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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4
마지막으로 버지니아 주의 예로, 홈스테드 핫스프링 이라고 바위를 둥그렇게 파서 깊이가 한길이 넘는 물의 온천이 있는데 230년전 죠지 워싱턴이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고 해서 지금도 가까이 서면 안이 드려다 보일 정도로 썩어 문드러진 나무판자를 둘러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여 7불씩 받고 손님을 받고 있다.
남탕과 여탕은 멀리 떨어져 분리가 되는데 뜨겁지는 않아도 수증기가 무럭무럭 나는 유황천의 물의 양이 많은데 원천이 되어 밤낮으로 계속 빠르게 흘러서 개울을 이루고 있으니 그냥 흐르는 물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옛날그대로 화장실이 없으니 대번은 빠른 유속에 떠내려가고 하얀 화장지는 개천옆의 부시에 걸려있어서 보기에 좀 얹잖았다.
원형의 노천온천에서 살이찐 남자는 비계가 많은데 기름은 물보다 가벼우니 물위에 떠서 누워있으면 프라이버시는 하늘쪽을 향한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는 세계7대 불가사의라는 높이가 약 30m의 돌로 된 자연 다리(Natural Bridge)가 있는데 그 밑(워싱턴이 측량 기사시절에는 길이 없어 배를 타고 다녔음) 개울바닥에서 20피트나 되는 높은 절벽의 돌에 새긴 그의 이름 약자 각자(刻字)를 훼손하지 않아 지금도 볼 수 있다.
한국 언론은 일본이 합법화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육상자위대 주둔지 건물을 없애 버린다고 불평들을 하지만 한국도 조상들의 손때와 애환이 깃든 건물들을 허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과연 일본정부를 나무랄 자격이 있을까?, “동솥이 가마솥 보고 껌정아!” 하고 나무라는 격은 아닐까?
일본은 서구 문명 중 무엇이든지 좋다고 생각하면 공부를 하고 개조를 하게 되는데 예로 사무라이들의 옷차림은 벗어던지고 도발적인 옷차림에 7개의 금속제 단추[보당]:버턴]를 사용 하는것 등이 있다.
일본은 청일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이 가설한 만주철도에다가 철도수비대를 파견 주둔한 후에 철도를 스스로 폭파하고 죄를 중국에게 뒤집어씌운 후 만주사변을 일으키니 현대식무기로 무장한 중국군을 무너뜨리게 된다.
어릴 때부터 기억되어온 것으로 해방 후 무개화차(無蓋貨車)에 타고 있던 일본 관동군[(산해관의 동쪽군인)중국관동주에 주둔했던 군인, 구실은 ‘만주철도 보호군’ 이지만 실은 만주침략군인 역할]의 패잔병이 연락선을 타기 위해 경부선의 부산 쪽으로 귀국 행 남행열차를 타고 김천역을 통과하게 된다.
정거(停車)를 하는 동안 무더운 여름(8월15일 이후)목마른 그들에게 해방의 축제기분에 들떠 풍물을 치든 시민들이 목을 축이지 못하게 한 적이 있었는데 화가 난 그들은 기차가 출발한 후 가속이 붙자 기관총을 난사하여 철로부근에 사람들의 주검(; 송장)36구가 나뒹굴었다는 이야기를 아슴아슴하게 기억하는데 그들의 처지를 어디 한번이라도 바꾸어서 생각해 본 사람이 있을까?
그들도 국가의 부름을 받았을뿐 자의는 아닌데 시민들의 생각이 짧았나보다.
언뜻 생각나는 내가들은 다른 이야기로 1,4후퇴 때 화차지붕위에는 몸을 끈으로 묶고 탄 사람도 있는데 터널통과 때 많이 죽었으며 기차가 출발 후(모두 무임승차)속도가 느릴 때 돈 없는 피난민 승객은 정거장에서 계란을 파는 사람에게 접근 계란을 탈취한 후 달리는 기차에 다시 뛰어 올랐단다.
재탕이 되는데 관동군들도 국가의 부름을 받고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복종할 따름인 귀한 집 자손들인데 기고만장해진 김천군(그 당시)민들이 끝까지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좀 지나친 행위가 철로옆을 걸어가던 무고한 시민들을 죽임으로 이끈 것 같다.
만약 본인들이 목마른 일본군인 이었다면 심정이 어떠했을까? 재고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보충설명으로 별을 단 군인이 있다고 가정 할 때 그가 정말 상대방이 미워서 타도하려는 것이냐 하면 그게 아니고 직업이 군인이고, 국가가 주는 녹봉으로 그들의 가족을 먹이기 위함이고, 만약전쟁에 지면 전범이 되어 중범 처벌을 받기 때문이 아닐까?
본론으로 돌아와 중앙청건물을 이전하여 복원한 것도 아니고 파기해 버렸는데 만약 조상들이 이런 식으로 문화재를 훼손했다면 고적들이 어디 한 가지라도 지금까지 남아 있겠는가?
지금은 일본의 압제 하에서 살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으니 일본 기피현상에서 오는 오판 때문에 제3자 편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겠지만 후손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연구를 하고 보전(保全; 온전하게 보호하여 유지함)을 꾀하는 노력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나는 금할 수 없다
이런 사적들을 그대로 보존(保存; 잘 보호하고 간수하여 남김)함으로서 후(後)졌던 한국역사를 생각해야 자손들에게 조국애가 생길 것이고 한국을 강점하여 만행을 자행하던 증거물들이 애국심의 발로(發露)가 되며 독도의 소유권다툼에서도 한국에 유리하게 적용되고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되는 것인데 후손들은 중앙청과 조상들이 간직했던 유물들을 사진으로나마 겨우 추측해 볼 수가 있을 터이니 마음 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재고(再考)하면 한국을 저자세로 만들고 일본을 고자세로 끌어 올려 만행을 규탄한다면 바로미터(barometer; 여론의 指標)가 되어 말의 씨가 더 크게 설 것이다.
비근한 예로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 마차가 대기하고 있고, 아나코스티아 강 옆 늪지대에서 황소가 풀을 뜯는 골동품의 흑백 사진인데 지금 사람들이야 어디 4각형 인공 호수가 있는 모뉴먼트 광장이 늪이고 갈대가 자라든 곳이라고 약200년 전의 모습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내가 그당시의 흑백사진을 박물관에서 담아서 이블로그에 올려 놓았다.]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이런 사적(史蹟)가치가 있는 유물(遺物)들은 허는 것은 어쩌면 일본이 원하는 희망사항일 것이고 헐기야 쉽겠지만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금전으로는 살수가 없으며 도시의 미관보다는 사학연구의 목적이 무게가 더 중(重)하고 독특한 가치가 있다는 나의 생각이다.
세상에서 단하나 뿐인 이 건물을 헐고 싶더라도 다음 세대에게 미루어 그들로 하여금 존속과 철거의 가부를 결정짓게 미룰 수도 있을 것이며 가감이 없이 있는 그대로 기술(記述)하고 보존했더라면 조상들에겐 존경심을 돋우고 후손들에게는 애국심의 경각으로 말미암을 텐데 속담에
"게(crab)도 구럭(망태기, 사람이름이라 하는 설도 있음)도 다 잃었다."
라는 속담이 있듯이 과거사의 고증이 현재의 미관보다도 더 중요하니 나에겐 아쉬움을 자아낼 뿐이다.
사람들은 차도 복고풍을 좋아하여 1953년 포드차를 본을 떠서 크라이슬러 회사에서 만든 최신형의 차[Pt Cruser]가 동이 나는 것만 보아도 알수 있고 나도 30년 전부터 한국에서 온 편지들을 한 장도 버리지 않고 죄다 보관하고 있어서 지금도 가끔 읽어보면 아버님의 필적과 자식사랑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새로운 느낌도 들고 가보로 취급 된다.
최근에는 국회의원들이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고 항의를 준비한다는데 하멜이 1589년에 쓴 표류기에 있듯이 일본이 대마도와 제주도를 교환했다고 했으니 조심을 해야 한다는 내 생각이다.
하멜표류기에서 펀글(조선과 일본해협 사이에는 조선인들이 Tymatte 라 부르는 쓰시마섬이 위치한다. (일본은 쓰시마라 부르고 조선은 타이마토라 함) . 조선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원래 조선의 일부였으나, Quelpaert 와 교환의 댓가로 일본에게 빼앗겼다고 한다. 서쪽으로는 중국과 험한 산으로 분리되어 있어 거의 섬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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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녹이 쓴 구리철판으로 된 성문을 닫으면 적군이 못들어간다.
[금붕어:goldfishes]
성주위로는 해자를 만들어서 자객이나 적군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성안의 정원.
히메지성은 벽에다가 회를 발라서 불에타지않게 고안이 되었다.
6층까지 올라가 보았는데 성의 내부는 전기조명이 없어서 어둠침침했다.
영어화화만 가능하면 인터넷으로 각 도시마다 산재하는 아마추어 통역관광안내원을 찾아가면 역에서 그들이 기다리니 관광객이 가고싶은곳 어디든지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이 가능하다.
성주가 살았던 성안의 넓이는 조선조의 창경궁후원보다는 더 넓었다.
목조건물로 어떻게 6층을 올렸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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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쓰시마 즉 대마도는 우리나라
땅이 아닙니다.
일본 영토입니다.
대마도가 한국의
영토인 적도 없고
조선조 초기에
왜구를 공격한 적이 있을 뿐입니다.
일본이 임진왜란 때 조선 전국토와
국민을 유린 학살
한 적은 있지만
일본 국토의 수천분의 1도
안되는 대마도를
침공한 적이 있을
뿐입니다.
독도는 한일어업협정 상
중간수역으로 그
바다는 한.일 누구
의 바다도 아닙니다.
독도에 한국 경찰
이 주둔한다고 실
효지배도 아닙니다.
실효지배란 상대국
이 우리의 영토로
인정할 때이고
일본이 자기 영토
라고 주장하고 훈
련도 못하게 하는
상태는 법적으로 실효지배가 아닙니다.
독도를 이슈화하는
것은 국익에 해가
됩니다.
독도는 울릉도와
분리되어 속도도
아닙니다.
중간수역이기 때문
입니다.
독도를 울릉도의
속도로 하기 위해
서는 한일어업협정
을 폐기하던가
개정해서 독도가
우리나라 경제수역
으로 편입해야 합
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국익을 위하여 독
도를 도마 위에 올
려서는 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