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는 천주교 카페에 소개 된 회원인 피나님의 일상이
잔잔하게 공개 되었네요.
전체 메일로 이미 보내기도 했고,옮겨서 더 많이 알린다고
허락 받고 가져 온 글입니다.
살아가는 중에 이런 님의 삶을 간간히 떠 올려보기도 하면서
위로받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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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내음방’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얘기를 담백한 필치로 표현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피나님을 만나러 가는 날은 오월 하순인데도
초여름이라고 해도 좋을 듯 무더웠다.
피나님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서울 흑석동 중앙대부속병원 인근에서
‘연성사철탕’ 이라는 상호를 찾기란 수월했다.
피나님이 귀띔해 준, ‘손님이 뜸하다’는 시간에 맞춰 가게를 찾았지만
두 팀의 손님이 계셔 인터뷰가 조금 지연되었다.
하지만 이 틈에 자연스럽게 피나님이 손님을 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잘 먹고 갑니다.”라는 손님들의 인사가 허사가 아닌 듯, 수수하면서도 친절했다.
피나님은 평소 천진암에 올리는 글처럼,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간 살아온 얘기와
살아가는 얘기를 해 주었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소박한 신앙이 담긴 얘기를 옮겨 본다.
요즘 가게는 잘 되시는지요?
중앙대병원이 생기기 전 그 자리에 중대부속중고등학교가 있을 땐
지금보다 손님이 더 많았어요. 선생님들이나 동아리 선후배간에 찾아오기도 하고,
졸업한 동문 중에도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요즘은 그런 게 없어요(웃음).
거기다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예전보다 못해요.
그래도 아직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 덕에 이렇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23.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nft%26fldid%3DJN6%26dataid%3D5%26fileid%3D1%26regdt%3D20060607202307%26disk%3D7%26grpcode%3Dggreen%26dncnt%3DN%26.jpg)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그게 사연이 길어요. 애 아빠 얘기부터 나와야 하는데...
이 가게를 시작한 지는 만 10년이 넘었지요. 95년 11월 1일에 개업했으니까요.
그해 5월 초하룻날-- 음력입니다. 애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딸아이와 세 살 터울의 어린 아들이 있으니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친정으로 들어와 어머니의 도움으로 이 가게를 시작했지요.
친정어머니는 이 부근에서 30여 년 간 음식점을 했기 때문에
딸을 돕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편을 찾으신 겁니다.
몇 년 쉬시다가 저 때문에 다시 가게를 열게 된 것이죠.
아무래도 가족 얘기를 들려주셔야겠네요.
남편은 조금 내성적이긴 했지만 참 착한 사람이었어요.
결혼한 후 신림동에서 철물점을 했죠. 저도 같이 가게에 나갔어요.
가게 옆에 신림4동 성당이 있었어요. 어느 날 그 성당 주임신부님께서
감실 열쇠를 고쳐 달라고 오셨어요. 그걸 고쳐 주었는데 이 일을 통해
신부님이 애 아빠를 각별히 보기 시작했어요.
민병덕 신부님이라고...
애 아빠가 늘 이런 식이에요. 관계를 맺은 분들은 늘 애 아빠를 좋아하셨지요.
또 다른 자매님 한 분도 집 열쇠를 고쳐 주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그후 단골이 됐고 나중에 이분에게 큰 신세를 지게 되었지요.
저는 스물하나에 영세를 받았지만 남편이 개신교 신자라
이래저래 냉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헌데 민 신부님이 남편 보고 성당에 나오라고 했는데 그 이가
무슨 생각에서였든지 예비자교리를 듣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그게 그만...
남편이 자꾸 아프다고 해요. 토하면서.
체했거니 생각하고 한의원에 가 침 맞고 그랬죠.
정말 제 눈엔 당시 눈동자 풀리고 힘겹게 다리 끌고 다니던
애 아빠의 모습이 안 들어왔어요. 안 보였어요.
나중에 동네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에 가라고 하더군요. 뇌종양이었습니다.
이때 아까 우리집에서 열쇠를 고쳐 주며 인연 맺었던 자매님이 도움을 줘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마리아 자매님이라고 했는데,
성함은 잘 모르겠어요. 지금 가톨릭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님이시죠.
남편은 이미 자신의 병명을 알고 있었던 거 같아요.
생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었어요.
수개월 간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거기에 계속 있을 수 없어
병원 자원봉사자와 수녀님의 도움으로 미아리 성가복지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애 아빠가 눈을 감았습니다.
1년여 간을 앓다가 하늘나라로 가신 거죠.
지금 들어도 가슴이 아프군요. 이에 얽힌 얘기를 천진암이나
성가복지병원 회보에도 쓰신 적이 있으셨죠?
남편에게 일어난 불행을 통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많은 천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헌신적인 의료진들의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겠어요.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던 분들입니다.
영혼의 위로자이기도 했죠.
이곳에서 남편은 세례를 받고 요셉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어요.
남편이 돌아가자 아무 연고도 없는 저희에게 병원 인근에 있는 월곡동본당
신자들이 찾아와 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돌아가면서요.
멀리 신림동에서는 민 신부님이 직접 오셔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불현듯 ‘착하게 살다가니 이렇게 복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월곡동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드리는데 많은 분들이 오셔 기도해 주셨어요.
지금도 막내에게 말합니다.
월곡동성당 신자분들을 비롯해 이때 도움 준 분들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요.
이때의 체험을 병원 회보에도 발표했지요. 이 글이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즘도 성가복지병원에 얼마 안 되지만 후원회비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때 받은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자는 뜻에서이지요.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24.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nft%26fldid%3DJN6%26dataid%3D5%26fileid%3D2%26regdt%3D20060607202307%26disk%3D2%26grpcode%3Dggreen%26dncnt%3DN%26.jpg)
피나님 글은 담담하면서도 생동감이 있어 글을 읽는 이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으신지요.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딸이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었어요.
애들을 잘 키우고 싶었지요.
큰 아이가 제 기대치에 맞게 잘 자라더군요. 공부도 잘했어요.
그게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까지였어요.
사춘기가 오면서 벗어나기 시작하는데 이건 정말 힘들더군요.
텔레비전을 보면 부모를 배려하는 자식들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내 처지는 왜 이럴까 하며 서운함에 울기도 하고 아이에게 손을 대기도 하였죠.
그러다가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욕심을 버렸습니다.
나도 아이도 아팠거든요.
혼자 살면서 겪는 어려움, 자식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든 풀어야 했지요.
아이 문제는 당시 가입해 있던 카페 회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지요.
같은 경험을 했던 분들이 조언을 해줬는데 실제로 도움이 됐어요.
하지만 살아가면서 자연히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잖아요.
이걸 풀어야 하는데, 풀기 위해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도무지 글이 나오질 않았어요. 남들은 좋은 글을 쓰는데 왜 나는 이렇게 안 될까.
여러 방법을 사용해 봤지만 나중에 보면 그저 꾸민 글이었지요.
‘꾸미려고 하는구나. 그저 꾸몄구나.’ 하는 생각에 실망도 많이 했어요.
사람에 대한 실망감, 내 글에 대한 실망감으로 괴로워하던 중, 어느 순간
“애 아빠에게 편지를 쓰자”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2003년 1월부터 하늘에 있는 남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남편에겐 부끄러움이 없잖아요. 있는 그대로 쓰다 보니 글이 되어 나갔습니다.
울면서 글을 쓴 적도 많아요.
헌데 신기하게도 그이에게 편지를 쓰며 편지에다 하소연한 일은 자연스럽게
잊혀지더군요. 앙금이 사라지는 겁니다.
글을 쓰면서 아이 문제 때문에 생겼던 우울증도 치료되었어요.
또, 글에 표현한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어떻게든 실천하려 노력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예전에 비해 좋은 면으로 변화한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25.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nft%26fldid%3DJN6%26dataid%3D5%26fileid%3D3%26regdt%3D20060607202307%26disk%3D4%26grpcode%3Dggreen%26dncnt%3DN%26.jpg) 가족과 함께 태국에서(아들 마르첼리노 , 친정어머니, 피나님, 딸 데레사)
아이들과의 관계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큰딸 데레사는
누구보다 저를 잘 이해하는 친구와 같은 사이가 되었죠.
일하는 아주머니가 안 계시면 가게에 나와 저를 거들어 준답니다.
큰딸 문제로 홍역을 치러서인지 막내아들 마르첼리노는 수월했습니다.
막내는 아침 등교길에 가게 셔터 올리고 저녁 땐 가게에 있는 쓰레기를 비우죠.
엄마가 시킨건데 군말없이 따라하니 고맙죠.
공부는 좀 떨어지더라도 사람과의 관계를 건강히 잘 맺을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길 바랍니다.
비록 궂은 일이지만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을 하다 보면 남의 입장도 이해하고
남으로부터 사랑도 받을 수 있으리라 믿어요.
천진암엔 어떻게 들어오셨는지요. 천진암에 대한 바람이 있으시다면
무엇인지 한 말씀 해주십시오.
장사를 하면서 힘들고 우울할 때 카페를 찾았습니다. 의외로 좋은 카페가 많았어요.
카페에 실린 글을 보면서 위로 받았습니다. 헌데 온라인상 만남관 달리
실제 모임에 나가 보니 ‘글’과 ‘사람’이 다른 경우가 있더군요. 조금 실망했지요.
이를 통해 ‘나는 천주교 신자’ 라는 자각심이 생겼고, 신자로서 마음 붙일 곳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30, 40대 이상의 천주교 신자를
회원으로 하는 ‘천진암’이 있더군요. 당장 가입했습니다.
물론 다른 신앙 카페도 있었지만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는데,
천진암은 가볍지 않으면서도 회원들을 감싸는 부드러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성당에 열심히 나가는 편도 아니고 말로 기도도 잘 못하거든요.
마음속으로만 기도하는 제게 천진암의 부드러움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천진암이 지금처럼 신앙면에서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외로운 분들,
소외된 분들을 따스히 감싸는 카페로 계속 나아갔으면 합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27.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nft%26fldid%3DJN6%26dataid%3D5%26fileid%3D4%26regdt%3D20060607202307%26disk%3D29%26grpcode%3Dggreen%26dncnt%3DN%26.jpg) 가게에 있는 노트북으로 글도 쓰고 천진암 가족도 만나는 피나님
요즘은 개인적으로 천진암에 올린 글들을 플래닛으로 옮기는 중입니다.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글을 통해 만나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흔적은 없어도 천진암 이곳저곳을 산책하는 회원님들 모두에게도 인사 올립니다.
천진암, 참 따스한 곳이니 가끔 들어와 쉬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정모나 음악회 등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천진암의 모습도 참 좋습니다.
소박하게 서로의 정을 나누는 천진암이 되길 바랍니다.
바쁜 중에도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열심히 하루를 사는 사람.
힘겨워도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나는 사람.
그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건져 내는 사람.
만나는 이웃에게 따스한 미소를 선물하는 사람.
‘연성사철탕’이라는 작은 음식점에서 볼 수 있는 건강한 삶의 풍경이다.
(사진: 보니파시아) |
첫댓글 즐기지는 않지만 연성사철탕 함 가봐야겠당....처음 "천진암"해서 양평 가는 곳에 있는 천진암을 생각했네요..
낑가주세요오~~온나라님^^
다음 주중 희망자 모두 모실깝쇼? ㅎㅎ
넹~넹~넹~ㅋㅋ 이러다가 뚜딜기 마질라아-.-ㅋㅋ
담주 원제 소집이더래요~ 저두 낑가 주실런지요..ㅎ 김치국 한사발 마셔 봅니데이~
기회가 되고, 시간이 되면, 저도 한자리 차지할까요? ㅎㅎㅎㅎ
저도 천진암이라고해서 산속에 있는 암자를 생각했답니다. 지는 낑기고 싶어도 못 갑니다요. ㅎㅎ
다음주 목요일 12시 연성사철탕 어떠세요?그날 퇴근무렵도 좋구요~ 스테파니아님이 전번이랑 위치 적으시면 어떨까요? 선녀님은 어머님 퇴원후 제가 대구 내려갈까요? ㅎㅎ
ㅎㅎㅎ 스여사! 어쩐데유~
석하니임~~도공님두 모시고 나오시믄요오~~
온나라님~퇴근시간이 좋을 꼬 가터지요???
그러지요..그 시간이 좋을 것 같네요..복진님은 들리지 않으시네요?
긍께요~복진님께서는 끝말잇기방에서만 노시나봐욧~ㅎㅎ
에궁!! 어쩌지비..수욜부터 담주 화요일까징 먼곳 좀 댕겨와야 하는디요...또 담 기회를 봐야 하겠네요... 아쉬버요.. 맛난거 마니 드시고 정담 나누세요.
코코언니 어쩌긴 어쩌유? 온나라님이 한턱 내신다잖아욤!! 석하님이랑 이쁜 스여사 언니랑 moja님이랑 다녀오셔유~~
사철탕을 몬드시는 분을 위해서 꼬꼬탕이 만나다고 하두만요~ㅎㅎ 온나라님께서 어려운 이웃을 도우실려는 차원인 꼬 같은데..ㅋ 한턱은 건아하게 쏘우시게 맹글거라욤~~ㅋㅋ
사철탕도 좋고, 꼬꼬탕도 좋은디.. 서울은 넘 멀어유.
이제야 글을 봄니다.. 끝말방에만 놀다보니..ㅋㅋ 전 평일에는 좀 어려워요... 그리고 몇일전부터 몸이 않좋아서요 미안해요 참석을 못하드래도 즐거운시간되세요
못했어요...숫자가 넘 적다고 다음을 기약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