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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 충무김밥, 유부초밥
주먹밥
주먹밥은 깨, 소금
이것이 기본에 다양한 야채, 햄, 참치, 김 등을 첨가하여
여러가지로 번갈아 만들어 먹어도 좋습니다.
개요
밥을 뭉쳐놓은 형태의 음식을 총칭하는 말. 말 그대로 '주먹처럼 쥔 밥'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북한 문화어로는 '줴기밥'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밥을 쥐어서 만드는 것'에서 유래했다.
역사
밥을 손으로 뭉치기만 하면 된다는 매우 원시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만큼 쉽고 간단한 음식이다 보니 주먹밥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자세한 역사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인류가 쌀을 먹기 시작한 이래로 수렴진화하듯이 동시다발적으로 자연스럽게 생긴 요리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 학계에서는 매우 과감하게도 기원 전에 탄화한 쌀을 발견한 유적 자체를 주먹밥의 유래로 추정한다. 쌀이 있던 시절에 이미 주먹밥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 사실 주먹밥이란 게 특별한 요리 방법이라고 할 것도 없이 단순히 밥을 뭉친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아주 이상한 추론은 아니다.
그러나 석기시대 사람들은 식기가 없어서 주먹밥으로 먹지 않았겠느냐는 추론은 그릇이 밥보다 먼저 발명되었으므로 오류이다. 토기는 신석기 시대부터 나오지만, 밥을 지어 먹었다는 명확한 증거인 시루형 토기는 서력기원 무렵에야 나온다. 그 이전까지는 토기의 흔적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토기에 물을 채운 뒤 곡식과 수렵이나 채집으로 얻은 잡다한 재료들을 함께 끓여 잡탕처럼 먹었을 것이다. 쌀이 있으니 밥도 당연히 있다는 생각 자체가 현대인의 오류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옛날엔 지금에 비해 식재료가 부족했으므로, 한반도 사람들의 초기 주먹밥은 지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멥쌀로 지은 밥보다는 보리나 잡곡 등을 섞어 뭉친 잡곡밥이 일반적이었고 속재료도 지금보다 간단하게 소금간을 하는 정도로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문학 작품 등지에서 나무꾼들이 도시락으로 콩과 깨가 들어간 주먹밥을 만드는 장면을 묘사하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콩을 삶아서 과반(裹飯, 쌓은 밥)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불경에서는 승려가 먹는 음식으로 단식(摶食)[2]이라는 게 나오는데, 인간이 먹는 물질과 형상으로 된 음식이란 뜻 말고도 손으로 뭉쳐 먹는 밥, 즉 주먹밥을 뜻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시기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달하던 1943~45년 일본은 도쿄 대공습 등 수많은 공격을 받아서 불타는 판이었다. 당시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는 한반도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에게도 공습 대비훈련과 전시 대비훈련을 지속적으로 시켰는데 그 중에서는 여학생들에게 주먹밥을 만들게 하는 훈련도 포함하였다고 한다.
종류
속재료의 유무와 주먹밥의 모양, 겉을 둘러싼 재료의 유무 및 종류에 따라 바리에이션이 끝없이 나온다. 크게 분류한다면 부재료가 안에 있는가 밥에 섞여 있는가, 겉을 김이나 계란, 햄 등으로 쌌는가 싸지 않았는가, 형태가 기둥형인가 구형인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계열은 삼각김밥이라 불리는 삼각형 주먹밥과 고전적인 구형 주먹밥 계열이지만 최근에는 기둥형이고 겉을 김으로 쌌으며 부재료가 밥 안에 있는 주먹밥이 주로 소비된다. 이는 기둥형의 주먹밥이 먹을 때 밥에 코 등이 닿지 않아 구형 주먹밥보다 먹기에 편하기 때문으로 일종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발전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만들기
아주 간단하게는 지은 밥에 소금간을 한 후 뭉치면 되지만 최근에는 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똥손이라고 해도 재료나 양념의 양만 잘 지키면 누구든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요리다. 망할래야 정말 망할 수가 없는 요리
전통적 속재료 깨, 소금만 넣어도 맛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참치, 마요네즈, 야채도 많이 넣습니다.
충무김밥
유래
충무김밥의 탄생은 크게 두 가지 설로 나뉜다.
첫 번째 설은 1945년 광복 이후, 어부 남편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느라 제 때 먹지 못한 도시락이 상해 버려 결국 매번 굶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일을 하면서도 먹기 간편한 김밥을 만들어 준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설은 정작 그렇게 충무김밥을 처음 만든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밝히지 못했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변가에서 김밥을 팔던 한 할머니가 만들었다는 등 여러 주장이 혼재한다. 당시 어부들은 식사로 대개 김밥을 싸 가지고 나갔는데, 뱃일은 원래 하루를 꼬박 잡아먹는 고된 일인데다가 불규칙성이 너무 강해 밥 먹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맞출 수 없어 식사 시간을 한참 넘겨서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당시 기술력 수준으로는 고깃배에 냉장시설을 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상하기 쉬운 김밥을 제대로 보관할 방도도 없었다. 이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다가 김에 속 없이 밥만 싸내고, 여기에 잘 상하지 않는 반쯤 삭힌 꼴뚜기무침과 무김치를 따로 싸서 팔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충무김밥의 시초라는 것이다.
두 번째 설은 당시 해상 뱃길의 중심지였던 통영여객선터미널을 찾는 사람들을 상대로 주전부리를 파는 행상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따뜻한 남부 지방의 날씨로 인해 상하기 쉬운 김밥을 밥과 반찬을 분리해서 팔았다는 설이다.
이 두 설 모두 냉장시설이 없는 배에서도 쉽게 상하지 않도록 고안해 낸 음식이었다는 설명은 동일하다.
아무튼 덕분에 통영의 강구안~여객선 터미널 구간의 해변도로에는 1960~1980년 전통, 3대 등의 이름을 단 원조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물론 관광지의 원조 골목이 다 그렇듯 가게 연혁 상관없이 개나소나 다 원조라고 자칭한다. 심지어 신장개업하는 곳도 원조라고 할 지경이다. 이런 충무김밥집들의 간판에는 대개 할머니 사진이 붙어 있는데, 첫 번째 설에 나오는 충무김밥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 바로 그 할머니라고 한다.
지역 명물 음식이 으레 그렇듯 충무김밥은 원조집 논란이 항상 끊이지 않는데, 한일, 통영할매, 그리고 뚱보할매 세 곳을 사실상 원조라고 간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래 할머니 셋이 협업하여 강구안 여객터미널에서 충무김밥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강구안 여객터미널이 폐쇄, 광장으로 바뀌며 셋이 각각 가게를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과거 본고장 통영에서 사면 밥 양만큼 무김치를 주고, 또 밥 양만큼 오징어 어묵 무침을 줬다. 그러니까 밥 양의 2배로 반찬을 줬다는 소리. 덕분에 무김치와 오징어 어묵 무침은 반찬통에 넣고 몇 번은 더 먹을 양이 됐었는데, 지금은 본고장에서 사도 거의 딱 맞을 정도거나 약간 모자라는 정도다.
게다가 시래기 국물도 나오는데 국물과 같이 먹는 충무김밥은 정말 맛있다. 다만 이건 취향이 좀 갈리는 데다가 시래깃국 자체가 가게마다 맛이 조금씩 다른 경우가 있는데, 무침은 한일이, 시래깃국은 통영할매가 더 잘한다. 원래 만드는 걸 분담했을 때 그렇게 했다고.
통영 지역 충무김밥집이나 일반 식당에서는 아침밥으로 시래기 해장국을 파는데 밑반찬으로 오징어 무침과 깍두기가 나온다. 아침과 점심을 사실상 같은 메뉴를 판다는 이야기.
현시대 간단한 단촛물
밥에식초 3T + 설탕2T + 소금1t넣고 섞어서 김밥싸기
김치랑 함께 먹던가 단무지랑 먹던가....
유부초밥
유부초밥의 기원을 알 수 있는 기록으로는 1853년경에 기타가와 모리사다(喜田川守貞)가 에도 시대 후기 에도와 교토, 오사카 지역의 풍속과 사물들을 보고 들어 찬술한 《수정만고(守貞謾稿)》에 쓰여 있는데 '에도 지방에서 유부의 한쪽 끝을 잘라내고 그 속에 잘게 썬 버섯, 박고지 등을 밥과 함께 섞어 넣어 만든 초밥을 팔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것이 유부초밥의 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부초밥의 일본 이름인 이나리즈시의 이나리(稻荷)는 원래 신토에서 곡식을 상징하는 신을 가리키며, 그 신을 상징하는 동물이 여우다. 따라서 여우가 튀김을 좋아한다는 구전 이야기와 합쳐져서 유부초밥의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과거에는 기름이 상당히 귀했고 기름으로 튀기는 건 식재료를 정갈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깃들었다. 따라서 신수인 여우가 쥐를 잡아먹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이나리 신에게 쥐를 잡아다 튀겨서 제물을 바치는 풍조가 있었는데 이후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무의미한 살생을 자제하는 풍조가 생겼고 튀긴 쥐 대신 튀긴 두부를 제물로 바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여우가 튀긴 두부를 좋아한다고 알려지게 된 이유이다.[4]
물론 여우가 실제로 유부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는 기름이 귀했던 당시의 튀김과 영험한 여우를 엮어서 나온 속설이다. 한국에서는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햇님달님 이야기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역시 실제 호랑이는 떡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지만 귀한 떡과 값비싼 담배를 영물인 호랑이의 이미지에 빗대서 만든 말이다.
새콤달콤하고 담백하여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소풍갈 때 도시락 메뉴로 김밥과 함께 인기 메뉴로 꼽히나 아직까진 김밥에 밀린다. 유부를 직접 만든다면 유부초밥은 김밥에 비해 자리도 많이 차지하면서 조리하는 데 수고로움도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다. 그래서 유부부터 만들기보다는 흔히 시중에 판매되는 DIY형 유부초밥 재료 모음을 써서 만드는 편이다. 집에 밥만 있다면 10분 투자로 2인분 가량을 괜찮은 물건을 만들 수 있다. 유부초밥에 들어가는 재료가 몇 가지 없다고는 하나 처음부터 직접 만드는 것은 의외로 난이도가 높고 귀찮은 작업이 많다.
유부초밥을 만드려면, 유부를 조림국물에 조려두고, 밥에 배합초를 섞어야 한다. 유부는 원래 보존식품이라서 잘 건조시켜 과자처럼 바삭한 상태로 보관하는데, 유부초밥을 만들 때 살짝 데치거나 끓는 물을 부어 주면 남은 기름이 빠지고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시판하는 유부조림소스이 싫다면, 간장, 술, 미림, 설탕을 취향대로 적절히 섞어 데우고 유부를 넣되, 끓으면 부서지므로 주의하면서 맛을 입힌다. 소금을 매우 적절히 넣어 지은 밥에 초를 뿌리고 식힌 뒤 유부 속에 채워 넣으면 완성이다.
시판 유부초밥 재료를 사서 해먹는 것이 가격도 저렴하며 번거로운 조리 과정을 덜 수 있다. 시판 유부초밥은 대부분 조미된 유부피와 말린 야채 볶음과 배합초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 당근이나 양파, 말린 우엉 등 다양한 재료를 추가하면 보다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유부만 구하면 나머지는 확실히 김밥보다 만들기가 간단하다. 김밥은 재료들을 길쭉하고 가늘게 썰어서 요리해야 하고, 무엇보다 숙달되지 않으면 김밥을 망치기 십상인 말기 과정이 있는 반면, 유부초밥은 다진 재료를 비빔밥 하듯 밥에 섞은 다음 유부에 채워 넣으면 된다. 그러나 만들 때 의외로 밥의 양 조절이 힘들다. 공기밥으로 계량하여 양 조절을 하면 좀 더 쉽다. 손이 큰 초심자들은 간혹 옆구리 터진 유부를 만들기도 한다.
유부에 들어가는 밥에는 기본적으로는 아무것도 넣지 않지만 채소 같은 다른 식재를 잘게 썰어넣기도 한다. 하지만 김밥 속재료처럼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니 후리카케로 대체할 수도 있다. 속재료의 비중을 늘려서 대형마트의 즉석식품 코너에서 사각 유부초밥을 뒤집어 드러난 밥 위에다 새우나 고기고명, 혹은 채썬 계란지단 같은 여서 재료들을 소복히 올려 만든 변형이 존재한다.
초밥 중에서 계란초밥과 더불어 환영받지 못하는 종류이다. 당연히 초밥하면 흔히 떠올리는 생선류보다 맛과 만족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양학적으로도 그다지 좋지 않다. 초밥집에서는 회초밥과 달리 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회초밥의 자리를 채우는 용도로 넣는다.
2020년대 들어서는 국내에서 갑자기 유부초밥의 인기가 높아졌는데, 초밥집, 분식집, 편의점의 부차적인 메뉴에서 벗어나 아예 전문 체인점이 속속히 생겨났다. 이른바 '대왕유부초밥'으로, 커다란 사이즈의 유부초밥에 연어 회, 볶음멸치, 제육볶음, 불고기, 참치마요 등 여러가지 토핑을 넣어 달달하면서도 간편식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의 입맛을 노린 것.
유부초밥 재료사서 밥에 섞어서 유부에 쌓면 끝나는 초간단 요리입니다.
새콤달콤한 맛을 좋아하시는 분은 좋을듯 합니다.
가장 간단하게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종류의 주먹밥, 충무김밥, 유부초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