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론 Sharon 【평화를 의미하는 팔레스타인 벌판】
샤론 평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늪지다. 여기에는 모래 둔덕이 있어서 비가 오면 빗물이 지중해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여 있는 늪지다. 구약시대에는 이 지역에 사람이 살지 못해서 소를 방목해 키우기 때문에 역대하에 샤론의 소 떼, 또 이곳에는 많은 각종 꽃들이 있었다. 그래서 아가서에는 샤론의 수선화가 언급되어 있다. 구약시대에 사람이 살지 않던 이 지역에 신약시대로 넘어가면서 헤롯 대황이 ‘가이사랴’라고 하는 도시를 만든다. 여기에 백부장 고넬료 이야기가 나오고, 바울이 2년 동안 갇혀서 로마 총독인 벨릭스, 베스도에게 심문받는 이야기가 나옴. 아셀 평야의 대표적인 도시가 ‘악고’이다. ‘악고’는 신약성경에는 <돌레마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사도 바울이 돌레마이를 지나, 가이사랴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갈멜산에서 욥바(Jappa) 근처까지 약 80km 길이의 해안 평야 지역이 샤론 평야이다. 이 지역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붉은 색깔의 모래로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이 지역은 거대한 습지대였다. 샤론의 어원적 의미는 숲이 우거진 지역이지만 그것은 습지대에 형성된 잡목 숲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지대에서는 농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도로도 평야의 중심 지역이 아닌 산지 쪽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샤론 평야의 울창한 잡목 숲은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이 지역을 통치하였던 터키가 기차 연료를 충당하기 위하여 대부분 벌목되었다. 1920년대 시온주의자들은 이 지역을 대대적으로 매입하여 유대인 이민자의 정착지로 삼았는데, 이들은 늪지대의 물을 말려가면서 이 일대를 과수재배 단지로 만들었다. 이곳은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는 이스라엘 오렌지의 주 생산단지가 되었다.
샤론 평야는 여호수아 때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 이 지역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하였다. 다윗 시대에 이르러 샤론의 일부 지역이 이스라엘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뒤를 이은 솔로몬 때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헤롯왕 시대 이곳에 가이사랴 항구가 건설되면서 샤론 평야의 형편이 완전히 달라졌다. 가이사랴를 통하여 로마와의 교역이 증대하면서 가이사랴와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들이 샤론 평야 내에 건설되었다. 가이사랴는 세계에서 최초로 시도되었던 인공 항구 도시였다. 가이사랴는 로마 시대에 유다 지방을 통치한 로마 총독이 주재하던 도시이다. 예수 당시 유다의 총독으로 있었던 빌라도도 가이사랴에 거주하고 있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0장 1절에서 베드로가 방문하였던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었던 로마군단 소속의 백부장이었다. 사도행전 8장 40절에 의하면 전도자 빌립은 가이사랴에 복음을 전하였고 사도행전 21장 8절에 의하면 후에 바울과 그 일행은 빌립의 집에서 환대를 받았다.
바울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전도 여행 중 이곳 가이사랴를 방문하였고 로마로 호송되기 전에는 이곳에 감금되었었다. 가이사랴는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인 3세기경에 이미 기독교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이는 중심지가 되었다. 가이사랴는 비잔틴 시대에 크게 번성하였고 십자군 시대에 다시 중요한 도시로 성장하였다. 십자군이 물러가면서 이슬람 마므륙 군대는 가이사랴 성채를 모래에 완전히 묻어 버렸다. 그 이후 지금까지 가이사랴는 모래 속에 묻혀 있는 폐허의 도시가 되었다. 최근에 이르러 가이사랴를 발굴하는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