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닷마을 사람들이 힘들었을 때 다가온 조개다. 그것도 혼자 갯밭을 일구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함께 해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갯밭을 만들어 가난을 이겨내고, 학생들에게는 상급학교 진학을 꿈을 꾸게 해주었다. 또 낙도 어린이들이 서울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도 조개였다. 60년대, 70년대 초등학교 선생님은 마을 지도자였고 어업지도사였다. 젊은 선생님 부부가 낙도에 들어와 섬 주민들을 설득하고 꿈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조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느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함께 조개밭을 가꾸고 소득을 똑같이 나누는 어촌이 있다. 그 주인공이 바지락이다. 4월과 5월에 맛이 좋다. 먹고살기 힘들 시절에 여러 역할을 했던 것만큼이나 밥상 위에서 변신도 놀랍다.
* 조개예찬 손암은 ‘자산어보’에 바지락을 ‘포문합(布紋蛤)’이라 했고 속명으로 ‘반질악(盤質岳)’이라 했다. 그리고 이청은 덧붙어 ‘모양이 긴 조개는 ‘방(蚌)’이나 ‘함장(含漿)’, 모양이 둥근 조개는 ‘합(蛤)’이라 하고, 양끝이 뾰족하고 작은 놈은 작은 조개는 ‘비(蠯)’나 ‘마도(馬刀)’라고 한다.’고 했다. 포문합은,
큰 놈은 지름이 0.2척 정도이다. 껍질이 매우 얇고 가로세로 가는 베(細布)와 같은 자잘한 무의가 있다. 조객 양쪽 볼이 다른 것에 비해 볼록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살도 알차다. 껍질의 색은 희거나 검푸르고, 맛이 좋다.
라고 했다. 정약전이 이야기한 세포는 ‘올이 고운 베’를 말한다. 바지락 껍질을 보면 방사상으로 펴진 홈과 성장맥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낸 무늬를 표현한 것이다. <임원경제지> ‘정조지’에는 조개는 ‘맛은 짜고, 성질을 차며, 독은 없다. 오장을 적셔주고 소갈병을 그치게 하며 위장을 열어 준다.’ 고 했다. 중국 송대 가우연간에 장우석 등이 저술한 가우본초(嘉祐本草)를 인용한 내용이다. 바지락을 특정한 것이 아니지만 바지락을 포함한 ‘조개’를 말한다. 진해만 진동에 유배되었던 김려가 쓴 어보 <우해이어보>에 ‘반월합(半月蛤)’이라는 패류를 소개한 내용도 있다. 이 반월합이 바지락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 내용에 나오는 ‘백합’은 오늘날 모시조개를 말한다.
半月蛤形似白蛤. 而一殼短成. 開口如螺. 眞如半月.
<자산어보>(출처 : 규장각) <우해이어보> (출처 : 고전DB)
* ‘참바지락’부터 ‘물바지락’까지 패류 중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은 굴이며, 이어 홍합과 바지락이다. 하지만 쓰임새로 본다면 바지락이 제일 다양할 것이다. 바지락은 백령도에서 진도까지, 진도에서 진해만까지 갯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채취할 수 있는 조개다. 제주도는 흔치 않지만 종달리, 오조리, 성산포 등 혼성갯벌이 형성된 해안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연안에서 흔한 바지락이지만 그 맛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다. 바지락이 서식하는 갯벌을 가진 마을마다 우리 바지락이 최고라고 엄지척을 한다. 전라남도에는 여수, 고흥, 장흥, 강진, 완도의 어촌마다 크고 작은 바지락 밭이 있다. 특히 고흥은 여자만, 득량만에 바지락밭이 많다. 또 고흥군 포두면 남성리와 동일면 덕흥리 사이에는 어업유산으로 손색이 없는 바지락밭이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모내기를 하는 무논과 같은 경관이다. 지금은 간척을 해서 논으로 바뀌었지만 해창만도 바지락이 지천이었던 갯벌이었다.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갯벌에서 호미로 캐는 바지락을 ‘참바지락’이라 한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이 고흥반도 동남쪽과 나로도 사이에 물골에서 서식하는 물바지락이다. 배의 고물에 형망을 매달아 끌어서 물속에서 채취하는 바지락이다. 사양도와 쑥섬 서쪽 바다 4,398㏊ ‘나로도해역’이 수출용 패류생산 지정해역(FDA,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으로 선정되었다.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지정해역으로 굴은 한산거제만 해역, 자란사량도해역, 미륵도해역, 가막만해역, 강진만 해역이 있지만 바지락은 나로도해역이 유일한다. 이렇게 지정된 해역은 패류수출을 목적으로 각 나라에서 정해놓은 위생기준에 적합하도록 관리하는 해역을 말한다. 시장에서 나로도 물바지락이라 하는 그 바지락이다.
바지락 채취하는 어민(고흥 내로마을) 바지락밭(고흥 남성리)
* 바지락 변신은 어디가 끝일까 바지락만큼 변신의 귀재가 있을까. 봉골레파스타는 이제 누구나 다 아는, 한번쯤 조리해 본 바지락 음식이다. 바지락의 고장 고흥에서는 ‘짓갱이’라는 흔치 않는 음식이 전해온다. 봄철 바지락이 많이 나오는 철에 보릿고개를 넘던 지혜롭고 영양만점의 음식이다. 밥과 깨를 짓이겨서 만들어 붙여진 이름이다. 귀한 음식이라 결혼식이나 회갑연에 잔치음식으로 내놓았다. 우선 바지락 살만 솥에 넣고 물을 조금 부어 육즙이 나올 때까지 살짝 익힌 후 깨와 밥을 넣고 짓이겨서 걸쭉하게 끓인다. 여기에 두부를 넣고 다른 부재료를 넣어 완성을 한다. 이렇게 한 솥 끓여 찾아온 손님에게 내놓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다에서 나오는 톳, 밭에서 얻은 시금치, 산에서 채취한 취 등 어느것과 궁합을 맞춰도 손색이 없다. 이 정도면 약방에 감초가 있듯이 조개에는 바지락이다. 시원한 된장국에, 술국으로 바지락국, 콩나물국이 있고, 회무침으로 채소와 무쳐도 좋고, 그냥 바지락만 무쳐도 감칠맛이 으뜸이다. 고흥이나 여수에서는 바지락을 꼬챙이에 끼워 말렸다가 잔치에 꼬치로 만들어 내놓고 아이들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기도 했다. 고흥이나 여수 건어물 가게에 가끔 새조개나 바지락 꼬치가 나온다. 조개젓에서 바지락을 넣은 쌈장까지 변신이 끝이 없다.
채소와 나물을 더한 바지락 무침 바지락 짓갱(고흥)
* 바지락도 위험하다 전라북도 부안에서 들었던 이야기이다. 갯벌을 밟고 지나갈 때 밟혀 ‘바지락바지락’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그만큼 바지락이 흔했다. 이제 바지락도 안녕하지 않다. 생산량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생산량을 보면, 1990년 7만여톤에서 2000년 3만여톤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2만여 톤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채취량은 줄었지만 수요량이 늘면서 가격은 올라가고 빈자리는 수입산이 차지했다. 북한산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중국산이 많이 수입되고 있다. 이탈리아산 냉동바지락이 봉골레 파스타 용으로 많이 들어온다.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에서도 들어오고 있다. 왜 이렇게 생산량이 줄었을까. 국립수산과학원이 밝힌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바지락이 서식할 갯벌이 매립과 간척으로 크게 줄었다. 둘째는 강에서 공급되는 모래와 자갈 등이 방조제로 막히면서 혼성갯벌이 펄갯벌로 바뀌어 바지락보다는 쏙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쏙은 마치 연탄구멍처럼 갯벌에 구멍을 뚫고 서식한다. 바지락이 서식하는 곳을 이렇게 구멍을 뚫어 놓으면 바지락은 서식할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쏙을 쏙쏙 잡아낼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갯벌이 펄이 많은 갯벌로 바뀌면 종패나 치패들이 생존율이 떨어진다. 이 외에도 해양오염, 기후변화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바지락은 가뭄이 심하면 자라지 않지만, 비가 너무 많이 오면 폐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요인들로 바지락 생산량을 보면 변화된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참바지락은 감소하고 물바지락이 증가하고 있다. 갯벌체험도 잡거나 캐는 프로그램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탈리아 남부 오스티아 해변에서는 8월이면 ‘조개 페스티벌(Telina Festival)’을 개최한다. 봉골레파스타는 기본이며, 조개 볶음, 조개 튀김, 조개 샐러드 등 조개 요리를 즐긴다. 음식과 함께 카바레, 콘서트, 뮤지컬 등 문화공연이 개최된다. 우리도 바지락만 채취해 파는 것에서 지역의 문화와 결합하고 환경도 지키는 방향 전환이 요구된다.
<자산어보>에서 세포(細布)라 했던 바지락 껍질 봉골레 파스타 글쓴이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