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냐에 따라 성서해석은 완전히 달라진다. 일제 시대에 바라본 성서와 오늘날 바라보는 성서가 다를 수밖에 없듯이, 인간은 본인이 사는대로 성서를 해석한다.
보편타당한 성서해석은 없다. 특정 본문을 가지고 수백년간 똑같이 해석할 수 없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현실이 되었다고 해도 의심해봐야한다. 따라서, 성서는 시대와 역사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우리 시대를 공부하고 그에 맞게 성서를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성서는 철저히 편파적이다. 우리로 하여금 중립을 지킬 수 없게 만든다. 중립이라는 말이 보기 좋고 듣기 좋아도, 실질적으로 완전히 중립을 지키면 그는 현상유지를 바라는 사람일 것이다. 그것은 성서의 말씀과는 대비되는 삶이다. 아마 지배계급의 마음가짐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성서는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며, 그들을 해방시키는 이야기를 줄기차게 전한다. 지배자와 권력자들을 대변하는 바알신과는 다르게, 합비루들을 해방시키는 야훼 따르라고 일관되게 전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는지 분명해진다. 우리 앞에 선택지가 분명하다. 성서를 따를지, 지금의 사회를 유지할지.
참고로 성서를 따르는 삶은 쉽지 않다. 그래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단순히 시혜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시혜를 넘어 존재 자체를 바꾸는 해방의 삶을 전하고 있는지 말이다. 예수는 항상 이 두가지를 동시에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