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 문화관광해설사 현장교육으로 동료들과 함께 충남 서산시를 방문하였습니다. 24일 오전6시20분에 갑곶돈대 주차장에 집합하여 출발했는데, 박용철 강화군수님이 찾아와 배울을 하셨습니다.
오전 9시쯤 첫 번째 방문처인 유기방가옥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는 유기방이라 하시는 분의 고택인데, 주변 2만평에 수선화를 심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수선화는 일부만 피었고 만개가 될 때까지는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다음은 해미읍성海美邑城을 현지 해설사의 안내로 관람하였습니다. 해미海美라는 단어는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합쳐서 부르게 된 지명이라 합니다. 조선초기에 왜구를 대비하기 위해 조선造成되었던 병영성兵營城입니다. 일반 읍성과 아닌 충청병마절도사忠淸兵馬節度使가 부임하는 군사적 기능을 가진 성입니다.
여기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부임하기도 하였습니다. 강화도에서 일어난 병인양요丙寅洋擾(1866년 프란스과의 전쟁)와 오페르트 도굴사건(흥성대원군의 부친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던 사건) 이후에 천주교 박해가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특히 남연군의 묘가 해미읍성 근처인 예산군에 있어서 해미읍성에서 대대적인 처벌이 일어났다 합니다. 처형 당하는 신자 수가 무려 1천여명이었다 합니다.
해미읍성을 안내하는 해설사 선생님에게 흥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조선시대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인권보호 국가였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범죄를 저지려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죄인을 잘못으로 죽인 관리가 처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는 사극으로 태종 때 왕자의 난이나 숙종 때 환국정치 등이 생각나 좀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질문하니 “다만 역모 등 왕권이나 국가권력에 대해 모반하는 것을 제외한다” 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천주교도 왕권에 대한 모반” 이라는 이유로 신자가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한민족대서사시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평화를 소원하는 한민족의 뿌리는 시대를 이어 존속되어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일부 위정자爲政者의 이기적인 정치의 형태만 강조하고나 왜곡하여 조선사회 전체가 혼란케하였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알게되었습니다.
식사 후에 간월암看月庵을 찾았습니다. 고려 말에 무학대사(이성계와 가까워 한양 천도를 도왔던 인물)가 이곳에서 수행하다 달을 보고 도를 깨우쳤다고 하여 암자 이름이 간원암이라 합니다. 낙조가 유명하고 만조 때는 육지와 분단되어 섬으로 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를 방문하였습니다. 커브가 있는 오르막 길을 올라갔는데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신라시대 사찰이라 하는데 사찰의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서 알아보니 “서해안 바닷가 가운데에 바위섬처럼 떠 있으므로 절 이름을 부석사라고 했다(백과사전)” 합니다. 산의 이름도 섬이 날린다는 뜻이고 흥미러웠습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금동관음상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을 위해 약달되어 소유권도 일본이라 합니다. 지금 일시적으로 귀환하고 있었는데 꼭 정식으로 귀환하면 좋겠습니다. 해설안해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냥 견학하는 것 보다 설명이 있으면 더욱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