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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바둑 기성(棋聖) 섭위평(聶衛平)
| 시 | 일 | 월 | 년 |
| 식신 | 일간 | 정재 | 정인 |
| 丁 | 乙 | 戊 | 壬 |
| 亥 | 未 | 申 | 辰 |
| 정인 | 편재 | 정관 | 정재 |
| 87 | 77 | 67 | 57 | 47 | 37 | 27 | 17 | 7 |
| 丁 | 丙 | 乙 | 甲 | 癸 | 壬 | 辛 | 庚 | 己 |
| 巳 | 辰 | 卯 | 寅 | 丑 | 子 | 亥 | 戌 | 酉 |
1 인물(人物)에 대한 평가(評價)
1980년대 중일(中日) 바둑 슈퍼대항전에서 일본(日本)의 초일류(超一流) 기사(棋士)들을 상대로 11연승(連勝)을 거두며 중국(中國) 바둑을 세계(世界) 최정상(最頂上)으로 끌어올린 국가적(國家的) 영웅(英雄)이다. 이에 중국(中國) 정부(政府)는 그에게 역사상(歷史上) 유일(唯一)한 공식(公式) 기성(棋聖) 칭호(稱號)를 수여(授與)했다. 수(數)읽기뿐만 아니라 판을 짜는 대국관(大局觀)이 탁월(卓越)하여 철문(鐵門)이라는 별명(別名)을 얻었다. 두터운 기풍(棋風)으로 상대(相對)의 공격(攻擊)을 막아내고 형세(形勢)를 장악(掌握)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선수(選手) 생활(生活) 이후(以後)에도 섭위평 바둑 도장(道場) 등을 운영(運營)하며 후진(後進) 양성(養成)에 전념(專念)했다. 상호(常昊), 고력(古力) 등 세계적(世界的)인 기사(棋士)들이 그의 문하(門下)에서 배출(輩出)되어 중국(中國) 바둑의 부흥(復興)을 이끌었다. 평소(平素) 소신(所信)이 뚜렷하고 거침없는 발언(發言)으로 유명(有名)했다. 바둑계뿐만 아니라 사회(社會) 전반(全般)에 걸쳐 자신(自身)의 견해(見解)를 가감 없이 표현(表現)하는 강한 개성(個性)의 소유자(所有者)였다. 세 번의 결혼(結婚)과 이혼(離婚) 등 화려(華麗)하면서도 부침(浮沈)이 심한 사생활(私生活)로 늘 화제(話題)의 중심(中心)에 있었다. 말년(末年)에는 암(癌) 투병(鬪病) 중에도 바둑 보급(普及)에 힘쓰며 불굴(不屈)의 의지(意志)를 보여주었다.
2 섭위평(聶衛平) 명조(命造) 분석(分析)
을목(乙木) 일간(日刊)이 신월(申月)에 태어나 정관격(正官格)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임수(壬水)가 투간(透干)하고 신진(申辰) 수국(水局)을 형성(形成)하여 인수격(印綬格)으로 변격(變格)하였다. 정관(正官)과 재성(財星)이 합하여 인수(印綬)로 변하니 귀격(貴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인성(印星)이 태과(太過)해진 상황(狀況)이니 마땅히 무토(戊土) 재성(財星)으로 제(制)하는 인수용재격(印綬用財格)의 정석(定石)을 보여준다. 인수용재격(印綬用財格)은 인수(印綬)가 용신(用神)인 사주에서 재성(財星)을 상신(相神)으로 삼아 조절(調節)하는 격국이다. 이것은 지혜(智慧)와 학문(學問)을 뜻하는 인성(印星)을 바탕으로 결과(結果)를 중시(重視)하는 재성(財星)을 얻는 삶의 방식을 찾는 길이 마땅하다. 따라서 이 명조(命造)에서 바둑이라는 지적(智的)인 기법을 통해 사회적(社會的)인 재물(財物)과 명예(名譽)를 모두 거머쥔 것은 격국(格局)의 쓰임이 올바르게 발현(發現)된 사례(事例)라고 할 수 있다.
(1) 인수용재격(印綬用財格)의 주요(主要) 직업(職業)
전략 기획자(戰略 企劃者), 프로그래머 및 기술 설계자(技術 設計者), 교육(敎育) 및 육영(育英) 사업(事業), 사립학교 운영(私立學校 運營) 및 전문 강사(專門 講師), 출판 및 지식 콘텐츠 사업(事業), 회계사(會計士) 및 세무사(稅務士), 감정평가사(鑑定評價士), 투자 분석가(投資 分析家) 및 펀드매니저, 경제 기자(經濟 記者) 및 칼럼니스트, 정치평론가(政治評論家), 컨설턴트(經營 診斷士) 등이다.
(2) 명조(命造)의 특이점(特異點)
① 식신생재(食神生財): 시간(時間)의 정화(丁火) 식신(食神)이 투출(透出)하여 무토(戊土) 재성(財星)을 식신생재하는 구조(構造)이다. 인수격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천간의 식신생재이다. 이것은 인수(印綬)라는 지식을 식신(食神)의 기법으로 활용하여 재성(財星)의 부(財)를 창출(創出)하는 아주 귀(貴)한 흐름이다.
② 귀록(貴祿)의 상(象): 해미(亥未) 합작(合作)을 통해 일간(日刊)의 뿌리가 튼튼해지면서 배우자(配偶者) 자리인 일지(日支)와 시지(時支)가 유정(有情)하게 변하는 모습(模襲)이다. 이것은 초년(初年)과 중년(中年)에 나타난 이혼의 부침(浮沈)을 뒤로하고 만년(晩年)에는 부인(夫人)의 내조(內助) 속에서 정신적(精神的), 물질적(物質的) 평안(平安)을 누리는 귀록(歸祿)의 상(象)을 여실히 보여준다.
(3) 세 명의 부인
섭위평(聶衛平) 선생(先生)의 사주(四柱)상 재성(財星)의 배치(配置)는 그가 겪은 세 번의 인연(因緣)과 기묘(奇妙)하게 맞물려 있다. 년지(年支)의 진토는 희생적(犧牲的) 내조(內助)를 보여준다. 월간(月干)의 무토는 강렬(强烈)하지만 관살위에 세워진 재성이니 위태로운 만남이다. 그리고 마지막 일지(日支)의 미토는 편안(便安)한 안식처(安息處)로 이어지는 흐름은 사주(四柱) 명리학(命理學)에서 말하는 재성(財星)의 작용(作用)력과 삶의 궤적(軌跡)이 일치(一致)함을 잘 보여준다.
진토(辰土)는 기틀을 세운 뿌리였고
무토(戊土)는 화려(華麗)하지만 아픔을 남긴 황야이었으며
미토(未土)는 마침내 안식(安息)을 찾은 흙이 되었다.
① 첫 번째 부인(夫人) 공상명(孔祥明) : 년지(年支) 진토(辰土)
년주(年柱) 임진(壬辰)은 임수(壬水) 인성(印星)이 진토(辰土) 재성(財星) 위에 앉아 있는 자양지토(滋養之土)의 형상(形象)이다. 진토(辰土)는 수(水)의 고지(庫地)로서 임수(壬水)의 뿌리가 되어 을목(乙木)을 생(生)하게 돕는다. 이는 부인(夫人)이 자신(自身)의 재능(才能)을 내조(內助)로 전환(轉換)하여 남편(男便)의 학문(學問)과 기력(棋力)을 정점(頂點)으로 끌어올린 현모양처(賢母良妻)의 물상(物象)과 일치(一致)한다.
② 두 번째 부인(夫人) 왕정(王靜) : 월간(月干) 무토(戊土)
월간(月干) 무토(戊土)는 을목(乙木)과 첩신(貼身)하여 정재(正財)의 역할(役割)을 수행(遂行)한다. 무토(戊土)는 신금(申金) 정관(正官)을 생(生)하는데, 신금(申金)은 명예(名譽)가 되기도 하지만 을목(乙木)에게는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아 위태로움을 내포(內包)한다. 배우(俳優)라는 화려(華麗)한 직업(職業)과 강한 자기주장(自己主張), 그리고 임신(妊娠)이라는 돌발(突發) 상황(狀況)을 통해 가정(家庭)에 파란(波瀾)을 가져온 상황(狀況)이 이와 부합(附合)한다.
③ 세 번째 부인(夫人) 란리아(蘭莉婭) : 일지(日支) 미토(未土)
일지(日支) 미토(未土)는 을목(乙木)의 뿌리가 되는 통근처(通根處)이자 목(木)의 묘고(墓庫)이다. 이는 남편(男便)이 부인(夫人)에게 안착(安着)하고 의지(依支)하는 공처가(恐妻家) 혹은 애처가(愛妻家)의 상(象)을 나타낸다. 특히 시지(時支) 해수(亥水)와 해미(亥未) 준삼합(準三合)을 이루어 일간(日刊)인 을목(乙木)을 강하게 지지(支持)하므로 만년(晩年)에 정서적(情緖的)인 안정(安定)과 귀록(貴祿)을 가져다주는 인연(因緣)으로 해석(解釋)된다.
(4) 세 명의 부인에 얽힌 비화(祕話)
첫 번째 부인(夫人) 공상명(孔祥明)은 헌신적(獻身的) 내조(內助)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전국(全國) 바둑 대회(大會) 1위 출신(出身)의 실력파(實力派) 바둑 기사(棋士)이다. 자신(自身)의 경력(經歷)을 포기(抛棄)하고 섭위평의 전성기(全盛期)를 이끈 일등공신(一等功臣)으로 생활(生活)과 정신적(精神的) 안정(安定)을 제공(提供)한 부인이다. 섭위평이 배우(俳優) 왕정(王靜)과 외도(外道) 및 임신(妊娠) 사실(事實)을 알리며 이혼(離婚)을 요구(要求)하여 1990년에 결별(訣別)하였다. 이후(以後)에 아들 공령문을 데리고 일본(日本)으로 건너갔으며 섭위평의 배신(背信)에 대해 깊은 상처(傷處)를 입고 화해(和解)하지 않았다.
두 번째 부인(夫人) 왕정(王靜)은 불꽃 같은 만남과 성격(性格) 차이(差異)가 뚜렸하였다. 그녀는 배우(俳優) 출신(出身)이다. 1991년 재혼(再婚) 후 아들 섭운청을 얻었으나 서로 다른 전문(專門) 분야(分野)와 잦은 외부(外部) 활동(活動)으로 감정(感情) 교류(交流)가 부족(不足)했다. 섭위평은 의존적(依存的) 성향(傾向)이었으나 왕정은 사업가적(事業家的) 기질(氣質)이 강해 집안일에 소홀(疏忽)했고 바둑 시합(試合) 패배(敗北) 후 섭위평의 화풀이 등으로 순탄(順坦)치 못했다. 10년 간의 갈등(葛藤) 끝에 2001년 4월 이혼(離婚)하였다.
세 번째 부인(夫人) 란리아(蘭莉婭)는 인생(人生)의 마지막 동행자(同行者)이다. 섭위평보다 23살 연하(年下)의 구락부(俱樂部) 고객담당부장 출신(出身)이다. 2001년 8월 만난 지 4개월 만에 초고속(超高速)으로 결혼(結婚)하였다. 섭위평은 그녀를 금덩어리를 주운 것에 비유(比喩)할 만큼 극찬(極讚)하였다. 미모(美貌)와 살림 솜씨를 겸비(兼備)하여 남편(男便)을 정성껏 보살핀다. 섭위평은 그녀와 함께하며 술을 절제(節制)하고 외출(外出) 대신 가정(家庭)에 머무는 등 큰 만족감(滿足感)을 느끼고 있다.
3 섭위평(聶衛平) 선생(先生) 연혁(沿革)
1952년(壬辰年) 0세: 8월 17일 요녕성(遼寧省) 심양(瀋陽)에서 출생(出生). (본적(本籍): 하북성(河北省) 심주(深州))
1961년(辛丑年) 9세: 바둑에 정식(正式)으로 입문(入門)하여 기력(棋力)을 닦기 시작(始作)함.
1973년(癸丑年) 21세: 국가(國家) 바둑 대표팀(代表任)에 선발(選拔)되어 본격적(本格的)인 활동(活動)을 시작(始作)함.
1975년(乙卯年) 23세: 중국(中國) 전국(全國) 바둑 개인전(個人戰) 우승(優勝).
1979년(己未年) 27세: 제1회 세계(世界) 아마추어 바둑 선수권(選手權) 대회(大會) 우승(優勝).
1981년(辛酉年) 29세: 첫 번째 부인(夫人) 공상명(孔祥明)과 결혼(結婚).
1985년(乙丑年) 33세: 제1회 중일(中日) 바둑 슈퍼대항전 승리(勝利)를 견인(牽引)하며 대륙(大陸)의 영웅(英雄)이 됨.
1988년(戊辰年) 36세: 중국(中國) 국가(國家) 체육위원회(體育委員會)로부터 공식적(公式的)으로 기성(棋聖) 칭호(稱號)를 수여(授與)받음.
1990년(庚午年) 38세: 배우(俳優) 왕정(王靜)과의 인연(因緣)으로 첫 번째 부인(夫人) 공상명(孔祥明)과 이혼(離婚).
1991년(辛未) 39세: 두 번째 부인(夫人) 왕정(王靜)과 재혼(再婚).
2001년(辛巳) 49세: 4월 왕정(王靜)과 이혼(離婚) 후, 8월에 23세 연하(年下)의 세 번째 부인(夫人) 란리아(蘭莉婭)와 재혼(再婚).
2013년(癸巳) 61세: 직장암(直腸癌) 판정(判定)을 받고 수술(手術)과 투병(鬪病) 생활(生活)을 시작(始作)함.
2026년(丙午) 73세: 1월 14일 서거(逝去). 향년(享年) 73세로 생(生)을 마감(磨勘)함.
유명인 선정 100인 사주팔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