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설득당하지 못한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연극, 뮤지컬, 리얼리티 쇼같았던 프로코피에프 오페라
어른에게 동심을 되살리기에는 너무 야한 씬이 옥에 티
탄호이저의 기억이 오버랩되는 영화적 기법의 연출은 역시 불호
오늘 후기는 순전히 저의 주관적인 감상과 평입니다
즐겁게 관람하신 분들은 패스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즐길 수가 없었던 것이 원래 오페라 부파도 그닥 좋아하지 않고 뮤지컬도 선호하지않고
오페라를 좋아하고 늘 보고싶은 극음악은 오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연출은 즐기기가 어려웠습니다
프로코피에프의 낯선 오페라를 예습하면서 사실 이 오페라를 선호하기는 어렵겠다고 예상했지만
그래도 국립오페라단의 새로운 레퍼투아에 대한 열정과 시도에 기대도 좀 있었고
먼저 보신 분들의 평이 좋아서 즐기고 오자는 마음으로 오페라극장에 앉았습니다
1, 2막은 혼돈 그 자체
이것이 연극인가, 뮤지컬인가, 아니면 리얼리티 쇼 공개방송에 와 있는가 .......
극 중의 극 형식의 오페라는 익숙하고 서막이 있는 오페라도 그 서막이 주는 재미도 있어서 좋아하지만
오늘은 너무 극 중의 극 중의 극이었습니다
우리가 관객이고 또 오페라 안에서 서막 때 부터 뛰어다니던 현대복장의 운동원같은 배우들은 시종일관 오페라 배우들의 관객이 되었다가 연기자가 되었다가 합니다 관객석에서 노래하고 연기하다가 무대로 올라가기도 하는 등 버라이어티한 방식의 시작은 색다름을 주어서 기대감을 주기도 하지만 자칫 산만함을 부여해 몰입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비극인가, 희극인가, 아니면 우리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인가 이 세 그룹의 토론같은 방식의 시작이 신선했으나
이 오페라는 비극도, 희극도 아닌 오렌지 사랑을 우화한 동화다 하고 말하는 것인지 별별 생각이 다 들게 하는 오프닝이 산만하고 과한 연출로 힘을 잃습니다
배경 또한 어마어마하게 버라이어티한 것이 미국의 서부, 한국 유흥가의 밤거리, 중세 왕궁의 내실, 범죄 소굴의 고문도구가 즐비한 밀실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극 중에 등장하는 서부시대 총잡이같은 복장의 배우가 담배도 피웠다가 버리고 픽업트럭 개조한 차를 무대 위로 운전해 지나가고 하는 장면 들이 불쑥불쑥 삽입되어있는 연출은 공감과 이해의 노력을 최대한 늘여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이 모든 배경의 삽입을 응집시켜주는 개연성이 없어서 볼거리를 위한 장치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미션 25분동안 급 피로감이 몰려와서 머리 속으로 정리를 좀 해 봅니다
이 오페라는 지향점이 무엇인가...... 해석의 관점은 개개인이 다를 수 있고 다른 것이 당연한데
프로코피에프가 작곡한 원작 오페라의 메세지가 이런 방식으로 전달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관객인 나는 너무 오페라의 정석에 매몰되어 새로운 연출을 못 받아들여 이해과 공감에 도달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3, 4막의 방점은 오렌지입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고 상징이기도 한 거대한 오렌지 속에 들어있는 공주들은 물 한모금을 갈구합니다
그 물 한모금이 없어 처음 두 개의 오렌지 속의 공주들은 결국 죽고 마지막 오렌지 속의 니레타 공주만이 와이어 줄을 타고 내려 온 물양동이의 물을 들이켜서 결국 살아나 왕자와 맺어집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물은 사랑의 결실의 핵심인데 그 물이 환타지같은 오렌지 속의 공주와는 너무 결이 다르게 강철 와이어를 타고 내려 온 양동이의 물이라니........ 그 와중에 왕자의 등장은 또 다른 씬에서 뜬금이 없이 따로 놉니다
왕자와 결국 생존한 공주의 사랑의 장면이 하나도 없이 그저 사랑이 완결되었다 하니 혹시라도 의도했을 동화적 감성은 보존이 되질 않습니다
그 와중에 오늘 제일 제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모두가 연기도 노래도 최고의 기량을 보여줍니다 무거운 의상에 불편한 동작을 하면서도 소리의 품질이나 연기의 능숙도가 유려하여 눈길을 끕니다 물론 다시 무대장치와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엑스트라 요소들로 캐릭터의 집중이 깨지지만요 다만 가창다운 아리아가 많지 않은 오페라여서 아 내가 지금 오페라를 보고 있구나 라고 느낄 수 있었던 장면들이은 3막 4막 아주 일부에서였습니다
마지막 무대 위로 올라간 요리사의 손은 무슨 의미일까요
끝까지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을 잃은 왕자가 웃음을 찾고 오렌지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만난다..... 이 환타지스러운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거대한 요리사의 손은 무슨 기여를 하는 것인지.......
오늘 제일 불편했던 씬은 오렌지에서의 신박한 사랑을 기대하고있는 중인데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진 무대의 아래쪽은 마치 고문실을 연상케하는 인간의 악성을 표현하는 듯한 기계들이 즐비하고 위층에서는 클라리사와 레앙드르의 정사신이 적나라합니다 1, 2막의 서사는 들어올 듯 하다가도 달아나버려 어떤 것인지 잘 전달되지가 않았습니다
웃음을 통해서만 병이 나을 수 있는 왕자는 무엇을 보고 웃었을까요......
현대인의 우울증은 만연된 현상이고 그 우울은 한번 웃음으로 털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진대
이 오페라는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기 위한 노력에 몰두한 것 같습니다
저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지만요
영화적 기법이 많이 동원된 씬들에서는 작년 탄호이저의 기억도 소환되었습니다
서초동 거리도 나오고 21세기의 탁트인 고속도로, 그리고 예당 공연장도 배경화면으로 나오는 중에
무대 위에는 고대왕국의 왕, 왕자, 공주의 복장을 한 배우들이 관객에게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합창단원들이 관객석에서 노래하며 무대로 몰려올라가 함께 극의 일부가 되는 연출이
신선할 수는 있어도 오페라의 정체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얻은 것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주관적 감상을 표현하지 않으려다가 인터미션이 끝나고 제 뒷열에 돌아오지 않은 관객들이 꽤 되어서
어쩌면 이 오페라에 대한 감상은 호불호가 극명하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볼거리 많았던 무대장치, 배우님들의 연기에는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