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말잇기
- 나고음
여행을 갔다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넷이 한 방에서 잔 것은 두고두고 생생하게 남아있다
방 가운데를 뎅그러니 비워두고 넓은 방 가장자리를 따라
한 사람이 머리, 다리로 누우면 다음 사람이 다리 머리. 다시 머리 다리…
각자 네모난 벽을 껴안고 잤다
이중섭의 좁지만 따뜻한 제주 부엌방이 떠올랐다
동그랗게 비어있는 방 가운데에서 타닥타닥 타고 있던 정다운 이야기가
먼저 별이 되신 선생님의 얼굴과 함께
지금도 따뜻하게 타고 있다
ㅡ《시와소금》(2024,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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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언어를 잘 골라 쓰고 대화를 풀어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기술입니다
오늘날 인기 있는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 중에 '1박2일'이 있는데요
여섯 명의 고정출연자들은 실내취침과 야외취침을 두고 여러 게임을 합니다
'복불복'이라는 다소 구태의연한 방식이 마음에 차지 않지만 그냥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불혹을 넘긴 출연자들의 몰상식과 비지성이 주는 웃음이어서 기억할만한 내용은 적습니다
화자의 기억 속에서 같은 방에서 내 사람이 잠을 자는 방식이 낯설어서 눈길을 잡습니다
부엌방 가운데를 비우고 가장자리를 따라 발냄새를 피하는 방식을 따랐다니...
대화는 얼굴을 보며 이어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가운데를 비웠다는 것은 주제가 없었다는 말이지요
말꼬리 잡는 것도 아니고, 끝말잇기처럼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벽을 안고 돌아누우면 그만입니다
사제지간의 별난 추억이어서 지금도 따뜻하게 타오르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