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말씀의 향기♣ No2898
9월29일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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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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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방송미사**
https://m.youtube.com/watch?v=qCgOzSpAE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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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훌륭한 설교자는 하느님의 천사들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끔씩 사용하시는 특유의 화법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당신의 말씀이 정녕 참되다는 것을 힘주어 강조하실 때 사용하십니다. 이는 히브리식 어법으로 뒤에 따라오는 문장의 내용을 ‘확실히 약속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뒤에 따라오는 말씀은 200퍼센트 확실히 이루어질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약속되고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의 내용이 놀랍습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복음 1장 51절)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위에는 천상의 시종들, 즉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렸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무렵 천사들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ㅎ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루카복음 2장 8절)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일간의 광야 피정 중에 천사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태오 복음 4장 11절)
뿐만 아니라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실 무렵, 이집트로 피난가 계시던 때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 위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리고 부활과 승천 때도 그분 주변에 천사들이 오르내렸습니다.
천사들이 그분 뒤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는 표현은 천사들이 자신들의 합당한 주인께 지극한 사랑을 다하여 섬기고 시중든다는 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교부의 말에 따르면 훌륭한 설교자는 하느님의 천사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처럼 언제나 사람의 아들 주변에 머물며, 그분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고 시중을 들기 때문입니다.
비단 설교자뿐만 아니겠지요.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이신 가난한 이웃들 주변에서 머물며, 그들에게 사심 없고 헌신적인 봉사를 계속하는 형제자매들 역시 하느님의 천사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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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복음묵상 동영상)
https://youtu.be/rZJY1PiI9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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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없는 관계는 소멸한다>
오늘은 세 대천사 축일입니다.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개자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직접 인간과 대화하시고 친교를 맺으시면 되지 왜 천사를 만드셔서 중개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관계를 맺는 두 당사자 간의 거리는 멀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어떤 뜻이냐면 관계 당사자가 서로 가까워질수록 관계는 소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관계는 믿음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너무 가까워서 하나가 되어버리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실상 관계는 소멸하는 것입니다. 둘이 뭉쳐서 하나가 되면 독립성과 개별성, 그리고 자유에 대한 존중이 사라집니다. 이게 사라지면 인격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소유하는 물건처럼 취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나의 ‘자유’가 구속당하면 그것으로 관계는 이미 소멸을 시작하게 됩니다.
남자를 자기 침대에 묶어 놓는 영화 ‘미저리’나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손과 발을 자르는 영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와 같은 것들은 공포가 따로 없습니다. 상대가 나를 떠날 수 없게 되면 이제 상대를 나와 함께 머물게 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간에 상대를 잡아놓기 위해 내어놓아야 하는 ‘피’, 곧 ‘희생’이 사라지기 때문에 둘의 관계는 소멸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서로의 ‘피’입니다. 이것이 상대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이 ‘피’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가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과 머물게 하려고 당신 천사인 ‘그리스도’를 내어놓으시고 인간은 ‘선악과’를 봉헌합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당신과 머물게 하시려고 당신 살과 피와 같은 ‘교회’를 내어놓고 이것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교회라는 천사를 통해 좋은 친교를 맺으십니다. 모든 관계가 이렇습니다. 중간에 피와 같은 천사가 오가지 않으면 관계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두 사람은 서로의 고유함을 존중해주기 때문에 하늘과 땅처럼 실제 거리는 멉니다. 절대 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이때 하늘을 나타내는 아버지와 땅을 나타내는 아드님이 그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을 오가는 두 분의 피가 곧 천사들, ‘성령’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랑은 삼위일체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하느님을 닮지 못했습니다. 피를 흘릴 줄 모릅니다. 소유의 본성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남자와 여자는 사귈 때 피가 덜 담긴 매개체를 이용합니다. 예를 들면 영화나 책, 음악이나 취미 등입니다. 그러다 만나서 함께 살다 보면 현실의 벽에 부딪힙니다.
일본에서 흥행한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도 두 남녀의 이런 관계를 잘 표현했습니다. 영화와 책을 좋아해서 만난 두 연인은 함께 동거합니다. 하지만 3년이 되니 현실적인 문제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막상 필요한 것은 ‘돈’입니다. 돈은 곧 나의 희생이자 피와 같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아직 로맨스를 꿈꿉니다. 여기에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여자 주인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일을 하기 위해 자격증까지 따서 들어간 회사를 그만둡니다. 그러자 남자는 화가 납니다. 자신도 만화를 그리는 것이 좋지만 함께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는데 여자는 여전히 이전의 즐거움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그런 애매한 곳 들어갔다가 잘 안 되면 어쩌려고?”
여자는 자신의 취향을 짓밟는 남자에게 짜증을 내며 말합니다. “그거야 그때 가서... 맞는 말이야... 너는 업무에 책임감을 갖고 힘든 상황에서도 잘하고 있는데.” “힘들다고 생각 안 해. 일이니까. 거래처 분이 뒈지라며 욕하고 침을 뱉을 때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힘들지 않아. 업무니까.” “그 거래처 사람이 정상이 아니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 해도 이마무라 나츠코의 ‘소풍’을 읽어도 아무것도 못 느낄 거야. 그런 인간이 너에게 상처를 준다는 건….” “어쩌면 나도 이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수 있어. ‘골든 카무이’도 7권에서 멈췄고 ‘보석의 나라’ 이야기는 기억도 안 나고 아직도 그런 걸 읽는 네가 부럽기만 해.”
여자는 한심한 듯이 말합니다.
“읽으면 되잖아. 숨 좀 돌리면서 살아.”
남자도 짜증이 납니다.
“그게 안 돼. 머리에 안 들어와! ‘퍼즐 앤 드래곤’ 외엔 하고 싶지 않아……. 어쨌거나 직장 일도 생활을 하기 위한 거잖아. 전혀 힘들지 않아. 취미를 살리니 뭐니 하는 건 내 입장에선 인생을 얕보는 거로 들려.”
“좋아서 함께 지내는데 왜 그리 돈만 중시해?”
“오래 함께 있고 싶으니까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여자는 소리를 지릅니다.
“난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긴 싫어. 즐겁게 살고 싶어.”
남자도 소리 지릅니다.
“그럼 결혼하자! 결혼하자고. 내가 열심히 돈 벌게. 넌 돈 벌지 말고 집에 있어. 집안일 안 해도 돼. 매일 좋아하는 일만 해!”
여자는 한심한 듯 읖조립니다.
“그거 프로포즈야? 지금 프로포즈 한 거야? 생각했던 거랑 완전 다르네. 휴….”
남자도 고개를 떨구며 말합니다.
“없던 걸로 해….”
그렇게 둘은 4년의 동거를 마치고 결혼에 골인하지 못합니다. 남자는 함께 사는 것에 의를 두고 살려고 하지만 여자는 더는 아무 로맨스도 느끼지 못하는 남자와 함께 살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헤어지자고 하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여자가 방을 구하는 3개월 동안 함께 사는데 이젠 서로를 구속하지 않으니 친구처럼 다시 재밌게 사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상대를 구속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리고 둘의 사이를 희생의 피로 메웠으면 어땠을까요? 그러나 두 사람이 마음이 맞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하늘이고 아드님은 땅입니다. 서로 하늘과 땅처럼 멉니다. 이는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성령을 통하여 당신 전부를, 아드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성령을 아버지께 보내십니다. 이 오가는 천사와 같은 성령님이 둘의 공간을 메워줍니다. 이렇게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과 같은 사랑을 하십니다. 그럼으로써 탄생하는 것이 그 자녀들인 교회입니다. 교회는 오가는 천사의 도움으로 시들지 않는 사랑을 하는 하느님 사랑을 닮은 자녀들입니다.
천사의 존재는 바로 이 삼위일체 사랑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사 없는 관계는 소멸합니다. 자유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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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요한 1,47-51: 하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며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며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이다(히브 1,14). 성서는 자주 이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성경에 나오는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미카엘 천사는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두 번 언급되었는데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닌다. 미카엘 천사는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 악에 대한 수호자,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한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란 뜻이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준 대천사이며, 즈가리야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이다. 그리고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이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며,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공경을 받고 있다.
이 천사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정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하는 것은, 그들 천사들까지도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셨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지고 계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제 더욱 인간을 위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사랑을 우리 안에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천사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전하는 존재라면, 이제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께로부터 사랑과 그분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천사의 모습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늘 복음의 나타나엘이 예수님께로부터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47절)하고 칭찬을 들었듯이 우리 자신이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자세를 갖는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춘다면, 오늘의 이 복음 말씀을 올바로 사는 것이며, 우리의 모습이 진정 다른 사람들에게 천사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나의 천사가 되어 내 삶을 바꾸어준 사람은 누구인가? 한편 나는 누구의 천사가 되어 그 사람의 삶에 축복이 되고 있는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선물이 되어줄 수 있다면 우리도 천사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삶의 노력을 주님께 바쳐드리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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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원주교구 신우식 토마스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의 마음속에 담긴 진실한 갈망을 보시고, 그를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요한 1,45)으로 예수님을 소개하였을 때,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라고 퉁명스럽게 말하였습니다. 오경은 물론 라삐 문헌들을 연구하고 메시아를 갈망하던 나타나엘에게 필립보는 “와서 보시오.”(요한 1,46)라며 그를 예수님께 초대합니다. 나타나엘은 예수님과 대화에서 자신이 갈망하던 이스라엘의 구원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서 7장을 상기시키시고, 종말의 광경이 당신에게서 시작되며, 당신의 현존이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하는 구원 성취의 시작임을 알려 주십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구원의 역사 안에서 대천사들은 저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알려 줍니다. “천사들보다 잠깐 낮추셨다가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신”(히브 2,7) 인간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알리시고 우리가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이는 우리가 천사들을 통하여 어떤 영적이고 신비한 체험을 기대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마지막 날까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이끄시는 하느님의 배려이며, 자비로우신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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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천사>
미카엘 대천사는 마귀들과 싸우는 장군입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묵시 12,7-8) 미카엘 대천사가 마귀들과 싸우는 것은, 하느님께 반역하는 마귀들을 처벌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고, 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때에 네 백성의 보호자 미카엘 대제후 천사가 나서리라."(다니 12,1)
가브리엘 대천사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천사입니다.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루카 1,19)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루카 1,26-27)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설명해 주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때에 나는 울라이강 위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이렇게 부르며 말하는 것이었다. ‘가브리엘아, 저 사람이 환시를 깨닫게 해 주어라.’ 그러자 가브리엘이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본 나는 깜짝 놀라 엎드렸다.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사람의 아들아, 깨달아라. 환시는 종말의 때에 관한 것이다.’"(다니 8,16-17) “...... 지난번 환시에서 본 가브리엘이라는 이가 저녁 예물을 바칠 때에 빨리 날아서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와서 나에게 말하였다. ‘다니엘아, 내가 너를 깨닫게 해 주려고 이렇게 나왔다. 네가 간청하기 시작할 때에 이미 말씀이 내렸는데, 그것을 일러 주려고 내가 왔다. 네가 총애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서 환상의 뜻을 깨닫도록 하여라.’"(다니 9,21-23)
라파엘 대천사가 하는 일은 수호천사들이 하는 일과 비슷한데, 사람들이 바치는 기도를 하느님께 전해 드리고, 하느님의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일을 합니다. “자 이제 보라, 너와 사라가 기도할 때에 너희의 기도를 영광스러운 주님 앞으로 전해 드린 이가 바로 나다. 네가 죽은 이들을 묻어 줄 때에도 그러하였다. 그리고 네가 주저하지 않고 잔치 음식을 놓아둔 채 일어나 가서 죽은 이를 매장해 줄 때, 너를 시험하도록 파견된 자도 나였다. 또 하느님께서는 나를 파견하시어 너와 네 며느리 사라를 고쳐 주게 하셨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토빗 12,12-1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그것은 내 호의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니 날마다 그분을 찬미하고 찬송하여라."(토빗 12,18)
천사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사람들을 직접 상대하시지 않고, 굳이 천사들에게 일을 시키실까?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 천사들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으로 생각할 수 있는 말이 탈출기에 나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당신이 말해 주십시오. 우리가 듣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랬다가는 우리가 죽습니다.’"(탈출 20,19)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을 지상의 인간들이 직접 뵙는 것은 너무나도 두려운 일입니다.
하느님을 직접 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모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가 아뢰었다.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나의 모든 선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네 앞에서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겠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탈출 33,18-20) 따라서 하느님께서 직접 인간들을 상대하시지 않고 천사들을 보내시는 것은, 인간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됩니다. 하느님을 직접 뵙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의 입장을 배려하셔서 천사들을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은 하느님을 직접 뵙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묵시 22,4)>
그런데 천사들이 하는 일은 사실상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천사들이 하는 말은 사실상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라파엘 대천사의 “그것은 내 호의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토빗 12,18)라는 말은, 천사들이 하는 일의 성격을 잘 나타냅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의 뜻’을 그대로 집행하는 심부름꾼들입니다. (한 치의 오차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대천사 축일을 지내는 것은, 단순히 천사들이 하는 일을 기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사들을 보내서 우리를 보살피시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양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천사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와 상관없는 옛날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동화나 신화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는데, 하느님께서는 ‘한처음’부터 세상 끝날까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천사들을 통해서 우리를 보살피고 계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 하느님의 심부름꾼인 천사들의 존재도 믿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하느님 체험을 하는 것과 천사의 도움을 체험하는 것은 사실상 같은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수없이 많은 천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바라는 그것을 얻는 것만이 천사의 도움인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좋은 것(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천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천사들의 주 임무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 그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도록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빛으로서 사는 것’과 ‘천사의 일을 하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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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가톨릭 평화신문 미주지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984년 신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입니다. 친구와 함께 나환자 마을로 봉사 갔습니다. 여름에 다녀온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하였습니다. 나환자 마을에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아이들과 함께 놀았습니다. 마을에는 공소가 있었고, 공소 옆에는 사택이 있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오시면 머물기도 하셨고, 신학생들이 봉사 오면 머무는 숙소였습니다. 공소 옆에는 종탑이 있었습니다. 종을 치면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노래를 좋아하던 친구는 기타를 치면서 아이들에게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때 친구가 불러주었던 노래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노래가 있습니다. 제목은 ‘나의 천사’입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우리들이 만나는 즐거운 일요일에/ 우리사랑 영원하라 주님께 기도하며/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마저도/ 우리들의 사랑을 축복하는 곳으로/ 이 세상에 너보다 어여쁜 이 있다면/이 세상에 너보다 사랑한 이 있다면/ 그런 말 모두다 거짓말이야/ 어여쁜 너, 어여쁜 너/ 나의 천사여” 당시에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의 눈망울이 생각납니다. 제가 천사처럼 그 아이들에게 간줄 알았는데 그 아이들이 제게는 천사였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사람은 비록 아름다운 외모와 화려한 의상을 입었어도 결코 천사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얀 날개가 없어도, 화려한 의상을 입지 않았어도, 아름다운 외모를 갖지 않았어도 우리는 모두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면 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천사입니다. 배려와 나눔이 있으면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움의 손길로 다가왔다면 어찌 천사로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주위를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막연히 잊고 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신문사에도 천사들이 찾아오십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기부금을 전해주고 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천사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함께하는 부르클린 한인성당에도 매주 친교를 위해 기부금을 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천사는 결코 이론 속의 존재가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 있는 다정한 이웃입니다. 따뜻한 모습으로 이웃에게 다가간다면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 같으랴?’라는 뜻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사람, 영웅, 힘’이라는 뜻입니다.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충실히 하는 사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 아픈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은 모두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형제들의 생일에 맞추어서 세례명을 정해 주셨습니다. 큰 형은 9월에 태어나서 미카엘, 작은 형은 12월에 태어나서 사도 요한, 동생 수녀님은 10월에 태어나서 프란치스카입니다. 저는 5월에 태어났는데 9월이 축일인 가브리엘로 정해 주셨습니다. 태어난 달의 축일은 아니지만 저는 저의 세례명을 참 좋아합니다. 어릴 때는 ‘가별’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요셉에게 나타나서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였습니다.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했던 요셉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저에게 대천사 가브리엘로 세례명을 정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가브리엘 천사처럼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말과 행동으로 천사와 같은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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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이기양 요셉 신부님]
<천사들 앞에서 당신께 노래하오리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모습과 비슷한 형상에 날개를 가진 사람을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주 착한 사람을 '천사 같다'고 표현하지요. 천사는 사람과 교회를 지켜주고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데 요즘은 천사의 이미지가 교회에서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대신 젊은 남녀들 사이에서, 또 일부 장사꾼들이 '수호천사'라고 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의미로 천사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지요.
천주교회에서는 천사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는 반면에 세상에서는 살아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과연 존재하는 인물일까요? 우리 천주 교회에서는 이 천사의 존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으며, 역사 속에서 천사는 어떤 변천사를 밟아 왔는지, 또 요즘은 왜 천사를 보기가 어려운지를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천사는 창세기에서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도와주는 심부름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인 존재를 일반적으로 '천사'라고 표현했지요.
성경에는 천사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이 심부름꾼으로 천사들이 많이 파견되고 있는데 몇 가지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16장에 주인의 박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하가르 앞에 천사가 나타나 도움을 줍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여라.'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의 후손을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게 해 주겠다."(창세 16,9-10)
또 창세기 19장 1절-22절에는 멸망하는 소돔에 천사들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며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고, 24장에는 늙은 아브라함이 며느리감을 얻는데 천사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편 천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처벌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사무엘 하권 24장에는 백성을 치는 천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요.
"천사가 예루살렘을 파멸시키려고 그쪽으로 손을 뻗치자, 주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것을 후회하시고 백성을 파멸시키는 천사에게 이르셨다. '이제 됐다. 손을 거두어라.' 그때에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있었다."(2사무24,16)
그밖에 하느님을 모시는 군대로 천사들을 인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천사의 역할은 신약성경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둘러싸고 처녀 마리아를 찾아오고(루카 1,28), 약혼자 요셉의 꿈에 나타난 분은(마태 1,20)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꿈에 나타나 에집트로 피신할 것을 일러주는 가 하면(마태2,13), 흰옷을 입고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며(마르16,5), 심판 때에는 그리스도를 옹위하여 나타날 것이라고(묵시 22,6) 성경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 곳곳에서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요. 천사에 대하여 교회의 학자들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디오니시오 성인입니다. 성인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여 9품 천사에 달하는 천사의 계보를 만들었습니다.
9품 천사란 천사의 등급을
치품(Seraphim),
지품(Cherubim),
좌품(Thrones),
권품(Dominantes),
능품(Principatus),
역품(Potestates),
주품(Virtus),
대(大)천사(Archangelus),
천사(Angelus)로 분류한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아니고 천사에 관한 디오니시오 성인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천사에 관하여 우리 신자들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요? 믿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과 감각을 초월하는 영원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바로 그것입니다.
천주교회는 745년 라테라노 공의회 때까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다른 천사의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그러나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천사의 존재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지요.
천사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각 사람에게 수호천사는 존재하며, 천사의 등급이 또한 존재하는지에 관하여서는 권위 있는 해석을 유보한 채 다만 천사의 존재만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증명해주듯이 예전에는 천사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천사의 존재에 관한 가르침도 확고했는데, 왜 우리 시대에는 천사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믿어야 되는지 믿지 말아야 되는 지도 모를 정도로 천사의 존재가 퇴조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천사는 주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하느님의 뜻, 즉 계시(啓示)의 원천이 성경에 그대로 다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새롭게 전달해 줄 이유가 없어진 셈이지요. 성경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는 그 성경을 해석하고 설명해주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옛 예언자들이 사라진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구약시대 많은 예언자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은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성경이 집대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시의 원천인 하느님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이제는 더 이상 예언자들의 역할이 필요 없게 된 것이지요. 예언자들은 사라지고 성경을 해석해주는 율법학자들이 존재하게 됐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같은 맥락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또 성경을 해설해 주는 성직자와 수도자, 교리 교사들이 많아지면서 비교적 쉽게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천사들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계시의 방법도 달라집니다. 이제 계시의 방법이 '천사'에서 '성경'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천사의 역할이 많이 퇴조해 있지만 분명한 것은 라테라노 공의회의 가르침대로 천사는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회에서는 천사에 관한 축일로 오늘 9월 29일을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로, 또 10월 2일을 '수호천사 축일'로 정하여 공경하며 장려하고 있지요. 오늘 축일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미카엘 대천사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지닙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를 거둔 천상 군대의 지도자로 소개됩니다.
요한 묵시록 12장에 미카엘 대천사가 나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 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묵시12,7-8)
우리는 미카엘 대천사를 악마의 유혹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임종하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보호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에게 나타나 환시를 보여 주었으며(다니9,21 이하 참조), 무엇보다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리고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해 주었습니다.(루카1,26 이하 참조)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구약 성경의 토빗기에 나옵니다. 청년 토비야를 먼 곳까지 안전하게 안내하여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게 하고, 아내 사라를 맞이하게 도와주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대천사는 임무를 다 마치고 토비야에게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
우리는 라파엘 대천사를, 이 세상의 삶을 잘 마치고 영원한 천국으로 무사하게 순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매일 미사 9월호 참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습니다. 또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마치 '천사 같다'라고도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담긴 성경을 자주 접하고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천사 같이 사는 우리의 모습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오늘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지내면서 하느님의 말씀대로 착하게 사는 여러분이 바로 천사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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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야곱의 사다리’를 연상시킵니다.(창세 28,12)
야곱은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사우를 피해 도망가는 길에 베텔에서 꿈을 꾸게 됩니다. 야곱은 하늘이 열려 있고 천사들이 하늘과 땅을 잇는 층계를 오르내리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는 천사들의 층계를 통해 하느님의 집에 이르는 길, 하늘의 문을 발견합니다.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유일한 통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에 오르신 그리스도께서는 야곱의 꿈을 충만하게 완성시키십니다. 우리가 지는 십자가들은 하늘과 땅을 잇는 층계가 되어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간성에 도달시킵니다.
역경과 위험 가운데 하늘 나라로 순례하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층계를 한 걸음씩 올라가게 도와주는 존재, 하느님의 집에 도달하게 인도하는 존재가 천사들입니다.
우리를 도와주는 많은 천사 가운데 대표적인 세 천사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라고 부릅니다. 천사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므로 그들이 맡은 임무에 따라 이름을 붙입니다.
‘하느님의 힘’으로 국가를 수호하는 대천사가 성 미카엘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분’으로 예언의 뜻을 알려 주는 대천사가 성 가브리엘입니다. ‘하느님의 치유’로 우리를 살려 주고 안내하는 대천사가 성 라파엘입니다.
하늘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천사들에게 우리를 보살펴 주시도록 전구하여 하늘의 문에 도달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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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김정호 베네딕도 신부님]
<천사들과 함께 주님께 영광을>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평화방송 가족 여러분! 오늘은 천사들, 그 중에서도 특히 성서에 이름이 명시되어 있는 세 분의 대천사를 공경하는 날입니다.
성 미카엘 대천사와 성 가브리엘 대천사, 그리고 성 라파엘 대천사, 이 세 분입니다. 우선 이 대천사들의 이름이 나오는 성서의 대목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가브리엘 대천사부터 보겠습니다. 일곱 대천사 중의 한 분인 이 분의 이름,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니는 말마디인데, 성서에서는 모두 3곳에서 나타납니다.
(1)처음 나오는 곳은 구약성서인 다니엘서 8,15-9,27까지의 대목입니다. 환시를 보면서 그 뜻을 몰라 애쓰고 있는 다니엘 예언자에게, 가브리엘 대천사가 나타나서 그 환시의 의미를 깨우쳐 줍니다. 그리고는 장차 언제쯤 메시아가 오실 것이며, 그 분이 어떤 일을 겪게 되는 지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2)그 다음으로는 신약성서 루카 복음 1,11-21까지에 걸쳐 나타납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던 사제 즈카르야가 비록 늙은 나이이지만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요한으로 정하라고 일러주는 대목입니다.
(3)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루카 복음 1,26-38까지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 예고 장면입니다. 나자렛에 살고 있는 한 시골처녀인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장차 그리스도를 잉태하여 낳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라파엘 대천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지요.
라파엘!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이 명시된 성서는 구약의 토비트서가 유일합니다.
토비트와 그의 아들 토비아는 포로로 잡혀가서 아시리아의 니느웨에서 귀양살이를 하지만, 하느님께 충실하면서 의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이 멀게된 토비트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해주고,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여행을 떠난 아들 토비아를 지켜주고, 그의 아내가 된 사라를 치유해주었습니다.
이 토비트서 12,11-15까지 보면, 라파엘 대천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대천사는 우리 인간을 수호하고, 우리 인간의 사정을 하느님께 전하고, 하느님 앞에 머물면서 그 분의 시중을 드는 일곱 천사 중의 하나라고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신약성서인 요한 복음 5,1-4까지 보면,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 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다”고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물을 휘젓는 주님의 천사가 바로 라파엘 대천사라는 믿음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서에 묘사된 라파엘 대천사의 모습을 통해서, 교회는 그 분을 치유하는 사람의 수호자, 맹인의 수호자, 그리고 모든 여행자의 수호자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미카엘 대천사가 등장하는 부분을 찾아보겠습니다.
미카엘이라는 이름처럼 “하느님처럼 구는 자가 누구냐?” 하고 소리치면서, 악마의 무리를 모조리 지옥으로 쫓아내고, 악마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해주는 분입니다.
구약성서 다니엘서 10,1-21에는, 다니엘에게 힘을 북돋워주고 유다를 침공하는 나라에 맞서 싸울 때 지켜주고 있습니다. 같은 다니엘서 12,1에서도 다니엘과 그 겨레가 일찍이 없었던 어려운 때를 당할 때 그들을 지켜주면서 슬기로운 지도자들이 밝은 하늘처럼 빛나게 하겠노라고 다짐합니다.
신약성서인 유다의 편지 1,9에서도 모세의 시신을 악마로부터 지키는 미카엘 대천사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고, 묵시록 12,7-9에는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계를 속여서 어지럽히던 늙은 뱀인 큰 용을 미카엘 대천사가 격퇴시킴으로써 하늘나라를 수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9월 29일은 원래 미카엘 대천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로마에 건축한 성 미카엘 대성당을 봉헌한 날인데, 교회는 바로 이 날 세 분의 대천사를 함께 기리면서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성서에 나타나는 가브리엘 대천사, 라파엘 대천사, 그리고 미카엘 대천사는 항상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힘을 줍니다.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우리 인간 속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늘 지켜보면서 전달해 줍니다.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며 이 현세를 걸어가는 나그네 인생인 우리 곁에 머물면서 이끌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사들의 보호를 받아 언제나 구원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주 하느님, 천사들과 사람들을 부르시어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니, 하늘에서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뵈오며 주님을 섬기는 천사들을 보내 주시어, 세상에 사는 저희를 모든 위험에서 지켜 주소서. 저희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기리며 천사들과 함께 노래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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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회 양주분회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와 1차 바티칸공의회(1870년)를 통해,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고 있지만, 천사의 본질과 역할이 무엇인지, 혹은 사람마다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는지, 여러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등의 학자들의 주장(그레고리오 대종의 천사직무론, 디오니시우스의 9품 천사론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유권적 결정도 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사론>에서 믿어야 할 교리는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곧 천사는 존재한다는 것과 천사는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적존재로서 하는 일은 사자(천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수호천사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가 인정한 성경에 나오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말고는 다른 위경에 나오는 다른 천사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기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계급적인 9품천사론은 믿어야 할 교리가 아니라, 단지 전승에 불과할 뿐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요,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요,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히브 1,14), 자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기념하는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녔으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요, 악에 대한 수호자요,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고, 즈가리아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을 지녔으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고,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사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곧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천사들은 인간에게 봉사하고, 인간을 보호합니다. 곧 인간인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오늘, 우리는 대천사들의 축일을 지내면서, 하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을까? 그리고 하늘은 어디에서 열릴까? 대체, 어떻게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만남의 신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렸듯이,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셨듯이, 오늘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곧 하늘이 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늘이 땅에서 열리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늘을 우리 안에서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 안에는 당신이 계시니, 우리가 곧 당신께서 계시는 하늘이 됩니다.
그러니, 사실 하늘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자리요, 우리 ‘일상의 삶’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며,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미 그분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아 우리의 마음과 일상 안에서, 하늘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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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주님,
땅에서 열리는 하늘을 보게 하소서.
우리 안에 계신 당신을 보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이, 하늘이 열리는 자리가 되고
우리 일상의 삶이, 하늘이 열리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만나는 이들과 우리가 하는 일 안에서
하늘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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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1,47)
<천사가 되자!>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는 '하느님의 봉사자들'입니다.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천사에 대한 분명한 교리'는, '천사는 존재한다'는 것과 우리의 감각을 초월한 '영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례력으로 천사를 기념하는 날은 '오늘(9.29)과 10.2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세 대천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는 뜻을 지닌 천사로서, 악과 맞서 싸우면서 우리를 보호해 주는 천사이며, 임종자들의 수호천사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닌 천사로서, 하느님의 전령, 곧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설명해 주는 일을 하는 천사입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께서 고쳐주셨다.'라는 뜻을 지닌 천사로서, 아픈 이들의 수호천사입니다.
나도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나도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너를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천사!
임종 때 곁에서 지켜주는 천사!
너에게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뜻과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
영적 육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사랑으로 함께 해 주는 천사!
우리는 이렇게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천사가 될 수 있고, 이런 천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1,47)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 쪽으로 다가오는 나타나엘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거짓이 없는 사람'은 '마음의 창고가 깨끗한 사람'입니다. '마음의 창고 안에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천사 같은 사람들이며 천사입니다.
날마다 나를 지켜주고 보호 해주는 천사들에게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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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천사들이 오르내린다>
요한 1,47-51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부르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오르내린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품으니
천사들이
오르내린다
하늘과 땅을
곱게 이으러
천사들이
오르내린다
하늘과 땅이
하나되는 날까지
천사들이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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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안식년 때, 어느 본당 사제관이 아닌 일반 아파트에서 살면서 1년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집안 살림을 도와줄 사람 없이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니 모르는 것투성이였지요. 식사, 빨래, 청소 등 주부의 역할이 이렇게 큰 것이었는지 이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주부로는 초보일 수밖에 없는 제가 배워야 할 것은 너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너무 복잡했습니다. 재활용품, 음식물, 가구, 전자제품, 의류…. 버려야 하는 방법도 제각각이었습니다. 너무 복잡하니 짜증이 났고, ‘조금 더 간편하게 분리수거 하는 방법이 없을까?’라면서 정부 시책에 대해 비판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분리수거가 몸에 익기 시작했습니다. 불평불만 없이 오히려 이렇게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해줌에 감사의 마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알게 되니 불평불만도 사라졌습니다.
김미경 강사의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적인 힘이 부족하면 나의 불행을 확대해석한다. 그래서 공부해야 한다.” 이 세상 삶을 살면서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음을 자주 깨닫습니다. 불평불만을 하는 이유 중에 많은 부분이 알지 못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주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불평불만부터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실 나타나엘은 나자렛 출신인 예수님에 대해 그렇게 좋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예수님을 대수롭지 않은 분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대화를 통해서 그는 예수님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지난날을 아시는 분이었으며, 그분으로부터 이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도 듣습니다.
그는 변화됩니다. 왜냐하면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갔습니다. 우리 역시 일상 삶 안에서 예수님을 아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변화될 수 있으며, 가정과 일터 더 나아가 이 세상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말씀하셨던 더 큰 일을 우리 역시 보게 될 것입니다. 즉,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동시에 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때, 그만큼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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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건강하고 총명한 삶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비밀>
하버드 의대의 정신과 교수인 로버트 윌딩거 박사는 건강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연구해왔습니다.
그러면서 3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1) 사회적 연결이 우리에게 정말 유익하고, 외로움은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이다.
2) 가족, 친구, 공동체와 사회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하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하며,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외로움의 경험은 독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3)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립된 사람들은 덜 행복해지고, 중년기 건강이 빠르게 악화하고, 뇌 기능이 빠르게 저하되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보다 일찍 사망하게 된다.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게 피해를 준다면서 관계 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나의 건강을 위한 유익한 관계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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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천사>
천사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도와주는 심부름꾼입니다. 우리 인간을 위해서 파견된 일꾼입니다.
히브리서1장 14절에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써,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 하고 적고 있습니다.
천사란 말은 그들의 정체나 본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직무와 사명을 뜻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우주를 다스리는 하느님의 일에 협조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될 때 우리도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의 아브라함은 길손을 대접하다 천사를 만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창세 18장) 다니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기도 응답의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다니 8,17) 토비트는 라파엘 대천사를 통해 눈을 뜨는 기적의 축복을 누렸습니다.(토비 11,4-13) 구약에서 천사론이 전개되는데 하느님의 아들, 거룩한 자, 수호자 등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하느님의 피조물이요, 순수한 영적존재로 나타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루카1,28), 요셉의 꿈에 나타난 분도(마태1,20)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루가2장14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때 천사들이“하느님께 영광”이라고 찬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천사는 꿈에 나타나 마리아가 이집트로 피난할 것도 알려주고(마태12,13),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습니다.(마르 1,13) 또한 흰옷을 입고 부활을 알려주었으며(마르 16,5), 심판 때에는 그리스도를 옹위하여 나타날 것(묵시 22,6).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치며 천사들이 영적인 실체라고 가르칩니다.(1차 바티칸 공의회) 그리고 선한 천사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생각은 성경에서 나온 사상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이바지한다는 것은 성경과 교회 정통 가르침에 근거한 교회의 신앙입니다.
각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우선 길을 인도하고 돌보는 존재로서 사람과 동행하는 천사입니다.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여,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고 가리라.”(시편 91,11)
마태복음은 “너희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마태 18,10) 하고 각자에게 배속된 천사를 언급합니다.
결국, 천사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천사에 대한 의식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을 통해서 그리고 예언자와 율법학자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알려졌지만, 이제는 성경을 통해서ㅇ그리고 성직자나 수도자, 교리교사를 통해 예수님의 계시 진리가 좀 더 쉽게 전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천사의 존재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천사는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18,10)
성 바실리오는 말합니다. “모든 신자 곁에는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보호자이자 목자인 천사가 있습니다.” 각 사람을 수호하는 천사들이 있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사는 내가 천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이웃에게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합니다.
천사를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천사가 되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 이미 천사를 만났습니다. 이제 누군가의 천사가 되어주어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우리 눈에 부족하게 보인다 해도, 지금 우리의 일상이 천상의 영광과 기쁨을 만날 자리입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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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견줄 수 있느냐?'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만군의 주님 사령관으로 악마를 물리치는 대천사 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영웅’, ‘하느님의 권세’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자’, ‘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축일을 맞이한 모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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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하느님의 천사들>
-찬미와 섬김-
“내 영혼아 하느님 찬양하라,
당신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죽음에서 네 생명 구하여 내시고,
은총과 자비로 관을 씌워시는 분.
한 평생을 복으로 채워주시니,
네 청춘 독수리마냥 새로워지도다.”(시편103,2.4-5)
아침 성무일도중 시편이 참 은혜로웠습니다. 인간 비극과 불행의 근원은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 세상의 단절에 있습니다. 하느님 자비의 표현인 하느님과 인간 세상을 잇는 다리 역할의 참 좋은 하느님의 선물들이 예수님을 비롯한 천사들과 성인들입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과 모든 거룩한 천사 축일입니다. 우리 베네딕도회는 10월2일 수호천사 기념일까지 일괄하여 오늘 지냅니다. 참 마음 기쁘고 밝게 하는 반갑고 고마운 천사 축일입니다. 우리와 늘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심을 생생히 드러내는 천사들 축일입니다. 하느님 자비하심의 표현이 바로 천사들입니다.
참으로 오늘 축일이 감개무량한 것은 작년 이날 대형 교통사고를 겪은 후 만1년만에 맞이하는 축일이기 때문입니다. 십중팔구 즉사 아니면 중상이라는 고속도로에서의 대형 교통사고였는데, 구사일생九死一生, 천우신조天佑神助로 감쪽같이 살아났으니 이건 순전히 대천사들을 통한 하느님의 도우심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고 즉시 생각난 것은 내일 미사와 강론 걱정이었는데, 이후 다음 날부터 오늘까지 365일 날마다 첩첩산중, 산을 넘듯이 매일 밤1시 전후로 일어나 강론을 써온 기적 은총의 선물에, 하느님께 감사할뿐입니다. 끝기도 때마다 부르는 다음 시편 성구와 오늘 입당송과 화답송 시편 성구도 삭막한 광야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널 떠받고 가리라.”(시편91,11-12)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따르는 힘센 용사들아.”(시편103,20)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제 입의 말씀을 들어 주시기에,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거룩하신 성전 앞에 엎드리나이다.”(시편138.1-2ㄱ)
우리 모두 분발하여 자비하신 하느님을 환히 드러내는 주님의 천사들처럼 살라는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는 은혜로운 시편 성구들입니다. 오늘 미사시 천사 감사송도 참 장엄하고 은혜롭습니다.
“저희는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천사들과 대천사들에게, 더없는 사랑과 존경을 드리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영광과 위엄을 끊임없이 찬미하며,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서 만물 위에 가장 드높으신 분임을 드러내고 있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천사들의 군대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위엄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환호하며 그들과 소리를 모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이 거룩한 미사중 천사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제1독서 다니엘서를 통해서도 하느님을 찬미하며 섬기는 천사들의 소임이 환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새삼 천사들은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하느님과 인간을 섬기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다리 역할 하는 존재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천사 공경의 신심은 얼마나 우리 영성생활을 풍요롭게 하는지요!
특히 오늘 기념하는 대천사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으로 천상 군대의 장수, 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임종자들의 수호자로 나타납니다. 대천사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 하느님의 영웅, 용사”의 뜻으로 하느님 계획의 전달자, 환시와 예언의 설명자로 나타납니다. 대천사 라파엘은 “하느님이 치유하신다.”라는 뜻으로 치유하는자, 맹인의 수호자로 나타납니다. 천사의 역할이 다 다름은 우리의 역할이 다름과 흡사합니다.
새삼 우리 믿는 이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존귀한 존재들인지 깨닫습니다. 영원한 인도자이자 동반자이신 파스카의 예수님 도반과 더불어 수호성인과 수호천사의 보호保護와 호위護衛를 받으며 살아가는 복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자비하심이 놀랍습니다.
찬미와 섬김의 천사들입니다. 보이는 천사들뿐 아니라 보이는 찬미와 섬김의 우리 이웃 사람들 역시 하느님의 천사들임을 깨닫습니다. 수도원 주변에서도, 제 주변에서도 이런 찬미와 섬김의 하느님의 천사들을 저는 참 무수히 목격합니다. 매달 모임을 갖지 못하는 대신 예수성심회 자매들을 대표하여 심부름 역할차 수도원 주방에 선물을 한 아름 전달하고 집무실을 말끔히 정리, 청소해 주는 수산나 책임 자매 역시 저에게는 그대로 하느님의 천사입니다. 또한 사심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20년 이상 매달 강론을 교정, 제본해다 주는 세실리아 자매 역시 그대로 하느님의 천사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천사들입니다. 그러니 천사들중의 천사가 바로 파스카의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 안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무수한 천사들과 천사들 같은 착한 이웃들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세상을 연결하는 이런 천사들이 없다면 세상 살이는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겠는지요! 십중팔구 우리는 괴물이나 악마로, 폐인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누가 하느님을, 천사들을 만납니까?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여 찬미와 섬김의 삶에 충실한, 마음 순수한 이들이 주님을, 천사들을 만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의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5,8), 말씀 그대로입니다. 순수한 마음의 우물에서 샘솟은 자비와 지혜, 온유와 겸손의 마음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나타나엘이 그 모범입니다. 이런 나타나엘을 한눈에 알아 본 예수님이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세상에 이보다 더 고무적인, 최고의 찬사도 없을 것입니다. 수도자는 물론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이 원하는 거짓이 없는 참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무화과나무 아래서 진리탐구의 공부에 여념이 없던 나타나엘을 눈여겨 봤음이 분명합니다. 주님은 누구보다 우리 하나하나를 잘 보고 알고 계십니다. 이어지는 나타나엘의 즉각적 응답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 고백하는 나타나엘, 이 또한 마음 순수한 이에게 주어지는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참사람과 참사람, 순수와 순수와 만남입니다. 이런 주님과의 만남이 그대로 구원입니다. 이런 만남의 기쁨, 만남의 행복을 능가할 수 있는 만남은 세상 어디도 없습니다. 순수한 영혼들에게 주어지는 천상적 만남 은총의 체험입니다. 나타나엘은 물론 마음 깨끗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볼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현존하심에 따라, 하늘이 열리고, 야곱의 꿈이 예고한 하느님과의 통교가 이제 믿는 이들 모두에게 항구적인 현실이 된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중에 사신, 초월超越과 내재內在의 파스카의 예수님은 그대로 우리 모두에게 활짝 열린 하늘문이자 하늘길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제1독서의 다니엘 예언자의 환시를 통해 파스카 예수님의 신원이 잘 드러납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으리라.”
주님의 나라는 그대로 유구한 전통의 가톨릭 교회를 통해서 서서히 실현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러니 파스카 예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우리 영적 삶에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느님의 천사들같은 존재가 되어 한결같이 찬미와 섬김의 천사적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저희가 주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고 천사들의 보호를 받아, 언제나 구원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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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알타반의 말씀 사랑♡
대천사 축일인 오늘, 미사의 말씀 안에서 우리는 천사가 어떤 존재인지 감지합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천사는 하느님과 사람을 잇는 메신저입니다. 당신의 뜻을 사람에게 전달하라고 하느님께서 뽑아 파견하신 존재가 천사지요.
창세기에 등장하는 선조 야곱도 형 에사우를 피해 달아나던 길에 천사가 하늘까지 닿은 층계를 오르내리는 꿈을 꾸고는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천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며 염려하고 도와주신다는 표지입니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다니 7,10)
다니엘 예언자는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천상 옥좌와 마치 대관식과 같은 장면을 환시로 봅니다. 옥좌에 앉으신 분, 옥좌에서 강물처럼 뿜어 나오는 불길, 그리고 그분을 둘러싼 이들,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진 사람의 아들... 인간이 상상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엄위롭고 영화로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지요.
천사는 하느님 곁에서 시중들며 그분을 모시는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전제주의 국가의 군주와 노예들 간의 관계를 떠올리면 곤란합니다. 천사들은 사랑 때문에 하느님 곁에 머무르며 그분을 모시는 존재들이니까요.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따르는 힘센 용사들아."(입당송)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들아, 그분 뜻을 따르는 모든 신하들아."(복음 환호송)
천사들은 그분께서 원하시면 그분의 목소리가 되어 세상에 그분의 뜻을 전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그분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하지요. 또 그분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때로는 힘센 용사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주님 군대의 용사로서 그분의 뜻을 이룬 천사들이 등장하지요.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영성체송)
천사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과 더 친밀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우리는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뜻을 알아듣고, 비록 여전히 지상 순례 여정 안에 있어도 천사들처럼 주님 곁에 머물러 그분을 섬기고 모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과 한 목소리로 그분께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드리지요. 지상의 우리와 천상의 천사들이 함께 올려드리는 찬미의 하모니가 얼마나 아름다울런지요!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따르는 힘센 용사들아."
세속과 재물과 관계에 치여 허덕허덕 살아가면서도 천사들처럼 주님과 가까울 수 있는 방법이 곧 말씀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제가 매일 하고 있는 거룩한 일이지요. 부족하나마 있는 힘껏 듣고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말씀이 나날이 우리를 천사처럼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변모된 우리를 누군가를 위해 천사처럼 쓰실지도 모릅니다. 당신 뜻을 담아 누군가에게 파견하시고 그를 위해 당신의 사랑이 되어 주라고요. 천상의 천사들과 성인들, 이 지상의 모든 피조물은 모두 하느님과의 사랑을 위해 존재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그분과 일치하고, 주님 향한 찬미와 감사를 잊지 않는 영혼으로 살아가도록 대천사들의 전구를 청합니다.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천사인 벗님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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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시녀회 김연희 마리아 수녀님]
(5분 아침묵상)
https://www.youtube.com/watch?v=uUZUwpuHv6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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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 51)
우리가
사는 곳에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있다.
대천사를
통하여
구원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알게 된다.
하느님의
배려이며
우리를 향햐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이다.
천사의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이다.
지나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사랑으로
귀결되는
우리들
삶이다.
반가운
천사의
소식을 듣고서
은총의
모든
시간임을
알게 된다.
천상의 소식과
지상의 소식은
천사들을 통화여
사랑으로
이어져있다.
소식이 끊기면
희망도 기쁨도
사그라진다.
사랑이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가장
보편적인
사랑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우리는 어떤
소식을 전하며
살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대천사
축일 오늘이다.
하느님과
결합하는
방식은
소통의
방식이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대천사를
내어주신다.
대천사와
교감하시는
하느님이이다.
공감과 이해
사랑과 기쁨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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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묵상글 나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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