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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게시판 강아지도 똥개가 있고, 진돗개가 있듯이 사람도 역시 종자가 있다.
아침햇살 추천 0 조회 277 26.08.26 09:29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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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2 새글

    첫댓글 Gemini AI 내용, 보천교(普天敎)와 차경석의 친일 행적 및 독립운동 자금 지원 논란은 한국 근현대사 학술계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논쟁 중인 주제입니다.
    질문자님께서 지적하신 의문—"시국대응(친일 행각)이 존재하는데 왜 반공/독립운동으로 미화하는가?"와 "강력한 일제의 탄압 속에서 수백만 교세를 가진 종교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가?"—은 보천교의 역사적 실체를 이해하는 핵심 모순이자 본질입니다.
    역사학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입체적인 구도와 실제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친일 행적(시국대응)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일부의 주장처럼 친일 행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보천교와 차경석은 1920년대 중반 이후 명백한 친일 협력 행보를 보였습니다.
    시국대동단(時局大同團) 결성 (1924~1925년): 보천교는 일제의 대동아주의 정책에 호응하여 전국을 순회하며 "조선과 일본이 합작하여 대동아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연을 펼쳤습니다.
    일본 총리 및 총총독부 밀사 파견: 일본 당국에 친선 사절단을 보내고 충성을 맹세하는 듯한 시국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 작성자 09:45 새글

    네, 반갑습니다.

    일제와 친일언론,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사이비종교로 매도

    일제는 1915년 8월에 조선총독부령으로 포교규칙을 선포하여 독립활동에 적극적인 민족종교를 유사종교단체로 분류하여 건전하지 못한 반사회적집단, 사이비종교단체로 규정하고, 친일언론들도 일본 총독부의 선전도구로 전락해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유사종교 및 사교와 같은 사회악의 존재로 취급. 친일 언론들은 보천교를 비윤리적 반사회적 사상과 가르침을 펴는 미신, 사교집단으로 매도하였고,

    민족종교를 독립운동이나 민족운동과 같은 정치적 변혁을 꾀한다고 판단해 민중과 격리시키고 통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이비종교단체라는 올가미를 씌워 종교가 아닌 일반결사단체로 취급하여 '보안법', '집회취체에 관한 건'을 적용.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일제는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을 만들어 보천교를 비롯한 민족종교를 탄압하고 파괴시켜 나가고, 1920년 청송군 일본경찰서는 안동을 비롯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보천교 신도 3천여 명을 체포하여 감금하였고, 그 중 수십 명이 고문치사, 700여 명을 기소하였고, 고등법원에서 징역을 받은 사람이 129명이나 되었고, 당시 전국에서 검거된 보천교

  • 작성자 09:56 새글

    @아침햇살 보천교 신도가 3만여 명에 이르렀다고,<일제의 보천교 탄압과 해체>라는 서적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일제의 유사종교 해산령에 따라 각도 경찰국은 종교 시설물을 폐쇄시키고, 종교지도자들을 검거하는 등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였고, 보천교와 민족종교들은 강제 해산시키고, 1936년 6월 6일, 일경이 보천교 간부 24명을 연행하였고, 6월 15일에는 보천교 건축물을 강제로 경매에 부쳐졌습니다."


    1924년에 최남선이 창간한 시대일보(時代日報)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더불어 그 당시 민간 3대 신문 중 하나인 시대일보가 경영난에 처해 보천교에서 인수하자, 보천교 교주가 천자로 등극할 것이다라는 천자등극설을 유포. 천자 등극설은 당시 보천교를 탄압하기 위한 일제와 친일언론이 만들어낸 자작극이었다. 이를 빌미로 이 해 9월 일제와 친일언론들에 의해 보천교 박멸운동이 전개 된다.

    이러한 난국을 극복할 방법으로 보천교 주요간부들을 일본 동경으로 보내 보천교의 취지를 한번 설명하기로 한다. 그래서 동경을 방문해 조선총독으로 오게 될 사람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제시한 것이 '시국광구단'을 만들어 총독정치를 홍보하는 연설회를

  • 작성자 10:01 새글

    @아침햇살 연설회를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면 우리도 보천교를 적극 지원해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렇게 해서 "시국대동단"을 만들게 되는데, 결과적으로는 1925년 1월부터 6개월정도 운영하다가 지지부진하게 되는데, 여기에 당시 11개 친일단체가 결성된 '11연맹'이라는 단체가 보천교라는 명칭을 빌려 "시국대동단"이란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일제의 정책들을 지지하게 되는데, 그래서 당시 조선민중들은 보천교 박멸운동에 가담을 하며, 보천교 성토대회가 여러 곳에서 열리게 됩니다. 보천교 입장에서는 친일이라는 오명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일제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민족의식 선양과 대한독립의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업적은 역사속으로 묻히고 친일파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었습니다. 보천교는 일제와 친일세력이 의도한대로 1925년을 지나면서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36년 일제는 보천교를 해산시키고, 흔적을 제거하기 위해 보천교 본소 건물들을 해체합니다.

  • 작성자 10:04 새글

    @아침햇살 보천교에 비해 직접적으로 친일을 선언한 불교와 기독교 단체들도 있었습니다.

  • 작성자 10:12 새글

    @아침햇살

  • 작성자 10:13 새글

    @아침햇살

  • 작성자 10:14 새글

    @아침햇살

  • 작성자 10:18 새글

    @아침햇살

  • 10:16 새글

    차일혁이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시각과 논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반공을 명분으로 한 동족상잔"이라는 비판적 시각
    이념의 희생양과 동족 살상: 해방 직후 남한 사회는 식민지 청산과 사회 개혁을 둘러싸고 극심하게 대립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반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이나 좌익 부역자로 몰린 이들 상당수도 결국 민족의 일원이자 민중이었습니다.
    구조적 한계: 독립운동가 출신이라 하더라도 대한민국 경찰 조직의 명령체계 안에서 빨치산 토벌 작전을 지휘한 이상, 통일 정부 수립을 지향했던 이들과 대립하고 같은 민족을 진압하는 구조적 역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 10:18 새글

    역사 속 인물을 다룰 때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 **'완벽한 영웅'**으로 극적으로 각색하거나, 반대로 특정 이념적 잣대로 **'완벽한 악인'**으로 단죄해 버리는 이분법적 접근입니다.
    차일혁이라는 인물 역시 그 생애를 들여다보면 시대의 거대한 비극과 모순을 온몸으로 통과한 인물입니다.
    독립운동가 가문과 조선의용대 활동이라는 민족주의적 뿌리
    분단과 전쟁이라는 참극 속에서 대한민국 경찰로서 동족에게 총을 겨누어야 했던 구조적 비극
    그 참혹한 이념 전쟁의 현장에서 문화재를 지키거나 적장에 대한 예우를 갖추려 했던 개인적 양심의 몸부림
    이 모든 요소들은 어느 하나만 떼어내어 영웅화하거나 비판할 수 없는, 모순된 시대가 만들어낸 입체적인 삶의 조각들입니다.

  • 작성자 10:19 새글

    네, 공과가 있습니다.

  • 10:38 새글

    조상이 누구이든,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든 간에 개인의 삶과 인품은 선대의 그늘이나 편견으로 단죄받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은 역사를 성찰하고 인물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인권적·인문학적 가치입니다.
    우장춘(禹長春, 1898~1959) 박사의 예시가 그 진실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의 부친 우범선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관여한 인물로 역사에 큰 죄를 지었으나, 우장춘 박사는 일본에서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해방 후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배추, 무 등의 씨앗 자립을 이루어내고 한국 농업의 기틀을 다지며 평생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만약 당대 사회가 '친일파의 자식'이라는 주홍글씨와 선입견만으로 우장춘 박사를 배척하고 단죄했다면, 굶주림에 허덕이던 해방 직후 한국 농업의 위대한 성취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차일혁 총경이나 우장춘 박사의 사례처럼, 개인은 부모나 조상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으며 선대의 공과(功過)가 후손 개인의 인격이나 삶을 결정짓는 절대적 잣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조상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각자가 살아낸 삶의 궤적과 인품을 온전히 바라봐야 합니다.

  • 10:41 새글

    특정 집단이나 내력을 이유로 사람을 쉽게 판단해 버리는 현대 사회의 수많은 편견과 오류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역사와 인물을 대하는 데 있어 선입견을 경계하고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객관적이고 따뜻하게 바라 보아야 합니다.

  • 작성자 13:42 새글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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