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단월드 서울 삼성센터의 한 사무실에 들어서면 커다란 세계 전도가 보인다. 그런데 그 위에 ‘BR OCEAN 36000’이라고 씌어 있다. 제3자가 보기에는 전혀 알 수 없는 문구인데 그 내용은 단월드를 세운 이승헌씨의 야망이 담겨 있는 글로서 그들은 2010년까지 전 세계에 뇌호흡센터 3만6천 개를 세우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 36000이라는 숫자는 미국 전역에 있는 맥도날드 햄버거 매장의 숫자인 26000개보다 1만 개 더 많은 숫자로 단학센터를 세우겠다는 발상이라고 한다. 이들은 이 숫자를 채우기 위해 중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식회사인 ‘단월드’는 지난 해 25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1998년에 등장한 ‘수선재’라는 또 하나의 명상 산업체는 지난 해 매출액이 7천만 원 정도인 후발업체이지만 편의점식의 명상센터인 ‘명상아루이仙’에 가면 글자 그대로 일반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듯, 명상을 골라 소비할 수 있도록 한다. 5천 내지 6천 원 정도만 내면 차 한 잔을 마시며 그림 명상, 돌 명상, 선 체조, 씨앗 명상, 찰흙 명상, 걷기 등을 골고루 체험할 수 있게 하며, 명상과 관련한 상품들도 팔고 있는 한마디로 명상 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명상으로 사람들의 삶속 깊숙이 파고들면서 마음의 안정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 바람이 불면서 바야흐로 명상이 돈이 되는 시대가 다가왔다. 그러면 명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세상에는 천만 개의 명상법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명상법의 종류는 다양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인도나 한국, 중국에서 더 나은 명상 세계로 가기 위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도구가 있는데, ‘진언(眞言)’이나 ‘주문(呪文)’이라고 불리는 ‘만트라’이다(만트라는 마음을 뜻하는 ‘만’과 건너기를 의미하는 ‘트라’의 합성어이다). 일부 특수한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빨리 각성시키는데, 만트라에 속하는 소리들이 그렇다. 소리는 몸과 마음에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반응을 유발한다. 그리고 생각이나 감정적 반응, 경험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이 소리를 통해 기쁨과 고통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예컨대 호각 소리나 “불이야” 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멈칫거린다. 이 같은 반응은 반복된 소리의 힘 때문이다.
만트라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으로 고대 주술사들이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한 주문이나, 불교에서 사용하는 ‘관세음보살,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옴마니반메훔’ 등도 모두 만트라이다. 이를 반복해 읊조리면 육욕적인 것과 명예심, 이기심을 떨쳐버리고 내면에 평정이 쌓이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명상 전문가들은 만트라를 이용하면 의지가 강해지고, 정신 집중이 빠르고, 분노와 탐욕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이 만트라는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효과가 늘어나는데, 한번 선택한 만트라는 가급적 바꾸지 않도록 유도하면서 몇 분, 몇 십분 이상 암송하도록 한다. 엘리야와 갈멜산의 대결을 벌였던 바알, 아세라의 선지자들이라고 한 주술사들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명상법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개념이 바로 ‘요가(Yoga)’이다. 인도에서 탄생한 요가는 지난 몇 천 년 간 명상법의 절대 지존으로서 그 권위를 인정받아 왔다. 이 요가는 그 발생 시기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지만 고대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에서 발굴된 유적 등을 토대로 하여 BC 2500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요가는 ‘묶다’라는 뜻의 동사 ‘유즈(yuj)’에서 파생한 단어로서 서로 분리되어 있는 브라만(brahman; 우주의 원리)과 아트만(atman; 개인의 원리)을 한데 묶는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다. 육체나 감각 기관을 억제하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 우주와의 합일, 곧 범아일여(梵我一如)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요가 수행자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한다. 이 때 몸과 마음의 극치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도대체 동양의 철학 또는 종교적 사상 정도로만 여겨지는 이러한 기운동, 기수련의 단학 열풍이 왜 이렇게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불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얘기한다면 당장 육신적으로 수련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명상을 초자연적인 힘이나 능력으로 또는 눈감고 앉아 조용히 묵상하는 것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명상은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미국에서 활동한 바 있는 에크나트 이스와란이라는 명상가는 명상을 ‘우리 마음속에 잠재된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고 응축해내기 위한 체계적인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뿐만 아니라 명상은 반드시 조용한 장소에서 하거나, 따로 시간이 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인간들의 생활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다.
명상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심신 수련법이지만, 과학적 연구가 시작된 것은 고작 50년 남짓이다. 그나마 첨단 과학에 의한 뇌 연구는 10여 년 전에 본격 시작되었다. 우선 명상의 기본자세는 반듯이 정좌(正坐)를 하는 것인데, 이것만으로도 기분이 산뜻해진다(석가모니불의 앉은 모습). 이 자세는 개체를 보존하려는 모든 동물의 본능적 반응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되는 것으로서 동물은 공격이나 방어 등 긴급 상황에서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복싱이나 레슬링과 같은 격투기의 경기 장면을 보면 선수들이 뻣뻣이 서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싸우고 난 뒤 쉴 때 허리를 편다. 이것이 명상을 할 때 허리를 꼿꼿이 펴야 하는 생리적인 이유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이 취해온 움츠리는 동작은 뇌 속에 공격 호르몬(nor-adrenalin)을 분비시켰는데 이것이 분비되면 교감신경이 흥분해 머리가 쭈뼛해지고, 눈동자가 커지며,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빨라지며, 호흡이 거칠어지고, 팔다리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싸울 때 내장 운동은 필요가 없으므로 위액과 혈류가 감소한다. 대신 혈액을 사지(四肢)로 보낸다. 그리고 힘을 내기 위해 혈당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인슐린, 코티솔 등 긴급 호르몬을 분비해야 한다. 의학자들은 이런 비상사태를 스트레스(stress)라고 부른다. 이 상태가 오래가면 혈압, 뇌압에 이상이 생기고, 뇌졸중, 당뇨, 장질환, 불면증, 두통 같은 질병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며 게다가 면역력이 낮아져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몸을 꼿꼿이 세워 반듯하게 앉는 명상 자세는 그것만으로도 공격성 호르몬 분비를 줄어들게 한다고 한다. 실제로 잠시 명상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가뿐해지는 느낌은 이런 생리적 변화에서 비롯된다.
특히 미국사회와 같은 서구 선진국들의 경우에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과가 없이는 새로운 사상이나 학문적 주장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데, 최근 단학과 관련된 단체들은 이러한 이론을 무장해서 그들을 파고드는데 성공한 것이다(물론 서구인들이 보기에 아직은 신비한 동양의 사상이나 종교, 철학, 무술 등을 받아들이는 것도 있으나). 거기다가 뉴에이지운동과 같은 단체들이 등장하여 동서양의 종교를 통합하자는 이론적 배경과 사상적 배경을 온갖 문화를 통해 심어 넣은 것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확신을 가지고 분명하게 인용할 수 있는 성경구절이 바로 마태복음 12장 43∼45절인 것이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 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단학이나 요가 등의 명상은 이미 기술한대로 사람들의 마음과 육신을 안정시키고 편안하게 만드는 과학적인 근거가 분명히 있다. 사실 산소를 몸 깊숙이 공급하는 복식호흡이나 심호흡만으로도 건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는 분명 명상운동의 ‘실(實)’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기에서 속고 있는 것이다. 사단은 창3장에서 인간들에게 육신적인 것을 제공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것을 빼앗는 그 전략과 전술을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깊은 수행의 행위나 도덕적 행위, 심지어 철저한 사상적 무장이 사람들의 심령을 ‘비우고, 소제하고, 수리하는’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의 마지막 결과인 ‘무아지경’도 같은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사단은 전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집어넣는데 이것이 명상운동의 ‘허(虛)’인 것이다. 이는 헛된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멸망에 이르는 근본적인 문제가 되어 자신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후대들까지 망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이 헛된 것에 맡겨서 될 것인가? 우리가 육신만 가지고 있다면 단학에서 주장하는 이러한 명상운동이 더욱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단순한 존재가 아닌, 영혼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할 귀중한 존재인 것이다.
이를 위해 영육 간에 모든 문제를 완전 해결하는 것이 오직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외에는 없는 것이다. 이런 혼란한 시대에 우리 복음 가진 기독교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현장에 깊숙이 깔려 들어가는 진짜 ‘현장의 전도제자’들이 되어서 인간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저들에게 명확한 답을 제시하고 완전한 축복인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해야 하는 분명한 사명(使命)을 갖고 있다.
김성호 목사 · 인터넷선교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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