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 옛 철길 따라 추억 싣고 달리는
강촌 레일바이크
살랑 불어온 따뜻한 바람이 새순 돋는 나뭇가지를 어루만지고 환하게 쏟아지는 햇살이 강물 위로 고요히 내려앉는 4월 어느 봄날.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함께 근교로 나들이 떠나는 마음은 마냥 기대에 부풀고 설렌다. 하물며 그곳이 대성리, 청평, 가평, 강촌, 춘천으로 이어지는, 그래서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애틋해지는 옛 경춘선 구간임에랴. 대한민국 중년이라면 누구나 파릇한 시절의 추억 한 자락쯤 묻어두었을 그곳. 한때 젊음과 낭만의 대명사로 통했던 강촌역으로 추억 여행을 떠난다.
“어머~ 어쩌면 강촌역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데 여기 이 터널 안에 원래 선로가 있지 않았어? 기차가 이 안에 섰잖아.”
“MT철엔 입석도 없어서 몇 명은 서서 가기도 하고 그랬는데.”
추억을 공유한 이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에 흥분과 아쉬움이 반반씩 섞여 있다.
2010년 12월 20일, 서울과 춘천을 이어주던 경춘선 무궁화호 열차가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터널 안 선로는 철거됐지만, 아치 모양의 독특한 피암터널과 낡은 역사는 남았다. 오래된 ‘강촌’역 표지판도 그대로다. 지난해 여름, 강촌역과 김유정역을 오가는 레일바이크가 운행을 시작하면서 역사는 매표소와 쉼터로 탈바꿈했다. 이렇게라도 보존해주는 게 어디냐 싶다.
옛 경춘선 강촌역. 터널 안에서 열차가 정차했었다.
북한강을 끼고 달리는 강촌역과 김유정역 사이 8km 코스
레일바이크는 옛 강촌역과 김유정역 사이 약 8km 구간을 편도로 운행한다. 강촌역에서 출발해 김유정역까지 갈 수도 있고, 김유정역에서 출발해 강촌역으로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같은 길을 오가지만 김유정역~강촌역 코스가 내리막길이 더 많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하지만 강촌역~김유정역 코스도 오르막길에서는 페달을 밟지 않아도 레일바이크가 전동으로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어 힘들지 않다. 어느 역에서 출발할 것이냐는 결국 각자의 여행 코스에 따라 선택할 문제.
하절기인 요즘 레일바이크는 오전 9시부터 매 정시마다 2시간 간격으로 하루 5회 운행한다. 데이트 나온 청춘들, 아이들을 동반한 젊은 부부, 중년의 동창생들, 조부모까지 모시고 나온 가족들… 연령대도, 구성원도 무척 다양하다.
탑승은 출발 10분 전부터 시작된다. 레일바이크는 2인승(2만 5,000원)과 4인승(3만 5,000원) 두 종류가 있다. 브레이크 작동법 등 간단한 사용 방법과 주의사항을 들은 후 2인승부터 차례대로 출발한다.
앞차와의 간격은 10m가량 유지하는 것이 안전하다.
“아, 바람 좋다”
뺨에 와 닿는 싱그러운 봄바람과 선로 옆으로 시원스레 펼쳐진 강줄기에 넋을 놓고 달리다 보면 간이 휴게소가 나타난다. 강촌역~김유정역 코스의 약 4분의 1 지점이다. 이곳에서 모두들 잠깐 내려 다리쉼도 하고 어묵도 사 먹는다. 평소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허벅지 근육이 뻐근해옴을 느낀다.
다시 출발이다. 8km 구간에 있는 총 4개의 터널 중 첫 번째 터널이 바로 코앞이다. 어라, 본 조비, 마이클 잭슨 등 한 시절을 풍미했던 팝스타들의 히트곡이 팡팡 울려 퍼지면서 빨갛고 파란 조명들이 춤을 춘다. 이런 깨알 같은 이벤트라니! 웃는 사이 어느새 터널을 빠져나온다. 터널은 앞으로도 3개가 더 등장한다. 이벤트는 첫번째 터널에서만 볼 수 있다. 나머지 3개의 터널은 그야말로 암흑.
추억의 경춘선 단선 철로를 따라 물을 건너고 마을을 지난 바이크는 출발한 지 1시간~1시간 30분 만에 옛 김유정역에 도착한다. 강촌역으로 되돌아가는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어 도착 순서대로 버스에 탑승하면 된다. 바로 돌아가기 아쉽다면 떡볶이, 어묵, 커피와 음료 등 간단한 스낵류를 파는 매점과 휴게공간이 있으니 쉬어 가도 좋다.
옛 김유정역 광장에는 거대한 책들(?)이 즐비해 좋은 촬영 포인트가 되어준다. 책꽂이 형태의 이 대형 북스테이션 조형물은 김유정, 박경리, 한수산, 오정희, 김형경, 최수철 등 강원도와 인연이 깊은 소설가 29명의 주요 작품집 원본을 촬영해 제작한 것이다.
인근 김유정문학촌을 관람하고 닭갈비와 막국수로 식사를 마친 후 바로 앞에 자리한 새 경춘선 전철 김유정역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왼쪽/오른쪽]휴게소에서 어묵을 사이좋게 나눠 먹고 / 터널도 지나고 [왼쪽/오른쪽]김유정역 도착 / 김유정역 광장
또 하나의 매력적인 코스, 경강역 왕복 노선
강촌레일바이크는 총 3개 코스로 이루어졌다. 강촌역~김유정역, 김유정역~강촌역, 그리고 경강역 왕복 코스다. 경강역이 어디더라?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가 대성리, 청평, 가평을 지나 그 다음 서던 곳이 경강역이다. 경강역 다음은 백양리, 그 다음이 강촌이다.
경춘선 전철이 개통하면서 강촌역과 김유정역은 예전 이름을 그대로 가져갔지만 경강역은 굴봉산역으로 역명이 바뀌었다. ‘경강’은 경기도의 ‘경’과 강원도의 ‘강’을 각각 한 글자씩 딴 것이다. 작은 간이역이었던 경강역은 1997년 영화 <편지>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옛 경강역은 지금도 그 운치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고즈넉함을 즐기려는 이들이 이 코스를 선호한다. 경춘선 전철로 접근한다면 굴봉산역에 내려 1.5km가량 걸어가면 된다. 옛 역사 안에는 겨울철 따뜻하게 몸을 녹여주었을 난로와 오래된 나무의자가 놓여 있고, 색종이와 색연필을 비치해 다녀간 이들이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해두었다.
옛 경강역과 가평철교 사이를 왕복하는 경강역 코스는 7.2km로, 왕복 1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강촌역이나 김유정역과 달리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 정시마다 하루 총 10회 운행한다.
옛 경춘선 경강역
글, 사진 : 이정화(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