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 이지함** "착한 심성은 팔자를 바꾼다."
조선중기의 학자이며 기인(奇人)이신 이지함 (李之函) 선생의 호(號)는 토정(土亭)이다.
토정이라는 호(號)는 지금은 없어진 서울 마포나루 어귀에
토담집을 짓고 살았던 일에서 기인(起因)한 것이다.
새해를 맞아 신년(新年)에 하는 이야기에 많이 오가는
'토정비결(土亭秘訣)'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토정(土亭) 선생께서는 언젠가 천안삼거리에 위치한 한 주막집에 머무르게 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침 그 주막에는 각지에서 올라온 젊은 선비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한양에서 곧 있을 과거(科擧)'를 보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과거에 급제(及第)하기를 바라고 공부를 해온 그들 인지라,
당대(當代)에 큰 학자이며 기인으로 명성(名聲)을 크게 떨치고 계신
토정선생의 방을 찾아가 한 말씀을 듣고자 모이기에 이르렀다.
여러 젊은이들을 말 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한 젊은 선비를 향해 이르시기를
"자네는 이번 과거에 급제할 운이 없으니,
서운하겠지만 그냥 고향에 돌아가시게나 하셨다.
모두들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민망해진 그 젊은이는
말없이 일어나 인사를 드리고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 나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청천벽력 같은 말에 아연해진 그 선비는 멍한 느낌에
주막을 나와서는 대문옆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생각에 잠기었다.
'그 동안 과거 급제를 목표로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 왔는데,
시험을 보기도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고향에선 나를 못난이라고 손가락질 할테고,
대학자이신 선생의 말을 무시하고 과거를 보러가서 정말 낙방이라도 하면
평소에 흠모해 온 토정선생의 말씀을 우습게 아는 놈이 되겠고,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멀거니 땅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마침 수 많은 까만 개미 떼들이 줄을 지어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 바로 앞을
좌에서 우측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좌측으로 눈길을 돌려 바라보니 그 뒤로도
끝 없는 개미들이 줄지어 앞의 개미들을 따라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이 개미들은 어디를 향해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에 몸을 일으켜 그 선두에 선 개미를 보기 위해 걸어가 보게 되었다.
가다보니 선두에서 가고 있는 개미가 있는 곳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아니한 곳에
큰 항아리 하나가 놓여 있고 그 독 안에는 물이 가득차
금시라도 넘칠 듯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부엌에서 버린 허드렛 물이 배수 하수관을 통해 항아리에 떨어지게끔 되어 있었고,
물이 가득차게 되면 자체의 무게로 인해 독이 기울어져
도랑 쪽으로 물이 쏟아 부어지도록 만든 구조였던 것이다.
이제라도 부엌쪽에서 누군가가 물을 버리면 그 독이 기울어져
이동하고 있는 개미들의 선두를 향해 쏟아지면 저 많은 개미들이
때 아닌 물벼락을 만나 다 죽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뛰어가 구정물이 가득한 독을 힘들게 옮겨 도랑에다 대고 얌전스레 부어버렸다.
다시 빈 독을 옮겨 제 자리에 갖다두고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개미의 긴 행렬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고 있다.
그것을 넋 놓고 바라보던 젊은 선비는 한참 후 토정선생이 하신 우울한 말씀이 다시 생각나,
조금 전에 앉았던 자리로 되돌아가 쪼그려 앉아 다시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자네, 거기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언제 나오셨는지 토정(土亭) 선생께서 대문 앞에 서서 자신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였다.
벌떡 일어나 머리 숙여 인사를 드리니 선생께서 젊은 선비를 향하시어 다가 오신다.
가까이 와서 젊은이를 보시더니 이번에는 토정(土亭)선생이 흠칫 놀라며 이렇게 묻는다.
"아니, 자네는 아까 방에서 내가 낙방(落榜)을 할 운(運)이니
고향으로 내려가라 한 바로 그 젊은이가 아닌가?"
젊은 선비가 그러하다고 하니, 토정 선생이 머리를 갸웃거리시며 하시는 말씀이,
"내가 조금 전에 자네에게 얘기를 할 때 본 자네의 상(相)과
지금 보는 자네의 상(相)이 완전히 다르니 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네!"
"얼굴에 광채가 나고 서기(瑞氣)가 충천(衝天)하니 과거에 급제를 하고도 남을 상(相)인데,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상(相)이 바뀌었단 말인가?" 하신다.
젊은 선비는 너무나 황당하여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냐며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니,
선생께서 재차 물으시기를 "잠깐 사이에 자네의 상이 아주 귀(貴)한 상(相)으로 바뀌었네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을 테니 내게 숨김없이 말씀을 해 보시게." 하신다.
젊은이는,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만." 하고 말씀을 드리다가 문득,
항아리를 옮긴 일이 생각이 나서 잠깐사이에 일어난 일을 소상히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선생께서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시고는 혼잣말로 말씀하시길,
"수 백, 수 천의 죽을 생명(生命)을 살리었으니,
하늘인들 어찌 감응(感應)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시더라.
그리고는 다시 젊은 선비에게 이르시기를, "자네는 이번 과거에 꼭 급제를 할 것이니
아까 내가 한 말은 마음에 두지말고 한양에 올라가 시험을 치르시게." 하시고는,
젊은 선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고 난 뒤 주막 안으로 들어가셨다.
과연 이 젊은 선비는 토정(土亭)선생의 말씀대로 과거에 응시하였다.
그리고는 장원 (壯元)으로 급제(及第)를 하였다고 한다.
'상(相)'도 마음에 의해 뒤바뀌게 마련입니다.
지나온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비교해 본다면 그것은 곧 입증이 되지요.
그렇듯 고정된 것은 없기에 다만 그 마음을 잘 내어 쓸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는 먼저, 그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선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글을 읽고 어떻게 느끼시나요?
개미를 그저 개미로만 안다면 개미는 그저 개미인 것이나,
개미를 생명으로 본다면 개미도 생명으로서의 개미인 것입니다.
개미를 개미로만 알든, 생명으로 알든 각자의 판단은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개미도 하나의 생명체(生命體)인 것은 확실한 것이고,
이 생명체는 비단 개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一切)의 모든 생명체(生命體)의 산 목숨인 생명(生命)이
나의 생명(生命)과 결코 다르지 아니한 것이고, 일체의 모든 생명체의 생명이라는 소중함 또한
사람이나 짐승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생각하는 차원 (次元)과 그 모습들은 각양각색(各樣各色)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말을 하지 못하는 미물이라도 근본에서는
둘이 아닌 일체가
평등하고 자타(自他)가 일여(一如)한 도리(道理)인지라
둘이 되어 하나요, 하나이면서 전체인 것이라고 말 할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를 소중히 한다면 이로 인한 자신의 상이나 운명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상기해보는 것도 좋을것 같고
살아가면서 옳으니 그르니 하는 판단(判斷)에 따른 선택도 각자의 생각과 자유 의지에 맡기는 것이 좋지 않을런지요?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관상이 바뀌고
관상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운명은 내 자신이 개척하여 나가며
오늘도 밝은 눈, 고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웃에게 베플며 모든 일에 감사하며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