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호산아] ☆… 청명한 초가을의 운악산(雲岳山)…(2) 2011년 9월 24일(토)
♣ [운악산 정상에서 만나는 선인(先人)들의 시경(詩境)]
☆… 이어서 숲 속으로 난 나무계단 길을 다시 오른다. 얼마를 갔을까. 숲길이 끝나는 자리에 푸른 하늘이 열린다. 뜨거운 초가을 태양이 작열하고 있는 운악산 동봉의 정상(937.5m)이다. 운악산은 두 개의 정상 표지석이 있다. 동봉에서 약 10분 거리에 서봉 정상(935.5m)이 있다. 동봉(東峰)의 정상석 뒷면에는 이곳 포천 출신의 조선시대의 명신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오언율시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雲岳山深洞 운악산 깊은 계곡에
懸燈寺始營 현등사 처음으로 지었네
遊人不道姓 유람 온 사람들은 성(姓)을 말하지 않는데
怪鳥自呼鳴 괴이한 새는 스스로 이름을 부르네
沸白天紳壯 용솟음치는 흰 기운 폭포수[天紳] 장대하고
橫靑地軸傾 푸른 산 빗기어 지축이 기운 듯
慇懃虎溪別 은근히 호계(虎溪)에서 이별하니
西日晩山明 석양 속에 저문 산이 밝아오네
☆… 이항복(1556~1618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자상(子常), 호는 필운(弼雲)․백사(白沙)이다. 고려조 대학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으로 참찬 몽량(夢亮)의 아들이며, 경기도 포천 출신이다.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해졌기에 ‘오성대감’으로 알려졌으며,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그의 죽마고우이다. 9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슬하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다.
선조 4년(1571)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였고, 영의정 권철의 아들인 권율의 사위가 되었다. 1575년 진사과에 오르고 1580년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가 되었다. 이듬해 한림에 오른 뒤 성균관 전적․이조좌랑․직제학․우승지․호조참의 등에 임명되었고,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처리한 공로로 평난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여 이조참판으로 오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형조판서 겸 오위도총부도총관․이조판서 겸 홍문관 대제학 등을 거쳐 의정부 우참찬에 승진되었다. 이덕형과 함께 명나라에 원병을 주청하였고, 1594년 전라도의 민란을 진압하였으며, 도원수 겸 체찰사로서 남도를 돌며 민심을 수습하고 <안민방해책 安民防海策>을 올렸다. 영의정 겸 영경연․세자사를 역임하였고, 1601년 호종(扈從) 1등 공신에 녹훈되었다. 다음해 정인홍 등과 맞서 성혼을 비호하다가 정철의 편당으로 몰려 영의정을 사퇴하였다.
1608년 좌의정 겸 체찰사에 제수되어 이언적과 이황의 문묘 배향을 반대하는 정인홍 일당과 대결하다가 1613년 인재를 잘못 천거했다는 이유로 체직되었고, 왕비를 폐위하자는 주장에 맞서다가 광해군 10년(1618) 관작이 삭탈되고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어 그 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鐵嶺(철령) 높은 峯(봉)에 쉬여 넘는 져 구름아
孤臣寃淚(고신원루)를 비 삼아 띄여다가
님 겨신 九重深處(구중심처)에 뿌려 볼가 하노라
이 <鐵嶺歌>철령가는 당시 이항복이 북청으로 유배 갈 때 그의 심정을 잘 나타낸 작품으로 널리 유행되었다. 그해 관작이 회복되고 포천에 예장되었다. 지금도 이항복의 묘는 경기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 산 4번지에 있다. 경기기념물 제24호인 이항복의 묘는 부인묘와 함께 있는 쌍분이며 일반 묘와 같은 형태로 봉분 앞에 묘비·상석·혼유석·향로석 각 한 쌍이 배열되어 있다. 포천과 북청에 사당을 지어 제향하고, 효종 10년(1659) 화산서원(花山書院)이라는 사액이 내려졌다. 당색에 물들지 않고 초연히 중립을 지킨 강직한 인품이 그의 시문에 그대로 나타났으며, 신흠은 그의 초연한 기상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저서로 《백사집(白沙集)》이 있으며, <유연전(柳淵傳)> 등을 지었다.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이다.
☆… 운악산 동봉의 정상에서 보면 저 아래 47번 국도가 큰 줄을 그으면서 지나간다. 진접, 광능내에서 포천군 이동으로 이어지는 자동차 전용도로인 것이다. 운악산은 동봉을 기점으로 북으로는 청계산, 국망봉, 백운산으로 이어져 나가고, 남으로는 철마산, 천마산, 백봉을 거쳐 예봉산으로 뻗어나가 운길산에서 그 산맥을 마무리 짓는다. 두물머리 한강인 것이다. 이른바 한북정맥이다.
♣ [운악산 서봉에서]
☆… 운악산 서봉(935.5m) 정상의 표석 후면에 칠언시 <雲岳山>이 새겨져 있다. 일찍이 양사언(楊士彦)이 이곳 운악산에 올라 그 절경을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 남겼다. 양사언은 조선시대 전기의 명필이며 시인이다.
天作高山壓震方 하늘이 높은 산 지을 때 동쪽에 짓게 하고
芳名流傳小金剛 아름다운 이름 소금강이라 전하였네
花峰聳出參霄漢 산봉우리 높이 솟아 은하수에 닿았고
積翠蒼蒼接大荒 푸른 기운은 하늘 밖까지 이어졌구나
天上梵鐘賴發響 하늘에선 범종 소리 우레처럼 울리고
樹頭金刹日分光 나무 숲 위로 금빛 사찰이 햇빛으로 빛나네
猶然下視三千界 나직이 아래로 삼천계를 내려보니
眼底乾坤兩杳范 눈 밑에 온 천지가 모두 아득하구나
☆…양사언(楊士彦, 1517~1584년)은 조선 전기의 문인으로 이름난 서예가이다. 본관 청주(淸州), 자는 응빙(應聘), 호를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이다. 1546년(명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현감(三登縣監)·평창군수·강릉부사·함흥부사·철원군수·회양(淮陽)군수를 지내는 등 지방관을 자청하였다.
자연을 즐겨, 회양군수 때 금강산(金剛山) 만폭동(萬瀑洞) 바위에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 8자를 새겼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안변(安邊)군수로 재임 중 지릉(智陵)의 화재사건에 책임을 지고 귀양 갔다가, 2년 뒤 풀려나오는 길에 병사하였다. 시(詩)와 글씨에 모두 능하였는데, 특히 초서(草書)와 큰 글자를 잘 써서 안평대군(安平大君) ·김구(金絿) ·한호(韓濩)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로 불렀다. 그는 남사고(南師古)에게서 역술(易術)을 배워 임진왜란을 정확히 예언하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그의 시풍은 이별과 상사(相思)의 서정적인 시와 낭만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로서 16세기 문단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품집에 《봉래시집(蓬萊詩集)》이 있다. …한시는 작위성이 없고 자연스러워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평판이 있었다. 가사(歌辭)에 어떤 여인의 아름다움을 읊은〈미인별곡(美人別曲)〉과 을묘왜란 때 남정군(南征軍)에 종군하고 읊은 〈남정가(南征歌)〉가 있다. 양사언의 시조(時調) 한 수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 서봉(西峰) 정상 부근에서 간단히 점심을 들고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등산의 시작은 가평의 하판리 현등사 산문이었으므로 하산은 포천군 화현면 운주사로 길을 잡았다. 내려가는 길도 가파른 경사면의 바윗길이어서 곳곳에 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한참을 내려가니 애기봉 전망바위가 나왔다. 신선대의 절경을 바라보기에 좋은 포인트인 것이다. 산 동쪽의 ‘병풍바위’와 같은 암벽산의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림길, 직벽에 설치해 놓은 사다리 계단을 내려간다. 너덜지대의 산길로 접어들어서 한참을 내려오니 문득 지나는 길목에 ‘대궐터’라 적힌 푯말이 걸려 있다. 주변은 그리 넓지 않은데 옛날 궁예가 머물렀던 집터라고 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험한 산중에 대궐이라니… 그렇다. 철원의 태봉국에서 포악한 정치로 민심이 잃고 결국 왕건에게 쫓기는 몸이 되어 이곳에 은거지를 마련하여 성(城)을 쌓고 얼마간을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1957년, 京畿道誌]
☆… 울창한 수림이 계곡을 뒤덮고 있다. 근래 비가 오지 않아 계곡은 거의 말라 있었다. 무지치폭포의 전망대인 팔각정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면경대의 무지치폭포[虹瀑]는 200여 미터의 사암절벽에 쏟아내는 장대한 물줄기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가뭄에는 절수가 되는 것이 흠이나 한참 비가 내리면 그 물줄기의 모습이 수백 필의 백포(白布)를 드리운 것 같다고 전한다.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는 숲길은 고즈넉했다. 간간히 숲속에서 여린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조용히 산을 내려온다. 내 몸에 내려진 산의 무게를 느낀다. 운악산의 거대한 산채가 나의 온몸에 실린 것 같다. 아, 내가 산이 되어 산을 내려온다. 운주사로 하산했다. 험난한 산길, 고단한 발품만큼이나 가슴 벅찬 산행이었다. …♣<끝>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선배님 !
결혼식에......
동창회에....... 곡차만 쌓이는 것 같습니다.
각시가 이제는 운동좀해야 다른 분들 따라갈거라고 놀립니다. 건강하십시요
당장 달려가고픈 마음이 듭니다...
산세는 작지만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운악산!!!
운악산의 정기!! 감사히 잘 느끼고 갑니다..항상 안전산행 기원드립니다...
아, 내가산이 되어 산을 내려온다. 너무나 멋있읍니다 항상 고문님의 펜이였지만....요즘은 고문님의 산행기 모두읽으며 역사공부하고있읍니다...항상건강하시고 고맙습니다
샘은 언제또 이렇게 멋지게 가을 산행을 같다오셨슴까.....
혼자만 좋은 경치 감상하지 마시고 번개를 함 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