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시대의 오스트리아 빈 궁정에서도 ‘터키 풍(風)’이 한때 대단한 인기를 끌었답니다. 귀족들은 터키 스타일의 가구, 의상, 장신구들을 앞다투어 사들였죠.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터키 복장을 하고 있는 빈 궁정귀족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차르트를 후원하고 작품을 의뢰했던 황제 요제프 2세가 ‘이탈리아어 오페라 대신 독일어 오페라를 작곡해보라’고 명령하자 모차르트는 터키의 하렘(harem. 후궁(後宮))을 소재로 독일어 오페라를 작곡하겠다고 답하죠.
당시 빈의 오페라는 거의 이탈리아어 대본을 토대로 한 작품이었는데, 18세기부터 시작된 예술 분야의 민족주의 운동은 독일과 프랑스 등지에서 자국어 오페라 작품을 요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바로 [후궁 탈출]입니다. 그래서 형식은 이탈리아 오페라처럼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징슈필(Singspiel. 노래극)’이죠. 노래 중간에 연극처럼 대사가 등장하는 이 형식은 이탈리아어를 이해 못 해 오페라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독일어권 평민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후궁 탈출]은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징슈필로 꼽히지만, 베버의 [마탄의 사수]에 비하면 소재 면에서 비독일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당시 독일어권에서 한창 인기를 끌던 터키 이야기 가운데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브레츠너가 쓴 [벨몬테와 콘스탄체]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이 스토리를 토대로 이미 연극과 오페라들이 만들어졌지만, 대본가 고틀리프 슈테파니가 이 원작을 토대로 대본을 써서 모차르트에게 주었고, 대본을 받자마자 모차르트는 각 배역에 어울릴 가수들을 머릿속으로 다 정해두었습니다. 그런데 바사 젤림 역을 맡기려 했던 이그나츠 발터라는 가수가 황제에게 해고되는 바람에 적당한 성악가를 구하지 못해 모차르트는 이 배역을 어쩔 수 없이 노래 없는 대사 역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후궁 탈출]의 초연은 1782년 빈 부르크테아터에서 이루어졌고, 모차르트는 1779년에 작곡한 자신의 미완성 오페라 [차이데]를 [후궁 탈출]의 기본재료로 삼았습니다.
터키의 이국적 문화는 유럽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림은 사셰리오의 [하렘의 누드] <출처: wikipedia>
고난도 테크닉의 아리아, 교향악 원리에 따른 기악부
이야기는 18세기 터키의 고관 젤림(Selim)의 궁전에서 시작되는데요, 그 앞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스페인의 귀족 처녀 콘스탄체(Konstanze. 소프라노)와 하녀 블론데(Blonde. 소프라노), 그리고 남자 주인공 벨몬테(Belmonte. 테너)의 하인 페드리요(Pedrillo. 테너)는 배를 타고 여행하던 중에 해적들에게 잡혀 터키 고관 젤림(Bassa Selim. 노래하지 않고 대사만 말하는 배역)의 궁에 팔려갑니다. 벨몬테는 연인의 소식을 몰라 애를 태우다가 천신만고 끝에 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와 젤림의 궁에 건축기사로 위장취업하지요. 한편 젤림 궁의 경비대장인 오스민(Osmin. 베이스)은 블론데에게 반해 자꾸 귀찮게 굽니다. 오스민은 ‘머리통을 밧줄에 매달았다가 뜨겁게 달군 꼬챙이에 꿰어 불에 지진 다음, 꽁꽁 묶어 물어 담갔다가 마지막으로 껍질을 벗길 테다’라는 노래로 페드리요에게 겁을 주는 ‘무시무시한 터키인의 전형’이지만, 블론데 앞에서는 당황해서 쩔쩔매며 애교까지 부리는 희극적인 인물입니다.
이 궁전의 주인인 젤림 역시 콘스탄체에게 끈질기게 구애하고 있습니다. 콘스탄체는 협박하는 젤림에게 ‘어떤 고문이 기다린다 해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단호한 아리아를 부릅니다(‘Martern aller Arten’). 이 아리아는 내용이 고문에 관한 것일 뿐 아니라 소프라노 가수에게 고문에 가까운 고난도 콜로라투라 기교 고음을 요구하는 난곡이어서 ‘고문의 아리아’라고 불립니다. 전주만 해도 꼬박 2분이 걸리며,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가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죠. [후궁 탈출]은 전반적으로 교향악의 원리에 따라 작곡된 기악부가 인상적입니다. 남자주인공 벨몬테 역시 3막 초반에 ‘사랑의 힘에 온전히 맡기리’라는 대단히 어려운 아리아를 불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곡은 너무 어려워서 공연이나 녹음 때 종종 2막의 서정적 아리아 ‘기쁨으로 눈물이 흐르면’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중세, 근대의 터키 하렘 여성들은 격리된 생활을 하면서 종교행사, 목욕탕 가는 것 외에는 외출을 금지 당했다. 그림은 장 레옹 제롬 [하렘의 테라스]
페드리요는 벨몬테가 궁에 들어와 있다고 블론데에게 알려주며 탈출을 예고합니다. 블론데는 기뻐하며 콘스탄체에게 그 소식을 전하지요. 페드리요는 오스민을 술에 취하게 만들고, 콘스탄체와 벨몬테는 재회의 기쁨을 나눕니다. 오스민이 취해 잠든 새 터키 궁을 탈출하려던 벨몬테 등 네 사람의 시도는 그들 자신의 부주의와 만용 때문에 실패로 돌아갑니다. 잠에서 깬 오스민은 이들을 체포해놓고 신이 나서 경쾌하고 익살스런 아리아 ‘어떻게 이 승리를 자축할까’를 노래합니다. 그러나 젤림은 이들에게 오스민이 원하는 끔찍한 벌을 내리는 대신, 너그러운 아량을 베풀어 모두를 고향 스페인으로 돌려 보냅니다. 모차르트는 브레츠너의 원작과는 달리 벨몬테의 아버지가 젤림의 철천지 원수였던 것으로 설정해 인도주의와 관용의 미덕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젤림이 원래 터키인이 아니고 스페인 사람이었다는 설정은 역시 유럽인만이 관용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혀 씁쓸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예술적 완성도 높은 징슈필의 걸작
독일어 원제의 ‘엔트퓌룽’은 유괴 또는 납치라는 뜻이어서 예전에는 [후궁으로부터의 납치]나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등의 제목도 쓰였지만, 터키의 후궁에 갇힌 연인을 구출해 데리고 나오는 이야기이니 [후궁 탈출]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연인이 자신을 구해 데려가는데 그걸 ‘납치’나 ‘유괴’라고 부를 여자는 없겠지요? 또 ‘제라일’이라는 단어는 이슬람교 국가의 군주나 고관의 궁전 또는 저택을 이르는 말이니 그냥 터키궁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한 남자를 섬기는 여러 여자가 모여 사는 ‘하렘’이 그 터키궁의 특징이어서 ‘후궁 탈출’이라고 부른답니다.
자신을 완전히 하인 취급하던 고용주 잘츠부르크 대주교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인 뒤 그를 떠나버린 모차르트는 빈에서 창작의 자유를 누리며 예술가로 인정받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때 마침 황제 요제프 2세는 독일어 징슈필을 발전시켜 이탈리아 오페라와 대등하게 만들려는 계획으로 모차르트에게 오페라를 의뢰했던 것입니다. 모차르트로서는 자유로운 예술가로서의 비교적 순탄한 첫 걸음이었던 셈입니다. “어떤 소름끼치는 상황을 묘사하더라도 음악은 언제나 조화를 잃지 말아야 하며 절대로 귀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모차르트의 고전주의적 신념대로 이 오페라 음악은 주인공들의 희망과 절망을 결코 극단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Mozart, Die Entf?hrung aus dem Serail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Die Entfuehrung aus dem Serail) 중 'Durch Zaertlichkeit und Schmeicheln'
에르나 베르거, 로테 쇠네와 더불어 1920년대 중반에서 1940년대 초반까지의 독일 오페라 무대를 주도했던 레지에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한 사람인 독일의 소프라노 아델레 케른(Adele Kern, 1901-1980)의 녹음 한 편을 담아와 소개드립니다.
여기가 모짤트의 생가 앞입니다. ㅎ 비엔나에 가보시면 이처럼 궁정음악이 발전된 이유를 자연히 알게 되더만요. 그간에 알고 있던 음악적 상식에서 벗어 날수도 있구요.그 넓은 궁정 안에서 새장처럼 살아가며 품격을 지키려니 이처럼 음악적으로 발전 할 수밖에 없었겠단 생각이 들더만요. 제왕의 눈에 들기보담 부단히 자기만의 음악을 추구해온 그가 당대엔 이단아로 냉대받고 왕의 눈치보는 평론가들의 혹평과 질타도 많이 받았는데 현대엔 나라에서 그를 엄청나게 울궈 먹고 가는 곳곳마다 모짤트~모짤트~모짤트 이었습니다.ㅎㅎ 올려주신 오페라곡 잘 경청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감사~
시골버스2님.겁게 잘 보내세요..
감하시어 감사합니다.
주말을
모짜르트의 오페라중 귀중한 자료를
골라 올려셨군요..
감사히 잘 감상하겠습니다.
능금밭길님..하세요..
감 하시어 감사합니다.겁게 잘 보내시길
주말을
여기가 모짤트의 생가 앞입니다. ㅎ
비엔나에 가보시면 이처럼 궁정음악이 발전된 이유를 자연히 알게 되더만요.
그간에 알고 있던 음악적 상식에서 벗어 날수도 있구요.그 넓은 궁정 안에서 새장처럼 살아가며
품격을 지키려니 이처럼 음악적으로 발전 할 수밖에 없었겠단 생각이 들더만요.
제왕의 눈에 들기보담 부단히 자기만의 음악을 추구해온 그가 당대엔 이단아로 냉대받고
왕의 눈치보는 평론가들의 혹평과 질타도 많이 받았는데 현대엔 나라에서 그를 엄청나게 울궈 먹고
가는 곳곳마다 모짤트~모짤트~모짤트 이었습니다.ㅎㅎ
올려주신 오페라곡 잘 경청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모르는 오페라 라 이해하기 쉽지않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아리아는 잘 듣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