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나폴리를 보라”는 이탈리아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설득력을 잃은지 오래돼도 한참 오래됐습니다. 부둣가를 서성거리는 부랑자 같은 청소년들, 거리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북아프리카 출신의 장사치들, 언제 어디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소매치기들과 집시들, 조잡한 실내장식의 싸구려 식당들, 허접한 아파트 베란다에 내걸린 너절한 총천연색 빨래들 등등..
그래서 요즘 관광객들은 나폴리에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인근의 폼페이나 소렌토 또는 카프리섬 등으로 바로 내빼버립니다. 물론 이곳들은 나폴리보다 세련되고 깔끔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하루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과거의 영화(榮華)를 먹고 사는 나폴리를 애정을 가지고 한번 돌아볼 수도 있겠지요.
나폴리의 진가는 찬란한 태양의 낮이 아니라 저녁에 있습니다. 해가 기우는 어스름이 깃들면, 저녁 식사는 가급적 바닷가 식당에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해가 떨어질 때 서쪽 바다를 바라다보면, “과연 나폴리구나”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특히 날씨기 좋다면 석양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카프리 섬에서 오는 하얀 수중익선(水中翼船)들이 그림처럼 물을 가르면서 항구로 들어오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주머니가 가벼우면 피자 하나에 싸구려 와인 한 잔 시켜도 좋습니다. 산타 루치아 항을 바라보며 먹는 피자는 마르게리타 피자가 제 맛입니다. 이 피자는 나폴리의 상징이기도 한데, 돈도 없고 고기도 없고 생선도 없던 척박한 나폴리 서민들이 만든 소박한 음식입니다.
마르게리타에는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 그리고 바질(토핑용 허브)만 들어갑니다. 그러면 붉은 토마토와 흰 모차렐라 그리고 초록색의 바질이 바로 이탈리아 국기의 모습을 띠게 됩니다. 피자를 와인과 함께 먹을 때 부두가의 3류 가수들은 ‘나폴리타나’라는 나폴리 가곡을 부릅니다.
여기서 가장 어울리는 노래는 <산타 루치아>도 <돌아오라 소렌토로>도 아닙니다. 저녁 바다에서 토스티의 <마레키아레>를 들어보세요. ‘마레키아라’란 달빛에 비쳐 하얗게 된 나폴리의 밤바다를 뜻합니다.
“마레키아레에 달이 떠오를 때, 물고기도 사랑에 취한 듯 수면에 떠오른다. 발코니에서 미소 짓는 그녀를 향한 나의 정열은 불탄다. 잔물결은 부드럽게 해안으로 밀려오고, 창문에는 카네이션 향기가 넘친다. 잠을 깨라. 이 밤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얼마나 오래 나는 너를 기다려왔는가? 내 슬픈 노래의 반주를 위해 오늘 밤은 내가 기타를 가져왔다.”
대충 이런 노랫말입니다. 파바로티가 쓰리 테너 콘서트에서 불러서 유명해진 이 노래, <마레키아레>를 들으면 그 어떤 나그네가 나폴리에서 잠을 청할 수 있을까요? 밤을 새며 와인을 마시고 노래를 불러도 흥취는 좀처럼 가라앉지 앉습니다.
* 마르게리타 피자
* <마레키아레>를 작곡한 이탈리아 가곡의 왕, 파올로 토스티
가곡이라면 우리는 대부분 슈베르트나 슈만 등으로 대변되는 독일 가곡이나 포스터의 미국 민요 등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가곡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곡이라기보다는 칸초네풍의 노래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예술가곡의 수준에 근접하는 작곡가가 있으니 그가 바로 토스티입니다.
파올로 토스티는 나폴리 음악원에 다닐 때부터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특별히 시와 가곡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는 클래식을 전공한 작곡가들이 주로 오페라나 관현악에 목표를 두던 당시 분위기에서는 예외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나폴리는 지금 우리가 듣는 오페라의 기원이 되는 나폴리 오페라를 만들어낸 산실이기도 했습니다. 토스티는 뛰어난 성적으로 나폴리 음악원을 졸업한 후 그곳에서 조교로 일하다가 건강이 나빠지자 집에서 요양하게 됩니다. 아마 많은 가곡 작곡의 기반이 이때에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던 중 그에게 특별한 기회가 찾아왔는데, 음악교사로 런던에 초빙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토스티는 런던에서 영어와 불어, 이탈리아어로 된 많은 가곡들을 작곡하였고, 이탈리아를 흠모하던 영국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결국 빅토리아 여왕은 그를 왕실 음악가로 임명하기에 이릅니다.
* 밤의 나폴리
그래서 그는 30년이 넘는 긴 세월을 런던에서 보내게 됩니다. 영국 왕실로부터 남작의 작위까지 받은 그였으니, 사실 토스티는 동시대의 다른 작곡가들보다도 높은 대우를 받았던 셈입니다.
토스티는 67세가 되어서야 그리던 고향 나폴리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오랜 타향생활 동안에도 그의 마음 속에 항상 남아 있던 것은 나폴리의 푸른 바다였습니다. 토스티는 특히 시어(詩語)에 진지한 관심을 보여, 시가 가진 깊은 의미를 단순하고 인상적인 멜로디로 바꾸는 데 특출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 나폴리 시장
그의 가곡은 형식면에서는 단순한 것들이 많지만, 음악과 가사가 이루는 조화의 절묘함으로 본다면 과연 ‘이탈리아의 슈베르트’라고 불리울 만하였습니다. 토스티의 가곡들은 <이상>, <꿈>, <마레키아레> 외에도 우리에게는 ‘토스티의 세레나데’라고 널리 알려진 <세레나타>와 <4월>, <최후의 노래>, <작은 입술>, <기도>, 비밀> 등이 유명합니다. 그 외에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으리>, <고뇌>, <그림자>, <어부의 노래> 등도 인상적입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런 밤에 아름다운 토스티의 가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작은 창문으로 나폴리의 밝은 달빛과 일렁이는 밤물결이 들어오는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밤이 더욱 깊어가면, 일상에 지친 우리의 마음도 흰 달빛처럼 깨끗하게 씻겨질 것입니다.
세계 3대 미항이라던 나폴리가 어쩌다 이렇게...그래도 인근에 폼페이 유적과 풍광 수려한 소렌토와 카프리섬이 있으니...다음편에는 나폴리 태생의 20세기 최고의 테너였다는 엔리코 카루소를 소개합니다. 각혈을 하면서도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그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첫댓글 작년 겨울에 수박 겉햝기로 나폴리 항구 약 1시간 왓다리 갓다리 해봣읍니다
고관장 말따나 아파트 베란다에 너절한 빨래만 널어 놓고 항구는 좀 빈약해 보여
마니 실망햇읍니다. 재정적 취약이 도시 발전에 기여를 안하는것같이 느꼇지만
아뭇튼 좋앗읍니다
세계 3대 미항이라던 나폴리가 어쩌다 이렇게...그래도 인근에 폼페이
유적과 풍광 수려한 소렌토와 카프리섬이 있으니...다음편에는 나폴리
태생의 20세기 최고의 테너였다는 엔리코 카루소를 소개합니다. 각혈을
하면서도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그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소피아 로렌이 그 허름한 아파트의 나포리 태생이라는 말이 있는데
헐! 쏘피아의 두툼한 입술이 생각납니다
소피아 로렌은 출생은 로마였지만 어렸을 적 나폴리 북쪽의 포주올리 포구로
이사와서 나폴리 토박이로 자랐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