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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를 왜 영적 음행자요 이단종파라 하는가 | ||||||
[ 이단연구 / 김홍기 ] 지방교회(위트니스 리) 교리 비판 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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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목사 / 캐나다록키침례교회 담임, 교회부흥성장연구원장
역대의 모든 교파의 생성과 성장의 역사는 지도자들의 부침과 거의 궤를 같이 한다. 이 원리는 중국에서 시작된 지방교회 운동의 발전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방교회는 두 명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 즉 창시자 워치만 니와 계승자 위트니스 리에 의해 무려 77년(1920년-1997년)을 이끌려 왔다. 지도력의 교체와 관련된 큰 갈등이 없이, 동일한 가치와 방향을 가진 두 명의 강력한 지도자들에 의해 이끌리며 77년을 지속한 운동의 결과를 생각해 보라! 이 같은 지방교회의 역사는 미국의 댈러스 시에 위치한 제일침례교회(First Baptist Church)의 역사에 비견될만하다. 제일침례교회는 약 100년 동안(1897-1995) 단 2명의 목회자에 의해 이끌리며 세계적인 교회로 발돋움했다. 이 교회는 위대한 설교자 조지 트루엣 목사(목회기간: 1897-1944)의 영적 지도력 아래서 미국의 남침례교회 중 가장 영향력 있고 큰 교회로 발전했고, 탁월한 설교자인 크리스웰 목사(목회기간: 1944-1995)의 목회 지도력 아래서 세계의 남침례교회 중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었다. 필자의 이전 글에서 지적한 바처럼 계승자 리는 창시자 니의 가르침을 심화 발전시킨 면도 있고, 니의 가르침을 과격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이단적으로 만든 측면도 있다. 이 두 사람의 주장과 교리는 설교 형태로 주어졌고 세심하게 기록으로 남겨져 지방교회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지도자는 독서가’(A leader is a reader)라는 말처럼 니는 독서광이었고, 리 역시 니의 책들의 출판을 담당하며 책에 심취했었다. 이러한 독서광 지도자들의 모든 가르침이 책들로 출판되고 온라인으로 전세계의 독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점은 지방교회 운동의 성장의 중요한 비결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니와 리의 가르침은 지방교회 운동의 토양이자 자양분일 뿐 아니라 지방교회의 신조이기도 하다. 워치만 니는 교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지방교회를 찾아오면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로 대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소위 ‘교파 그리스도인들’이 지방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은 철저하게 금하라고 가르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지방교회의 강단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지방교회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지방교회의 교리와 다른 것은 일절 가르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교회에도 예외는 있다. 예를 들어 지방교회의 열혈 옹호자인 CRI의 회장 행크 해너그래프가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의 한 지방교회에서 강연(유투브에 게시됨)을 한 것이다. 해너그래프의 강연은 그러나 철저하게 워치만 니에 관한 칭송으로 일관된 것이다. 즉 지방교회는 지방교회의 신조와 다른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방교회가 철저하게 신조 중심으로 무장된 ‘교파’임을 보여준다. 지방교회는 자신들을 종파(sect)나 교파(denomination)로 칭하면 펄쩍 뛴다. 그러나 복음주의 신학사전의 다음과 같은 정의에 의하면, 지방교회는 명백한 종파이다. “종파들(sects)은 종종 그들의 조직의 배타적인 주장들뿐 아니라 삼위일체에 관한 4세기의 이해(understanding)에 동의하기를 거부함으로 그들 자신을 구별 짓는다”(Walter A. Elwell,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 310). 리는 삼위일체에 관한 니케아 신조의 이해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리가 니케아 신조를 ‘준(準)삼신론’을 표방하는 교리로 폄하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되는가? 이러한 사실이 잘 믿겨지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리의 주장을 주의 깊게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삼위일체에 관한 전통적인 설명(The traditional explanation of the Trinity)은 대단히 부적절하며 거의 삼신론과 같다(borders on tritheism).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합쳐졌을 때(joined with us), 하나님은 뒤에 남겨지신 것이 아니었고 그리스도도 보좌에 남아 계시지 않았다. 이것이 기독교(Christianity)가 주는 인상이다. 그들은 아버지가 한 위이시며 다른 위이신 아들을 보내사 구속을 성취하셨고, 그 후에 아들이 또 다른 위이신 성령을 보내셨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생각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보좌에 남아 계시고 성령이 신자들 속에 오신 것이다. 신자들이 기도할 때, 그들은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 앞에 고개 숙여 기도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하나님을 이렇게 분리된 위들(separate Persons)로 가르치는 것은 성경의 계시가 아니라 니케아 신조의 교리이다."(To split the Godhead into these separate Persons is not the revelation of the Bible, but the doctrine of the Nicene Creed). (Witness Lee, Life Messages, Vol. 2 (#42-75), Chapter 19, Section 2) 위의 인용문에 기술된 ‘전통적인 설명’ (The traditional explanation of the Trinity)과 ‘기독교’ (Christianity)는 다름 아닌 ‘니케아 신조의 교리’를 가리킨다. 더 나아가 ‘니케아 신조의 교리’를 신봉하고 가르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또한 ‘거의 삼신론과 같다’(borders on tritheism)는 말은 달리 표현하면 ‘준(準)삼신론’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면 리는 AD. 325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정통교리로 인정되어 온 니케아 신조를 왜 ‘준(準)삼신론’을 표방하는 신조로 정죄하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래와 같은 니케아 신조의 내용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 ...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하나이시고(being of one substance with the Father) ... 하늘로부터 내려 오셨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by the Holy Spirit)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고, 본디오 빌라도의 통치 아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며, 고난을 받고 묻히셨고, 성경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사 하늘에 오르시어 아버지 오른편에 앉아계시다가,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리라."(인용 출처: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1169, 번역은 필자의 것) 니케아 신조의 이 부분은 그리스도의 지상과 하늘에서의 활동과 임재를 묘사한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동일하시고, 따라서 본질적으로 ‘하나로 존재하고 계심’을 보여준다. 또한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강생하셨음을 증언한다(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한 출생은 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한 삶의 활동을 강력히 시사함). 이처럼 니케아 신조는 아주 분명히 아들은 아버지와 분리하여 존재하시거나 성령과 분리하여 활동하시지 않음을 선언한다. 그런데 리는 왜 니케아 신조가 ‘분리된 위격들(separate Persons)’을 말하고 있으며, 따라서 ‘준(準)삼신론’을 가르치고 있다고 함부로 주장하는가? 리는 왜 니케아 신조가 본질적으로 ‘하나된 위격들’을 선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은 도외시한 채 니케아 신조가 ‘분리된 위격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제멋대로 주장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지방교회의 이단적인 ‘상호내재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참조. 필자의 글 ‘정통 삼위일체론을 삼신론으로 정죄한 지방교회’). 리의 주장을 따르면 결국 니케아 신조는 ‘준(準)이단 신조’로 전락하게 되고 만다. 게다가 지방교회는 ‘분리된 위격들’은 ‘다신론’이라고 정죄함으로 말미암아 니케아 신조를 ‘준(準)이단 신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단 신조(heretical creed)’로 둔갑시켜 버린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지방교회가 ‘이단 종파’(heretical sect)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방교회는 분명히 이단 종파이다. 그러나 교파에 대한 리의 정의(定義)에 비추어 볼 때 ‘지방교회는 영락없는 교파’이기도 하다. 리는 교파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으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한 교파는 다음을 가지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모든 자녀를 포함하지 않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a name that does not include all the children of God). 둘째, 중심을 이루는 어떤 특정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a particular truth as its center).” 셋째, 하나님의 모든 자녀를 포함하지 않는 하나의 교제권을 가지고 있다."(a fellowship which does not include all the children of God). (Watchman Nee, Collected Works of Watchman Nee, The (Set 2) Vol. 25: Collection of Newsletters (1), Chapter 5, Section 5) 리는 여기에 다음을 덧붙인다. “만약 어떤 그룹이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교파이다(If a group has any one of these three things, it is a denomination)”(Ibid.) 지방교회는 다른 교파들과 마찬가지로 ‘중심을 이루는 어떤 특정한 진리’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 리는 그것을 ‘계시’라고 포장한다. “주님은 우리가 성경 안에 있는 많은 계시를 받게 하셨다(The Lord has caused us to receive much revelation in the Bible.).” (Witness Lee, The Issue of the Union of the Consummated Spirit of the Triune God and the Regenerated Spirit of the Believers, Chapter 6, Section 3). 그러면 지방교회가 받은 “계시,” 즉 ‘지방교회의 독특한 교리’를 가지고 지방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리는 이와 관련하여 지방교회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격문을 띄운다. "이것은 치열한 전쟁(a fierce warfare)이다. ... 우리는 전통적인 신학의 사소한 것들이 아닌 근본적인 것들을 반박하고 수정해야 한다(We should refute and correct traditional theology, not in minor points but in the fundamental points). 오늘날 우리는 유대교, 카톨릭, 개신교, 기독교를 대항하여 주님의 회복의 증언을 한다. ...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특별한 사명이다."(Witness Lee, The Governing and Controlling Vision in the Bible, Chapter 3, Section 4) 교파에 관한 리의 정의(定義)에 비추어 보면 ‘지방교회는 틀림없는 교파’이다. 지방교회는 ‘중심을 이루는 어떤 특정한 진리,’ 즉 확실한 신조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확실하고 독특한 신조들은, 십계명이 돌판에 새겨져 있었던 것처럼, 니와 리의 가르침을 담은 책들과 온라인 글로 보존되어 선포되고 있다. 지방교회는 말로는 일치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신조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결코 강단을 개방하지 않는 지극히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구조를 가진 교파이다. 교파로서의 지방교회여, 당신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일치를 원한다면 먼저 당신 자신들의 교리부터 버리라! 니와 리의 교리부터 우선적으로 제거하라! 그들의 책들과 온라인 가르침들을 완전히 없애라! 그렇게 한 후에 당신들이 말하는 바와 같은 일치를 논하라. 설교자가 되기 전에 먼저 언행부터 일치시키라. 마땅히 취할 행동은 하지 않고 독설만 일삼는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들이 되지 말라! 지방교회는 2010년에 이르러 한기총 이대위 7인 소위원회에 “본질적인 것들은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들은 자유를! 다른 모든 것들은 자비를!”이라는 원칙을 제시하며 자신들에 관한 재평가를 호소했다(DCP Korea, 재평가된 지방교회, 289). 물론 정통교리를 전제로 한 것이라면 이것은 잘못된 것이 없다. 그러나 지방교회가 자신들의 일탈적이며 이단적인 교리를 기초로 일치를 하자고 하면 문제가 된다. 이에 관해 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두 가지 질문을 해보자. 첫째, ‘본질적인 것들’은 무엇인가? 둘째, “일치”를 도모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본질적인 것들’을 생각해 보자. 성경이 가르치는 ‘본질적인 것들’에 삼위일체(Trinity)에 관한 가르침이 포함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Alan W. Gomes, Unmasking the Cults, 7). 따라서 삼위일체 교리에 관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일치해야 하는가? 물론 장구한 세월에 걸쳐 정통교회가 신봉해 온 성경적인 정통 삼위일체론에 기초해서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정통 삼위일체론을 이미 삼신론으로 정죄했기 때문에 정통 삼위일체론을 기초로 해서는 일치할 수 없다. 게다가 “이것은 치열한 전쟁이다. ... 우리는 전통적인 신학의 사소한 것들이 아닌 근본적인 것들을 반박하고 수정해야 한다. ... 오늘날 우리는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 기독교를 대항하여 주님의 회복의 증언을 한다. ...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특별한 사명이다”(Lee, The Governing and Controlling Vision in the Bible, Chapter 3, Section 4)”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지방교회는 정통교회와 일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일치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지방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교회가 ‘일치를!’이라는 깃발을 올릴 때 그것은 정통교회에 대한 치열한 교리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방교회가 왜 자기의 길을 가로막는 정통교회의 비판자들에게 그토록 호전적이고 가혹하며 난폭하고 집요한지를 잘 설명해 준다. 교리 전쟁도 엄연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리 전쟁은 종종 모든 종류의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쟁이 되곤 한다. 지방교회가 ‘일치를!’이라고 외치면 외칠수록 교리 전쟁은 더 잔혹해진다. 지방교회가 ‘일치를!’이라고 호소하면 호소할 수록 정통교회의 심장에서는 더 많은 검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지방교회는 교파들이 ‘중심을 이루는 어떤 특정한 교리’를 버리고 몸의 일치를 추구하자고 호소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들이 만든 비성경적이며 이단적인 교리들을 꽉 움켜쥔 채 정통교회를 대항하여 전쟁을 일삼고 있다. 지방교회는 정통교회와의 치열한 교리 전쟁을 위해 태어난 종파이다. 지방교회는 포연이 자욱하고 선혈이 낭자한 교리 전쟁터를 피 묻은 창검을 휘두르며 사납게 질주하는 종교적 몽골인들이다! 지방교회는 가장 가혹하고 난폭한 표현들, 예를 들어 ‘삼신론자, 죄, 영적 음행, 배교, 바벨론적, 큰 바벨론, 음녀, 사탄적 조직’ 등의 다양한 용어들을 날선 도끼로 사용하여 정통교회의 머리와 심장을 가격하기를 좋아하는 교리적 바이킹들이다! 지방교회는 소위 ‘교파 교회들’은 영적 음행을 자행하는 사악한 무리요 배교한 집단으로서, ‘큰 바벨론’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전 글(‘좌충우돌하는 지방교회의 처절한 교리 전쟁사 2’)에서 이러한 주장을 담은 리의 진술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우리는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독교 세계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교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은 큰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언이다. 기독교는 무너졌다. 기독교 세계는 무너졌다. 카톨릭교는 무너졌다. 그리고 모든 교파들은 무너졌다. 할렐루야!”(Witness Lee, The Seven Spirits for the Local Churches, 97) 이에 대하여 지방교회측은 필자에게 보내온 3차 반론에서 다음과 같이 항의를 표했다. 김목사는 습관적으로 위트니스 리 1차 본문을 왜곡시켜 동료 믿는 이들 사이에 불필요한 적대감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위트니스 리가 계시록 17장 5절의 ‘큰 바벨론’, 3장 8절의 ‘나의 이름’을 해석하면서 언급한 “큰 바벨론” 혹은 “배교한(변절한) 교회”는 로마 천주교를 지칭한다(회복역 성경 계3:8 각주 3참조). 그럼에도 오픈 레터 입안자들은 교묘하게 1차 자료의 중간 내용을 삭제하고 양쪽 끝을 이어서 짜집기한 후 “변절한 교회”가 마치 전체 기독교계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노먼 가이슬러는 지금도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분노에 사로잡혀 있고, 김목사는 1차 토론 과정에서 이 점을 알게 되었음에도 “정통 교회를 ‘큰 바벨론’으로 정죄한 리의 비판은 정통 교회에 대한 건강한 비판의 수위를 한참 넘어선 것이다”, “게다가 정통교회를 배교한 교회로 비판하는 것은 신학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지방교회의 위와 같은 항변은 그러나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그 첫째 이유는 이러한데, ‘오픈 레터 입안자들’이 ‘교묘하게 짜깁기 한 것’이라고 지방교회가 함부로 주장하는 리의 진술은 ‘기독교(혹은 기독교 세계)와 가톨릭’을 동일 선상에 올려 놓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가 앞서 ‘큰 바벨론’이라는 용어를 가톨릭을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고 변명을 해도 리의 진술이 혼동을 유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더 나아가 인용한 본문의 문맥에서 리가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를 ‘큰 바벨론’으로 지칭하고 있다는 사실도 명약관화하다. 이와 같은 입장은 리가 다른 진술들에서 개신교와 가톨릭을 ‘큰 바벨론’과 동일시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분열들과 교파들은 큰 바벨론 안에서 완성된다”(Life-study of Genesis, 463). 또 다른 진술을 보자. “바벨론이 무너졌다. ... 가톨릭이 무너졌다, 그리고 모든 교파들이 무너졌다”(The Seven Spirits for the Local Churches, 97). 둘째로, “오픈 레터 입안자들은 교묘하게 1차 자료의 중간 내용을 삭제하고 양쪽 끝을 이어서 짜집기한 후 '변절한 교회'가 마치 전체 기독교계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지방교회의 변명은 중상모략이다. 그리고 “노먼 가이슬러는 지금도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분노에 사로잡혀 있고”라는 말도, “김목사는 1차 토론 과정에서 이 점을 알게 되었음에도”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지방교회의 주장 역시 근거 없는 중상모략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리는 개신교와 가톨릭과 동방정교 모두를, 즉 세상의 모든 기독교인들을 싸잡아 ‘큰 바벨론’으로 정죄한 분명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리의 다음과 같은 진술을 보라. "계시록 17장과 18장에서 우리는 큰 바벨론, 즉 배교한 기독교 세계(Christendom) 위에 임하는 심판을 본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 외에 주님은 기독교 세계(Christendom), 즉 큰 바벨론을 특별히 심판하실 것이다."(In Revelation 17 and 18 we see the judgment on the great Babylon, which is apostate Christendom. Besides His judgment upon the whole world, the Lord will execute a special judgment upon Christendom, Babylon the Great.)(Witness Lee, Revelation, 22) 지방교회는 교파에 대한 리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영락없는 교파’이다. 따라서 정통교회를 공격하는 일에 사용하는 지방교회의 무지막지한 용어들은 곧 지방교회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즉 지방교회는 ‘영적 음행’을 하는 자들이요 ‘배교한 자들’이며 ‘큰 바벨론’이요 ‘음녀’인 것이다. 결국 지방교회는 자신이 만든 자루가 썩은 도끼로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만 것이다! 지방교회는 이단이라는 비판을 받으면 펄쩍펄쩍 뛴다. 그들은 정통교회라는 말은 종교적 기득권자들이 그들의 항의자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서 만든 용어 및 개념으로서 비성경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정통교회(혹은 정통)의 개념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정통(혹은 정통교회)은 무엇을 뜻하는가? 정통을 정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통이 아닌 것을 먼저 정의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통과 상반되는 개념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이단이다. 그러면 이단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미국의 탈봇신학대학원의 교회사 교수인 알란 곰즈는 이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기독교의 이단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 성경 66권에서 가르치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교리들(central doctrines)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을 (명백하게 혹은 암시적으로) 부정하는 한 개인 혹은 한 무리의 지도자들 혹은 조직으로부터 배운, 어떤 특별한 교리 체계를 신봉한다."(A cult of Christianity is a group of people who claim to be Christian, yet embrace a particular doctrinal system taught by an individual leader, group of leaders, or organization, which (system) denies (either explicitly or implicitly) one or more of the central doctrines of the Christian faith as taught in the sixty-six books of the Bible.)(Alan Gomes, Unmasking the Cults, 7) 그러면 정통교회(orthodox church)는 누구인가? 답은 이단의 정의를 뒤집어 보면 바로 나온다. 즉 정통교회는 성경 66권에 계시된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교리들’(central doctrines)을 공유하는 교회들(여기서는 정통 개신교)을 의미한다. 정통교회들은 예정론과 미정론으로 신학적 해석이 갈릴 수 있다. 무천년설과 전천년설로 나누일 수도 있다. 세례와 침례로 방법론에 차이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인한 구원’과 ‘그리스도의 가시적인 재림’ 및 ‘교회 의식이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다’는 신조에 있어서는 완전히 일치한다. 즉 정통교회들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교리들’에 있어서는 일치하지만, ‘비본질적인 교리들’에 한해서는 개인의 이성과 양심을 따를 자유를 부여한다. 가톨릭은 정통교회의 개념을 종교개혁 이전의 개혁자들과 16세기의 개혁자들 및 그 이후의 개신교회들을 박해하는 일에 심히 악용했다. 가톨릭의 박해는 교회사뿐 아니라 인류사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정통교회의 개념과 실존’은 카톨릭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AD. 325년 아리안주의에 대처하기 위해 당시의 초대교회들이 니케아에서 회의를 개최했을 때, 교회사가 케언즈에 의하면, “250명에서 300명 정도의 교회 감독들이 참석했는데 제국의 서쪽 지역으로부터는 10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Earle E. Cairns, Christianity through the Centuries, 126). 즉 정통교회는 가톨릭이나 혹은 어떤 특정한 종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유산인 것이다. 따라서 정통 개신교도 있고, 정통 루터교회도 있으며, 정통 개혁교회도 있고, 정통 침례교회도 있으며, 정통 복음주의 교회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통교회(여기서는 정통 개신교)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교리들’을 공유하며, 초대 교회의 ‘성경적인 신조들’(creeds) 역시 공유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복음주의 변증학자인 노먼 가이슬러는 그래서 초대교회의 신조를 정통의 한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일탈한’이라는 용어는 문자 그대로 ‘일반적으로 인정된 기준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서[A Response to the Christian Research Journal’s Recent Defense of the “Local Church” Movement]의 문맥에서, 어떤 교리가 성경과 초기 그리스도인의 신조들에 기초한 역사적인 그리스도인의 정통 신앙을 훼손하거나 이 정통 신앙과 심각한 긴장 관계를 유발할 때, 우리는 그 교리를 일탈한 것이라고 말한다(The term “aberrant” literally means “departing from an accepted standard.” In the context of this document, a doctrine is said to be aberrant if it undermines or is in significant tension with the orthodox beliefs of the historic Christian faith as based in the Bible and expressed in the early Christian creeds.). (Geisler and Rhodes, A Response to the Christian Research Journal’s Recent Defense of the “Local Church” Movement , 1) 지방교회는 초대교회가 공유한 정통 교리를 선언한 니케아 신조가 ‘분리된 위격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함부로 주장한다. 그러나 지방교회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니케아 신조는 ‘분리된 위격들’이 아닌 본질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된 위격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 ...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하나이시고(being of one substance with the Father)”라는 니케아 신조의 한 진술이 확증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지상과 하늘에서의 임재와 활동에 관한 니케아 신조의 묘사는 성경의 계시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지방교회가 이러한 설명을 ‘분리된 위격들’로 이해하는 것은 그들의 시각이 그들이 창안한 ‘이단적인 상호내재론’(‘정통 상호내재론’과 근본적으로 다름)에 의해 심히 굴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굴절된 시각은 지방교회가 니케아 신조뿐 아니라 성경의 설명 자체를 ‘분리된 위격들’로 보고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지방교회는 분명히 양태론의 시각으로 성경의 진술과 니케아 신조를 보고 있다. 지방교회의 이러한 양태론적 시각과 그 치명적 위험성은 웨인 그루뎀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 잘 나타나 있다. "양태론의 치명적인 결함은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나타나는 삼위일체 안에서의 위격적인 관계들(personal relationships within the Trinity)을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혹은 이것들은 단순히 환상이거나 실제가 아니라고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태론은 예수님이 세(침)례 받으시던 장소에서 아버지는 하늘에서 말씀하시고 성령은 예수님 위에 비둘기처럼 내리심을 통하여 계시된 분리된 삼위(three separate persons)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태론은 예수님이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모든 경우들을 하나의 환상(an illusion) 혹은 하나의 가식(a charade)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 혹은 성령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는 개념이 상실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태론은 궁극적으로 대속의 교리의 핵심을 잃어 버린다. 즉 하나님이 대속의 제물로 아들을 보내셨다는 개념과,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셨다는 개념 및 삼위일체의 이해관계를 대표하시는(representing the interests of the Trinity) 아버지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시고 만족하셨다는 개념을 잃어버린다(사 53:11)." (Grudem, Systematic Theology, 242) 위의 인용문에서 그루뎀이 말한 “분리된 삼위(three separate persons)”라는 표현은 ‘구별된 삼위’를 강조한 표현이다.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의 명문인 트리니티 신학대학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수십 년간 조직신학 교수로 봉직했던 그루뎀이 정통 삼위일체론자인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흥미롭게도 지방교회는 그루뎀 교수의 주장을 자신들의 양태론 이단 교리를 뒷받침하는 일에 종종 활용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지방교회가 종종 자행하는 ‘파렴치하고 기만적이며 사기적인 글쓰기 행태’를 잘 보여준다. 성경의 계시와 니케아 신조가 공동으로 선언한 본질상 분리될 수 없는 ‘하나된 위격들’을 자신들의 이단적인 상호내재론을 통하여 ‘분리된 위격들’로 둔갑시킨 지방교회는 분명한 이단이다. 그들은 성경이 선언하고 정통교회가 신봉하는 삼위의 ‘본질적 하나됨’을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의 계시와 이에 따른 정통 교리를 이단 교리로 정죄하는 자는 이단이다. 따라서 지방교회는 명백한 이단 종파인 것이다! 지방교회는 ‘중심을 이루는 어떤 특정한 진리,’ 즉 확실한 신조들을 가지고 있다. 이는, 교파에 대한 지방교회의 정의에 따르면, 지방교회가 교파라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교파는, 지방교회의 주장에 의하면, 죄요 영적 음행이며 배교일 뿐 아니라 큰 바벨론이고 음녀이다. 따라서 지방교회의 주장에 의하면, 지방교회는 영적 음행자이고 배교자이며 큰 바벨론이고 음녀이다. 그러므로 지방교회는 들으라! 당신들은 정통교회를 분열시키는 ‘영적 음행자’이다! 당신들은 정통 교리를 떠난 ‘배교자’이다! 당신들은 정통교회를 혼돈시키는 ‘큰 바벨론’이다! 당신들은 정통 교리를 타락시키는 ‘음녀’이다! 호세아 8장 7절의 말씀처럼, 지방교회는 지금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고” 있다. < 계속 >
○ 필자 김홍기 목사 소개 미국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철학박사(Ph.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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