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복음에 대한 것이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전하겠습니다. <요 1:14>을 보면 말씀이 육신화 됐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이 실체로 말씀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아주 체질화되었고, 말씀이 육신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는 말씀이 생활화되었다는 것이고, 말씀이 육신화 되었다는 것은 말씀이 예수님께는 생활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주 생활이 되어서 예수님이 움직이는 상태 그 자체를 말씀으로 볼 수있습니다. 예수님이 행동한 모든 일이 말씀을 이루고 계신 것이고, 하나님의 표상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실존체가 되고, 하나님이 하고싶은 일들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방송국에서 하고싶은 얘기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서 전달되듯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이 육신화 됐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육을 통해서 반영을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 육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뜻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그것을 보고 자연을 통해서 말씀이 육신화 됐다, 말씀이 만물화 됐다, 만물을 통해서 나타나 만물화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을 통해서 육신화 되고, 말씀이 육신이 되고, 말씀이 만물이 되고, 만물을 통해서 말씀이 전달되고 있다는 식의 말씀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말씀이 육신화되어서 말씀을 이루어야 됩니다. 말씀이 체질화되고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생활종교는 살아남아지지만 관념종교, 생각만 하고 행동 안하는 신앙은 남아질 수 없습니다. 그것을 관념신앙이라고 하는데 관념신앙은 사라집니다. 관념 신앙은 이익이 없고 유익이 없어서 결국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말씀이 생활화되어야 하는 것을 알았으니 말씀을 생활화 해야합니다.
아무리 신앙이 오래되었어도 말씀이 생활화 되지 않으면 필요가 없고 유익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역사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데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너무너무 상상할 수 없는 존재자이십니다. 우리가 안 보이는 것까지 보고 사십니다. 우리는 육신세계의 눈을 떴어도 못보고 사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안 보이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안 보이는 것까지 보면서 하나님은 섭리를 하시기에 우리가 감히 이해를 못합니다. “왜 저리 가시는가? 하나님이 왜 저렇게 가시는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에게 안 보이는 것을 하나님은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망원경, 현미경을 보며 감각을 느끼고 눈을 깜빡거리고 쳐다보는 사람을 보면 “왜 저러냐?”할 것아닙니까? 눈이 나쁜 사람들은 멀리에 있는 것을 잘 못 봅니다. 눈이 좋은 사람은 멀리 쳐다보면서 희열을 느끼고, 뭘 쓰고 하는데 눈이 나쁜 사람은 안보이니까 “왜 저러냐?” 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많이 보이는 사람이 더 일을 많이 합니다. 시대의 눈을 뜨고, 사건의 눈을 뜨고, 섭리의 눈을 뜨고, 모든 눈을 뜬 사람이 일을 더 많이 합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깨달은 사람이 더 일을 많이 합니다.
육신의 눈같이 마음의 눈이 있습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시대의 눈을 뜨고, 지식의 눈을 뜨고, 학문의 눈도 뜨고, 철학의 눈도 뜨고, 또 나아가서는 은혜의 눈도 뜨고, 말씀의 눈도 뜨라는 것입니다. 눈뜬 사람이 더 보게되고, 더 느끼게되고, 더 희열을 느끼게되고, 눈을 뜬 사람이 더 많이 느낍니다. 그와 같이 우리들도 일단은 보는 사람이 더 많이 일을 하게되고, 깨달은 사람이 더 많이 일을 하게되고, 그리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눈뜬 사람이 더 많이 보듯이 일을 하는 사람이 더 일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됩니다. 이런 얘기들이 다 복음에 관한 얘기들입니다. 전도할 때는 이렇게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전도할 때는 개인에게 그때그때 필요한 말씀만 하면 됩니다. 거기에 비하면 복음이라는 것은 상당히 범위가 넓고 크고 엄청나고 웅장합니다. 웅장한 복음은 웅장한 범위를 차지하듯이 범위가 넓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씀을 듣고 생활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 유익이 없고 건더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실천 안하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얘기를 하고 사랑치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고 울리는 꽹과리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실천해야 합니다. 이론은 은, 실천은 금입니다. 월명동도 구상만 해놓고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누가 많이 써먹느냐가 문제입니다. 계속 써먹으라는 것입니다. 써먹을 때는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남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자기 것을 만들어 놨을 때는 주인의식을 갖게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주인의식을 꼭 가져야 합니다. 주인의식을 갖고 자기가 가꾸고 수고하고 풀이라도 뽑고 나무가 죽으면 쳐주고 주인의식을 갖고서 늘 살펴야 됩니다. 가끔 한번씩 온다고 주인의식을 갖지 않고 나그네 의식을 가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돌에다 하나님이 쳐다보는 큰 눈을 그려놓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이라는 작품을 크게 만들려고 합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서 움직여야 합니다.
말씀 오래해서 뭐합니까? 한마디를 들었어도 실천을 안 하면 힘듭니다. 여러분들도 말씀이 체질화가 되어야 합니다. 체질된 것 많잖아요? 밥은 별식이나 떡보다는 쌈박하지 않습니다. 밥은 어떤 특수한 냉면보다는 헐합니다. 그러나 별식은 처음에는 좋지만 계속 먹고 날마다 떡만 먹으면 똑같은 쌀인데 질려버립니다. 그러나 체질화되면 덜하지요. 말씀을 생활화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시험 발도 안 받습니다. 생활화 안하면 좀이 쑤시고 무릎이 쑤십니다.
노래로 시인하고 행동하고 말씀을 듣는 신앙이 삼박자가 갖추어 져야 합니다. 말씀 듣고 행동하고 노래해야합니다. 노래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감격하고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기뻐야 노래가 나옵니다. 말씀 듣고 실천하며 맛을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춤을 추며 노래하는 것입니다. 실천 안하는 사람들은 천사 열 명이 따라다녀도 신앙살기기가 힘듭니다. 열 명의 선생이 따라다녀도 실천하지 않으면 신앙 살리기가 힘듭니다. 실천자는 선생이 한 명도 안 따라 다니고 혼자 있어도 시험을 이기고 나처럼 청청한 소나무가 되어서 꽃피우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화 되려면 노래해야되고 말씀을 행실로 실천 해야됩니다. 노래를 생활화 해야합니다. (97년 아침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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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는 JESUS MORNING STAR의 줄임말이다. 즉 JMS는 예수님 새벽별의 약자이다.
정명석 목사님께서 단체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하시다가 예수님께서 새벽별을 보여주신 것을 계기로 JMS라고 짓게 되었다. 그러나 JMS를 어떤 이유에서건 싫어하는 사람들이 정명석 목사님의 이니셜과 JMS가 같다고 하여 오해하고 함부로 말했기때문에
지금 교회 안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다. 인터넷 상에서 우리가 JMS를 쓰는 것은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를 JMS로 부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종교단체인 JMS와 정명석 목사님은 오해를 벗기 위하여 이미 쓰지도 않는 말인 JMS를
써가면서 인식을 바꾸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오해는 오해를 낳고 또 오해를 낳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깨끗함과 신실함은 하나님, 예수님께서 알고 계실 것이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오늘도 외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진실되고 충성스러운 사람들, 정명석 목사님과 JMS다~!!!!!!! ^^ 좀 속이 후련해지는군요 ㅋ
JMS와 정명석 목사님이 궁금하신 분은
www.cgm.or.kr
www.jms.co.kr
http://jms.jms.co.kr
여기로 방문하여 주세요~ 고맙습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진정 사랑하는 진실되고 충성스런 사람들이다~!!!!! ^^ㅋ
아멘
아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건 다 체질화가 되기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