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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악마의 공격을 받은 이들
진짜 많은 사람들이 악마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듣곤 한다. 아주 유명한 구마사인 프랑스 예수회 신부인 똥꿰데의 말은 넓은 의미에서 인용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마 증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불행을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통과 끊이지 않는 질병, 불행, 만사의 불운 등에서 자유스러워지기 위해 구마사의 예식을 찾는다. 부마자들은 흔하지 않지만, 이런 불행한 사람들은 군단마냥 불어나 있다".
진짜 부마자들과 자신의 고통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어떤 믿음직한 말을 구마사로부터 듣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런 똥꿰데 신부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똥꿰데 신부가 이 글을 쓸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많은 새로운 다른 분야들이 생겨났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쪽에서의 공격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을 나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말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부류는 서양의 향락주의와 물질주의를 부추기는 소비문화로써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잃게 한 장본인이다. 특별히 이탈리아의 경우 대부분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역할이 컸으며, 막시즘을 통해 문화와 교육, 흥행 등에 영향을 미쳤다. 로마의 경우 주일미사에 매 주 참여하거나 어쩌다 참여하는 신자는 전체 인구의 12% 밖에 되지 않는다. 종교가 소멸하는 곳에는 항상 미신이 자리한다는 수학적인 뻔한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서부터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교령술(交靈術)을 실행하거나 요술이나 신비술이 확산된다. 이와 더불어 요가, 참선, 초월적 명상 등이 첨가되고, 모든 윤회설에 기초한 의식들에 참여하거나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접신 등 상상할 수 없는 일들에 빠지고 있다.
요가를 배우기 위해 힘들게 인도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이 이제 우리들 대문만 열면 어디에서든지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만들 수 있게 되어 버렸다. 이런 방법들은 보기에는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는 것 같지만, 환각과 정신분열에까지 도달하게 만든다. 또한 이단의 흔적들이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데 자주 이런 것들은 사탄의 직접적인 상표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요즘 텔레비전에서는 마술, 죽은 영혼과의 접하는 교령술을 교묘한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다. 원하기만 한다면 이들에 대한 책들을 서점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마술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도구들은 통신판매를 통해 가정판매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폭로하고 싶은 것은 여러 신문들이나 공포 영화 등에서 다루는 섹스물이나 폭력물은 자주 사탄의 속임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군중을 집착 증세까지 몰고 가는 어떤 음악의 확산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사탄적인 록 음악을 들고 싶다. 이에 대해 삐에로 만떼로는 자신의 저서 사탄과 그 권모술수의 전말 (1988년 Udine, segno 출판)에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몇 몇 학교에서 초청강연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이런 사탄의 함정에 많은 젊은이들이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은 이런 것이 심지어는 중 고등학교 내에 교령술과 마술의 형태로 엄청나게 퍼져있다는 것이다. 작은 마을에까지 악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너무나도 많은 교회 종사자들이 이런 문제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신자들을 내버려두고 있는 상황에 대해 나는 도저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다. 세례성사(이런 생각에는 교황 바오로 6세도 동의할 것임) 예식에서 구마를 거의 전부 없애버린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매 번의 미사가 끝난 뒤 드리던 성 미카엘 대천사께 드리는 기도를 삭제해 버린 것도 과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는 모든 구마사목이 시들도록 소홀히 해버린 주교들의 무성의함도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사건이다. 왜냐하면 모든 교구의 대성당 내에 적어도 한 명의 구마사를 두어야만 할 것이고, 잦은 방문이 있는 성당과 성지에도 구마사제를 임명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구마사는 아주 희귀하게 여겨져서 도저히 찾을 수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구마사의 활동은 사목적 가치로 볼 때 없어서는 안될 활동이며 설교와 고해성사, 성사들을 집행하는 집전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가톨릭 교계는 비통하게 반복할 말이 바로 내 탓이로소이다 라며 가슴을 쳐야 한다. 나는 많은 이탈리아 주교들을 알고 있는데, 이들 중 단 한 명의 주교만이 구마를 행했고, 구마를 도왔으며 이런 문제를 직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미 이에 대해 다른 책을 통해 언급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반복할 생각은 없다. 즉, 어느 한 주교가 어떤 심각한 요청을 받았을 때(정신병자에 의한 것이 아닌), 이를 개인적으로나 혹은 위임사제를 통해 돌봐주지 않게 된다면 중대한 죄를 범하게 된다. 이렇게 구마사들은 학교를 잃은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과거에 실제적으로 구마를 행하던 구마사는 새로운 구마사들을 양성하였다. 이에 대해 다시 한번 언급할 기회를 마련하겠다.
관심 주제에 다시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영화 이야기를 한 마디 해야 겠다. 지난 1975년 2월 2일 바티칸 라디오 방송에서는 영화 “엑소시스트”의 감독 윌리엄 프렌드킨과 이 영화를 위해 자문역할을 한 예수회 신학자 토마스베밍건과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감독은 1949년에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공포의 줄거리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 이 영화의 의도였다고 밝혔다. 이 영화를 제작한 감독은 그 내용이 진짜 부마를 다룬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함구했지만, 부마진단여부는 신학자들의 몫으로 돌렸다.
진행자는 이 영화가 공포물의 한 종류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종류인지 그 자리에 동석한 예수회 신부에게 묻자 역시 신학자들의 몫이라는데 결정적으로 동의하였다. 이 영화는 전 세계인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 이외에도 무척 신중하게 악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으로써 점차 잊혀져 가고 있던 구마사들에 대한 관심이 새로이 눈을 뜨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악마의 경악을 금치 못할 방해에 떨어질 수 있는가? 일반적인 방해에서부터 시작해 모든 이들을 공격하는 유혹들로 구분해 보고자 한다. 경우에 따라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이런 일반적인 방해에 빠져 들 수 있다. 악마의 일반적인 방해를 네 가지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셨을 때, 악의 전염에 의한 피해, 죄에 단단히 묶여 있는 중죄 상태, 악마와 접하는 사람들 혹은 그런 장소를 자주 찾는 것 등이다.
1. 하느님께서 허락하셨을 때
분명 하느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일어날 수 없으며, 하느님께서 절대로 악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할 경우(자유를 소유한 창조물로서) 악을 허락하신다. 하지만 악으로부터 선을 선별해 내시는 분이 하느님이란 사실이다. 첫 번째 경우는 인간적인 과실에 의해서가 아닌, 악마의 개입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굳건할 때, 하느님께서 악마를 이겨낼 수 있는 모든 은총을 주시면서 자주 사탄의 일반적인 방해(유혹들)를 허락하신다. 또 주님은 가끔씩 사탄으로 하여금 놀라운 활동(부마 혹은 악의 지배세력의 방해)을 하도록 허락하셔서 인간이 겸손과 인내, 절제를 연마하도록 하신다.
첫 번째 경우에 해당되는 실례들은 이미 우리가 고찰한 육체적인 고통의 원인이 되는 외적 행위에 의한 것으로(성 비오신부나 성요한 비안네)가 당한 채찍질 당하거나 몽둥이질을 당하는) 욥과 성 바오로 사도가 당한 악마의 괴롭힘이 과연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다시 더듬어 보고자 한다.
많은 성인들의 삶은 이런 예들을 흔히 보여주고 있다. 성인들 중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성인 두 분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깔라브리아 신부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마리아 수녀(아랍 최초의 복녀)에 관한 예를 들고자 한다. 이 두 실례는 인간적인 아무런 이유 없이(악마의 공격을 당한 당사자들의 책임 없이), 악마에 의해 신체 요소들이 자의에 의한 조절 불능 상태가 되어 외부의 힘에 의해 움직이게 됨으로써 그들의 성화(聖化)에 반대되는 일을 만든 전형적이고 고유한 부마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2. 악마의 주문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이 경우 또한 악의 원인 제공자가 본인이 아니다. 또 자신이 원해서 주술사에게 찾아가 누군가에게 해를 입힐 목적으로 악마를 이용한 주문을 청하는 경우, 자신에게도 그 악이 엄습한다. 이에 대해서 나는 앞으로 한 장(章)을 설정해 폭넓게 다룰 것이다. 여기에서는 단지 악마를 통해 타인에게 고통을 주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 악마의 유린이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실제로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묶임 의식, 시선(視線)을 이용한 저주, 유린(蹂躪), 저주(詛呪) …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악마를 이용한 주문(呪文)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런 악마를 이용한 주문(呪文) 때문에 부마자가 되거나 그 외 악마의 세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자주 발생한다는 것 또한 첨부하고 싶다. 이런 악을 이용한 주문을 믿지 않는다고 우기는 교회 종사자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막상 이런 악의 피해를 본 자신들의 신자들을 보호할 능력이 되는지 난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런 일을 허락하실 수 있느냐고 놀라워하는 사람도 있다. 주님은 자유를 가진 창조물로 우리들을 만드셨고, 이런 당신 창조물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극악한 안하무인(眼下無人)이라 할지라도 당신의 창조물인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자기가 살아온 삶의 형태에 따라 심판 받을 것이고, 최종적으로 보상받아 마땅한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주신다. 결국 우리가 자유를 적절히 사용하게 될 때, 그에 맞는 보상을 누린다. 반대로 잘못 사용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거나 수만 가지 형태의 표독함으로 이웃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 자유의지의 인간이다.
두려운 사건 중의 하나를 예로 들면, 누군가를 살해하기 위해 청부 살인자에게 돈을 지불하는데도 하느님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계신 하느님이 아니다. 이처럼 내가 어떤 주술사나 무당에게 찾아가서 돈을 지불하면서 어떤 누군가에게 해를 입게 해달라고 요구하는데도 하느님께서는 이를 막지 않으신다. 물론, 많은 경우 이런 이들을 막고 계시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고 있는 사람과 열성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쉬고 있는 사람이나 혹은 이보다 더한 사람, 습관적으로 죄 속에 빠져 사는 사람들 보다는 훨씬 더 보호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사기꾼들의 천국인 악마를 이용한 주문과 악마의 현혹술에 대해 언급하겠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이런 부류는 진실보다 엄청난 거짓이 만연한다. 이 분야는 사기꾼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고, 정신적으로 나약하고 변덕스러운 이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마사들만 조심할 것이 아니라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
3. 죄 속에 단단히 묶여 있거나 중죄 상태
현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불행하게도 이런 상태가 점차로 증사하고 있으며, 그 결과 악마로부터 공격을 받는 사람들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근본적으로 진짜 원인은 항상 믿음의 결핍에서 온다. 믿음이 부족하면 할수록 무속이 증가일로라는 당연한 수학적인 계산이 나온다. 복음에서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예로 유다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유다는 도둑이었지만, 주님께서 이런 사람을 교화시키고 인도하고자 노력하신다. 과거의 습관 때문에 불응과 굳어버린 악습으로 주님께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마태 26, 15). 라고 흥정하는데 까지 치달아 간다.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요한 13, 27)라는 아주 비극적인 문장을 최후의 만찬 장면에서 읽게 된다. 완전한 부마형태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본다.
가정 파괴의 현실을 앞에 두고 나는 무질서한 결혼생활의 피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와 더불어 또 다른 죄를 짓고 사는 이들의 경우를 보아 왔다. 유산을 일삼아 온 여성들, 그러면서 그 외 다른 죄들을 짓고 있는 여성들을 만났고, 혼외정사의 타락에 빠진 이들을 구마한 경우, 폭력의 죄를 짓고 있었던 이들, 마약을 복용하고 동성애에 빠져 또 다른 죄를 범하는 이들의 경우 등을 접했는데, 분명한 것은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만 치유의 길이 열린다는 말은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는 말이다.
4. 악마와 교접하는 사람들 혹은 그런 장소를 자주 찾는데서 비롯됨
나는 이런 표현을 통해 교령술(交靈術)을 행하는 곳에 함께 있거나 사탄 의식 혹은 사탄교단(그들만의 검은 미사를 드린다), 주술을 행하는 것 등을 의미하고자 한다. 무당이나 주술사 등을 자주 찾아다니는 것, 물론 카드점쟁이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을 찾아다니는 어리석은 사람 모두는 자칫 잘못하면 악마를 이용한 주문(呪文)에 노출될 큰 위험에 놓여있다. 사탄과 관계를 맺기를 원할 때, 사탄에게 하는 서약식, 사탄과 맺는 피의 계약, 사탄적인 학원들에 등록하거나 사탄의 교주를 임명하는 일 등등… 불행하게도 15년 전부터 이 분야는 점차 증대하고 있는데 거의 폭발적인 수준이라 하겠다.
주술사나 이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쫓아다니는 것이 상당히 일반화되어 있다. 모든 치료에도 불구하고 병이 떨어지지 않을 때, 혹은 불행이 겹겹이 증폭될 때, 사람들은 즉시 악마의 소행이니 액운을 떼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카드 점을 보러가거나 무당을 찾아갔을 때 "아이쿠, 누군가 악마를 이용한 주문을 붙였군요." 라는 말을 듣는다. 여기까지는 약간의 돈밖에 들지 않고 피해도 없다. 여기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혹시 운을 트이게 하고 싶으면 한 백만 원 정도가 필요하겠는데요." 혹은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경험한 많은 경우에 복채로 내놓은 돈이 무려 4천 2백 만 원까지 간 적이 있었다. 이런 제의가 받아들여지게 되면 무당이나 카드점쟁이는 즉시 개인적인 물건들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서 본인의 사진이나 속옷, 머리카락 한 올, 혹은 몸에 난 털, 손톱 등인데 이 시점에서 악이 무르익어 가는 것이다. 그러면 무당이 이런 물건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 당연히 악마적인 주술을 실시한다.
여기에서 나는 한 가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속임수에 빠지는 이유가 있다. 이런 점쟁이들이 "항상 성당에 얼굴을 내밀고" 기도하는 척 하며, 이들이 운영하는 사주 철학관을 찾아가 보면 여기저기 십자가 고상들이나 성모님의 상본, 성인들 상본이나 성인 비오 신부님의 상본 등이 보란 듯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나는 단지, 액운을 풀어주는 주술을 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악의의 주술은 하지 않는다."라고 현혹하기 때문에 속임수에 걸려들게 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액운 떼는 푸닥거리 주술이라는 말은 악의 주문을 떼기 위한 것이고, 악마적인 주문을 만드는 주술은 누군가를 해하기 위해 액운을 덧씌운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적으로 구마사 깐디도 신부님께서 끊임없이 주장했던 것이 바로 악마적 주문을 만드는 주술과 악마의 주문을 푸는 주술은 있을 수가 없고, 두 가지 모두가 악마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형태의 미신은 악마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에 잘못 발을 들여놓게 되어 처음에는 심하지 않은 악의 영향(실제로는 이런 형태의 그 어떤 증상도 없었을 가능성이 많음) 때문에 점쟁이를 찾아갔지만 되돌아 나올 때는 혹 떼러 갔다가 뗄래야 뗄 수 없는 더 큰 혹인 악령을 업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 구마사들이 겪는 것은 자주 이런 주술사들이 저질로 놓은 악의 방해공작을 제거하는데 엄청난 힘을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경우 과거와 마찬가지로 부마는 정신질환으로 혼동될 수가 있음을 말해두고 싶다. 정신의학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증세를 앓고 있는 환자들을 만났을 때, 의사의 솔직한 양심으로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는 신경정신과 의사들을 나는 진정으로 존경한다. 베르가모의 정신과 의사인 시모네 모라빗또 교수에 의하면 많은 환자들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사탄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는 것을 밝혀냈다고 단언하였다. 또한 그는 이런 환자들을 대했을 때 몇 몇 구마사들의 도움을 통해 이들을 치료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Gente, 1990년 제 5호. 106-112 페이지 참조). 나는 이와 유사한 케이스들을 알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한 사건에 주목하고자 한다.
1988년 4월 2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스페인의 가르멜회 회원인 프란체스코 빨루루 실부를 복자품에 올리셨다. 복자 빨루루 신부는 말년의 삶을 부마자들을 위해 바치신 구마분야에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해 주시는 분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요양원을 만들고 환자들을 돌보셨는데,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환자들을 대상으로 구마기도를 해서 만약 진짜 정신병자들은 그 질환 그대로이지만, 부마자일 경우 구마기도를 통해 치유되곤 하였다.
당연히 이런 일을 하는 그에게 사제단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자 그는 두 번에 걸쳐 로마를 찾아가서 1866년 교황 비오 11세와 만났다. 1870년에는 제 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로 하여금 구마직무를 영속적인 임무로 설정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공의회가 어떻게 중단되었는지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사목적인 직무는 시급하게 다시 적용시켜야 할 분야이다.
정신질환과 부마를 구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고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 유능하고 경험이 풍부한 구마사는 이런 문제에 대비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있으며 분별요소들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반면 정신과 의사의 경우에 이런 마귀들린 상태를 믿지 않아서 부마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구마사 깐디도 신부님은 몇 년 동안이나 어떤 젊은이에게 구마를 하고 있었는데 그를 치료했던 정신과 의사는 분명히 그 젊은이는 간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신부님은 그 의사를 구마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였고 이에 응하였다. 깐디도 신부님께서 그 젊은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을 때,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그러자 정신과 의사는 "보라구요, 신부님, 분명 간질병이라니까요." 깐디도 신부님은 기절한 젊은이 앞에 머리 위에 손을 얹자 이 젊은이는 갑작스럽게 벌떡 일어나 꼼짝 않고 서있는 것이었다. "간질병 환자들은 이런 증세도 보입니까?" 라고 깐디도 신부님이 의사에게 묻자, 당황한 의사는 전혀 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했다. 의사는 이런 행동에 너무나도 당황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 젊은이가 치유되기까지는 구마는 몇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오랫동안 이 의사 저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계속해 보았지만, 오히려 더 심해졌을 뿐이었다.
이런 복잡한 상태는 상당히 민감한 부분으로 공동연구를 요구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결론 부분에 가서 언급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적잖은 숫자의 환자들이 잘못된 의학적인 치료에 의한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비신자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모든 과학자들을 나는 존경한다.
의사 에밀리오 세르바디오는 정신의학과 정신분석학 교수이며 국제적으로 유명한 초심리학자이다. 그는 1975년 2월 2일 바티칸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과학은 자신의 도구들을 통해 도저히 설명 불가능하고 증명해 낼 수 없는 불가시의한 일들 앞에서는 겸손해져야 합니다. 정확하게 그 한계를 그을 수는 없지만, 이런 현상은 육체적인 현상만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도구들을 통해 어느 선까지 그것을 밝혀내는 것은 가능해도 불가능한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부마에 대해 과학적으로 이름 붙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악마적 성향과 파괴성이 보이는 현상들은 아주 특별한 것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초심리학이나 정신 병리학 전문의가 증명해 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닌 전혀 다른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버릇없는 젊은이를 가학성 음란적인 범죄자에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잣대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이들 서로 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저는 의사인 제 견해로써는 도저히 조정 불가능한 어떤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불가사의한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것이 과학의 몫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록]
악마가 무섭습니까?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대답>
무조건 악마를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여기에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자서전의 글을 인용하고자 한다(25장 19-22). 우리가 악마에게 문을 열지 않는 이상, 이 글은 우리를 상당히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글이다.
" … 내가 이 주님, 이 임금님의 종인 이상, 그들이 무슨 해를 내게 끼칠 수 있겠습니까? 왜 나는 온 지옥을 상대로 대적해 싸울 힘을 갖지 못한단 말입니까?
나는 십자가를 손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상 하느님은 내게 용기를 베풀어주신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 아주 짧은 사이에 나는 내가 온통 변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한꺼번에 모든 악마와 힘을 겨룬다 해도 무서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십자가로써 한다면 수월하게 그들 모두를 쳐 이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말했습니다. '이젠 오너라. 나는 하느님의 종이다. 나는 너희들 따위가 내게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꼴을 보고 싶다' 고! 그들이 나를 무서워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으로 그들 모두에 대하여 자신이 넘쳤으며, 이전에 무서움을 품었던 적이 있었어도 나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을 뿐더러 도리어 그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만물의 주인이신 분의 덕택으로 그들에 대한 완전한 지배력을 갖게 되었기에 그들에게 대해선 이제 파리 이상의 무게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네들은 아주 비겁해서 자기네가 업신여겨짐을 알자 그만 아무 용기도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적들은 무조건 저희들한테 굴복하는 자들이든가 혹은 하느님께서 당신 종들보다 더 큰 선익을 도모하시기 위해 유혹하며 괴롭힐 것을 허용할 때 밖에는 정면에서 공격하지는 못합니다.
아무쪼록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움을 품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명예나 부귀, 쾌락 따위에 애착하여 스스로를 어지럽게 만든 탓입니다. 이때 우리는 그들과 한패가 되어 자신에게 대적하고 미워해야 할 것을 좋아라 찾는 것이니, 그들은 우리에게 막대한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 써야 할 무기를 그들 손에 넘겨주고 우리에게 달려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온갖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얼싸안고 진정으로 주님을 받들어 섬기려고 힘쓴다면, 악마는 이런 진리에 뿌리박은 행동을 페스트 마냥 피할 것입니다.
악마는 허위의 벗이고 허위자체입니다. 그는 진리 가운데 걸어가는 사람과는 절대로 계약을 맺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악마가 우리 오성이 흐려진 것을 본다면 우리 눈을 온전히 감겨 버리려고 갖은 책략을 다 쓸 것입니다. 악마는 한낱 장난에 지나지 않는 이승의 덧없는 것 중에서 자신의 쉼을 찾을 것입니다. 악마는 한낱 장난에 지나지 않는 이승의 덧없는 것 중에서 자신의 쉼을 찾을 정도의 장님을 발견하면 그것으로 그 사람을 유치한 어린이로 간주하고 철없는 아이 취급을 하며 그리고 한 번만이 아니라 몇 번이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내가 이런 어리석은 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니옵기를! 주님은 내게 쉼이 되는 것을 쉼이라 하고 명예스러운 것을 명예로 여기고 즐거운 것을 즐거움이라 하고 그와는 정반대되는 짓을 저지르지 않는 은총을 베푸시옵소서! 그리고 모든 악마르 멸시하도록! 그렇게 되면 악마가 나를 무서워할 것입니다. 나는 '아이고, 저 악마, 악마'하고 부르짖는 공포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 하느님, 하고 말할 수 있고, 악마를 몸서리치게 무섭게 해줄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악마란 꼼짝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틀림없이 악마를 이렇게 무서워하는 그 사람이 악마보다 더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악마는 내게 아무 짓도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특별히 그런 사람이 고해 신부인 경우에는 영혼을 큰 불안 속에 몰아넣습니다. 나는 이렇게 해서 수년 동안 갖은 고생을 겪었기에 이제 와서는 어떻게 그걸 참아 견디었는지 새삼스럽게 놀랍니다. 아, 이렇게도 진실하게 나를 도와주신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제 5장 구마의 출발점
어느 날인가 주교님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와 특정인에게 구마를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때 내 첫 마디는 교구 내 사제에게 구마를 할 수 있도록 임명하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내가 느끼기에 이런 임무를 수락하는 사제를 찾지 못하셔서 나한테 전화를 한 것 같았다. 불행하게도 이런 어려움은 통상적으로 일어난다. 사제들은 자주 이런 것들을 믿지 않고, 주교가 구마사로 임명을 한다고 해도 수 천 마리의 악마들이 들러붙는 것 같이 느껴져서 이를 피하게 된다. 여러 책들을 통해 내가 밝힌 것처럼 악마의 장난질로부터 영혼을 구하는 고해성사는 구마를 통해 육신으로부터 악마를 내쫓는 것보다도 훨씬 더 악마를 분노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악마를 더더욱 화나게 하는 또 하나는 바로 설교인데 하느님 말씀으로부터 신앙이 뿌리를 내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교하고 고해성사를 줄 수 있는 용기로 무장된 사제라면 구마기도를 행하는 것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레온 블로이(Leon Bloy)는 구마를 거부하는 사제들을 향해 아주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글을 썼다. 발두치의 책 악마 (Piemme 출판, 233 페이지)에서 일부를 여기에 인용해보고자 한다. "사제들이면서 자신들의 구마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믿음이 부족하고 근본적으로는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구역질나는 악마와의 대면을 회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말 또한 사실이다. 악마가 행하는 모든 악행은 이미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이라는 것을 잊은 채, 많은 사제들은 구마 대상을 무서워한다. 악마들과는 절대로 비교전(比較戰) 이란 있을 수 없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계속 언급하고 있다. "만약에 사제들이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구마능력을 믿지 않고,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두려운 불운을 알리는 징조이고 사제직을 잔인하게 악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 도저히 구제불능인 가장 악한 원수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꼴이 되어 병원마다 히스테리에 시달리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꼴을 보게 될 거이다." 상당히 강한 발언이지만 맞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주교님의 전화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주교님께 단호한 어조로 만약에 적당한 사제가 없다면 주교님께서 하시는 것이 의무라고 말씀드렸다. 그때 주교님의 부드럽고 순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는걸요." 이에 대해 구마사 깐디도 신부님께서 내가 처음 구마의 임무를 맡았을 때 가르쳐 주셨던 대로 알려 드렸다. "예식서를 먼저 읽는 것으로 시작해서 부마자를 위해 경문대로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구마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다. 구마서는 구마사들이 숙지해야 하는 21항의 규정으로 시작된다. 이 구마서가 오래 전인 1614년에 쓰여졌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점차적으로 완성되어 나가야 할 것이지만 지금까지도 유효한 풍부하고, 직접적인 지혜가 담겨있다. 부마자 앞에서 구마사는 신중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사람 안에 들어앉은 악마는 구체적인 표시들을 제공하지만 그게 진짜 부마형태인지, 아니면 단지 구마사가 관찰해야하는 행동인지를 구별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그 표시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언급한 주교님의 당혹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은 해결되었다. 구마사들은 돌발적이지 않다. 이런 임무를 어떤 사제에게 무조건 위임하는 것은 외과 수술용 도구들을 경험 없는 어떤 사람 손에 잔뜩 들려주면서 수술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엄청나게 많은, 정말 많은 것들은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그래서 나는 위대한 구마사였던 깐디도 신부님의 제자로서 물론 책을 읽고 눈으로 경험해 보아야 하는 상태에서 여러 부분이 부족할 것이라는 알면서도 내가 얻었던 경험들을 다른 사제들을 위해 저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어떤 책에서도 얻을 수 없는 내 고유한 경험들을 저술하기로 하였다.
사실 구마의 출발점은 전혀 다른데 있다. 부마자의 가족들이나 친구들로부터 구마가 필요한 사람을 소개받았을 때, 정말 구마가 필요한지의 여부를 밝혀내기 위한 질의응답 형식의 상담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초로 증세를 파악하여 구마여부를 결정짓게 된다. 그러므로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전해주는 증세나 그 외 다른 가능성들을 토대로 구마의 출발점을 잡는다.
그 첫 번째 증상은 육체적인 고통이다. 여기에서 악마의 지배에 의한 것이라면 위염과 두통이라는 신체의 두 부분에서 그 증세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진통제로도 도저히 가라앉지 않는 극심한 두통이 엄습하고, 특별히 젊은이들 경우는 갑자기 자기 방에 틀어 박혀 버린다. 또는 학업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공부를 썩 잘하던 아이가 갑작스런 두통으로 더 이상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고, 기억력이 현저히 감소하게 된다.
구마예식서는 눈에 띄는 의심할 만한 증세들에 대해 언급해 놓고 있다. 예를 들어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를 정확하게 구사하고, 이런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말을 즉시 알아듣는 현상,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의 일을 알고 숨겨진 사실까지도 아는 현상, 초인간적인 근육의 힘을 발휘하는 것 등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부마증세들은 구마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일어나지 않고, 항상 기도를 드리는 중에 이런 불가사의한 일들이 전개되었다. 많은 경우에 이상한 행동들, 혹은 폭력적인 행동들도 보고된다.
전형적인 부마 증세 중에서 성물에 대한 혐오를 들 수 있다. 전에는 열심히 기도하던 사람이 갑자기 기도하지 않는 것, 적개심을 가지고 더 이상 성당에 발을 한 발짝도 들여놓지 않는 것, 자주 성화상들을 보면서 상소리를 뱉거나 파괴하는 경우 등이다. 이런 증상들은 항상 가족들 혹은 살고 있는 주위 환경에 대해 적개심을 품는 행동을 동반한다. 그러면서 아주 이상한 여러 가지 형태들과 부딪치게 된다.
말할 필요도 없이 구마사에게 찾아가는 사람의 대부분이 이미 병원을 전전하며 가능한 검사나 치료를 모두 받고 난 뒤라는 것이다. 그 외 특별한 경우는 아주 극소수이다. 그래서 구마사는 구마에 들어가기 전에 환자의 양태를 연구하기 위해 의사의 소견서나 치료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의견을 얻는데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또 한 가지, 부마자는 자주 명치 바로 아래에 있는 위 입구의 고통을 호소한다. 더 나가서는 이 부분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껴 치료를 해도 효과를 얻지 못한다. 이것은 악마에 의한 특색들 중의 하나이다. 끈질기게 붙어있는 악마는 신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기 시작해서 이제는 위 전체의 통증, 혹은 장으로 옮겨지고 신장, 그리고 난소 등으로 옮겨져서 의사들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고, 약을 써도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는 증세로 탈바꿈한다.
부마 증세를 알 수 있는 기준 중의 하나는 이렇게 약을 써도 전혀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도 구마기도를 하게 되면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 구마사들은 알아 낼 수 있었다. 마르코라는 사람을 구마한 적이 있었는데, 강력한 부마증상을 띠고 있었다. 이미 오랜 기간 동안 병원을 전전하며 입원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정신과 치료들, 특히 전기 쇼크치료도 그에게 아무런 효과도 주지 못한 채, 오히려 사람을 망가트린 상태였다. 의사들은 그에게 수면치료를 실시하기로 하고 일주일간 수면제를 투여해서 깊은 잠에 빠지게 하려고 시도했지만, 오히려 밤이나 낮이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심한 불면증에 빠져버렸다.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 병동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꼭 멍청이처럼 보였다. 할 수 없이 구마사에게 그를 데리고 가자, 즉시 호전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놀라운 힘도 부마증세로 보여 지는 예일 수 있다. 정신병동의 정신질환자들은 품이 작은 상의를 입혀 꼼짝 못하게 해 놓을 수 있지만, 부마자들은 절대로 묶어 놓을 수 없다. 모든 것을 풀어헤치고 복음의 가라사의 마귀들린 사람처럼 심지어는 묶어놓은 쇠사슬도 잘라버린다. 깐디도 신부님께서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바싹 말라 겉으로 보기에는 쇠약해 보이는 청년의 경우였다. 구마 중에 건장한 네 명의 장정들에 의해 꼼짝 못하게 붙잡혀 있었지만, 묶인 줄을 끊어버렸고, 그를 묶어두려고 했던 두꺼운 가죽띠까지 찢어버렸다. 한 번은 쇠 침대에 굵은 쇠줄로 묶어놓았는데도 침대 한 쪽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다른 일직선이던 한 쪽은 한 귀퉁이로 구부러졌다.
많은 경우 고통을 당하고 있는 당사자(혹은 가족 중의 누군가 부마자가 있을 때 가족들)는 집안에서 나는 이상한 소음을 듣거나 복도에서 걸어다니는 소리, 문이 여닫히는 소리, 물건이 사라졌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가구나 벽을 치는 소리 등을 듣는다. 나는 이런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언제부터 고통을 받기 시작했는지, 어떤 구체적인 사건과 연결 지을 수 있는지, 혹은 접신 하는 자리에 기꺼이 참여했었는지, 점쟁이나 주술사, 무당에게 간 적이 있는지를 알아보는데 대부분의 경우가 이에 해당되었다.
이런 일을 당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이런 분야에 대해 안다는 사람의 충고대로 베개나 침대 매트리스를 뒤져보았을 때, 나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야릇한 물건들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색색의 실들, 머리카락들, 쇳조각이나 나뭇조각들, 새끼모양으로 꼰 끈, 관(冠)이나 꼭꼭 묶은 리본들, 동물 모양의 인형들, 돌 조각들, 핏덩어리 등등 … 이것들은 분명 악마의 힘을 빌린 주문에 의한 것들이다. 만약 질문의 결과가 악마의 지배세력에 의한 것으로 의심이 될 때 구마를 거행하게 된다.
그 몇 가지 예들을 나열해보자. 당연히 모든 일화들은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당사자들의 이름을 가명으로 한다. 어느 정도의 구마기도를 위해 마르따라고 하는 부인이 남편의 도움을 받아 나를 찾아왔다. 굉장히 먼 곳에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오랫동안 마르따 자매는 신경과 치료를 받았지만 아무런 호전 증세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몇 가지 질문해 본 결과, 여러 번에 걸쳐 다른 곳에서 구마기도를 받았지만,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했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즉시 구마를 거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구마가 시작되자 그녀는 땅바닥에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졌다. 그녀는 땅바닥에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졌다. 그녀는 구마 시작기도 부분에 들어가면서 "진짜 구마를 원하지 이게 뭐야, 애들 장난이야!"라고 투덜대며 떠들어댔다. 구마 경문 첫 번째 기도문인 "네게 구마 하노니"라고 시작하자 잠잠해졌다.
분명 이 경문의 첫 기도문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받은 구마기도에서 들었던 것들로서 의식에 잠재해 있었을 것이다. 기도 중 시간이 지나면서 부마자는 내가 자신의 눈을 아프게 한다고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이런 모든 행위들은 부마자들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행동들이다. 그녀가 다시 기도를 받기 위해 나를 찾아왔을 때, 지난 번 나의 기도가 그녀에게 효과를 주었는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철저하게 끝내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깐디도 신부님께 그녀를 데리고 갔다. 신부님께서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난 뒤, 그녀는 부마자가 아니라 정신과 쪽에 문제가 있으며 구마와는 상관없는 여인이라고 말씀하셨다.
14살 된 삐에르 루이지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뚱뚱하고 거대한 체구를 가졌다. 친구들이나 선생들 누구와도 그는 적응할 수 없었고, 더 이상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절대로 폭력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그의 특색 중의 하나는 책상다리를 하고 땅바닥에 앉으면 납덩어리 같아서 그 누구도 그 아이를 들어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의학적인 치료를 한 뒤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하자 깐디도 신부님께 찾아왔고, 신부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구마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완전한 마귀들린 상태인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그 아이의 특색은 싸움을 걸진 않았지만 그 아이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꼭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하면서 악을 쓰게 되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책상다리를 하고 3층 자기 집 계단 입구에 앉아 있었다. 그 건물에 살고 있는 이웃들이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그 아이를 향해 머리를 흔들어 대면서 그 자리에서 떠나라고 했지만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의 서로 다른 층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층계에 모여 삐에르루이지를 쫓아내려는 듯이 소리 지르고 떠들어 대고 있었다. 심지어 누군가는 경찰을 불렀다. 그 때 아이의 부모는 깐디도 신부님을 급히 불렀고, 경찰들과 동시에 그 집에 도착해서 그 아이를 설득시키기 위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때 경찰들이 (세 명의 젊은 경찰이 버티고 서서) "죄송합니다, 신부님 비켜서십시오. 이 일은 저희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리고는 삐에로 루이지를 옮겨 보려고 했지만 단 1mm도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흥건하게 땀을 흘리고 당황한 경찰들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망연자실해 있었다.
그 때 깐디도 신부님께서 그들에게 "모든 사람들을 집으로 들어가라고 해주십시오."라고 청하자 잠깐 사이에 온통 조용해졌다. 그런 뒤 신부님께서는 "경관들께서는 한 계단 내려서서 제가 무엇을 하는지 보시지요." 라고 말하자 그대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삐에르 루이지에게 "입도 벙긋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너를 주목하게 했으니, 이제 그 정도면 됐다. 나랑 집에 들어가자."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자 순순히 말을 들으면서 만족한 듯이 부모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삐에르 루이지에게 행한 구마는 호전적인 증세를 가져다주긴 했지만 완전히 부마에서 빠져 나오지는 못했다.(부마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려면 본인의 철저한 협력이 꼭 필요한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사례 중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전에 상당한 유명세를 타던 사람으로 몇 년 동안이나 깐디도 신부님으로부터 구마기도를 받고 있었다. 나도 그의 집을 구마하기 위해 찾아갔는데, 거기에서 그는 전혀 꼼짝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에게 구마를 행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벙어리 악마가 들어감) 그 어떤 변화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야 비로소 난폭함을 드러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는 노인이었고 현재 완전히 부마에서 해방되어 침착한 마음으로 생애를 마칠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떤 엄마가 아들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일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 아들은 어느 한 순간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해대다가 평정을 찾았을 때 자기가 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전혀 기도하지 않는 집이었고, 사제로부터 구마기도를 받는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여기던 집안이었다. 어느 날 아들이 늘 하던 대로 작업복을 입고 일터로 나갔고 엄마는 즉시 아들의 옷들을 구마사에게 가지고 가서 구마를 통한 축복기도를 받았다. 퇴근해서 돌아온 아들은 너저분해진 작업복을 벗어놓고 아무런 의심 없이 그 축복된 옷들을 입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잔뜩 화가 나서 금방 입었던 옷들을 벗는데 찢다시피 하면서 벗어 던진 뒤, 아무 말 없이 다시 작업복을 주어 입는 것이었다. 그리고 축복기도를 받은 그 옷들을 무섭도록 정확하게 알아내고 작은 자신의 옷장에서 구마를 받지 않은 다른 옷들과 가려내고 입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통해 젊은이는 분명히 구마기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었다.
두 명의 젊은 형제가 건강상의 고통과 집안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들, 특히 한 밤중 똑같은 시간에 나는 이상한 소리들 때문에 고통을 받다가 나에게 와서 축복기도(구마)를 청하였다. 그들에게 축복을 하면서 가벼운 어둠의 세력을 감지할 수가 있었고, 자주 성사들에 참여하고 열심히 기도를 드리라고 충고하였다. 또 준성사들(축성된 물, 기름, 소금)을 사용하라고 이른 뒤 다시 나에게 오라고 하고 돌려보냈다. 이들과 상담을 하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홀로 되신 할아버지를 집에 모시기로 두 형제의 부모가 결정한 때부터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상스러운 욕을 끊임없이 지껄이는 분이었고, 모든 것, 모든 사람들을 저주하고 악담을 퍼붓곤 하던 사람이었다. 토마쎌리 신부는 말하기를 집안에 상소리를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악마가 들어와 가정을 파괴 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애석해 했다. 이 케이스는 분명 이 말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악마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 속에 살고 있다.
삐나라고 불리는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악마는 다음 날 밤에 그 아이의 몸속에서 빠져나갈 것이라고 미리 선포해서 구마기도를 막으려는 작전을 쓰고 있었다. 이런 경우 깐디도 신부는 항상 악마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의사 한 명이 동석한 가운데 다른 구마사들의 도움을 받아 지체할 것 없이 그 아이에게 구마를 거행하였다. 통상 구마기도를 할 때, 부마자들을 꼭 잡기 위해 길쭉한 탁자 위에 눕혀놓는다. 이 여자 아이도 마찬가지였는데 한동안 버둥대다가 자주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떨어졌을 때,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누군가 바쳐주듯, 슬로우모션으로 천천히 떨어지면서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다. 저녁내 구마기도를 해도 안되니까 한 밤중까지 구마기도를 끝내고 난 뒤에야 구마사들은 잠시 쉬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 다음날 아침, 깐디도 신부는 6-7살 가량의 남자 아이에게 구마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남자 아이 안에 있던 악마는 깐디도 신부에게 깐죽대기 시작하였다. "어젯밤 신부님들, 정말 고생 많았수, 하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할게 뻔해, 우리가 이긴 거라구, 나도 거기 있었거든!"
깐디도 신부는 여자 아이에게 구마기도를 하면서 그 아이 안에 있는 악마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자 즉시, "쟈블론"이라고 대답하였다. 구마기도가 끝난 뒤, 어린아이에게 감실 앞에 가서 기도하라고 이른 뒤 내보냈다. 그 다음 차례 악마 들린 아이가 신부 앞에 들어왔을 때, 마찬가지로 그 악마에게 이름을 묻자, "쟈블론" 이란 똑같은 대답을 듣고, 깐디도 신부가 다시 물었다. "그럼 너는 좀 전의 그 아이 안에 있었던 놈이냐? 그렇다면 증거를 보여라. 하느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즉시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라." 그러자 그 여자 아이는 늑대처럼 울부짖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제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좀 있다가 감실에서 기도하도록 내보낸 여자 아이가 늑대처럼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이에 깐디도 신부는 "이쪽으로 당장 다시 돌아와라." 라고 소리치자 신부 앞에 있던 두 번째 여자 아이가 다시 늑대처럼 울부짖기 시작하였고, 감실 앞에 있던 아이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이 케이스는 분명한 부마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부마 상태의 어린아이들이 하는 대답들은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으로 분명한 부마를 알 수 있다. 11살 먹은 남자 아이가 부마증세를 보이자, 깐디도 신부가 상당히 어려운 질문을 하기로 하였다. "이 세상의 위대한 과학자들과 엄청난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부정하고 너 따위를 인정하지 않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자 그 아이는 즉시 "엄청나고 위대한 똑똑한 이들이라고? 웃기는 소리! 진짜 엄청나게 위대한 멍청한 자식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낫겠군!" 그러자 깐디도 신부는 악마를 은근히 지칭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의식적으로 하느님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 너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자 그 작은 남자 아이는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너 말조심해. 우리 악마들은 자유에 대한 권리를 심지어 그분 앞에서까지 고집했단 말이다.
우리들은 절대로 그분을 인정하지 않는단 말이다." 구마사는 급히 "야, 하느님 앞에서 자유의 권리를 요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봐. 내가 하느님 앞에서 먼지만도 못하듯, 너 또한 하느님으로부터 쫓겨 나왔을 때부터 먼지만도 못한 놈이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니? 그런 네 놈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하느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당장 네가 행한 착한 일이 있다면 어디 좀 대봐? 당장 이실직고 해봐, 어서?" 그놈은 잔뜩 악의와 공포를 품고서 몸을 비틀고 거품을 물면서 무섭게 울기 시작했는데, 11살 먹은 아이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을 했다. "나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마! 하지 말란 말야 제발!"
많은 이들은 정말 분명하게 악마와 말할 수 있느냐고 물어오곤 한다. 위의 경우에서 본바와 같다. 또 다른 일화를 보자.
두 명의 사제들도 동석한 자리에서 깐디도 신부는 17살 된 시골출신 여자 아이에게 구마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이 아이는 사투리만 사용하여 표준 이탈리아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사탄의 정체가 밖으로 드러났을 때 두 명의 사제들은 지칠 줄 모르고, 그 정체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깐디도 신부는 라틴어로 된 구마경문을 계속하다가 희랍어로 악마를 향해, "입 닥치지 못해!"라고 소리 지르자 그 여자 아이는 즉시, 깐디도 신부님 쪽으로 잽싸게 고개를 돌리고 "야, 왜 나한테 입 닥치라고 하지? 짜증나게 물고 늘어지는 저 두 놈에게 먼저 입이나 닥치라고 해보시지!"
깐디도 신부는 모든 연령층에 있는 부마자들에게 질문하셨지만, 특별히 어린 부마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을 더 좋아했다. 왜냐하면 연령층에 맞는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속에 있는 그 정체를 꾸밈없이 드러내기 때문에 악마의 실체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느 날 깐디도 신부는 악마 들린 13살 된 여자 아이에게 "이 세상에서 서로 죽도록 증오하면서 살던 두 명의 원수가 지옥에 떨어졌을 때 영원토록 그곳에서 같이 지내야하는 상황에 두 명의 관계는 어떠냐?" 하고 물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너는 참, 멍청하기 그지없구먼! 저 밑의 세상은 각자 자신 안에 웅크리고 살면서 자신의 죄로 갈기갈기 찢겨 산단 말이다. 그 어떤 누구와의 관계도 존재할 수 없는 곳이지. 각자 엄청난 고독 속에 빠져서 자신이 범한 죄 때문에 절망적으로 울부짖는 곳이다. 공동묘지와 같다는 것을 모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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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아모르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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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미신을 믿는 행우는 마귀를 자신속으로 끌어 들이는 행동이라 고인이 되신 울아버님 그리 가르키셧지요. 예를 들어 점을 본다든가 ...
가끔씩 주변을 돌아보면 점보는분들도 거짓말아니고 정답을 맞추기도 하더라구요. 어느땐 저두 솔깃할때가 있지요. 마귀는 끈어버리지 안으면 달라 붙는다더군요.
마귀의 유혹을 끈어버립니까? 네 묵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