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사랑의 순서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루카 6,39-42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오늘 복음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한 말이나 행동을 하려 할 때, 우리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해 줍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느냐?”(루카 6,39) 이는 남을 평가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그릇된 방향으로 묵상하는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하고 평가하면서 ‘눈먼 사람이 또 다른 눈먼 사람을 인도하려고 애쓰고 있구나. 참으로 한심하네.’ 하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교만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말이나 행동을 하려 할 때는, 나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고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려야 합니다. 아울러 그 말과 행동을 하는 내 마음의 중심에 하느님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을 자랑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만나 무슨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할 때,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며 과연 그 안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잘 담겨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왕태언 요셉 신부님「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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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행복한 사람」
몇 년 전 일본에서 실시했던 설문 조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조사는 60대 중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어떤 사람이 행복한가?”라는 것이었습니다. 60대 중반이면 인생의 후반부 들어가는 나이대입니다. 따라서 인생의 후반대까지 온 상태에서의 행복을 물어보는 것이었지요.
우선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아무 일도 없이 세월을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가족들과만 세월을 보내고, 옛날 친구들과 가끔 만나는 여성이었습니다.
반면 행복을 찾아 누리는 사람은 다음 3가지의 경우라고 말합니다.
공부를 시작한 사람, 취미활동을 계속하는 사람,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그들입니다.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아무 일이라도 하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조사였습니다.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내게 주어진 모든 일, 특히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모든 일이 행복의 열쇠였습니다.
***<사과는 사랑스러운 향기다. 사과는 아주 어색한 순간을 우아한 선물로 바꾼다(마가렛 리 런백).>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루가 6,39-42)
盲人が盲人の道案内をすることができようか。
二人とも穴に落ち込みはしないか。
(ルカ6・39-42)
“Can a blind person guide a blind person?
Will not both fall into a pit?
(Luke 6:39-42)
年間第23金曜日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ヌンモン イガ ヌンモン イル インドハル スヤ オッジ アンヌニャ?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ドル タ クドイエ パジジ アンケッニュニャ?
(루가 6,39-42)
盲人が盲人の道案内をすることができようか。
모오진가 모오진노 미치안나이오 스루 코토가 데키요오카
二人とも穴に落ち込みはしないか。
후타리토모 아나니 오치코미와 시나이카
(ルカ6・39-42)
“Can a blind person guide a blind person?
Will not both fall into a pit?
(Luke 6:39-42)
Friday of the Twenty-third Week in Ordinary Time
Luke 6:39-42
Jesus told his disciples a parable:
"Can a blind person guide a blind person?
Will not both fall into a pit?
No disciple is superior to the teacher;
but when fully trained,
every disciple will be like his teacher.
Why do you notice the splinter in your brother's eye,
but do not perceive the wooden beam in your own?
How can you say to your brother,
'Brother, let me remove that splinter in your eye,'
when you do not even notice the wooden beam in your own eye?
You hypocrite! Remove the wooden beam from your eye first;
then you will see clearly
to remove the splinter in your brother's eye."
2026-09-11 「盲人が盲人の道案内をすることができようか。」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年間第23金曜日です。
御心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御心の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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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盲人が盲人の道案内をすることができようか。>
そのとき、イエスは弟子たちに6・39たとえを話された。「盲人が盲人の道案内をすることができようか。二人とも穴に落ち込みはしないか。40弟子は師にまさるものではない。しかし、だれでも、十分に修行を積めば、その師のようになれる。41あなたは、兄弟の目にあるおが屑は見えるのに、なぜ自分の目の中の丸太に気づかないのか。42自分の目にある丸太を見ないで、兄弟に向かって、『さあ、あなたの目にあるおが屑を取らせてください』と、どうして言えるだろうか。偽善者よ、まず自分の目から丸太を取り除け。そうすれば、はっきり見えるようになって、兄弟の目にあるおが屑を取り除くことができる。」(ルカ6・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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ワン・テオン・ヨセフ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今日の福音は、私たちが人のために何かを語ったり行ったりするとき、自分自身がどのような姿であるべきかを振り返らせてくれます。「盲人が盲人の道案内をすることができようか」(ルカ6・39)。これは、人を評価する前に、まず自分自身を見つめなさいという御言葉です。
しかし、この御言葉を誤った方向に受け止めてしまうこともあります。人の行いを裁き、評価しながら、「盲人が別の盲人を導こうと一生懸命になっている。まったく情けない」と考えてしまう場合です。これは、自分を中心にして人を裁き、評価するという高慢に陥ることです。
人のために語ったり行動したりするときには、まず自分自身を振り返り、相手の心にも思いを寄せ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して、その言葉と行いの中心に、神様の愛があることが大切です。自分自身を誇るのではなく、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るイエス様を誇りとして生きることこそ、信仰者のあるべき姿です。
誰かと出会い、何かを語ったり行ったりするとき、まず自分自身を振り返り、その言葉や行いの中に、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るイエス様の御心が込められているかどうかを確かめたい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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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の福音を読み、人を裁く前にまず自分自身を振り返り、私たちの言葉と行いにイエス様の愛の御心を込め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
聖霊、来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