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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의 제주도는 가는 곳마다 수국이야.’
그녀가 수국처럼 말갛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제주도가 고향인 나보다 더 자주 제주에 간다. 그동안 나는 주로 겨울과 봄에 제주에 갔었다.
나에게 제주는 단연코 유채와 동백이었으니까. 더욱이 바람 부는 제주에 여름은 피하는 게 상책이란 걸 난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수국 앞에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녀의 말을 믿고 제주에 가기로 했다.
수국이 보고 싶은 그녀와 나, 그리고 두 명의 여고 동창이 제주도에 갔다.
그녀들과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경주에 갔었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어쩌다 사는 게 시시하고, 무덤덤해질 때는 우리 어디라도 한번 떠나자는 외침이 누군가에서 터지곤 했었다. 그러나 말만 무성할 뿐 우리는 하룻밤 훌쩍 나서기가 두려운 엄마이자 아내였다. 이번 여행길에도 한 명은 마지막 한주를 남겨놓고 불발탄을 보내왔다. 모두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더 미룰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떠났다.
일곱 빛깔의 꿈, 진심을 다해 피는 수국
초여름의 햇살이 반짝반짝 빛나는 제주는 가는 곳마다 사그락사그락 발밑에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수국이 수국수국 피어있었다. 처음 찾아간 석부작에서도, 보말 죽을 먹고 나온 애월의 바닷길에도, 지난겨울 동백꽃을 피웠던 카멜리아 힐에서도 주인공은 수국이었다.
마치 여행객의 가슴에 깃들어 있는 슬픔이나 어두운 그림자를 모두 거두어가겠다는 듯이 활짝 피어 손짓하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질 듯한 슬픔도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도 꽃잎의 함박웃음 앞에서는 그만 마음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래 그까짓 거 별거냐. 그냥 잊어버리자. 놓아버리자. 다 날려 버리자. 얼마든지.’
우리는 여행 내내 꽃처럼 향기롭게 웃을 수 있었다. 하얀 꽃잎에선 용서가, 붉은 꽃잎에선 용기를, 파란 꽃잎에선 평화가, 노란 꽃잎에선 희망을 보았다.
수국의 꽃말은 진심과 변덕이다. 수국의 꽃말을 처음 알았을 때 참 의아했었다. 진심과 변덕은 아무리 생각해도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은 요소이지 않은가. 진심이라면 변덕을 부릴 수 없음이요. 변덕에 진심은 티끌만큼도 담겨있지 않을 터인데 어째서 하나의 꽃에 상반된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걸까.
수국이 피는 모습을 관찰한 경험이 있다면 금방 수긍이 갈 것이다.
어느 봄에 우리 집 베란다에다 수국을 들여놓았다. 갱년기에 관절이 아픈 내가 화분 관리에 등한시했더니 빈 화분이 늘어갔다. 그랬더니 갱년기에 접어든 남편은 호르몬의 변화인지 감성이 깊어져 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이 빈 화분에 새파란 수국을 심어왔다.
‘어때? 이런 빛깔 본 적 있어?’ 하는 다소 오만한 빛깔 앞에 내 가슴이 파랗게 떨렸다.
수국의 파란 꽃잎은 하늘빛도 아닌 바다빛도 아닌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빛깔이었다. 꽃잎을 손끝으로 만지면 파란 물감이 묻어나올 거 같았다. 베란다 가득 파란 조명을 켜 놓은 것처럼 파란 수국이 여름 내내 피었다. 이듬해 늦은 봄에도 수국은 다시 꽃을 피웠다. 처음에는 연한 연두였다가 하늘빛이 감돌더니 나중에는 새파란 꽃덩이들을 동그랗게 피웠다.
누군가 수국의 꽃은 무슨 색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파란 수국을 떠올릴 것이다. 나의 첫 수국은 파란 꽃송이였다. 내가 그렇듯 누군가는 자신이 기억하는 빛깔에 따라 수국을 말할 것이다. 또한 수국은 언뜻 보기에는 한 송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꽃잎들이 모여서 핀다. 수천의 꽃들이 손을 마주 잡고 피어서 커다란 꽃송이가 된다.
수국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데 뿌리내린 흙의 성질에 의해 빛깔이 바뀐다고 한다. 연둣빛이었다가 점차 보라나 분홍, 파랑으로 변해 간다. 꽃 한 송이에 수많은 빛깔을 담을 수 있다니, 변덕이 아니라 오히려 감탄할 일이다. 진심을 다해 피는 꽃이라 말하겠다. 꽃의 빛깔이 변한다고 변덕이란 꽃말을 마음에 두고 의심하지 않겠다. 사람도 진심을 다하면 일곱 빛깔의 꽃송이를 피울 수 있을까.
날아와서 섬이 된 섬 속 작은 섬, 비양도를 가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비양도였다. 제주에 올 때마다 좋은 날씨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번에도 도착하는 날부터 안개 때문에 길을 잃었고, 흐린 하늘에서는 간간이 비도 뿌렸었다.
드디어 비양도에 가는 날,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열었다. 제주의 아름다움을 모두 드러내줄 것 같은 쨍쨍한 햇살이 빛나고 있었다. 깨끗하고 맑은 하늘 너머 푸른 해안선과 비양도의 실루엣이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섬으로 날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날아와서 섬이 되었다는 전설을 지닌 비양도는 한림항에서 15분이면 도착한다. 비양도의 모습이 제주도를 닮아서 섬 속 작은 섬이라고 불린다. 98명이 승선 인원이라서 늦게 도착하면 다음 배까지 세 시간을 더 기다려야 탈 수 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서둘러 항구에 도착했다. 아침햇살이 빛나는 한림항은 마치 나폴리 항구처럼 푸르렀다. 오가는 차도 없고, 고깃배를 손질하는 어부와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만이 분주한 아침이었다. 비양도로 떠나는 설렘을 안고 한가로이 부둣가를 산책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드디어 유람선을 타고 비양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비양도 탐방안내 지도를 보니 섬이 한눈에 들어왔다. 트래킹 코스를 따라가면 한 시간이면 섬을 볼 수 있고, 해발 114m의 비양봉에 오르면 한 시간 반 정도면 비양도를 완전 정복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섬이란다.
선착장을 나서자 섬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바로 코앞에 있다. 제주도 특산물인 현무암 돌담과 낮은 집들을 기웃거렸다. 사람들은 바다에 나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정낭(대문 대신 가로 걸쳐 놓는 나무) 안으로 들어가 정겨운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의 젊었던 엄마와 어린 내 모습이 스냅사진처럼 스쳐 지나갔다. 추억 속에서 나를 불러내는 소리에 돌아보니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달란다. 예쁘게 꾸며놓은 포토 존에서 다양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그곳을 벗어나왔다.
파란 해안선을 따라 피는 선인장, 보말처럼 작은 섬사람들
멀리 파란 풍차가 있는 해안으로 재게재게 발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파란 바닷물이 일렁이는 해안선이 나타났다. 멀리 한라산이 다가오고, 하얀 구름이 몽실몽실 피어났다. 특이하게도 바닷가를 따라 까만 돌 위에는 선인장이 자라고 있었다. 사막의 선인장이 아닌 바다의 선인장이라니. 물을 흡수하지 않는 제주의 현무암이기에 가능한 이채로운 풍경이었다. 백년초 선인장이 자생하는 바닷길이 더욱 아름답다. 선인장의 노란 꽃들과 진보랏빛 열매가 해풍에 익어가고 있었다.
섬의 동쪽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자 바람이 거세졌다. 겨울바람은 아니지만 제주를 제주답게 하는 명품 바람이 아니던가. 몸을 가누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붙들어 발길을 옮겼다. 선착장 주변에 마을이 모여 있는 이유가 있었다. 비양봉이 바람을 막아주는 양지바른 자락을 의지하여 마을이 자리한 것이었다.
거센 바람 속에도 해녀 할망이 손수레에 미역을 가득 담아와서 말리고 있었다. 제주도 여인들의 저리도 강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평생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물질로 가족을 지켜온 해녀 할망들이 제주의 보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돌아가신 내 할망이 떠올라 마음속으로 할머니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다.
‘할망, 아프지 맙서. 다치지 맙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삽서.’
비양봉을 오르는 마지막 트래킹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마을로 들어서는데 작은 학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올해는 섬에 학생이 없는지 휴교라고 쓰여 있다.
‘다행히 학교는 폐교가 아닌 휴교이군.’
‘전교생이 한 명일 때도 있었단다.’
나 혼자 넋 놓고 중얼거리는 혼잣말에 친구가 다가와 답했다.
문득 섬마을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보말처럼 작고 천진한 목소리로 자갈자갈 노래하는 교실에서 풍금을 치고 싶다. 때로는 단 한 명뿐인 나의 제자를 위해 책을 읽어주고 꿈을 키워주는 선생님이 되어도 행복하겠다. 그 아이는 왕따가 될 염려도 없고, 나는 그 아이만을 위한 선생님이 되리라.
초록빛 운동장을 뛰노는 아이들을 상상하며, 잠시 행복한 꿈을 꾸어보았다. 내년에는 한 명의 학생이라도 있기를 고대하며 민생고 해결을 위해 식당을 찾았다. 아침 일찍 나서느라 아무것도 못 먹은 데다 섬을 한 바퀴 돌았더니 체력이 급방전 상태였다. 때마침 들어선 골목에서 예쁜 식당이 나타났다. 비양도 해녀 할망들이 잡아온 것으로 만든 음식들이라니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상큼한 보말 무침과 고소한 보말전에 달콤한 감귤막걸리를 한잔하니 세상 부러울 게 없어졌다.
재게재게 옵서 카페에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을 마시며
육지로 다시 데려다줄 여객선을 기다리며 우리는 비양도를 걸었다.
마지막으로 비양도를 눈에 담아두고 싶은 발걸음은 바닷가 쪽으로 향했다. 잠시 걷다 보니 알록달록 예쁜 카페가 나타났다. 핑크빛 돌담 너머로 원시에서 불어오는 것 같은 커피 냄새에 발길이 저절로 멈춰 섰다.
‘아, 카페가 너무 이쁘네.’
돌담길 끝에 숨겨놓은 보물처럼 나타난 카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재게재게 옵서입니다. 커피가 아주 맛있는데 한잔 드시고 가세요.’
비양도 원주민은 아닌 듯 시원스레 잘생긴 바리스타가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가라면서 넙죽 인사를 했다.
성격 좋아 보이는 그의 부름에 돌담 안으로 들어서니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테이블과 낮은 의자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카페 구경에 한창인 우리에게 야자나무처럼 푸르고 키가 큰 바리스타는 커피 주문을 진지하게 받았다. 그의 주문 방식은 흔히 카페에서 단순하게 묻고 대답하는 ‘아아’나 ‘뜨아’의 그것이 아니었다.
평소 커피의 쓴맛을 좋아하는지 신맛을 좋아하는지를 묻고, 음식은 무엇을 먹었는지, 혹시 과음을 했는지 등 이것저것을 묻더니 내게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을 권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라…….’
커피 원산지의 맛을 깊이 음미하며 한 모금을 마셨다. 좋은 원두로 로스팅 한 커피의 향기가 카리브의 작은 섬으로 인도하는 느낌이 들었다. 손님이 뜸한 시간인지 원래 손님이 없는지 바리스타는 커피를 건네주고도 한참이나 곁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서울살이가 지겨워서 귀촌했다는 것, 자신이 직접 핸드드립 해서 좋은 커피를 알리고 싶다는 것, 작지만 자신이 번 것을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것, 그럼에도 가끔은 섬의 독특한 폐쇄 문화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제주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보게 되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의 인연으로나마 서로의 속내를 터놓은 시간 속에서 나 또한 제주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관광지로만 생각하고 여행하는 제주가 아니라 제주의 아픔을 생각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육지 것’과 ‘괸당문화’ 사이에서
사실 제주도는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그 안에 한 발 들어가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게 많다. 그것은 살아보지 않으면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정서의 문제이다. 제주도에 살려면 가장 먼저 ‘괸당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괸당이란, 서로 사랑하는 관계나 친족이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처음에는 괸당이 제주 사투리인줄 알았는데, 순우리말이었다. 사라지는 말들이 제주에서는 사라지지 않고 쓰이는 말들이 많다. 괸당은 사랑하다의 ‘괴다’에서 나온 것 같다. 다시 말하면 괸당은 사랑하는 당신이란 의미일 것이다.
괸당이란 말이 사라지지 않고 어째서 문화로까지 자리 잡았을까. 제주에서는 너도 알고 나도 알면 기본적으로 삼촌이라고 부른다. 제주 4.3을 처음 알린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에서 삼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숙부나 백부의 촌수를 뜻하는 친척이 아니다. 촌수를 따지기 어려운 조금 먼 친척은 모두 삼촌이다.
최근에 알려진 4. 3 희생자의 아픔을 들여다보면 괸당문화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제주에서는 육지에 사는 사람들이나, 육지에서 내려와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육지 것'이라며 거리를 둔다. 모든 일에는 연유가 있듯이 육지 것이라는 말의 어원에도 아픈 역사가 있다.
1948년 4월 3일 제주 중산간 지역에서 벌어진 남로당 무장대의 소요사태와 이를 토벌하러 온 서북청년단은 모두 제주 사람이 아닌 육지 것이었다. 역사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 고려의 몽고항쟁 때에도 마지막까지 싸웠던 삼별초를 진압하는 여몽연합군도 육지 것이었다. 그 모든 시대적 상황에서 육지 것에 의해 제주도민은 수많은 고초를 겪었으며, 더러는 참혹하게 떼죽음을 당했다.
역사적으로 제주는 그토록 침략을 당하고 수탈을 당하기만 했다.
자연적으로도 제주는 살아가기 척박한 땅이었다. 삶의 터전이 바다인 제주도 사람들은 혼자 일해서 살아가기 어려웠다. 바람은 늘 불었고, 태풍 같은 자연재난도 수시로 닥쳤다. 자신들을 위협하는 가혹한 조건 속에서 자연스레 생긴 문화가 바로 괸당이다. 그것은 저희끼리 잘 살자는, 혹은 외지인을 경계하자는 문화가 아니다. 이러저러한 삶의 애환을 나누며, 서로에게 기대고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터득하게 된 눈물겨운 습성이며,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내 곁에 피는 수국, 마음에 피는 꽃송이
이번 여행의 백미는 수국과 더불어 비양도였다. 어느 날 날아와 섬이 된 신비로운 전설처럼 세 시간의 트래킹은 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 비양도를 잠깐 보고 떠나는 발길이 못내 아쉬웠다. 곧 다시 오게 되리라.
비양도의 비경과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잠시 와서 몸과 마음을 쉬고 가는 사람들, 더불어 살고자 서울살이를 접고 내려와 커피를 볶는 바리스타의 이야기까지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제주에는 이방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제주에 살고 싶어하고 꿈을 꾼다. 제주에서 한 달 또는 일 년 살기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들이 제주에 와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제주의 아픈 역사와 제주를 살아온 사람들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친구가 장담한 것처럼 수국은 제주에서 더욱 아름다웠다. 수국이 제주에서 아름다운 건 화려한 꽃잎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검은 돌들 덕분이란 걸 알았다. 수국이 더욱 돋보일 수 있도록 가만히 배경이 되어주는 검은 돌처럼 살아온 제주의 사람들을 사랑한다.
‘사람은 태어나 서울로 가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낸다.’라는 옛말처럼 제주에서의 삶은 척박했다.
머지않아 태풍이 올라올 거다. 작년에 솔릭이 제주를 강타했을 때, 한반도를 지켜주었듯이 올여름도 제주는 만만치 않은 태풍을 맞아 싸울 것이다. 온몸으로 비바람을 막아낼 것이다.
이제 그 땅에 아픔 대신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모든 빛깔을 품고 피는 수국처럼,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기쁨과 희망이 피어나길 바란다. 잠시 다녀가는 사람들이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고 내려온 사람들이 더 이상 육지 것이 아니길 바란다. 이웃이 되고, 괸당이 되어 제주의 아름다움을 함께 가꾸어 나가길 바란다. 그래서 먼 후일 육지 것이 더 제주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전설을 듣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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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육지 것의 어원이 아프네요.
육지 것들의 만행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용서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승만을 부관참시하면 조금이라도 원한이 풀리려나...
육지 것들의 원한을 풀고 평화의 섬이 되길 바래봅니다
육지 것ㆍ그런 말이군요 ㆍ괸당 좋습니다
제주에서
아이구 이 웬수는
아이구 이 괸당이라고 합니다. ㅎ
해마다 다녀온 제주를 작년엔 저도 못갔어요. 올핸 꼭 가야지 수국도 좋고 동백도 좋고 아! 언제갈까?
사계절 다 좋아요.
태풍만 피하면,
가을 단풍이랑 억새도 좋죠 ㅎ
짠 내음 맡으며 바닷가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선인장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거센 풍파에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 같으면서도 날아가지 않는 선인장이겠지요.
마치 그녀 같은~~~
신기합니다. ㅎㅎ
구멍 숭숭 뚫린 돌 아래 뿌리 내리는
선인장의 힘
제주를 파노라마로 한눈에 다본듯하요, 올해 제주향교 전교에 최초로 육지분이 취임했죠. 나이가 이른셋인데 제주에 내려온지 30년이 됐다죠. 그간 동백나무를 재배해서 곳곳에 희사했다죠. 또 제주발전에 많은 기여을 해서 감사패도 많다죠. 성읍리에 '괸당네식당'이 있어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그게 갑자기 없어졌어요. 동백꽃이 송이째 떨어졌나봐요. 육지에 은퇴하여 제주에 정착하는 분들도 많아졌어요. 한결같이 어려워하는게 바로 괸당문화죠. 몸을 낮추지 못해 충돌하는 시행착오가 가끔있죠. 이제 신공항까지 생기면 또 많은 제주문화가 변색되겠죠. 토착과 변화가 같이 어우러야하는데 어쩔지 모르겠군요. 제주사랑~ 멋져요~
최선생님,
전화 드리려다가 참았네요.
제주살이 잘 하고 계시나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제주의 보물섬이지요. ㅎ
비양도의 수국....
검은 돌을 배경으로 핀 수국이 한층 아름답겠네요.
안작가님 그림이예요? 정말 아름답네요. 수국수국 좋아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