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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
이 기 영
1
저녁이었다. 문을 열어젖힌 방 안에서는 정첨지가 여전히 앓는 소리를 하고 누웠다. 돌순이는 무슨 바느질거리를 붙들고 윗목으로 앉았고 모친은 부친 옆에 앉았다. 억돌이는 문밖에서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병인은 수중다리 같은 한편 다리를 헝겊으로 칭! 칭! 동여맨 것이 흉측해 보였다.
“아! 나 좀 일으켜주―.”
병인은 손을 벌리며 마누라에게로 눈을 준다.
“왜 ! 자리가 박여서 그리시유?:’
“응! 응!……”
노파는 영감을 일으켜 앉힌다. 돌순이도 한달음에 쫓아와서 그를 부축하였다.
“아버지! 더 아퍼?”
“아니다! 응―응―.”
“인제 쑤시잖어?”
“오―냐, 아, 순행이 어른은 가엽게도 되었구나!……그는 제 죄로나 그렇다마는 그 집 식구가 더 불쌍하구나!”
“너도 붙들려 가는 것을 보았니? 접때, 순행이 아버지가.”
하고 모친은 아들을 내다보며 묻는다.
“보았소!”
억돌이의 대답은 무뚝뚝하게 나왔다.
“그러기에 사람은 가난할수록에 마음을 바르게 먹어야 하느니라! 억지로 욕심을 부린다고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
“이 아랫말 덕쇠는 요새도 노름을 해서 황소를 한 마리 샀다우.”
“누가 그런 말 듣고 싶다나!…….”
“그 사람은 재주도 좋지 이런 백사지땅에서 그렇게 돈을 버니! 억돌이 너는 그럴 재주나 있어야지.”
“응! 쓸데없는 소리도…… 여편네가 분수없는 말을 함부루 하는 법이 아니야!”
하고 영감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아버지! 참말로 한우님이 있다우?”
별안간 돌순이가 이렇게 묻는다.
“암 한우님이 계시다뿐이겠니? 사람이란 언제든지 옳은 도리로 살아야 하느니라!”
“그러면 한우님은 왜 악한 사람만 도와주나유? 윗말 최주사 집 같은.”
“그것은 한우님의 뜻을 무지한 인간은 모를 일이다! 사람은 오즉 지킬 일이나 옳은 도리로 지켜나갈 뿐이다!”
“최주사 집만 욕할 것 없지! 돈을 모으려면 그래야 한단다!”
“암, 최주사 집이 악할 것 없지. 도적맞은 것은 없이 남을 징역만 보내고.”
“글쎄 너는 남의 걱정을 왜 그리 하니. 내 걱정이 태산 같은데!”
하고 노파는 아들을 눈 흘기었다. 이 말에 영감은 생각난 듯이
"낮에 누가 왔는가? 최주사 아들이지?·…….”
“그래요!”
“아! 그 돈을 해 갚아야 할 터인데…… 글쎄 어쩌자고 집을 잡히느냐 말이야! 병은 낫지도 않는 것을.”
“누가 그럴 줄을 알었소?”
“그래 뭐라구?”
정첨지는 말하기가 힘드는 듯이 끙!끙! 한다.
“뭐라구 해. 한 안에 안 갚으면 재판한다구 하지!”
“그 말만?”
“그럼 또 무슨 말을.”
“그 뒤에도 무슨 말을 하는 것 같던데!…….”
잠깐 먹먹히 앉았던 노파는
“아따 조용히 말씀합시다!”
하고 은근히 눈짓을 하는데 뜨랑에 앉았던 억돌이가
“오, 그래서 그 자식이 좋아하였군!”
하고 가래침을 탁 뱉고 돌아앉는다.
“그래 사위를 삼으면 어떻게 해주겠다 합디까. 첫째로 집은 물려 준다 하겠지 마는.”
“아! 저 녀석이 왜 방정을 떨어 응!”
“아니 무얼 우물쭈물할 것 있소. 아버지한테 말씀을 하구려!”
“아니 그런 말을 하던가?”
하는 정첨지는 별안간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본다.
“그랬다우!”
노파는 입을 비쭉하며 집어 던지듯이 말했다. 한동안 주위는 침묵에 잠기었다. 어느덧 밤은 캄캄한데 빤한 불혀 (舌)가 실심지에서 깜박인다.
“내가 굶어 죽어보아라! 딸자식을 팔아먹나 응!”
아래위 턱을 부르르 떨며 병인은 흥분되어 부르짖었다.
“에, 그러면 장하겠소. 왼 집안 식구가 몰사를 하면.”
“굶어 죽더래도…… 굶어 죽더래도 죽을 마당에는 죽어야지. 죽기가 무서워서 못된 일을 억지로 하고 살리!”
“아니 그게 못될 일이 무엇이란 말이오. 딸을 시집보내는 일이.”
“딸을 첩으로 팔고 돈 받고 팔랴는 것이 못된 일이 아니면 무엇인가!?”
하고 마구라를 노려보는 영감의 눈은 무서웠다.
“그거야 어느 부모가 자식을 남의 첩으로 주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소마는 사정이 사정이니까 그렇지요. 그러면 이런 마당에 당신은 어찌하겠소? 굶어 죽어 야 옳소?”
“만일에 옳은 도리로 살 수 없거든…… 살 수 없거든 굶어 죽읍시다! 그것은 죄가 아니오! 굶어 죽는 것은 아모 죄가 아니오!”
“싫소! 나는 싫소!…… 여지껏 사십 년이나 오십 년이나 가진 고생을 한 것이 아! 다 늙게 굶어 죽을라고 살었습디까? 싫소! 나는 어떻게던지 살겠소!” 하는 노파의 목소리는 악에 받쳐 떨리었다.
“마누라! 그것은 누구나 죽기를 소원한 사람이야 어디 있겠소? 그러나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랴면 그것은 반드시 벌역을 받는 것이오. 마누라! 천도는 무심하지 않은 줄 아오! 응!”
“벌역은 무슨 벌역? 그런 벌역을 받을 것 같으면 최주사 집은 왜 벌역을 안 받고 점점 부자만 되오? 죽어서야 벌역을 받는지 누가 아오? 체계 댓 냥 열 냥에 솥을 빼고 제 동생에게 빚을 주고 가난한 이웃 사람으로 보를 세워놓고는— 보를 서지 않으면 논을 뗀다니 아니 설 수 없을밖에―—제 아우가 돈을 안 갚는다고 보선이의 집을 뺏어먹었다지. 그따위 짓으로 몇 집을 망해놓았는데도 벌역은커녕 부자만 더 잘됩데다. 나는 인제 당신의 옳은 도리에는 아주 넌더리가 났소!”
하고 마누라는 체머리를 흔든다.
“흥! 어머니는 그런 줄을 알면서 그런 집에 딸을 첩으로 주랴오!”
억돌이의 이 말에 돌순이는 훌쩍거리며 흑! 흑! 느끼어 운다.
“지금은 남이니까 그렇지마는 그렇게 되면 흉허물이 없어지는 법이란다. 저년이 울기는 왜 울어?”
“오, 우지 마라! 그리로 안 보내마! 생각만 해도 그것은 아, 무서운 일이다!”
“그렇게라도 잘사는 것이 굶어 죽는 이보다는 낫지 않소? 무엇이 무서워? 나는 저것들이 굶어 죽을 일을 생각하먼 아, 그것이 무서움소…….”
“시끄럽다! 이 분수없는 계집아!…… 만일 선악에 보응이 없다면 인간은 아주 망하고 말 것이다. 사람의 씨가 점점 붇는 것을 보면 반드시 옳은 도리로 살길이 마련될 것이다. 그것이 지금 당장 눈앞에 안 보인다고 익지 않은 실과를 따먹으려 들다니? 심는 사람이 반드시 거두는 것은 아니야. 누가 거두든지 간에 나는 나 할 일이나 할 것이지 불로 대드는 나비는 쉽사리 타 죽을 뿐이다. 마누라! 마누라는 순행이 아버지를 보지 못하는가? 그는 이편 같은 마음으로 억지로 옳은 도리를 굽히다가 누명을 쓰고 말었으니 —―저 어린것들이 장차 어찌 될 줄 모르는가? 그의 벌역은 벌써 애매한 처자에게로 왔다. 그들은 미구에 밥 바가지를 들고 나설 것이다! 그러나 다 같은 가난한 사람들까지 그들을 모다 도적놈의 식구라고 찬밥 한 술을 주기 전에 흉보고 욕하고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그 집 식구들은 미구에 우리 집으로도 밥을 빌러 올 줄을 모르나!”
“그야말로 서투른 도적이 첫날 밤에 들켜서 그렇지!”
“무엇이 어쩌고 어째? 마누라는 종시도 깨닫지 못하는가? 오랫 동안 고생살이에 마누라도 맘이 변하였는가? 그러면 들키지 않었으면 괜찮단 말인가? 아! 그것이 못쓰는 일이다. 누가 보지 않는다고 속이는 것이야말로 죄 중에 가장 큰 것이다! 아!”
노파는 한참 영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술을 비쭉하며
“아니 그러면 지금 당신은 옳은 소리로 사는 줄 아시유?”
“그럼?·……우리의 사는 것이 무엇이 글러?”
“요새는 품 팔아먹을 데도 없고 노름판이 아니면 돈 한 푼이나 구경할 수 없는데!”
“아! 무엇이 어째?·…… 억돌아! 네가 그랬…… 그……응?”
그러나 억돌이는 아무 대답이 없다.
“아! 한우님!…… ”
별안간 그는 목 안으로 끌어당기는 소리로 부르짖자 금시에 맥이 풀린 것같이 힘없이 모로 쓰러진다. 그는 아래위 턱을 몹시 떨며 두 손으로 공중을 휘젓는다. 눈은 감겼다. 이 바람에 세 사람은 일시에 달려들어서 그를 반듯이 누이고 사지를 주물렀다.
“에그! 이게 웬일이오?”
“아이구! 아버지!”
“아! 여보. 내가 잘못하였소! 가난한 푸념이 일시에 쏟아져서 나도 걷잡을 새 없이 그런 소리를 하였구려! 과연 당신 말이 옳지요! 이렇게 사는 것은 사는 게나 죽는 이나 다를 게 무에란 말이오. 그저 당신 말씀대로 할 터이니 제발 눈을 뜨시오!”
하고 노파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영감의 목을 흔들고 그의 뺨에다 자기의 볼을 문지르고 한다. 그러나 영감은 참으로 죽은 것같이 아무 정신이 없다. 그는 병으로 오래 쇠약했던 끝에 너무 격분하였던 까닭으로 일시 혼도한 모양이었다.
억돌이 돌순이도
“아버지”
를 소리쳐 부르며 울었다. 이 바람에 참으로 초상이 난 줄 알았던지 이웃 사람들이 창황하게 뛰어왔다.
해는 다시 석양으로―—이옥고 그는 휘 한숨을 돌린 후에 비로소 깨어났다.
2
그 후로 정첨지의 병세는 덧치어서 자는지 앓는지 아주 혼수상태로 빠지고 말았다. 그래 집안사람들은 모두 수미를 펴지 못하는 와중에도 노파는 한숨과 눈물이 그칠 사이가 없었다. 그는 이번의 병세가 덧치게 한 것은 애오라지 그의 심정을 거슬린 까닭이라고, 오냐! 굶어 죽더래도 인제는 영감의 말을 본받자 하였다. 그래 아들을 대할 때마다 조용히 타이르는 말이
“얘야! 너도 늬 아버지 성미를 알겠구나! 아, 굶어 죽더래도 다시는 그 짓을 마라!……니 아버지 말씀대로 옳은 도리나 지키다 죽자꾸나!” 할라치면
그러면 억돌이는 으레
“무핫씨 옳은 도리요?”
하고 볼먹은 소리로 툭! 쏘았다. “죄 없이 굶어 죽는 게 옳은 도리요” 하고.
이 집 네 식구는 참으로 인제는 무슨 짓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판이었다. 정첨지는 몸져 드러누운 지가 벌써 달포나 지났다. 부자가 힘써 벌어도 네 식구가 살아갈지 말지 한 판인데 집은 잡혀먹고 양식은 떨어졌으니 약시세와 병구원을 할 거리는커녕 제때 마다 풀칠 할 도리조차 바이 없다.
아! 근년에는 시절마저 누구를 못살게 굴려는 무슨 심사인지 해마다 농철을 접어들면 긴 가뭄이 아닌즉 의례히 지루한 장마가 졌다. 이래저래 못살게만 되는 놈은 돈 없고 땅 없는 가난한 사람들뿐이라 작년에는 한재가 들어서 마냥모를 꽂아놓게 하더니만 올에는 늦장마에 큰물이 가서 다 된 곡식을 떠내려 보내게 하였다. 그중에는 정첨지의 집도 수파를 보아서 여름내 부자가 피땀을 흘려가며 지어논 직공이 하루아침에 물거품과 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논 여남은 마지기에는 잘한대야 껄끄러운 벼 예닐곱 섬을 얻어먹거나 말거나 하는 것이었다마는 정 첨지의 일가족에게는 이것이 다시없는 명맥 소관이었다. 그날―논 떠나가던 날―식전에 온 집안 식구들은 모두 목을 놓고 울었다.
그 후에 정첨지는 어떻게 간신히 주신하여서 이 아랫마을 앞으로 놓는 철로 품 판에 돌짐 지는 품을 팔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을 다니지 못하여서 그는 고만 무거운 돌에다 왼편 다리를 치였다. 그는 그때 피투성이가 되어서 읍내 병원으로 업혀갔다. 그는 왼편 발등이 아주 으서진 것 같았다.
그러나 철로 십 장은 그날 치료비밖에 안 물어주었다. 물론 그런 상처가 하루 치료로 나을 리는 없었다. 그래 할 수 없이 최주사 아들에게 집문서를 잡히고 장변을 얻어서 다시 한 열흘을 치료해 보았었다마는 의사의 말은 아직도 멀었다고 하는 바람에 그들은 혀를 홰! 홰! 내두르고 고만 집으로 데려오게 된 것이다. 인제는 죽든지 살든지 집에서 상약으로나 고쳐볼 수밖에 없다 하여 좋다는 약은 모두 해보았으나 도리어 다리는 점점 더 부어올랐다. 그런데 양식까지 떨어져서 우환에 겹쳐 우환을 더하였다.
“도모지 이놈의 세상이 누구를 죽이랴고 이 모양인가.”
하고 억돌이는 악이 나서 이를 바짝 갈아붙이고 대들었다. 그러나 속담과 같이 땅을 열 길을 파도 돈 한 푼이 나오지 않았다. 덕쇠는 가만히 앉아서도 하룻밤에 몇 원을 땄느니 몇십 원을 땄느니 하는데 자기는 진종일 기껏 벌이를 한대야 삼사십 전에 불과 한 싸라기 같은 돈푼이었다. 그런데 그나마도 할 일이 없다.
인제는 그런 거지 동냥 같은 옳은 도리나마 부지할 수가 없이 되었다. 그래 그는 어느 날 산에 가서 나무를 하며 세상일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만 지게를 메떼치고 덕쇠한테로 쫓아갔다. 그는 덕쇠의 제자가 되어가지고 위선 투전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노름판을 쫓아다녀보았는데 테 밖에 앉아서 개평을 떼어도 미상불 품 파는 일보다는 나았다. 과연 요사이 며칠 동안 산 것은 노름판에서 생긴 돈이었다. 그런데 부친은 그 말을 듣자 그렇게 까무러치기까지 하였다.
그가 끼어나서 처음으로 아들을 보게 된 때 그의 눈은 무섭게 부릅떠졌다.
“너는 참으로 노름을 하여서 나를 살리려 드느냐?”
하고 그때 부친은 무거운 입을 떼었다. 그의 말소리는 떨리었다.
“그러면 차라리 네 아비 목을 도끼로 찍어다오! 여보 마누라! 돌순아! 만일 옳은 도리로 살 수 없는 세상이거든 차라리 죽자! 죄를 짓고 사느니보다 옳은 도리로 굶어 죽자! 어느 때 죽어도 죽을 인간이니 죽을 바에는 옳은 도리나 지키고 죽자. 사람의 할 일은 오직 착하게 살 뿐이다! 여돌아! 너는 네 아비 말을 들어라!”
하는 그의 말은 감격하였다. 그는 언제와 같이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죄 없이 굶어 죽는 것은 결단코 옳은 도리가 아니겠지요! 만일 노름하는 게 죄라 하면 노름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마련된 이 세상이 더 죄가 되 겠지라우!”
그때 억돌이의 목소리도 커졌다.
“너는 이 세상이 악하다고 너도 악하려 드느냐? 악한 세상에서 착해야 비로소 그것이 착한 것이다!”
“아이구! 어느 말이 정말 옳은지 모르겠소. 당신 말을 들으면 당신 말이 옳은 듯하다가도 저 애 말을 들으면 또 그 말이 옳은 듯하니!……”
하는 노파는 영감과 아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버지! 그러면 어느 말이 참말로 옳은가요?”
이것은 돌순이가 묻는 말이었다
“물론 애비 말이 옳으니라! 사람은 어떠한 경우라도 착하게만 살 것이다! 매사를 바른 도리로만 처사할 것뿐이다! 그게 옳은 도리니라!”
“아버지! 나도 아버지 말이 옳은 듯하기는 해요―최주사 집으로 시집가지 말라는 말이…… 그렇지만 다시 한편 생각으로는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 싫은 것이야요. 나는 그런데로 시집을 가기는 싫지마는 옳기는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름하는 것보다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다! 남의 첩으로 가는 것은.”
“그러면 어떻게 해요. 옳은 도리로 살지 못할 세상이면 그른 도리라도 살어야 하지요!”
“그렇다! 만일 한우님이 있다 하더래도 그만 죄는 용서해주실 것이다!”
억돌이도 맞방망이를 쳤다.
“아니다. 그른 도린 줄 알고 하는 것은 더욱 죄가 크니라!”
“아이구! 세상에 답답한 일도 있다! 이 일을 누가 재판해줄까!”
하고 노파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 살지 못할 목숨이 왜 태어났어유? 옳은 도리로 살지 못할 인간을 왜 마련했어유?”
억돌이는 부르짖었다.
“그렇지 참! 사람은 살라고 마련했을 터인데―—옳은 도리로는 살 수 없이 된 경우에 다른 도리로 살 수가 있다면 그것은 무슨 일이든지 옳은 일이겠지 뭐!”
“그러니까 노름하는 것도 옳은 일이다.”
“그러니까 첩으로 가는 것도 옳은 일이지!”
“아니다! 그것은 죄다! 죄다! 죄다! 만일에 늬들이 정히 그럴 지경이면 니들은 내 눈앞에 보이지 말어라! 그러면 너희들은 내 자식이 아니다! 아, 소견 없는 자식들!”
“도모지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아이구! 내 신세야! 영감도 너무 고집두 세시구려. 말 한마디만 고치면 될 것을 그럴 것이 무엇 있소? 그른 도리라도 경우에 따라서 옳은 도리로 변통할 수도 있는 게지. 아이구 그렇게 변통성 이 없어가지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산단 말이오.”
“무엇이 어째? 어, 냉큼 나가거라! 보기 싫다 냉큼 나가거라! 안 나가? 안 나가?…….”
부친의 호령하는 대로 억돌이 남매는 한 발자국씩 주춤거렸다. 영감은 그 언제 모양으로 역정이 푸르르 나서 조금만 더하면 까부러칠 판인데 노파는 그의 발 아래 엎뎌져서 또 개개 복죄를 한다.
“아니 영감! 잘못하였소. 다시는 그리 안 하께 제발·…‥ 참오시오! 참어!……공연히 늬들 때문에 나도 그랬지. 그러기에 그런 말을 말고 그대로 소리 없이 살자니까…… 여보! 시장하시지 않소. 수숫미음 갖다 드리리까? 네! 여보! 영감?”
그러나 영감은 아무 말 없이 벽을 안고 돌아누워서 앓는 소리만 끙! 끙! 하였다.
3
그 후 며칠 지나서이다. 그 후로 억돌이는 머리를 싸고 드러누웠다. 그것은 무슨 부친의 옳은 도리를 지키라는 훈계를 디디고저 함이 아니라 일전에 경찰서에서 이 동리에 노름이 퍼졌다는 소문을 듣고 순사들이 밤마다 행순하는 까닭에 요새는 노름판이 없어졌다. 그런데 최주사 집에서 얻어 쓴 장변은 기한이 임박하였다. 그런데 양식은 똑 떨어졌다. 노파가 혼자 사방으로 허우적거리고 다녀보았으나 가는 곳마다 퇴박을 맞았다. 인제는 보리 한 톨 돈 한 푼을 구처할 도리가 없다. 앞뒤가 꼭 막혔다. 그런데 병세는 점점 더한데 그나마 잘 먹지도 못해서 늘어졌다. 그러는 대로 원기는 점점 쇠약하여져서 하루 이틀 까부라지기만 한다. 그는 요새는 미음도 변변히 얻어먹지 못한 까닭인지 전에 없던
헛소리까지 한다. 그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집안 식구들은 벌써 이틀째 아무것도 못 먹고 굶는 판이다. 억돌이는 이날도 머리를 싸고 진종일 드러누워 있더니 해 질 무렵에 어디로 아무 말도 않고 나가버렸다. 그는 그 이튿날 아침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여보! 마누라……승늉도 없소?…… 아, 목말라!”
병인은 힘없는 소리로 부르짖는다.
“숭늉이 어디 있소? 밥한 지가 벌써 언제인데.”
“아! 돌순아! 저것이…… 배가 오작 고플라구!…… 여보 이 애는 어디 갔소? 그…… 어디 꾸어 먹을 데도 없소?”
“없소!”
하고 마누라는 톡 쏘았다!
“아! 저것이 불쌍하여서…… 이 애는 왜 안 오나?”
“기 애는 무슨 수가 있다구 기다리오!”
“그래도…… 혹시…… 아! 그러면…… 이런 경우에는 한우님도 …… 아!……”
“언제는 옳은 도리가 아니라고 〔판독 불가〕을 쓰더니 그게 웬 말씀이오!”
하고 노파는 오금을 단단히 박는다.
“아,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한우님도…… 용! 아이구 배야, 배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쪼로록 소리지 무슨 소리여!”
이때 밖에서 인기척이 나며
“억돌이 어머니 계셔유?”
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었다.
“거 누구유?”
하고 내다보니 그는 최주사 집행랑 방서방이었다.
“댁에서 그 세음 좀 보내달라셔유. 내일이 기한이라고! 참 병환은 좀 어 떠셔유?”
“흥! 잘됐다!”
하는 노파는 그 대답은 않고 마치 남의 말같이 내던졌다.
“어떻게 하랴우? 그러면…….”
그는 한참 앉았다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을 이렇게 영감에게 다시 묻는다.
“아! 나는 모르겠소…… 마누라 맘대로! 응! 응!”
병인은 눈을 감고 응심깊게 앓는 소리를 할 뿐.
“저, 그대로 가서 이렇게 여쭈소! 이따가 내가 올라가서 말씀한다고.”
“네! 그럼 올라갈래유!”
하고 방서방은 돌아서 나간다.
“진작 그렇게 하자니까 고집을 세우더니. 순아! 사남이네 집에서 숭늉 한 그릇 얻어다가 드려라. 아이구! 여북 시장하실까!……그리고 어디 나가지 말고 아버지 옆에 있거라! 내 핑 다녀오께!……”
조금 있다가 노파는 치맛자락을 툭! 툭! 털고 일어서며 이렇게 딸에게 하는 말이었다.
“어머니!”
모친을 따라 일어서며 한마디를 부르고는 돌순이는 별안간 고개를 푹 숙인다.
“왜?”
“그 흘게눈을…… 나는…….”
“누가 흘…… 흘게눈은 눈 아니냐?”
“게다가…… 빡빡 얽은 것이……”
“이년아! 얽은 구멍에 슬기 들었단다!”:
하고 모친은 발을 구르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돌순이의 치마끈은 그의 두 손아귀에서 만지작거렸다.
“그럼 싫으냐? 싫거든 싫다고 하람!”
“아니……”
“그럼?”
“그래도…….”
“아이 망할 년 같으니. 시체 계집애 년이란 망칙한 딸도 다 보겠다.”
하고 노파는 문밖으로 나가자 돌순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한동안 소리 없이 울었다.
돌순이는 솟아 나오는 눈물을 손등으로 씻고 부엌으로 나가서 사발 한 개를 씻어 들었다. 그는 그길로 사남이 집에 가서 숭늉 한 그릇을 얻어가지고 왔다. 해는 아직 지지 않았다마는 잔뜩 흐린 것이 금시로 무엇이 올 것 같다.
그는 물그릇을 들고 부친의 머리맡으로 가서, 한 손으로 병인의 가슴을 직신! 직신! 하며
“아버지! 물 잡수셔요?”
물어보았으나 아무 대답이 없다. 홑이불을 덮고 반듯이 드러누운 부친은, 그의 헙수룩한 머리에 광대뼈가 툭 불거지고 눈자위가 쑥 들어간 눈을 별안간 번쩍 떠 보더니 머리를 흔들고 다시 눈을 감는다. 그는 웬일인지 아까같이 앓는 소리도 그리 없이 죽은 것 같다. 어둠침침한 방 안 고요한 때이라 혼자서 이 꼴을 보는 돌순이는 슬그머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갔다. 그것은 자기의 아버지가 아니라 어떤 낯 모르는 송장이 가로 뻗치고 누운 것같이 보였다. 문밖에서는 비가 오는지 뒷문 창살에 빗방울 듣는 소리가 후둑! 후둑! 들리었다.
이때 병인은 별안간 건공으로 손을 들어서 무엇을 더듬는 것 같이 하더니 다시 감았던 눈을 떠서 방 안을 휘둘러본다. 뒤미처
“다― 어디 갔…… 니……?”
하는 목소리는 모깃소리같이 가늘게 들리었다.
“아버지!…… 왜 그러셔유?”
돌순이는 공연히 가슴이 선뜻! 하며 부친을 마주 바라다보았다. 그는 저절로 무서운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
또다시 모깃소리같이 간신히 부르짖더니 별안간 그는 칵! 칵! 하고 무엇을 뱉으려 한다. 그 후 한 식경 돌순이는 문밖을 내다보며,
“아! 어머니는 왜 안 오나!”
하며 공연히 마음이 죄였다. 그런데 그사이에 부친은 눈을 흡뜬 채 목 안에서 가래가 끓었다. 돌순이는 어마뜩하였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부친 앞으로 와락 달려들며
“아버지!”
하고 날카롭게 불렀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그러나 병인은 아무 말이 없이 여전히 눈을 흡뜨고 쳐다본다.
“아! 아버지! 아버지!……”
돌순이는 아버지를 부르며 울음을 왈칵! 쏟았다. 방 안에는 울음소리 숨 끓는 소리가 애처로이 섞이어 나는데 문밖에는 눈물 같은 벗방울이 후둑뚝후둑뚝! 듣는다.:
“아! 돌순아! 웬일이냐? 왜.”
별안간 방문이 펄쩍 열리며 뒤미처 이렇게 부르짖고 뛰어들어 오는 것은 돌순이가 기다리던 그 어머니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병인은 마침내 운명하고 말았는데,
“여기다 백일까유! 후유.”
하고 뜨랑에서는 방서방의 쌀섬 부리는 소리가 쿵! 하고 울린다.
“아이구! 영감아…… 이 일을 어쩌자는 말인가? 어어― 이럴 줄을 알았으면 내가 왜 갔단 말이오! 그 집에를 왜 갔단 말이오!…… 어이구! 앓는 영감을 어떻게든지 살리랴고 들었더니…… 당신 말대로 굶어 죽었구려!…… 어이구! 영감아…….”
노파는 가슴을 탕탕 치며 몸부림을 하며 통곡한다. 돌순이도 방바닥에 엎어져서 정신 없이 소리쳐 운다.
“아이구 아버지!…… 이게 웬일이오? 어이구! 어이구!”
이때 별안간 억돌이가 머리를 풀고 대들며 통곡하는 소리다.
“어이구 영감아! 내가 당신 앞에서 죽쟀드니…… 글쎄 어쩌자고!…… 아이구! 불쌍도 하지! 뜻밖에 이게 웬?…… 생병이 들어 굶어 죽…… 죽…… 다니……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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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정첨지는 병으로 죽었다느니보다 굶어서 죽었다. 아, 사람이 병들었다는. 것만도 얼마나 불행한 일이랴마는 병들어 굶어 죽었다 함은 더 얼마나 참혹한 일이냐!? 정첨지가 죽던 며칠 후에 복술이 할머니도 이 세상을 마저 떠나고 말았다.
억돌이 집 세 식구! 그들은 장차 어디로 갈꼬? 그들의 원한은 구천에 사무쳤다.
-끝-
2016년 6월 2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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