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야구장을 처음 가본 것은 1976년이었다. 그 세대의 많은 야구팬이 그렇듯 필자 역시 전국대회에 출전한 모교를 응원하러 동대문 야구장을 처음으로 찾았다. 당연히 관전 위치는 외야의 응원석이었다.
이후 필자가 본 경기 수는 고교 , 대학, 실업, 일본 프로, 메이저리그, 마이너리그 등을 모두 합치면 어림잡아 3000 게임 쯤 되는 것 같다. 그 중 절반 이상은 프로야구 공식 기록원이란 직업을 택했던 덕분에 기록실에서 봤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야구장의 기록실은 야구를 즐기기에는 별로 좋은 자리가 못된다.
기록실의 위치는 대부분 포수 뒤에 지면과 같은 높이로 있다. 심판과의 의견 교환에 편리하다는 것과 투수의 공을 판단하기에 좋다는 장점은 있다.
심판과의 의견 교환은 공식 기록원의 임무 수행에 필요한 것이고 야구를 즐기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투수의 공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야구를 보았지만 필자는 아직 투수가 던진 구질을 분간하지 못한다.
물론 대강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그 정도는 외야에서 봐도 알 수 있다. 싱커 체인지업 SF볼 역회전볼 같은 세밀한 판단은 불가능하다. 기록실보다 훨씬 먼 중계석에서 해설자가 이번 공은 슬라이더라고 판단하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기록실에서 야구를 보아야 할 때가 아니라면 필자는 거의 외야석을 찾는다. 외야석에서 자기 머리 위로 넘어가는 홈런을 한 번 본다면 그 타구에 대한 감흥은 평생 잊지 못하는 추억이 된다. 1977년 실업리그에서 당시 제일은행 소속이던 김우열이 쳤던 홈런은 필자를 평생 야구팬으로 만들었다.
세밀한 야구의 맛을 즐기기에 좋은 위치는 잠실 구장을 기준으로 한다면 포수 바로 뒤쪽 2층의 가장 앞 좌석이다. 여기서는 투수와 타자간의 머리 싸움을 느낄 수 있다.
투수가 타자를 이기는 최상의 전략의 타자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어떻게 투수가 타자의 리듬을 빼앗는지 보기에 최고의 자리이다.
멋있는 내야수의 플레이를 보려면 3루보다 약간 먼 내야의 중간 위치가 좋다. 내야수가 어떻게 수비 위치를 잡는 지 같이 느낄 수 있고 3루 코치가 주자를 어떻게 지휘하는 지 어떤 사인을 내는 지 즐기기에 최상의 위치다. 특정 선수의 팬이라면 물론 그 선수 수비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좋다. 숨소리, 표정 하나 하나가 느껴진다.
TV보다 현장에서 보는 것의 차이가 가장 큰 스포츠가 야구와 권투다. 권투는 링사이드가 최고의 자리지만 야구는 다르다. 어느 자리든 자신의 취향에 따라 즐기는 포인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야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