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일정한 규율과 질서를 가진 군인들의 집단’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정한 규율과 질서’이다. 군대에 존재하는 규율과 질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공식적인 규정의 형태로 존재하는 군법과, 병사와 병사 간에 자의적으로 생겨나고 관행으로써 작용하는 규칙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전자의 규정보다 후자의 비공식적 룰이 우리의 군 생활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기상하는 일부터 식사, 청소, 인사, 언어사용과 복장에 이르기 까지 비공식 룰은 전방위적으로 군 생활의 모든 영역을 규율하기 때문이다.
후자 중 대부분은 이른바 내무 부조리라 칭해지는데 이 자잘한 비공식적 규칙들은 권력과 서열을 공고히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권력자든 권력자가 아니든)를 인식하게 하는 숨겨진 역할을 한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우리는 비공식적 부조리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 지 엿볼 수 있다. 엄석대 패거리로 상징되는 지배층은 공식적이지 못하는(하지만 모두 알고 있는) 갈취와 폭력, 가혹행위로 급우들을 지배한다. 기존 담임은 이러한 불의를 아는 지 모르는 지 제 학급이 안정적으로 잘 돌아간다고 칭찬한다. 음지의 이기적인 부조리로 인해 이루어지는 양지의 서열 공고화 과정이다. ‘짬’으로 얘기되는 기득권을 위해 음지의 룰이 형성되고, 어떠한 불의도 양지에서 보여지는 ‘탄탄한 서열 안정’에 의해 용서되는 군대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이문열이 묘사한 저 시골 교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군대가 시골 교실과 다른 점은 바로 피지배 계급이 지배 계급으로 바뀌는 과정에 있다. 권력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있던 모든 이등병들도 언젠가 중간층을 거쳐 병장이라는 피라미드의 최정상에 위치하게 된다. “고참 대접 받으려면 아래 애들 갈궈라.” 이기심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상위 계급의 이와 같은 충고는 대의 대를 이어가며 군대를 변하지 못하는 곳으로 만든다. 이 기묘한 매커니즘을 통해 우리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며, 이 경험은 가해자로서 피해자를 이해하는 것이 아닌 피해자로서 가해를 순응하고, 가해자로서 가해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일방적인 피해의식과 죄의식을 잊어버린다. “나도 이등병 땐 저랬으니깐 이해해주자.” 가 아니라 “어쩔 수 없다. 네가 고참 될 때까지 참아라.” 같은 말을 욕설과 함께 내뱉는다는 것이다.
군대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가 있다. 윤종빈의 <용서받지 못한 자>다. 영화는 군대에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다. 처음 입대했을 때 주인공은 왜 쉴 때 mp3를 사용하지 못하는지, 계급이 낮을 때는 왜 자판기 커피를 혼자 뽑아먹지 못하는지, 왜 TV채널은 고참 만이 결정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주인공도 계급이 올라갈수록 자신의 A급 보급품을 고참에게 상납하고, 후임에게 부조리를 참으라 하며, 고참에게 입 바른 말을 하는 등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과 점차 닮아간다. 나아가 이 영화가 말하는 더 중요한 지점은 제목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군대에서의 피해/가해 경험에 대해서 사죄도 용서도 받지 못한 채 사회로 내보내진다. 용서받지 못한 자. 우리는 2년간의 분노와 상처를 혼자서 쓰다듬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합리화한다. 이 합리화는 무엇인가. “군대, 힘들지만 배울 점은 있어. 이를테면 인내심 같은 것들.” 인내심이라 쓰고 ‘기존 구조의 행동과 룰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읽는다. 그렇게 스물 초반 청년의 앳된 얼굴은 2년 뒤 군필자의 얼굴로 사회에 나온다.
군 입대를 굉장히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하는 얘기는 “군대를 가야 사람이 된다.” 라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그들이 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학교에서 흔히 “누구는 군대 다녀와서 정신을 차렸다더라.” 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 대상은 전역 후의 학점이 신입생 때의 학점에 비해 크게 상승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학점 뿐 아닐 수 있다. 그것은 자격증과 취업 준비에 대한 열의를 기준으로도 평가된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더 따뜻해졌다거나 창의력이 풍부해졌다거나 하는 것을 “군대 다녀와서 사람 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직 스펙 관리가 철저해지고,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는 데에 열정적으로 임하게 된 사람을 군대 다녀온 ‘사람’으로 인정한다. 이러한 ‘사람됨’은 우리 사회에서 생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군대 갔다 와야 정신 차린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생존기술의 학습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 함의는 무엇인가. 생존기술의 학습은 사회구성원을 착취함으로써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지배권력에 대한 도전이나 연대 필요성의 깨달음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짓밟는 기술에 대한 학습이다. 트리나 포올러스의 애벌레들처럼 의미 없는 경쟁을 열심히 수행하는 기술에 대한 학습이고, 조련사가 던져 주는 먹이를 하나라도 더 많이 먹으려 자기들끼리 치고 받는 기술에 대한 학습이다. 그 사이에 미소 짓는 것은 구조를 지배하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 군대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사회 기존의 권력구조와 룰에 순응하게 하는 매커니즘의 일종이다. 군대는 대학입시의 과열경쟁(경쟁제일주의), 이미지 소비 현상(물신주의)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도구로 역할한다. 군대가 그들 입장에서 굉장히 고무적인 효과를 냈을 것임에 틀림없다. 입대의 의무만큼 대한민국에서 신성하게 여겨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진정 이익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음에도 입대에 ‘국방의 의무’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찬양한다. “군대 갔다 와야 진짜 남자다.”라는 신화가 실제로 군대를 다녀올 자신들이 아닌, 군대를 어떻게든 가지 않을 소수를 위한 신화임에도 말이다. 예를 들어 상위 계급일수록 군대에 가지 않는 현상은 어떤 이유를 가지는가. 그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그저 아무 말 없이 6시 기상 10시 취침하며 자신들의 부를 늘려줄 일하는 로봇들이지, 군대를 다녀와서 얻을 ‘남자 인정’이라는 싸구려 꼬리표가 아니기 때문이 아닌가.
여기까지 군대라는 조직이 가진 질서와 계급체계가 어떻게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상술했다. 짧게 말해, 부조리를 행하는 것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과정이 우리 죄의식과 피해의식을 마비시켜 구조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게 한다는 것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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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냐
글이 너무 길어서 분명히 리플은 안 달릴 것 같다만...
첫댓글 애초에 군대는 살인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조직이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집단이란 말이지... 정상적인 사회의 잣대로 군대를 재단하려는 것 자체가 넌센스야. 그리고 군대가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유지 도구 이거는 말도 안됨...-_- 징병제가 아닌 나라들은 뭐 계급이 형성 안되어 있냐? 그걸 군대에 뒤집어씌우면 안되지..
군대에 뒤집어 씌우는게 아니라 군대가 일조하고 있다 그 말이지.
개소리다
왜 개소리인지 말해봐.. 너무 딸랑 개소리다 이러면 저 긴 글이 민망하잖여 ㅋㅋ
군대도 관료제집단이니 어쩔수없이 그런불합리하다고해야되나 암튼 그런부분이 필요악으로서 있는것같다(이건니가 군대갔다오면 왜필요한지 좀느낄것같애) 그리고 군대라는자체가 뭐 기존사회유지일조한다고하는 것과는 별개로 생각해야될것같당~ 내가족 친구를 지키기위해서 있는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