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 백무산
내가 사는 산에 기댄 집, 눈 내린 아침
뒷마당엔 주먹만 한 발자국들
여기저기 어지럽게 찍혀 있다
발자국은 산에서 내려왔다, 간혹
한밤중 산을 찢는 노루의 비명을
삼킨 짐승일까
내가 잠든 방 봉창 아래에서 오래 서성이었다
밤새 내 숨소리 듣고 있었는가
내 꿈을 다 읽고 있었는가
어쩐지 그가 보고 싶어 나는 가슴이 뜨거워진다
몸을 숨겨 찾아온 벗들의 피묻은 발자국인 양
국경을 넘어온 화약을 안은 사람들인 양
곧 교전이라도 벌어질 듯이
눈 덮인 산은 무섭도록 고요하다
거세된 내 야성에 피를 끓이러 왔는가
세상의 저 비루먹은 대열에 끼지 못해 안달하다
더 이상 목숨의 경계에서 피 흘리지 않는
문드러진 발톱을 마저 으깨버리려고 왔는가
누가 날 데리러 저 머나먼 광야에서 왔는가
눈 덮인 산은 칼날처럼 고요하고
날이 선 두 눈에 시퍼런 불꽃을
뚝뚝 떨구며 그는 어디로 갔을까
창림 사지 / 백무산
석탑 하나 마주하고서
저물도록 그 앞을 떠나지 못합니다
오늘에서야 처음 본 탑이지만
탑은 나를 천 년도 넘게 보아온 듯
탈 그림자가 내 등을 닮았습니다
수억 광년 먼 우주의 별들도 어쩌면
등 뒤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석탑하나 마주하고 오래 서 있자니
나의 등이 수억 광년 달려와
나를 정렬하고 마음을 만납니다
옛사람들은 거울보다 먼저
마음을 비춰보는 돌을 발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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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산 시인
1954년 경북 영천 출생
1984년 <민중시> 1집에 '지옥선' 등을 발표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