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 시인 ( 시모음 )
|
출처: 백합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lily
김현승 시인
[가을의 기도] [가을이 오는 시간] [고독] |
양심의 금속성
모든 것은 나의 안에서 물과 피로 육체를 이루어 가도,
나의 꿈과 사랑과 나의 비밀을, 살에 박힌 파편(破片)처럼 쉬지 않고 찌른다.
너만은 끌려 나와 호올로 눈물을 맺는 밤……
오늘의 무기를 다져 가도 좋을,
|
가을의 기도
|
절대 고독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했던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이 체온으로 내게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며, 나는 내게서 끝나는 |
행복의 얼굴
내게 행복이 온다면
|
눈물
더러는
|
불완전
|
창(窓)
창을 사랑한다는 것은 태양를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
창을 잃으면 창공으로 나아가는 해협을 잃고,
명랑은 우리에게 오늘의 뉴우스다.
창을 닦는 시간은 또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시간 별들은 12월의 머나먼 타국이라고…….
창을 맑고 깨끗이 지킴으로 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맑은 눈은 우리들 내일을 기다리는 빛나는 마음이게…….
|
플라타너스
꿈을 아느냐 내게 물으면 |
아버지의 마음
바쁜 사람들도
|
가을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깍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寶石)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
견고한 고독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그늘에 빚지지 않고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단 하나의 손발 모든 신들의 거대한 정의 앞엔 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
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이 마른 떡을 하룻밤 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 결정(結晶)된 빛의 눈물, 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 견고한 칼날 발 딛지 않는 피와 살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더 휘지 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 악기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쌉쓸한 자양(滋養)에 스며드는 네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
|
파도
아, 여기 누가 술 위에 술을 부었나. 이빨로 깨무는 흰 거품 부글부글 넘치는 춤추는 땅 바다의 글라스여.
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언어는 선박처럼 출렁이면서 생각에 꿈틀거리는 배암의 잔등으로부터 영원히 잠들 수 없는, 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아, 여기 누가 성(性)보다 깨끗한 짐승들을 몰고 오나. 저무는 도시와, 병든 땅엔 머언 수평선을 그어 두고 오오오오 기쁨에 사나운 짐승들을 누가 이리로 몰고 오나.
아, 여기 누가 죽음 위에 우리의 꽃들을 피게 하나. 얼음과 불꽃 사이 영원과 깜짝할 사이 죽음의 깊은 이랑과 이랑을 따라 물에 젖은 라이락의 향기 저 파도의 꽃떨기를 7월의 한 때 누가 피게 하나.
|
김현승 시인 ( 시모음 )
|
출처: 백합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l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