요?
태영 : 봐라, 봐. 본전 절대 못 찾는다니까 왜 자꾸 입을 여냐? 열긴.
영인 : 씨암탉은 아니라도 저녁상은 제대로 차려낼 테니 기다리고 있게나. 사위.
강석 : 기대하겠습니다, 어머님.
영인 : (나가는)
수영 : 고맙네.
강석 : (보면)
수영 : 가라앉은 집안 분위기 밝게 해주려고 애써줘서.
태영 : 아냐, 아냐, 형. 얘 그런 깊은 생각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강석 : 작은 형님. 제발 큰 형님처럼 제 진면목을 좀 헤아려주십쇼.
태영 : 진면목은 쥐뿔.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장모한테 응석이나 부린 주제에. (차 마시다가 윽 하는)
강석 : (보고) 왜 그러세요?
태영 : 아니, 이젠 차까지 비리네.
강석 : 속 안 좋으세요?
수영 : (미소 지으며) 입덧하는 거야. 제수씨 대신해서.
강석 : 뭘 하신다구요?
태영 : 그런 거 있어. 금슬이 너무 좋은 부부는 남편이 대신 입덧도 하고 그러는 거래.
강석 : 가만 보면 참 작은 형님도 연구 대상이세요.
#.10 씬. 부엌.(낮)
영인, 진아, 말순, 주정 얘기하고 있는.
말순 : 어떡해요? 형님?
진아 : (보면)
말순 : 조만씨는 이경장하고 연애하느라 자꾸 밖으로만 나가고.
형님이 집안일 하시랴, 삼월 할머님 챙기시랴 고생 많으실 텐데.
아무래도 제가 사표를 내야할 거 같아요.
주정 : 삼월 할머니 돌보려고 사표까지 내겠다구?
말순 : 형님 혼자 짐이 너무 무거우시니까.
영인 : 월요일에 병원에 가서 정확하게 진단을 받아보고,
어느 정도신지 안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을 해보자.
단아, 들어오는.
영인 : 할머니 주무셔?
단아 : 네, 잠드셨어요.
영인 : (팔 걷어붙이며) 큰애야?
진아 : 네, 어머님.
영인 : 그 요리책 좀 꺼내봐라.
진아 : 네?
영인 : 사위한테 씨암탉 대신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낸다고 큰 소리 쳤으니 뭐라도 만들어봐야지.
주정 : 아니, 조카 며느님께서 손수 하시려구?
영인 : 해봐야죠.
주정 : 내 생각엔 그냥 참으시는 게 어떨까 싶은데.
영인 : 저도 마음만 먹으면 잘하는 사람이에요.
주정 : 어째 불안해서....
#.11 씬. 마루.(밤)
태영, 동동, 강석 서있고.
영인, 단아, 진아, 조만 상 들고 나오는.
영인 : 이서방?
강석 : 네?
영인 : 오늘은 이서방, 할아버님 방에서 식사해.
태영 : 아니, 어머니, 이건 차별 대우시죠? 그럼 남자는 동동이하고 저만 마루에서 먹는 건데?
영인 : 귀한 사윈데, 마루에서 먹게 할 수 없잖아? 차별 대우다 싶어도 좀 참아.
태영 : 참을 걸 참으라고 하셔야죠. 이 자식이 가뜩이나 저 우습게 보는데.
영인 : 조심 좀 해주지, 작은 아드님. 내 사위한테 자꾸 이 자식, 저 자식하면
나 작은 아드님 더 학대하는 수가 있거든.
동동 : 그냥 참아, 아빠.
#.12 씬. 만기의 방.(밤)
만기, 석호, 수영, 주정, 강석 식사하고 있는.
만기 : (까맣게 탄 생선을 들여다보며, 젓가락만 들고 있는)
주정 : 조카 며느님?
영인, 문 열고 들어오면서.
영인 : 네, 고모님.
주정 : 오빠, 상에 생선 좀 바꿔드리죠? 너무 타서 어떻게 하실 줄 모르시는데.
영인 : (난처한 표정으로) 아버님 생선이 그래도 제일 덜 탄 건데.
주정 : 이 생선 조카 며느님이 구운 거야?
영인 : (강석 보며) 이서방 껀 아버님 꺼 다음으로 덜 태운 거니까 눈 딱 감고 먹어줘.
강석 : (웃으며) 네, 어머님, 전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국도.... (떠먹다가, 윽 하는)
주정 : (국 맛보고) 어머. 무슨 국이 이렇게 달아.
영인 : 달아요? 광어국이라 비린내 없애려고 설탕 조금 넣었는데.
강석 : 어머님, 전 단 거 좋아합니다.
영인 : 그래, 다행이네.
주정 : 참 애쓴다, 장모님한테 점수 따려구.
손주며느리들 음식 솜씨도 거기서 거기지만, 단아는 뭐했어요?
영인 : 오랜만에 친정에 왔는데, 찬물에 손 담그지 말고 쉬라고 했죠.
석호 : 저기, 여보?
영인 : 왜요?
석호 : 나 입맛이 없는데, 나중에 먹으면 안 될까?
영인 : (노려보면)
석호 : (주눅이 들어서) 알았어, 먹으면 되잖아.
#.13 씬. 커피숍.(밤)
현규, 들어오는. 친구들 공성전 의논하고 있고.
현규 : (두리번거리며) 혜주는?
성민 : 쓰레기 버리러 가던데?
현규 : 내가 화장실 갔다 와서 버리러 갈 건데 왜 지가 가?
#.14 씬. 커피숍 내 상가.(밤)
혜주, 쓰레기봉투 낑낑거리며 들고 걸어가면, 성수 쓰레기봉투 집어 드는.
혜주 : (보고) 괜찮아요?
성수 : 같이 일하는 애가 여자 위할 줄 모르나보다.
걸어오다가 그 모습 보는 현규.
성수 : (혜주 머리 헤집으며) 이런 건 남자가 해요, 그래야지.
혜주 : (물러서는)
성수 : 진짜 너도 나한테 적응 안 된다. 군대가기 전부터 얼굴만 봤다하면 한 짓인데,
왜 그렇게 낯설어서 어쩔 줄 모르니?
현규E : 저기요?
성수 : (돌아보면)
현규 : (앞으로 나서며) 혜주가 싫어하면 안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성수 : 무슨 말이지?
현규 : 혜주 머리 만지는 거 싫어하는 거 모르시겠습니까?
성수 : (씩 웃으며) 그런 말 들은 적 없는데. 남의 일에 끼어드는 나쁜 버릇이 있는 모양이군.
(쓰레기봉투 들고 가려고 하면)
현규 : (낚아채서, 혜주 흘겨보며) 내가 한다고 했는데, 이런 걸 왜 네가 들고 나와?
(쓰레기봉투 들고 걸어가면)
성수 : 저 친구하고 사귀니?
혜주 : .....
현규 : (대답 없는 혜주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아보는)
#.15 씬. 마루.(밤)
만기, 석호, 영인, 삼월, 주정, 조만, 수영, 태영, 진아, 말순, 강석, 단아 둘러 앉아있으면.
동동 : (태권도복 입고 걸어 나오는)
태영 : 야, 난데없이 무슨 태권도 시범을 보인다고 그러냐?
동동 : (삼월에게) 할머니?
삼월 : 응?
동동 : 할머니 편찮으셔서, 제가 위문공연 하는 거예요. 재밌게 보시면 금방 나으실 거 아니에요?
삼월 : 아이고, 우리 동동이 고맙기도 하지.
태영 : 그런 거냐, 난 또.
강석 : 어째 작은 형님이 동동이보다 정신 연령이 더 어리신 거 같은데요.
태영 이 자식이, 손위 처남을 물로 보나?
영인 : 할 수 없네. 내일 이불빨래 작은 아드님 혼자서 다 해야겠어.
태영 : 어머니, 이 자식....아니. 이서방이 하늘같은 손위 처남을.....
동동 : 아빠, 조용히 좀 해.
태영 : 왜 나만 다 구박이지?
말순 : (태영 손 잡으며) 그래도 난 구박 안하잖아?
태영 : (말순에게 기대며) 응. 당신 밖에 없다.
동동 : 고모부?
강석 : 응?
동동 : (나무 판 건네주면서) 이것 좀 잡아주세요.
강석 : 위험하지 않냐?
태영 : 겁은 많아 가지고.
동동 : 위험하지 않아요.
동동, 인사하고. 식구들 박수 치는.
동동 : 태권도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 하동동의 시범을 보시겠습니다.
주정 : 야, 아빠보다 말솜씨가 좋다.
태영 : 왜 이러세요? 저 자식 말발 좋은 건 다 저 닮아서라구요.
만기 : (흐뭇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지방 방송 좀 꺼라.
주정 : 어머, 어머, 우리 오빠 그런 말씀도 하실 줄 아세요?
만기 : 거 참, 너도 어지간히 말 많다.
동동, 주먹 불끈 쥐고. 강석이 들고 있는 나무판을 향해서 주먹을 날리는데.
강석 : (나무 판 뒤에서 얼굴 내밀며)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
동동의 주먹, 강석의 턱으로 날아드는.
#.16 씬. 단아의 방.(밤)
단아, 강석의 턱에 물수건 대주고 있는.
강석 : 자식, 위험하지 않다고 해놓고.
단아 : 그러니까 왜 얼굴은 내밀어요? 진짜 창피해서. 솔직히 말해요? 겁나서 얼굴 내민 거죠?
강석 : 또 또 자존심 긁는다. 아니, 왜 처가에만 오면 이렇게 되는지 알 수가 없네.
신랑 매단다고 발 퉁퉁 붓게 만들질 않나? 조카란 놈은 고모부한테 주먹질을 하지 않나?
단아 : 그게 무슨 주먹질이에요? 태권도 시범이었지.
태영, 문 열고.
태영 : 아프냐?
강석 : 턱이 빠질 지경입니다.
태영 : 엄살은.
강석 : 엄살 아니거든요, 형님 아들 진짜 주먹 장난 아니라구요.
태영 : 근데 난 왜 이렇게 고소해죽겠는지 모르겠다.
단아 : (노려보며) 작은 오빠.
태영 : 얘, 얘 눈에 힘 팍 들어가는 봐.
단아 : 그럼 우리 신랑 턱이 빠질 지경인데 눈에 힘이 안 들어가겠어?
태영 : 너 미워. (문 쾅 하고 닫는)
강석 : 내가 너무 고맙죠?
단아 : 뭐가요?
강석 : 내가 구제해주지 않았으면 지금도 작은 오빠 어리광이나 받아주며 살고 있었을 거 아니에요?
단아 : 네, 눈물나게 고마워요.
강석 : 그럼 호호 해줘요.
단아 : 작은 오빠 어리광 피해 시집갔더니 응석받이 꼬마 신랑 시중이나 들며 살고.
쓰레기차 피하려다가 똥차에 받친 거 아닌지 몰라.
강석 : 이 여자가, 신랑한테 똥차. (단아 끌어안고 간지럼 태우는데)
단아 : (웃으며) 하지 마요, 하지 마....
태영, 문 벌컥 여는.
단아 : (놀라서 보고)
강석 : 안가셨습니까?
태영 : 이 집 방음 잘 안된다는 거 알려주려구 왔다, 왜?
#.17 씬. 커피숍.(밤)
현규, 혜주에게 행주 쥐어주면서.
현규 : 네가 청소 다 하고, 문 잠그고 가.
혜주 : (멍하니 보는)
현규 : 난 대학원 동기들하고 호프집에서 모임 있어서 지금 가야해.
혜주 : 네.
현규 :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닦아놓고 가.
혜주 : 네.
현규 : (돌아서면)
혜주 : 저....
현규 : 뭐?
혜주 : 나한테 뭐 화난 거 있어요?
현규 : 너 기부금 내고 입학 했지?
혜주 : 네?
현규 : 그 머리로 우리 학교 들어온 게 용하다. (나가버리는)
혜주 : (왜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보는)
#.18 씬. 태영의 방.(밤)
말순, 핸드폰 중. 태영, 이불 깔고 있다가 말순을 보는.
말순 : 이혼? 진짜 이혼을 했단 말이야?
태영 : 동생 이혼 했대? 결국 했대?
말순 : 뭐? 우리 그이가 무슨 일자리를 또 알아봐줘? 저번에 그 망신을 줘놓고, 무슨 염치로.
태영 : 진정하고, 너 홀몸도 아니잖아? 태교에 안 좋다.
말순 : 정말 이러는 거 아니지, 엄마. 우리 그이가 무슨 우리 집안에 죄졌어?
왜 일만 생겼다 하면 우리 그이가 떠안아야 하는데?
태영 : (말순에게 핸드폰 뺏는) 여보세요? 장모님. 하서방입니다.
말순 : (다시 핸드폰 뺏으려고 하는) 왜 그래? 이리 줘.
태영 : (한 손으로 밀면서) 얼마나 마음이 무거우세요? 결국은 이혼을 했으니.
네, 네, 그러시겠죠. 장모님, 우시지 마시고.
말순 : 이리 달라니까.
태영 : 장모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일자리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애들하고 먹고 살려면 뭐라도 해야죠.
네, 네, 걱정하지 마시구, 들어가세요, 장모님. (전화 끊는)
말순 : 왜 그래? 정말? 무슨 일자리를 또 알아봐주겠다고 그러냐구?
태영 : 내가 말했지? 니 식구는 내 식구라구. 리조트 식당에 일자리 있을지 모르니까 좀 기다려봐.
말순 : 하지 마, 하지 말라구. 정말 염치들도 없어.
태영 : 말순아?
말순 : 왜?
태영 : 식구끼린 그런 거 없어도 돼. 장모님이 누구한테 그런 부탁을 하시겠냐?
그래도 난 좋다. 우리 장모님이 그래도 하서방 밖에 없네 그러시면서 우시는데
나 정말 뿌듯하고 그렇다.
말순 : 왜 그렇게 착해 터졌냐, 우리 하태영은.
태영 : 그래서 말인데.
말순 : 응?
태영 : 나 순대 먹고 싶어.
#.19 씬. 마루.(밤)
말순, 상에 순대를 접시에 꺼내놓는. 상 두개를 차리고.
진아 : (들어오는)
말순 : 마침 잘 나오셨어요. 형님.
진아 : 웬 순대예요?
말순 : 우리 입덧 무섭게 하는 서방님께서 오늘은 순대가 잡숫고 싶다네요.
진아 : (미소 짓는)
말순 : 형님 것도 차렸으니까 들어가 두 분이 같이 드세요.
진아 : 단아 아가씨도 드려야 하지 않나?
말순 : 이실장님은 이런 거 안 드실 거 같아서요.
진아 : 그럴까요?
#.20 씬. 수영의 방.(밤)
수영, 이불 깔아놓고 책 보고 있는데, 진아 순대 상 들고 들어오는.
수영 : 그게 뭐예요?
진아 : 서방님이 순대 드시고 싶다고 해서 동서가 사왔대요.
수영 : 정말 입덧 한번 알차게 하네.
진아 : (젓가락 들어서 수영에게 주는)
수영 : 당신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요, 내가 사다줄 테니까.
진아 : (쓸쓸하게) 전 입덧도 안하는데요 뭐.
수영 : (진아 손 잡고) 우리도 할 건 다해 보자구요. 우리 그러기로 했잖아요?
밤에 우리 색시만 몰래 먹이려고 뭐 사서 감추고 들어오는 거 나 좀 해볼 생각인데.
진아 : (울먹해서 보는)
수영 : 그거 실컷 하고 나서 우리 애기 입양해요. 그래야 나중에
아빠가 엄마가 너 가졌을 때, 맛있는 거 많이 사다줬다고 자랑 할 거 아니에요?
진아 : (끌어안으며) 나중에요. 누군가.....내가 죽은 다음에 넌 어떤 사람이었냐고,
어떻게 살다온 사람이냐고 물으면요. 대답할 거예요. 너무 많이 사랑받은 사람이었다고요.
#.21 씬. 종가 전경.(밤)
#.22 씬. 마당.(밤)
장독대, 삼월, 밤하늘을 올려보며 앉아있는.
단아, 삼월 앞에 서는.
단아 : (어깨에 걸친 스웨터 벗어서 삼월의 어깨에 걸쳐주며 옆에 앉는) 아직 밤바람이 차요.
삼월 : 애기씨.
단아 : (또 암담해지고)
삼월 : 저는요, 애기씨. 꼭 한번만 다시 태어나고 싶네요. 애기씨.
#.23 씬. 마루.(밤)
만기, 서있는. 주정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만기 옆으로 와서 서는.
삼월E : 꼭 한번만 애기씨로 태어났으면 싶네요.
만기 : .....
주정 : .....
#.24 씬. 마당.(밤)
삼월의 어깨를 감싸 안는 단아.
단아 : 그래, 삼월씨. 다시 태어나면 꼭 애기씨로 태어나요.
#.25 씬. 하옹의 방.(밤)
만기, 주정 앉아있는.
주정 : 그런 생각해본 적 없으세요?
만기 : .....
주정 : 어쩌면 오빠가 우리 삼월씨 인생을 저렇게 밖에는 살 수 없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요?
만기 : .....
주정 : 예전에 다큐 찍는다고 카메라 들이댔을 때, 삼월 할머니가 그랬어요.
초례청에 선 오빠가 참 관옥 같았다구요.
제가 혹시 오빠를 좋아한 게 아니냐고 놀리니까 삼월씨 얼굴을 붉히면서 도망치더라구요.
그땐 내가 괜히 놀려먹었구나, 그랬는데,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기 : 가서 자거라.
주정 : .... (일어서며) 한번쯤은 아는 척 해주셔도 되는 거 아니에요? 너무 가엾잖아요. 삼월 할머니?
만기 : ......
#.26 씬. 삼월의 방.(밤)
단아, 누운 삼월의 이불을 여며주고 일어나는. 잠들어 있는 조만.
#.27 씬. 단아의 방.(밤)
잠들어 있는 강석,
단아, 들어와서 책상 앞에 앉아 얼굴을 가리고 우는. 스탠드만 켜져 있는.
강석 : (잠결에 뒤척이다가 눈 뜨고. 단아의 뒤로 다가 앉는) 왜 그래요?
단아 : (보는)
강석 : (단아의 얼굴을 감싸 쥐고 눈물을 닦아주며) 왜 그래요? 삼월 할머님 때문에 속상해서 그래요?
단아 : 우리 삼월씨 꼭 한번만 다시 태어나고 싶으시대요.
강석 : .....
단아 : 애기씨로요. 우리 할머니로 다시 한번만.....
강석 : ......
단아 : 누군가를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아도, 그런 줄도 모르고 사셨을 거예요.
목숨처럼 섬긴 애기씨의 귀한 낭군님이시니까.
바라봐선 안 되는 분이니까 늘 고개를 떨구고 사셨을 거예요.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도 모르면서 사셨겠죠.
그러다 나이 드셔서 정신이 희미해지신 뒤에야...... 한번만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강석 : (단아를 감싸 안는)
단아 : 할머니가 너무 가여워서.....마음이 너무 아파요.
강석 : (단아를 다독이는)
단아 : (강석에게 안겨 소리죽여 우는)
#.28 씬. 종가 전경.(새벽)
#.29 씬. 삼월의 방.(새벽)
삼월, 경대 앞에 앉아 곱게 머리를 빗어 올리는.
#.30 씬. 마루.(새벽)
삼월, 방에서 나오는. 만기 방에서 나오는.
삼월 : (인사하는)
만기 : 좀 괜찮소?
삼월 : 네. 오늘은 한결 개운하네요.
만기 : 너무 애쓰지 마시구려.
삼월 : .....
만기 : 힘들면 누워있기도 하고 그래요.
삼월 : 아닙니다, 회장님.
만기 : 댁네가 이 집안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모를게요.
삼월 : .....
만기 : 그러니....오래만 있어주구려.
하옹의 방으로 움직이는.
삼월 : (울먹해지는)
#.31 씬. 종가 전경.(낮)
태영E : 할만하냐?
강석E : 제가 이것까지 꼭 해야 합니까?
#.32 씬. 욕실.(낮)
태영, 강석, 이불 빨래하고 있는. 수영,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걸레 빨고 있는.
태영 : 아니, 무슨 걸레를 하루 종일 빨아? 형은?
수영 : 남 걱정하지 말고, 네 일이나 해라.
영인, 문 열고.
영인 : 이서방은 왜 여기 들어와 있어?
강석 : 작은 형님이 같이 하자고.....
영인 : 이서방까지 할 거 없으니까 나와.
강석 : 네, 어머님.
태영 : (강석 잡고, 영인 몰래 주먹 들어 보이며) 알아서 기자.
강석 : (얼른 눈치 보고) 그냥 작은 형님 좀 도와드리겠습니다.
영인 : 그럴 거 없다니까.
태영 : 그냥 두세요.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는데.
#.33 씬. 마당.(낮)
태영, 강석 이불 널고 있는.
강석 : 저 허리 아파 죽겠어요.
태영 : 그 쪽 좀 잘 잡아라.
강석 : 전 그래도 백년손님인데 너무 부려먹으시는 거 아니세요?
태영 : 장모님한테나 백년손님이지, 나한테는 아니거든? 아, 거기 좀 잘 잡으라니까.
주정, 마루로 나와 서며.
주정 : 처가에 놀러 와서 고생 많네, 이서방. 할아버님이 들어와서 바둑이나 한판 두자고 하시는데?
강석 : (반색하며) 네? 형님, 저 할아버님이 찾으신다는 데요.
(얼른 빨래 놓고 돌아서는데, 빨래 끈이 휘청하며 빨래 땅으로 떨어지는)
태영 : 야, 야.
#.34 씬. 마루.(낮)
태영, 강석 울상이 되서 빨래 들고 올라오는. 주정 웃고 서있는.
석호, 수영, 동동 청소하고 있는.
만기, 방에서 나오며.
만기 : 바둑이나 한판 두자는데 왜 안 들어오나?
태영 : 할아버지, 손주 사위가 대형 사고를 치셔서 바둑 둘 시간이 없는데요.
주정 : 이불 빨래 다시 하게 생겼어요, 오빠.
만기 : 태영이 너 혼자 하면 안 되겠냐?
태영 : 절대 안 되겠는데요, 할아버지.
#.35 씬. 부엌.(낮)
삼월, 단아, 조만, 마루에 앉아서 만두 빚고 있고.
말순, 진아, 국 끓이고 채소 다듬고 바쁜.
영인 : (옆에 서서) 나도 좀 거든다니까.
조만 : 가만 계셔주시는 게 도와주시는 거예요.
영인 : 말 너무 심하게 한다, 조만씨.
주정, 웃으며 들어오는.
주정 : 단아야, 네 신랑 골빠지겠다.
단아 : 아직도 빨래해요?
주정 : 빨래 줄이 풀어지는 바람에 다시 해야 한다.
삼월 : 저걸 어째, 새신랑 고생스러워서.
영인 : 안되겠네, 우리 사위 병나면 큰일인데.
주정 : (영인 잡으며) 그냥 둬요. 태영이 이서방 골려먹고 싶어서 그러는데.
#.36 씬. 강석의 집 거실.(낮)
강석, 단아 들어오는.
영자, 서있고, 천갑, 순진 오늘도 연속극 보고 있는.
단아 : 다녀왔습니다.
천갑 : 그래, 그래.
영자 : 편안들 하시지?
단아 : 네. 온천은 잘 하셨어요?
영자 : 그럼.
강석 : 저 좀 올라갈게요. (허리 잡고 낑낑거리며 올라가는)
영자 : 쟤 왜 저러니?
강석 : (순간 단아 눈치 보고) 허리를 좀 삐끗했나 봐요.
천갑 : (묘하게 웃으며) 허리 심하게 쓴 일 있나보다.
영자 : (질색하면서) 여보.
천갑 : 여기 다 18세 관람가다, 뭘 그러냐?
#.37 씬. 강석의 방.(낮)
강석, 침대에 엎어져 있는. 단아 들어오는.
단아 : 꼭 티를 내야 직성이 풀리죠? 진짜 민망해 죽겠어.
강석 : 난 당신 작은 형님 때문에 죽겠거든요. 빨리 허리 좀 주물러요.
단아 : 내려가서 저녁 해야 해요.
강석 : 나 허리 나가면 아쉬운 사람이 누군데 이럽니까?
단아 : 그다지 아쉬울 거 같지 않거든요.
강석 : 진검 승부 한번 해보자, 이거지?
#.38 씬. 강석의 집 식당.(밤)
천갑, 영자, 강석, 단아, 순진 식사하고 있는.
아줌마, 일하고 있고.
천갑 : 아니, 그 정정하신 양반이 치매시란 말이냐?
강석 : 네.
영자 : 아니, 어쩌다가, 우리 집에 와서 일해주실 때도 멀쩡하셨는데.
강석 : 그래서 내일 이 사람 집에 잠시 다녀와야 해요. 할머니 모시고 병원에 가려면.
천갑 : 그래, 그러거라. 아, 아니다, 내일 나도 같이 가자.
강석 : 네? 아버지까지 왜 가시게요?
천갑 : 만약에 상태가 안 좋으시다 하면 그냥 집에 계실 수 없지 않겠냐?
강석 : 그래서요?
천갑 : 아가?
단아 : 네.
천갑 : 내가 실버타운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시설도 좋고, 의료진도 상주해 있어서 그 할머니 계시기엔 그만일 거 같은데.
영자 : 맞다, 그러면 되겠네.
강석 : 이 사람 집에서 할머니 실버타운으로 가시게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영자 : 얘 그건 모르는 소리야. 피붙이도 아니고, 아니 피붙이라고 해도 그래.
긴병에 효자 없다고, 치매노인 모시는 게 보통일인 줄 아니? 새아가?
단아 : 네, 어머니.
영자 : 네가 집에서 할머니 모실 수도 없는데, 잘 생각해야 한다.
네 어머님도 회사 다니시고, 네 새언니들도 한분은 경찰관이시잖니?
그럼 큰 새언니가 할머니까지 돌봐야 하는데. 너라도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 거야.
실버타운으로 모시면 너도 자주 들여다볼 수 있고.
천갑 : 그렇지, 그렇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할머님 생각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니냐?
한번 모시고 가서 보여드리면 그리로 옮기시겠다고 하실지 모르지 않냐?
단아 : ......
#.39 씬. 천갑의 방.(밤)
천갑, 영자, 고스톱 판 벌이고 앉아있는.
영자 : 나 온천 갔다 와서 진짜 피곤하다.
단아, 찻상 들고 들어오는, 강석 따라 들어오는.
천갑 : 치매엔 고스톱만한 예방책이 없다드라. 구시렁거리지 말고 좀 해라.
새아가? 너도 명예회복 해야지?
단아 : 죄송해요. 다림질 할 것도 있고 해서.
영자 : 그래, 여보, 얘는 좀 빼주자. 고스톱 치다가 병났다고 하면 동네 창피하다.
천갑 : 그럼, 다림질해야 하는 애는 빼주고, 아들 네가 앉아라.
강석 : 전요, 아버지, 오늘 허리가 진짜 많이 아프거든요.
천갑 : 자식, 허리가 왜 그렇게 아픈데?
강석 : 아, 아버지도, 그런 거 아니거든요.
천갑 : (씩 웃으며) 그런 거는 뭔데?
강석 : 저희 올라갑니다. (단아 끌고 나가는)
영자 : (천갑 때리면서) 주책이야? 주책? 며느리 앞에서 그게 할 소리야?
천갑 : 우리 지금까지 이러고 살아왔지 않냐? 새애기도 지금쯤은 분위기 파악 다 됐을 거다.
영자 : 애 얼굴 빨개지는 거 못 봤어?
천갑 : 뭐 그만 걸로 얼굴까지 빨개지고 그러나? 쟤는.
영자 : 진짜 창피해서 살수가 없다, 내가. 룸싸롱 애 때문에 집안 발칵 뒤집어 놓은지 얼마나 됐다고
시아버지란 양반이 입만 열었다 하면 18세 관람가 어쩌고 하니.
천갑 : 아, 빨리 좀 쳐라.
#.40 씬. 강석의 방.(밤)
강석, 침대에 누워있고, 단아, 다림질 하고 있는.
강석 : 잘한다, 신랑은 허리 아파 죽겠다고 널부러져 있는데 마누라란 사람은 자기 볼 일만 보고.
단아 : 귀한 신랑 속옷 다리고 있거든요.
강석 : 누가 다려달라고 했냐구.
단아 : (다림질 한 거 들고 일어서는)
강석 : 어디 가는데요?
단아 : 속옷 내려다 드리려 구요.
강석 : 그걸 왜 꼭 지금 내려 드려야 하는데요?
단아 : 내일 아침에 갈아입으실 옷을 그럼 언제 내다 드려요? (나가려고 하면)
강석 : 나 이렇게 괄시한 거 바로 오늘밤부터 후회하게 될 텐데 두렵지도 않나?
단아 : (웃으며 나가는)
강석 : 저 여자가 겁도 없어요.
#.41 씬. 커피숍.(밤)
현규, 노려보고 있으면.
성수 : (혜주 앞에 서서) 문화사 노트한 것 좀 빌려줄래?
혜주 : 네. (가방 여는 노트 꺼내서 주며) 저도 노트필기 잘 못하는데.
성수 : (노트 펼쳐 보면서) 이 정도면 퍼펙트 하지 뭐.
친구들 들어오는.
성민 : 형?
성수 : 니들은 여기 출근하나보다.
강하 : 죽치기 딱 좋거든요.
성수 : (혜주에게) 내일 점심은 내가 살게. 강의 끝나고 보자. (혜주 머리 헤집고 나가는)
현규 : (앞치마 풀면서) 야, 피씨방 가자.
성민 : 니가 웬일이냐? 먼저 피씨방을 다 가자고 하고.
현규 : (혜주에게) 다 정리하고 가는 거 알지?
혜주 : 네.
강하 : 니들 싸웠냐? 너 분위기가 왜 이렇게 살벌하냐?
현규, 친구들을 끌고 나가버리는.
혜주 : ......
#.42 씬. 혜주의 방.(밤)
혜주, 고민 되는 느낌으로 앉아있는.
노크 소리.
혜주 : (일어서며) 네.
단아, 혜주 빨래 들고 들어오는.
단아 : (침대에 놓아주며) 간식이라도 좀 챙겨다 줄까요?
혜주 : 아니에요.
단아 : 무슨 고민 있어요?
혜주 : 아니에요.
단아 : 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
혜주 : (얼굴 만지면서) 왜? 이상해요?
단아 : 좀 그런 거 같은데. 저한테도 못할 말이에요?
혜주 : .....
단아 : 왜요? 아가씨?
혜주 : 현규 오빠가 계속 저한테 화를 내요.
단아 : 현규가요?
혜주 : 네.
단아 : 왜요?
혜주 : 그걸 모르겠어요.
단아 : (보다가 미소 지으며) 현규가 점점 더 아가씨가 편해지나 보네요.
편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화도 안내는 법이거든요.
혜주 : .....
단아 : 자요, 아가씨. (나가는)
혜주 : .....
#.43 씬. 강석의 방.(밤)
강석, 침대 가운데다 베개 쭉 늘어놓고 있는.
단아, 잠옷 입고 웃으면서 보는.
강석 : 여기만 넘어왔단 봐.
단아 : 정말 유치 짬뽕인 거 알아요?
강석 : 진검 승부 하자고 했잖아요?
단아 : 이게 진검 승부예요? 애들도 요즘은 이런 장난 안치거든요.
강석 : 꼬마 신랑 소리까지 듣는데, 못할 짓이 뭐가 있어.
단아 : (침대에 누워, 자기 쪽 이불 덮고) 넘어오시면 죽는 수가 있으십니다.
강석 : 누가 할 소리.
#.44 씬. 강석의 집 전경.(밤)
#.45 씬. 강석의 방.(밤)
강석, 자고 있는 단아를 노려보고 있는.
강석 : 아, 성질 돋구는 데는 뭐 있다, 이 여자. (참다 못 해, 단아의 코를 잡는)
단아 : (숨이 막혀서 눈을 뜨는) 왜 그래요?
강석 : 잠이 오냐? 잠이 와?
단아 : 왜요? 또? 나 금 안 넘어갔잖아요?
강석 : 금 거놓고 자는데도 참 잘만 주무시네요.
단아 : 그러자면서요?
강석 : 사람이 성질나서 골질을 하면 달래야지, 너는 그래라, 나는 잔다 그러나?
단아 : 그럼 어쩌자구요?
강석 : 진짜 이 여자 쌩까는 거 하난 알아줘야 해.
단아 : (웃으며) 그럼 금 넘어가도 되요?
강석 : 아 됐다, 됐어. 누워 절 받는 것도 치사해서 못하겠다. (팩하니 돌아누워 버리는)
단아 : (베개들 밑으로 내려놓고, 강석 어깨 잡으며) 여보?
강석 : 하지 마.
단아 : 여보~옹.
강석 : 하지 말라니까.
단아 : (끌어안으며) 왜 그러세요? 여보?
강석 : (웃음을 참는)
단아 : 웃었다.
강석 : 그럼 웃기는데 안 웃냐?
단아 : 졌죠?
강석 : 뭐?
단아 : 진검 승부에서?
강석 : 나 안 해, 나 안 해.
단아 : (더 꽉 끌어안으며) 또 이겼다, 내가.
#.46 씬. 병원 전경.(낮)
#.47 씬. 진찰실.(낮)
의사, 삼월 앉아있고, 뒤에 서있는 단아.
의사 : (차트 보면서) 검사 결과는 치매 초기 증상이 맞으시네요.
삼월 : 더 얼마나 나빠질까요? 선생님?
의사 : 치료 결과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48 씬. 병원 복도.(낮)
천갑, 영자 서있는. 단아, 삼월 진찰실에서 나오는.
천갑 : 뭐라고 하시냐?
영자 : 치매 맞으시대?
삼월 : 그렇다네요.
영자 : 이걸 어째.
천갑 : 너무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요즘 의술이 좋아서 치매도 예전처럼 그렇진 않다고 하대요.
삼월 : 저 때문에 두 분까지 이렇게 오시고.
천갑 : 저....저희가 이렇게 온 건....
#.49 씬. 실버타운 내.(낮)
천갑, 영자, 삼월, 단아 돌아보고 있는. 극장, 헬쓰장, 사우나 등등
천갑 : 여기 자식 없어서 와 계신 분들 많지 않습니다.
말년을 독립적으로 사시겠다고 마음먹고 들어와 계신 분들이 대부분이 십니다.
영자 : 이 양반이 얼마나 공을 들인 곳인지 몰라요. 와 계시면 마음도 편하실 거 같고.
삼월 : 참 좋네요.
#.50 씬. 실버타운 내 일각.(낮)
천갑, 영자, 단아, 삼월 서있는.
천갑 : 난 사무실 가서 직원들 회식비 좀 챙겨주고 오마.
단아 : 네,
영자 : 나도 같이 가.
천갑, 영자 걸어가면. 단아, 삼월 앉는.
단아 : 서운하지? 할머니?
삼월 : 뭐가 서운해?
단아 : 우리 집안에서 평생을 고생만 하시며 사셨는데, 이리로 오시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 거?
삼월 : 서운 할 것도 없다.
단아 : 내가 결혼 전이면, 삼월씨 안 보내. 근데, 내가 집에 없잖아?
그럼 큰 새언니 혼자 할머니 돌봐드려야 하는데... (울먹해지고)
삼월 : 삼월씨 말년에 팔자가 피려는 모양이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탱자탱자 하면서 보낼 수 있으니.
강석, 걸어오는.
단아 : (일어서며) 어떻게 이리로 와요?
강석 : 할머니 모셔다 드리려구.
삼월 : (일어서며)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바쁜 사람이 뭐 하러 일부러 와요.
강석 : 퇴근해서 오는 길입니다. 할머니, 냉면 좋아하세요? 유명한 냉면집 아는데.
#.51 씬. 냉면 집.(낮)
삼월, 단아, 강석 냉면 먹고 있는.
삼월 : 삼월씨가 이렇게 호강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강석 : 병원에 치료 받으러 다니실 때마다 제가 유명한 맛집들 모시고 다닐게요.
삼월 : 너무 그럴 거 없어요. 너무 그러면 이 노인네 몸둘바를 몰라요.
강석 : 이 사람 키워주셨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죠.
삼월 : 키워주긴. 우리 단아는 저 혼자 큰 거나 다름 없다우.
단아 :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할머니 안계셨으면 나 지금처럼 못 컸어요.
삼월 : 우리 단아가 이리 말해주니 이 삼월씨 인생 헛 산건 아니다 싶다.
#.52 씬. 공원 정도의 장소.(낮)
조만, 울고 있는. 안타깝게 보고 있는 장기.
조만 : 할머니 정신까지 오락가락 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결혼을 하겠어요?
장기 : 조만씨.
조만 :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진 할머니 옆에 있어야 해요.
윤씨라곤 할머니하고 저 딱 단둘인데, 저까지 시집간다고 나와 버리면
우리 할머니 너무 불쌍해서 안돼요.
장기 : 그럼 쭉 결혼도 안하고 할머니만 돌보겠다는 거예요?
조만 : (울면서) 그래야지 어쩌겠어요? 이게 제 운명인 걸.
말했잖아요? 전 타고나길 비극적인 운명으로 타고 났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게 제 운명의 비극이라면 받아 들여야지, 할 수 없잖아요?
장기 : 혹시....조만씨?
조만 : 정말 장기씨하고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장기 : 그게 아니구요, 조만씨. 혹시 조만씨? 천사 아니에요?
조만 : 장기씨.
장기 :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조만씨 같지는 않을 거예요.
(조만의 얼굴을 감싸 쥐며) 난 정말 행운아예요. 조만씨 같은 천사를.....
조만 : 장기씨.
장기 : 기다릴 거예요. 몇 년이 가도, 아니 몇 십 년이 흘러도 조만씨 같은 천사를 내가 어떻게.....
(하면서 다가오는데, 날아오는 축구공. 장기 머리에 정통으로 맞고)
조만 : (놀라서) 장기씨?
꼬마 뛰어와서 축구공 들고.
꼬마 : 아엠 쏘리예요.
장기 : (벌떡 일어나며) 임마, 여기가 미국이야?
#.53 씬. 마루.(밤)
단아, 강석, 삼월 들어오는.
영인 방에서 나오는.
영인 : 아니, 어떻게 같이 와?
단아 : 이 사람이 실버타운으로 와서요.
영인 : 실버타운?
#.54 씬. 만기의 방.(밤)
만기, 삼월, 석호, 영인, 단아, 강석, 수영, 태영, 주정 앉아있는.
삼월 : 돌아보니 참 좋더라구요. 회장님께서 주신 주식을 처분하면
그리로 들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 같아요.
강석 :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그냥 오시라고 하시는 거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만기 : 우리를 참 모진 사람들로 만들려고 하는구려.
삼월 : 회장님이나 다른 식구들 마음을 몰라서 이러는게 아닙니다.
제가 그게 편할거 같아서 그러는 겁니다. 가게 해주세요, 회장님.
영인 : 너무 서둘지 마세요, 할머니. 치료에 따라서 증상이 호전 될 수도 있다고 한다는데.
삼월 : 호전 된다고 해도 예전만 같겠어요?
진아, 문 열고.
진아 : 할아버님?
만기 : 그래?
진아 :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만기 : 들어와 앉거라.
진아 : (들어와 앉는)
만기 : 해보거라.
진아 : 단아 아가씨가 왜 할머님께 실버타운을 보여드렸는지 이해가 됩니다.
제 걱정을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할머니?
삼월 : (보면)
진아 : 전 다 아시다시피 부모 없이 자란 아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할머님이나 할아버님도 없습니다.
이 집안으로 시집와서 할머님께 살림을 배우면서 마음속으로 친할머니가 생긴 것처럼 좋았어요.
삼월 : (울먹하고)
진아 : 제가 할머님을 얼마나 잘 돌봐드릴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회를 주세요, 할머니.
이 집안의 종부로, 우리 집안을 위해 평생 희생하신 할머님을 제 힘 닿는 데까지 모실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으면 해요. 만약 할머님께서 이대로 떠나시면,
종부인 저를 못미더워 하시는 걸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기 : 저 아이가 저렇게 간곡하게 말을 하는데도 굳이 떠나셔야 겠소?
삼월 : (눈물을 흘리는)
#.55 씬. 삼월의 방.(밤)
삼월, 단아, 영인 앉아있는.
영인 : 나이도 어린 종부가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갸륵하지 않으세요?
삼월 : 내깐 게 뭐라고들....
영인 :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 결혼해서 이 집으로 들어와 할머님 조금 껄끄럽고 그랬어요.
안 계신 시어머님 대신 아닌가 싶어서, 어렵고 눈치도 보이고 그랬어요.
그런데 살면서 보니, 할머님이 이 집안에 안계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집안이 이렇게까지 지탱할 수 있었던 거 할머님 덕이에요.
단아 : 할머니, 제 생각이 짧았나 봐요. 큰 새언니 마음 받아주세요, 할머니.
삼월 : .....
#.56 씬. 부엌.(밤)
주정, 진아, 말순 서있는.
주정 : 진짜 멋지다, 우리 큰 손주 며느님.
말순 : 형님.
진아 : (보면)
말순 : 저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어떻게 말씀도 그렇게 폼나게 하세요.
종부는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봐요.
주정 : 그래서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어. 종부는 하늘이 내야 하는 거라구.
#.57 씬. 수영의 방.(밤)
수영, 태영, 강석 앉아있는.
태영 : 형 목에 너무 힘들어갔다.
수영 : 내가 뭘?
태영 : 형수님, 나이 어리다고 속으로 은근히 얕잡아봤는데, 반성한다, 내가.
수영 : (미소 지으며) 그럼 반성문 제출해라.
태영 : 형 너무 잘난 척하는 거 같다.
수영 : 잘난 와이프 뒀는데 잘난 척 좀 하면 어떠냐?
태영 : (웃다가) 야, 이서방아?
강석 : 왜 이러세요? 겁나게. 이 자식, 저 자식 하시는 게 전 더 마음 편하거든요.
태영 : 아쉬운 소리 하려고 그런다, 이서방아?
강석 : 무슨?
태영 : 그 실버타운 있잖냐?
강석 : 네?
태영 : 삼월 할머니한테 공짜로 주시겠다고 한 방 있잖냐?
강석 : 그게 왜요?
태영 : 그거 나중에 나 주면 안 되겠냐?
수영 : 가라, 이서방. 얘 헛소리 시작하는 거 보니 파장해야 할 시간인가보네.
말순E : 왜 그래? 동동아? 왜 울어?
#.58 씬. 마루.(밤)
말순에게 안겨 울고 있는 동동.
수영, 태영, 강석, 방에서 나오는.
말순 : 왜 그래? 왜 우냐구?
동동 : 지우가요, 지우가요.
말순 : 지우가 왜?
동동 : 지우가.....지섭 오빠가 너무 좋대요.
말순 : 지섭이가 누군데?
동동 : 우리 태권도 학원에 다니는 애요. 저한테 와서 지섭 오빤 어떤 여자애 좋아하냐구 물었어요.
태영 : 사각 관계 하난 정리 됐네.
#.59 씬. 강석의 집 거실.(밤)
천갑, 영자, 강석, 단아 앉아있는.
천갑 : 참 어린 사람이 대단하구나.
영자 : 그래서 할머님이 마음을 돌리셨어?
단아 : 아무래도 그러실 거 같으세요.
천갑 : 그런 종부를 들이셨으니 할아버님 마음이 참 흡족하시겠다.
단아 : 네.
천갑 : 명문 종가는 뭐가 달라도 정말 다르다. 손주 며느님 하나까지 어째 그리 맞춤형으로 들이시나.
강석 : 아버지, 너무 부러워하지 마세요. 저도 아버지 맞춤형 아들이잖아요?
천갑 : 꼭 그런 건 아니다.
강석 : 네?
천갑 : 예전 같은 카리스마 요즘 너 없다.
강석 : 아버지.
천갑 : 그 대신 내가 요즘 쪼금 위로가 되는 건 맞춤형 며느리 들인 거다.
강석 : 아버지, 계속 저 이렇게 무시하시면 저 골질 할지도 몰라요.
천갑 : 봐, 쟤 요즘 많이 없어 보이지?
영자 : 내 말이.
#.60 씬. 만기의 방.(밤)
동동, 울면서 엎어져있는.
만기 이불 위에 앉아 그런 동동을 보고 있는.
태영 : (문 앞에 서서) 할아버지? 동동이 저희가 데리고 잘게요.
만기 : 그럴 거 없다, 문 닫거라.
태영 : 저 자식, 실연의 아픔 때문에 밤 새 울지도 몰라요.
만기 : 한 방 쓰는 내가 참아야지, 어쩌겠냐?
태영 : 아니 지우 걔는 왜 난데없이 지섭인가 하는 애한테 꽂혀서 우리 아들 가슴에 못을 박나. (문 닫는)
만기 : 많이 서럽냐?
동동 : (눈물 닦으면서) 할아버지는 제 마음 모르세요.
만기 : .....
동동 : 할아버지는 좋아했던 여자 애가 다른 남자애 좋아한 적 없으시죠?
만기 : 없다.
동동 : 것 보세요, 모르신다니까요.
만기 : 그래서 어쩔 생각이냐? 매일 이렇게 울 거냐?
동동 : 아니요, 저도 남잔데 그러면 되겠어요?
만기 : 잘 생각했다, 남자는 포기할 땐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동동 : 아니요. 지섭이 자식보다 제가 멋지다는 거 꼭 보여주고 말겠어요. (일어나는)
만기 : 왜?
동동 : 마당에 나가서 태권도 연습 좀 하고 자려구요. 내일 지섭이 자식하고 대련 있거든요.
만기 : 가만 보면 너도 참 인생 힘들게 사는 타입이다.
#.61 씬. 수영의 방.(밤)
수영, 진아의 손을 잡고 앉아있는.
수영 : 처음 봤을 때부터 나보다 어른스러운 사람 같다는 생각 했었는데 점점 더 그래지네요.
그런데 힘들어서 어떡해요? 삼월 할머니 더 나빠지실 지도 모르는데.
진아 : 친할머님이다 생각하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예요.
수영 : 나가요, 우리.
진아 : 왜요?
수영 : 업어주고 싶어서요.
진아 : (웃는)
#.62 씬. 강석의 방.(밤)
강석, 단아 잠들어있는.
단아 : (꿈을 꾸고 있는. 강석이 어딘가로 걸어가는) 강석씨....강석씨....
강석 : (일어나서 단아를 흔들어 깨우는) 왜 그래요?
단아 : (눈 뜨는)
강석 : 나쁜 꿈 꿨어요?
단아 : .....
강석 : 무슨 꿈인데?
단아 : 아니에요.
강석 : (단아를 감싸 안고 다독이는)
단아 : (불안한 느낌으로 강석에게 얼굴을 기대는)
#.63 씬. 여관 방.(밤)
선태, 창가에 팔짱을 끼고 서있는.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편지 봉투들.
검찰청. ## 신문사. 등등의 편지 봉투들. (신문사 세 곳 정도)
#.64 씬. 회사 전경.(낮)
#.65 씬. 강석의 사무실.(낮)
강석, 수영, 태영 서있는.
수영 : 일본 관광단이 더 입국을 할 거 같으니 프로그램을 보완하는 게 좋을 거 같네.
강석 : 네. 부서마다 새 아이템 개발에 대한 회의를 지시하겠습니다.
노크 소리.
강석 : 네.
들어오는 진호.
진호 : 경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강석 : ....
진호 : 김선태가 오늘 새벽 자살을 했답니다.
강석 : .....
수영, 태영 암담한 표정으로.
#.66 씬. 수영의 사무실.(낮)
수영, 태영, 들어오는.
태영 : 강석이 못 가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수영 : .....
태영 : 김선태 장례식장에 가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잖아?
수영 : 마음이 무거워서 가겠다고 하는데 말릴 수야 없지 않냐?
태영 : 계속 불안했었는데 이렇게라도 마무리된 건 다행이지만.
수영 : 사람이 목숨을 끊었다. 다행이라는 말은 하지 말자.
#.67 씬. 강석의 집 거실.(밤)
천갑, 전화 중. 영자 앉아있고, 단아 차를 가져다놓는데.
천갑 : 아니, 거긴 왜 가? 지가? 그래서? 심하게 당한 거냐? (무거운 마음으로) 알았다.
영자 : 왜? 무슨 일이야?
천갑 : 김선태가 죽었다는 구만.
영자 : 죽어?
단아 : .....
천갑 : 오늘 새벽에 모텔에서 목을 맨 채로 발견이 됐다는 구만.
영자 : 세상에....
단아 : .....
영자 : 근데 심하게 당했냐는 말은 무슨 말이야?
천갑 : 강석이가 장례식장에 간 모양이야.
영자 : 아니, 거길 왜?
단아 : .....
#.68 씬. 강석의 집 앞.(밤)
단아, 서있는.
강석 걸어오는. 약간 술에 취한 모습으로. 옷도 여기 저기 뜯기고.
단아 : ......
강석 : ......
단아 : (강석을 끌어안는)
강석 : 가지 않을 수 없었어요.
단아 : 알아요. 왜 갔는지.....
강석 : 이렇게까지 되는 건 바라지 않았는데.....
단아 : ......
강석 : 나.....무슨 짓을 하면서 살아온 걸까?
누군가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짓은 하지 말고 살았어야 하는데....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