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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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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
송근영 동시집 / 오늘의 문학사(2016.01.01) /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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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자 말 한 마디가
송근영
즐거운 추석 명절도 지났다.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
손자 말 한 마디가
가족 사랑을 가슴마다
새삼 찡하게 안겨 주었다.
“아이고, 내 새끼, 내 손자가
이런 예쁜 말이 어디서 나올까?‘
“이 녀석 눈 똑바로 박힌 것 좀 봐요.
큰 일 할게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은 끝이 없다.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든다.
이웃 할머니
송근영
두 집 건너 사시는 할머니 친구
아침나절에 꼭 놀러 오신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가만히 할머니 귀에 대고 속삭인다.
“강아지는 눈 떴어?”
“글쎄, 나도 모르지.”
별것을 다 걱정하신다.
하느님 마음이나 무엇이 다르랴.
바쁘다 바빠
송근영
해질녘 소나기는
바쁘다 바빠!
앞산을 성큼
동네 가까이
옮겨 놓으랴.
소나기 줄기
타고 올라온
미꾸라지
하늘 구경 시키랴.
길게 뻗은 저녁놀
곱게 물들이랴.
바쁘다 바빠!
재주 많고
성질 급한 소나기.
아기 눈
송근영
초록 초록
산과 들이 초록
흘러가는 강은 초록 물.
해맑은 눈망울로
이 곳 어 곳 살피는
아기 마음도 초록.
초록 눈에 찍힌
푸른 세상
밝은 세상
깨끗한 세상.
엄마 생각
송근영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가 된다더니
그 말이 꼭 맞다.
왠지
허전하고
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다.
가뜩이나
아플 땐
아이고, 엄마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문득 어릴 때 보았던
울며 엄마 품을 떠나던
송아지 생각이 난다.
음매! 음매!…
나도 울면 안 되는 걸까?
봄 소풍
송근영
소풍 가던 날
선생님께서 나누어 주신
눈물 젖은 시루떡!
꿀맛, 비로 그것이었다.
그 가난했던 시절
봄 소풍 몇 달 전부터
끼니 때마다
한 수저씩 모은 쌀로
사모님께서 만든 떡이었다.
“천천히 먹어라. 체할라.”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평생 두고 어찌 잊으랴!
‘지금도 이런 성생님이 계실까’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눈꽃
송근영
초저녁부터
차분하게 눈이 내린다.
어두워가는 밤을
환하게 밝히면서
반가운 눈이 자꾸만 내린다.
이 나무 저 나무
앙상한 가지마다
하얀 눈꽃을 피우기 위해
온 재주를 다 부린다.
밤새 쌓인 눈
세상을 온통 바꾸어 놓았다.
눈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축복의 기도를 한다.
짝꿍
송근영
학년이 바뀔 때마다
반 편성을 해로 한다.
나는 5학년 1반
여자 짝꿍은 7반
갈라놓아 서운하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는 척하고
7반 복도를 서성거린다.
짝꿍 눈과 마주치는 순간
왠지 기분이 좋다,
‘내년에는
꼭 같은 반으로 해 주세요.’
하느님께 기도를 한다.
책 읽는 소리
송근영
책은 선생님과 똑 같습니다,
들고서 펼 땐 가볍게 고개를 숙입니다.
눈과의 거리 30cm는 꼭 지킵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책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재미가 솔솔 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에 와 닿습니다.
큰 소리로 읽으면 흥이 돋아납니다.
신이 나서 읽으면 저절로 가락이 생깁니다.
자꾸자꾸 읽으면 그만 내 것이 되고 맙니다.
동산에 올라 가슴을 펴고
멋들어지게 외웁니다.
마음이 트이고
하늘 높이 올라갈 것 같습니다,
글맛이 이렇게 좋은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개나리
송근영
기다렸던 봄이 왔다고
개나리가
눈부시게 피었다
자세히 보니
정말 노랗고 곱다.
잎은 4개
받침대 2개
바늘같이 생긴 대롱
앙증맞고 예쁘다.
벌과 나비가
꿀을 빨아먹고 싶다.
개나리 꽃동산
우리들의 놀이터
너도 나도 꽃이 되었다.
노랗게 물이 들었다.
코스모스
송근영
봄 여름내
1m 이상으로
키가 훌쩍 자란 코스모스
자세히 보니
곁가지가 많고
잎은 가늘게 갈라져 있다.
꽃은 하양 분홍 진분홍
볼수록
맑고 곱고 은은하다
바람에 살랑살랑
손도 잘 흔들어
오가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살랭이꽃.
세 사람
송근영
첫 휴가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날 아침
우리 손자 다 컸구나
다 크다 말고
철이 나야지요
역시 사나이는 군대 생활을 하여야
사람이 되지.
할아버지 할머니의 한 말씀 한 말씀이
아버지 어머니의 한 말씀 한 말씀이
찡하고 가슴에 와 닿는다.
제대하고 돌아올 땐
철도 나고 속도 꽉 찬
그런 사나이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충성!
동시 빚기
송근영
동시가 뇌 어느 구석에
꼭꼭 숨어 있는지
좀처럼 찾아낼 수가 없다.
머리를 쥐어짜고 또 짜도
아무런 느낌도 떠오르지 않는다.
먹통이 되었을까,
왠지 초조하다.
하도 답답한 나머지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답해 오기를, 머리를 식히라고 한다.
아 그렇구나!
좀 느긋해 보자.
급하게 서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때가 되어
엄마가 예쁜 아가를 낳듯이
나도 언젠가는
둘도 없는 참 좋은 동시를
낳을 것이다.
어머님
송근영
엉클어진 살몽당이
한 울 두 울
풀어 가시는 손놀림은
너무나도 차분하셨다.
항상 나지막한 말씀으로
“으뜸가는 공부는
참는 공부이니라.”
일깨워 주셨다.
어렵고 힘들 땐
어머님 생각
그 깊은 가르침을
잊을 수 없다.
우리 어머님
마음씨는
박속만큼 깨끗하셨다.
봄이 오는 길
송근영
동장군님!
그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세요.
그 두터운 외투도 벗을 때가 되었어요.
훨훨 털고 일어나세요.
어찌 그리 성급한가.
때가 되면 자리를 내놓을 터인데
앞내 언덕 위에 개나리에게도 알리고
뒷동산 진달래에게도 기별을 하고
너 오기만을 손곱아 기다리고 있었단다.
봄길 찾아오느라고 고생 많이 했지?
발이 부르트지나 않았나 모르겠다.
꽃과 새
산과 나무
모두 네 차지다.
이 나라 금수강산을 마음껏 노래 불러라.
훨훨 춤을 추어라.
그러면 그렇지
송근영
운동회 하는 날 아침
구름이 끼고
비가 올듯 말듯
속이 탔다.
하늘도 고맙게
비는 오지 않고
옅은 구름이 하루종일
천막 역할을 해 주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조례대에 올라선 교장 선생님
“그러면 그렇지! 그러면 그렇지!”
“우리들이 운동화를 하는데
감히 비가 올소냐!”
우리도 큰 소리로
“그러면 그렇지! 그러면 그렇지!”
입을 모았다.
한동안
학교에서
‘그러면 그렇지!’가 유행되었다.
가을 바람
송근영
가을 바람은
약손이다.
우리 아가
여름내 물러 고생한
사타구니와 엉덩이를
보송보송 고쳐 놓았다.
따사한 햇살을 움켜쥐고
방실방실
네 활개를 치며
산들바람과 함께
잘도 놀고 있다.
나무도 운동을 한다
송근영
나무도 운동을 한다.
바람이 선생님이다.
나무들 한시도 놓아주지 않는다.
맨 꼭대기
잎사귀부터 운동을 시작한다.
심장에서 먼 곳부터
움직이는 것이 순서다.
운동을 하면
피돌림이 활발해진다.
살랑살랑, 살랑살랑
저 높은 곳 잎사귀 끝까지
영양분이 쭉 타고 올라간다.
피가 돌듯이
“얼마나 맛있을까?”
손글씨
송근영
하고 많은 말 중에서
하나만 딱 고르라고 한다면
어머니라는 낱말을 고르겠어요.
모처럼 손 글씨로
또박또박 정성 들여
100번을 썼어요.
연필 깎는 솜씨
바로 잡는 것
손 글씨가 제법이라고
아빠로부터 칭찬을 받았어요.
“글씨는 그 사람의 거울이다.”
할아버지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저도 할아버지처럼 손글씨로
일기를 쓰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닮은 얼굴
송근영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하루 종일 주고받으시는 말씀이
별로 없으시다
젊어서 많이 말씀을 나누셨기에
그 밑천이 다 떨어진 모양이시다.
“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서로 아무 말씀도 안 하세요?”
“우리 사이는 말을 하지 않아도
눈만 봐도 다 알고 있단다.”
어려운 말씀을 하시며
웃으시는 모습이 똑 같으시다.
오래 사시면
서로 닮는 모양이시다.
“오래오래 사세요.
더욱 좋은 세상 온데요.”
외갓집
송근영
외갓집!
무턱대고 좋다.
엄마의 친정집
아빠의 처갓집
어쩐지 정이 간다,
전학 온 새 친구
무슨 말 끝에
외갓집이 대전이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갑자기 우리 사이가 좋아졌다.
오는 여름방학엔
똑 같은 엄마의 고향
대전으로 놀러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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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동시를 쓰는 마음
동시를 쓰다 보니, 그 동안 때가 묻은 마음이 서서히 벗겨지고, 진짜 나를 찾았구나 하는 묘한 기분이 들어 혼자 미소 짓는 때가 잇습니다. 삶의 의미에 대하여 비로소 눈을 떴다고나 할까요.
한 마디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동심으로 살고 싶습니다., 아흔을 넘고 보니, 이제야 겨우 철이 드나 봅니다. 거짓 없는 순수한 어린이 마음으로 돌아가 즐겁고 보람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참으로 좋은 동시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지도 모릅니다. 끝까지 정성을 쏟을 것입니다.
용기를 내러 활짝 웃으며 다시 동시집을 펴냅니다. 책 표지 그림은 사랑하는 제자 고용현 시사만평가가 그려 주었고, 발문은 동시작가이며 문학평론가인 전영관 박사님이 써 주셨습니다.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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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근영 동시집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
[ 이 동시집을 읽는 어린이들을 위하여 ] -
동심으로 엮은 맑고 고운 사랑의 노래
- 송근영 동시집『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
동시인․ 문학평론가 전영관
1. 들어가며
송근영 선생님은 아흔을 넘기신 연세에도 불구하시고 네 번째 동시집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를 펴내셨습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을 뛰어넘어 어린이와 동심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건강을 지켜오시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를 쓰다 보니 그 동안 때가 묻은 마음이 서서히 벗겨지고, 진짜 나를 찾았구나 하는 묘한 기분이 들어 혼자 미소 짓는 때가 있습니다.
삶의 의미에 대해 비로소 눈을 떴다고 할까요‘
동시집『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의 머리말에 선생님이 밝히신 것처럼 오랜 시간 어린이들의 눈높이로 다가가 동심을 시로 표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의 때가 벗겨져 나 자신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삶의 의미에 대하여 비로소 눈을 뜨게 된 것은 그동안 꾸준히 동시를 써오면서 맑고 밝게 동심으로 살아오신 결과입니다.
송근영 선생님은 1985년《대전일보》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동시를 써오셨으며 1990년 월간《아동문예》작품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동안 펴내셨던 동시집으로『까치나무』,『좋으면 좋다고 하자』,『사랑아 솟아라 퐁퐁퐁』등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만년 어린이입니다. 40여년을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시고, 교장선생님으로 토직을 하신 선생님의 얼굴은 언제나 동심을 띄운 미소로 가득합니다. 마음속에 동심을 품고 생활하시니 표정도 항상 밝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동심은 무엇이고 그 동심들은 어린이들 마음에 어떻게 다가가고 있는지 선생님의 동시집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에서 몇 편을 뽑아 함께 알아보고 또 함께 이야기를 펼쳐나가겠습니다.
2. 상상의 즐거움, 그 감동과 경이로움
동심이란 어떤 마음일까요? 동심은 맑고 깨끗하며 티 없이 순진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것을 일컬을 때 쓰는 말입니다. 송근영 선생님의 동시들을 읽다보면 계곡의 맑은 물을 들여다보듯 투명합니다. 맑은 물속에는 송사리도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고, 한들한들 물풀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크고 작은 돌들이 정답게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합니다. 선생님의 동시들은 한 편 한 편이 맑고 깨끗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읽는 이의 마음에 다가와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줍니다.
가을바람은/약손이다//우리 아가/여름내 물러 고생한/사타구니와 엉덩이를/보송보송 고쳐 놓았다//따사한 햇살 움켜쥐고/방실방실/네 활개 치며/산들 바람과 함께/잘도 놀고 있다
-「가을바람」전문
자연을 동심의 눈으로 보면 상상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가을 바람’을 ‘약손’이라고 은유적인 표현을 했습니다. 땀이 많이 나는 여름이라 아기의 사타구니와 엉덩이에 땀띠가 나고, 또 벌겋게 짓물렀습니다. 얼마나 아기는 아플까요? 얼굴을 찡그린 아기를 보다 못한 가을바람이 다가와 솔솔 바람으로 어루만져 주니까 보송보송하게 치료가 되었습니다. 역시 가을바람은 약손인 것 같습니다. 내가 배가 아플 때 문질러 주시던 할머니의 약손이 생각납니다. 아기는 아프지 않게 되자 ‘따사한 햇살 움켜쥐고/방실방실/네 활개 치며/산들 바람과 함께/잘도 놀고 있다.’고 재미있는 상상을 하였습니다.
온갖 풀씨가/잠들고 있는 겨울 들판//꽁꽁 얼어붙은 땅속에서/참고 견디며/내일을 향한/벅찬 꿈을 꾸고 있다//눈보라 치는 겨울이/물러가는/때를 맞추어/어린이들이 마구 뛰노는/푸른 들판을 만들려고/잔뜩 벼르고 있다
-「풀씨의 꿈」전문
위 동시는 숨은 화자<시 속의 이야기하는 사람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시>의 시점에서 썼지만, 어린이다운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땅속에서/참고 견디며/내일을 향한/벅찬 꿈을 꾸고 있다’고 상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풀씨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까요? 여러분들도 한 번 상상해 보셔요. 위 시에서는 ‘어린이들이 마구 뛰노는/푸른 들판을 만’드는 꿈이 바로 풀씨의 꿈이라고 상상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숨은 화자의 입장에서 쓴 동시는 그림을 그리듯 쓴 시가 많습니다. 시인은 항상 보아온 것들을 당연함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 당연함 속에서 보석을 찾듯 경이로움을 찾아냅니다. 이는 바로 상상의 힘입니다. 감동과 경이로움은 바로 상상력에서 나옵니다.
3. 고정된 생각의 틀에서 발상의 전환으로
송근영 선생님의 동시들을 읽어보면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이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생각의 틀을 과감히 깨고 발상을 전환시켜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시를 썼기 때문입니다. 어떤 생물이나 무생물 또는 환경이나 현상들을 고정적인 생각의 틀을 깨고 관점을 바꿔 바라보고 생각하면 그동안 알거나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름달’을 생각해 봅시다. ‘보름달’을 ‘쟁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름달’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지요. 왜일까요? ‘달달 무슨달, 쟁반같이 둥근 달’로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왔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런 고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면 금방 ‘보름달’을 달리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보름달’을 ‘500원짜리 동전’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손때 묻은 빵’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얼마든지 재미있는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꽃이 아름다운 건/고운 마음으로/보기 때문//꽃이 웃는 건/환한 얼굴로/바짝 다가가기 때문//꽃이 향기를 풍기는 건/살며시 입 맞추기 때문//꽃밭에서/나도 꽃이다
-「꽃밭에서」전문
꽃밭에 있는 꽃들을 보면 모두 아름답습니다. 왜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질까요? 그건 꽃을 볼 때, 고운 마음으로 보기 때문이지요. 까만 색안경을 쓰고 보면 모두가 까맣게 보이듯이 어떤 마음 상태로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서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고, 밉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 꽃이 웃는 건 내가 환한 얼굴로 꽃에게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환하게 웃어줄 때, 꽃도 나에게 웃어주지요. 꽃이니까 ‘꽃이 아름답다’는 고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내가 고운 마음으로 보기 때문에 아름답고 재미있는 발상의 전환을 하였습니다.
넌, 왜/자꾸만 새가 운다고 하니?/그게 아니고/우거진 숲이 너무 아늑해//흥겨워 부르는 노래라니까//너, 왜/자꾸만 매미가 운다고 하니?/모르는 소리/서로 사랑하기 위해/짝을 부르는 감미로운 노래라니까//넌, 참/아는 것도 많구나!/우리들도 즐겁게 노래 부르며/사이좋게/정답게 지내자꾸나
-「모르는 소리」전문
위의 동시「모르는 소리」도 고정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재미있는 발상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새가 운다고 합니다. ‘새가 운다’는 오랜 고정관념에 묶여 다르게 생각을 해 오지 않은 까닭이지요. 새가 우는 것이 아니라 ‘우거진 숲이 너무 아늑해/흥겨워 부르는 노래’라고 재미있게 생각을 했습니다.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짝을 부르는 감미로운 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발상인가요?
4. 호기심과 남다른 생각에서 길어 올린 의미와 가치
어린이들은 호기심이 많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보았을 때 어른들은 그냥 지나치지만 어린이들은 처음 본 것처럼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길가에 핀 조그마한 풀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춰 풀꽃이 어떤 얘기를 나에게 들려주고 있는지 생각을 합니다. 나비와 친구하고 싶어 나비를 쫓아기기도 합니다. 송근영 선생님은 어린이들의 눈높이로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보기 때문에 호기심과 남과 다른 생각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보아 넘긴 사물이나 현상의 의미와 가치를 시로서 새롭게 우리들 마음에 다가오게 합니다.
담 모퉁이/난쟁이 채송화//자세히 보니/진짜/귀엽고 깜찍하다//오래 볼수록/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누가 본들 어떠랴/무릎 꿇고/살며시 뽀뽀를 했다
-「채송화」전문
‘담 모퉁이/난쟁이 채송화’가 귀엽고 깜찍하여 무릎 꿇고 살며시 뽀뽀를 했답니다. 어른들은 아마 채송화 앞에 무릎 꿇고 살며시 채송화에게 뽀뽀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꽃이 너무 귀엽고 깜찍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어린이들은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호기심과 남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송근영 선생님은 이와 같이 어린이 마음을 작품들 속에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월의 신록이여!/싱그럽다 못해/이글이글 내뿜는구나//풋풋하고 짙은 향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숲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나를 눕혀 놓고/온 몸을 씻고 문지르고/야단들이다//아! 신난다/나는 5월이 닿은/씩씩한 푸른둥이다
- 「푸른둥이」전문
여러분은 신록이 우거진 숲을 가보았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5월의 신록이 싱그럽다 못해 햇빛을 받아 초록빛으로 반짝입니다. ‘풋풋하고 짙은 향기에 취해/나도 모르게/숲에 풍덩’ 빠져드는 느낌이 듭니다. 5월의 신록은 숲에 풍덩 빠진 ‘나를 눕혀 놓고/온 몸을 씻고 문지르고’ 야단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시인의 남다른 생각입니다. 이런 시인의 엉뚱한 상상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우리들에게 심어줍니다. 시인은 결국 ‘나는 5월이 낳은/씩씩한 푸른둥이다’라는 의미와 가치를 마음에 품을 수 있습니다.
5. 할아버지, 할머니의 구수한 맛과 스스로 깨닫는 가르침
송근영 선생님의 동시를 읽다보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요즘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가정이 그리 흔치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별로 없습니다. 옛날에는 한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예절을 배우고 익힐 기회가 많았지요. 어디 예절뿐인가요? 할아버지, 할머니의 체취를 맡으며 사랑을 느끼며 생활하였지요. 그러나 지금은 핵가족이 되어서 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가정이 많습니다. 송근영 선생님은 이런 점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시어 동시로나마 할아버지, 할머니의 구수한 맛과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동시 속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자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꼭두새벽에 아버지와 함께/뒷동산 나무들을 깨우러/산에 오른다//어제부터/안 보이시는 할아버지/오늘도 안 보이신다/혹시 편찮으신 것은 아닐까?//산길 모퉁이에서/영락없이 만나는/ 그 시각 그 자리에서/앞뒤를 살피며/기다려 본다//지팡이 짚고/절뚝거리시며/올라오시던 할아버지/인사를 잘한다고/칭찬해 주시던 인자한 할아버지/내일은 꼭 나오시겠지
-「산길 모퉁이」전문
매일 산길에서 마주치던 할아버지께서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됩니다. 할아버지께 무슨 일이 생기신 것은 아닐까? 혹시 편찮은 것은 아닐까? 오늘은 뵙게 되겠지 생각하고 ‘그 시각 그 자리에서/앞뒤를 살피며/기다려’보지만 오늘도 뵙지를 못했습니다. ‘지팡이 짚고/절뚝거리시며/올라오시던 할아버지/인사를 잘한다고/칭찬해 주시던 인자한 할아버지/내일은 꼭 나오시겠지’하고 생각해 보지만 걱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어린이의 마음이 그대로 따뜻하게 전해져 옵니다.
할머니가 뚝딱/밥 한 숟가락을 크게 뜨신다//끓는 장국에/흠뻑 적신 호박잎을 걸치신다//“우리 손자야, 이리 와서 입 좀 크게 벌리렴”//방금 따다가 밥솥에 넣어 약간 데친 연한 호박잎이다//“할머니, 진짜 맛있어요”/할머니도 웃으시면서/“아무 것이나 잘 먹는/아빠를 닮았구나”//왠지 정이 쏠리는 호박잎 같은/구수한 할머니 냄새가 좋다
-「호박잎」전문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가면 오랜만에 들른 손자가 귀여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 주십니다. 특히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방금 따다가 밥솥에 넣어 약간 데친 연한 호박잎’이지요. “우리 손자야, 이리 와서 입 좀 크게 벌리렴” 하시며 뚝딱 밥 한 숟가락을 크게 떠 ‘끓는 장국에/흠뻑 적신 호박잎을’걸쳐 입에 넣어주시던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정이 쏠리는 호박잎 같은/구수한 할머니 냄새’입니다. 때로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도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사랑이 위의 동시에 담뿍 들어있습니다.
할아버지와/눈싸움을 한다/얼마 안 가서/할아버지가 지고 만다/할아버지가/나를 얼싸안았기 때문이다//할아버지와/팔씨름을 한다/이번에도/할아버지가 지고 만다/어느 새 내 손등에/입을 맞추었기 때문이다//할아버지와/빨리 기어가기 경주를 한다/요번에는 내가 지고 말았다/잽싸게/할아버지 등에 업혔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함께」전문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놀이라면 무슨 놀이든지 재미있습니다. 놀이라고 해보았자 무슨 특별한 기구를 이용하는 놀이가 아닙니다. 눈싸움하기, 팔씨름하기, 빨리 기어가기 놀이입니다. 아무 때나 어느 장소에서나 할 수 있는 놀이입니다. 그런데 놀이를 하면 언제나 할아버지가 지고 맙니다. 눈싸움하기와 팔씨름하기에서도 할아버지가 졌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진 이유가 너무 재미가 있습니다. 눈싸움하기에선 할아버지가 나를 얼싸안았기 때문이고, 팔씨름에선 할아버지가 내 손등에 입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내가 사랑스러우면 놀이를 하다가도 얼싸안기도 하고, 손등에 입을 맞추기까지 하겠어요. 마지막으로 빨리 기어가기 경주에서는 할아버지가 이겼습니다. 내가 잽싸게 할아버지 등에 업혔기 때문이지요.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할아버지가 너무 좋아 경주를 하다말고 할아버지 등에 업혔지요. 할아버지와 놀이에서는 이기고 지고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좋습니다. 물론 할아버지도 나와 함께 하는 일이라면 다 좋으실 것입니다.
송근영 선생님은 위 세 편의 동시 외에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많이 쓰셨습니다. 할아버지로서 이 동시집을 읽는 우리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동시를 읽다보면 어느 땐 “하하하”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어느 땐 우리들에게 주는 사랑에 가슴이 찡해오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이와 같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떨어져 살고 있는 오늘의 어린이들에게 동시를 통해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6. 나오며
지금까지 송근영 선생님의 동시집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에 실린 동시를 중심으로 송 선생님의 동시 세계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90이 넘으셨으면서도 항상 어린이같은 순수함을 잃지 않으시고, 때로는 수줍은 미소로, 때로는 천진난만한 해맑은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우뚝 서 계십니다.
선생님의 동시는 주로 어린이가 화자(어린이의 눈과 목소리로 말하는 시)인데에 특징이 있습니다. 어린이의 눈으로 관찰한 내용이기 때문에 어린이 독자들에게 거부감이 없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장의 그림을 그리듯 쓴 시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동시를 읽으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뚜렷합니다. 이런 이미지는 독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줍니다. 작품을 통하여 느끼는 감동과 경이로움은 바로 상상의 힘에서 나옵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고정된 생각의 틀에 묶여 있어 새롭게 변화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엉뚱한 생각에서 얻은 의미와 가치는 문학에서 귀중한 보물과 같은 것입니다. 남들이 하지 않은 생각, 겪지 않은 경험은 바로 소중한 주제이며 소재입니다. 송근영 선생님은 이런 점에서 특수한 시인의 눈을 가졌기 때문에 어린이 독자들의 가슴에 쉽게 다가갑니다.
송근영 선생님은 오랜 기간 동안 어린이들과 생활해 오셨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이것들을 심어주고, 넣어 주어야 하는지도 잘 알고 계십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주에게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통해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주제를 스스로 찾아내게 합니다. 이렇듯 선생님께서는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동시로 표현하여 어린이 스스로 깨닫고 감동을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동시집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발간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리며 송근영 선생님께서 우리 어린이들과 함께 “하하하”웃으시며 건강하신 모습으로 변함없이 오래도록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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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송근영 선생님의 동시는 주로 어린이가 화자(어린이의 눈과 목소리로 말하는 시)인데에 특징이 있습니다. 어린이의 눈으로 관찰한 내용이기 때문에 어린이 독자들에게 거부감이 없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장의 그림을 그리듯 쓴 시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동시를 읽으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뚜렷합니다. 이런 이미지는 독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줍니다. 작품을 통하여 느끼는 감동과 경이로움은 바로 상상의 힘에서 나옵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고정된 생각의 틀에 묶여 있어 새롭게 변화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엉뚱한 생각에서 얻은 의미와 가치는 문학에서 귀중한 보물과 같은 것입니다. 남들이 하지 않은 생각, 겪지 않은 경험은 바로 소중한 주제이며 소재입니다. 송근영 선생님은 이런 점에서 특수한 시인의 눈을 가졌기 때문에 어린이 독자들의 가슴에 쉽게 다가갑니다.
― 전영관 동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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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근영 시인∥
• 1925년 대전시 대덕구 오정동에서 태어나
• 1945년 전주사범학교 심상과 졸업
• 1945~1990년까지 초등학교 교사, 교감, 장학사, 교장 역임
• 1977년 <충남대교육가족운동의 노래> 가작
• 1978년 <충남도민의노래 > 가작
• 1985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 당선
• 1990년 제36회 월간《아동문예》신인작품상(동시부문) 당선
• 1990년 교육수상집『우리 선생님의 환한 미소』발간
• 1990년 대전광역시 문화상 <교육부문> 수상
• 2000년 동시 <우리집>이 국정교과서 중학교 1학년 도덕교과서에 수록됨
• 대전 목동초등학교 외 9개 초등학교 교가를 작사
• 2012년 제24회 대전문학상 수상
• 2015년 대일문학상 수상
• 동시집 :『까치나무(1990)』『좋으면 좋다고 하자(2013)』『사랑아 솟아라 퐁퐁퐁(2014)』『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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