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1:1~2:1)
오늘부터 호세아를 묵상한다.
본문은 영적으로 타락한 북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나
징계 이후, 그들의 자손을 하나님의 아들로 여기시는 등
회복의 역사를 행하시는 것이다.
북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부강했지만 영적 타락이 극심했다.
그런 북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음란한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금치 않으시고
그들의 자녀에게 ‘패망’,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
‘내 백성이 아니라.’ 등의 의미로 이름을 부여하신다.
그렇게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깨지고
결국 앗수르에 의해 망한다.
경제적으로 부강했지만 영적 타락이 극심한 것이
오늘 우리의 상황과 같다.
교회는 곳곳에 서 있지만 가장 큰 교회의 주류세력은
매우 그릇되고 사단과 손 잡은 지 오래되었다.
그들이 교회와 기독교를 대표하니
비신자들의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상식을 가진 젊은이들이 교회에 오기는커녕,
교회를 다니는 젊은이들조차 떠난다.
옳은 하나님의 진리를 쫓는다면
복음적 사랑을 추구했을 것이고
젊은이들의 필요에 민감했을 텐데,
전혀 반대 방향에 있으니 교회 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차라리 혼자 신앙을 추구하는 것보다 못하니 말이다.
만약 이 상태를 그대로 둔다면, -막을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징계의 이름을 부여받고
처절한 바닥을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후에
하나님은 우리를 죽은 채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회복’의 사역을 행하실 것이다.
징계의 본질은 바로 ‘회복’에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니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석해도 된다.
아니 반드시 사랑으로 해석해야 한다.
징계도 사랑의 맥락 안에 있는 것이다.
징계는 비정상의 상태에 있는 이들을 정상의 상태로
돌리기 위해 필요한 ‘자극’ 같은 것이다.
인과응보의 원칙을 통해서 자신들의 잘못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물론 느끼고 깨닫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모든 상황이 정리되면
하나님은 다시 따뜻한 사랑의 행위를 베푸실 것이다.
하나님은 짖궂으신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따뜻한 것을 베푸시기를 항상 원하신다.
우리에게 징계를 행하는 것을 마음 아파 하시는 분이시다.
-‘잔혹함’이 아닌 ‘엄정함’을 놓지 않으시겠지만-
모쪼록 우리 나라가, 교회가 기독교가, 내가
회개하기를,
영적 타락으로 인해 힘없는 약자들이
무고한 피해를 당하지 않기를,
어쩔 수 없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눈물로 받아들이기를, 견디기를...
<오늘의 명언>
‘항상 죄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죄를 무시할 때
죄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해서다.’ -존 오언-
“하나님,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을 생각합니다.
하나님, 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십니다.
저희들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끝까지 우리나라와
교회, 기독교, 성도들의 회개와 회복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정환이 주님의 강한 팔로 붙들어 주옵소서.
정민이가 한국에 왔습니다. 체류 기간 동안 따뜻한 사랑을
많은 느끼는 시간 되게 해 주시옵소서.
제가 목이 아픕니다. 몸을 지켜 주시옵소서.
오늘 소망이와 현영이, 그리고 여친들이 집에 왔는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게 해 주십시오.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