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서 산책(64)
제 2 강 :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4).
지금도 하나님은 ‘너는 내 운명’이라는 영화를 찍고 계십니다. 우리 성도들과 주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가십니다. 룻과 보아스를 만나게 하셨듯이 우리와 주 예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이 모두가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필연입니다. 우연이란 돌고 돌아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운명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로 만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과 같습니다. 구약의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이삭의 신붓감을 구하려고 먼 길을 떠나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순적히’ 만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는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납니다. 하나님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순적히’입니다. 이삭이 나이 들어 에서에게 장자 권의 축복을 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에서에게 별미를 만들어서 오라고 합니다. 이 소리를 리브가가 듣고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일을 꾸밉니다.
리브가가 별미를 만들어서 야곱의 손에 들려서 이삭에게 나아가 장자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이때 이삭이 야곱이 가지고 온 별미를 먹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빨리 사냥해서 별미를 만들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냥감을 ‘순적히’ 만나게 해 주어서 빨리 왔다고 합니다.
여기서 ‘순적히’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라는 말입니다.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만난 것도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신 것이고, 야곱이 리브가가 해 준 별미를 들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도 하나님에 의해서 연출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고, 모두가 필연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만나고 헤어집니다. 드라마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것이 감독의 연출에서 비롯되듯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하나님의 연출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만남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떠나고 없는 사람을 아쉬워 미련을 가진 것도 내려놔야 합니다.
피조물이란 창조주에 의하여 지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는 곧 독자적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창조주의 허락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피조물이라는 말 속에는 독자적으로 살지 않는 존재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피조물이 무엇입니까? 창조주가 만든 존재라는 말입니다. 창조주가 존재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피조물 속에는 창조주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넌 이렇게 살아라”라는 명령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하나님이 ‘살아라’라는 명령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만물은 하나님 말씀을 알아먹는다는 말입니다.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으니 창조가 된 것입니다. 말씀으로 창조가 되었으니 말씀을 알아먹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고, 풍랑을 꾸짖습니다. 주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에게 “그만해라!” 그러자 바다와 풍랑이 즉시로 잠잠해졌습니다. 이것을 제자들이 지켜 봅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이 분이 도대체 뉘시기에 바람도 순종하는고!”라고 합니다. 꾸짖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을 알아먹기 때문에 꾸짖는 것입니다. 말씀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만물은 다 하나님 말씀을 알아먹고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우연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 필연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한 장면 한 장면 모두가 시나리오에는 미리예정된 장면입니다. 각각의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반드시 그 장면에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각본이 쓰여져 있으니까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만난 것입니다.
감독이 만나라고 각각의 배우에게 준비시켰다가 때가 되어서 “큐~” 하고 연기를 시킵니다. 이를테면 건장한 청년은 주 예수님이고 소나기를 맞는 여인은 우리 죄인들입니다. 본문 식으로 말하면 소나기를 맞는 여인은 룻이고 건장한 청년은 보아스입니다. 그러니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바램으로 된 것입니다. 이제 만났으니 사랑하고 아기를 낳는 다음 장면을 찍어야 합니다. 대본대로 그렇게 흘러가게 됩니다. 그럼 스텝들은 다음 장면을 위하여 또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룻과 보아스가 보리밭에서 이루어진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 들판에 낟가리도 만듭니다.
그리고는 그 사랑으로 아이가 잉태되고 낳게 됩니다. 이 아이가 주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룻과 보아스를 가지고 성도와 주 예수님의 만남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룻과 보아스의 이야기를 우리 이야기로 해보십시오. 우리가 주 예수님을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우리가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당연히 만나야 할 사람이 만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서로의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당신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만남이 있으면 또한 헤어짐도 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은 시간차가 다른 한 셑트입니다.
계속해서 함께 가든지 아니면 잠시 길동무를 하다가 이별을 하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이라는 날 동안은 하나님의 섭리라 생각하고 서로 사랑하며 감사하면서 살면 그뿐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허락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입니다. 예정된 사건들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