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화 제목은 왜 네 글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걸까요(요즘엔 그 법칙이 점차 무너지고 있지만 ^^)? 혹시 무슨 징크스라도 있는 겁니까? 옛날부터 정말 궁금했는데…. 알려주시면 고맙겠네요.
그러고 보니 네 글자 제목, 많기도 하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화양연화> <패왕별희> <용쟁호투> <투문정션>(아, 이건 빼고^^) 기타 등등. 거, 이상타. 숫자 4가 죽을 사(死)의 발음과 비스름하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 버튼에서도 '따' 당하는 통에…. 왜 하필 네 글자일까? 실제로 어느 미국 연구진이 1973년 1월부터 1998년 12월까지 25년 동안 사망한 백인 4천7백만 명과 중국 및 일본계 미국인 20만 명의 사망 원인을 분석했더랬다. 그 결과 중국 및 일본계 미국인들이 매달 4일째 되는 날에 심장병으로 죽은 확률이 다른 날보다 7%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다. 한자 문화권 동양인들이 4를 재수 없는 숫자라고 믿어서 생기는 스트레스 때문이라 이거지.
상황이 이럴진대, 굳이 네 글자 제목을 선호할 때는 필시 무슨 거룩한 곡절이 있을 터. 화제의 베스트셀러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지으신 상명대 중어중문학과 김경일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진희어스님께서는 옛날부터 정말 궁금해 했던 그것을 앞으로도 정말 궁금해 할 뻔했다. 전화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며 애써 메일로 쏴주시는 가공할 친절, 독자제위는 성은이 망극할지어다.
김교수님 가라사대, "중국인들은 2자로 단어를 만들고 3자로 욕이나 역동적인 형용사를 만들며 4자로는 제목을 만든다"고 한다. 고사성어가 네 글자인 까닭도 그게 알고 보면 어떤 이야기의 '제목'이기 때문이다. 가령 '토사구팽(兎死狗烹)'은 '토끼 사냥이 끝나고 쓸모가 없어진 사냥개를 삶아 먹었다'는 옛날 이야기의 '제목'이다(제목만 봐도 그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어는 지하철 가판대 타블로이드 신문의 헤드라인을 닮았다). 이렇게 모든 이야기를 네 글자로 압축하는 zip파일的 전통, 영화라고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중국어라는 놈이 네 글자 안에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언어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영웅본색>, 얘를 예로 들자. '영웅'이 '본색'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너무 쉽다. 그러면 <화양연화>, 얘를 예로 들자. '화양(花樣)'은 삶의 다양한 모습이라는 뜻의 '짱꼴라' 속어(그래서 밤마다 화양리엔 온갖 진풍경이 펼쳐지나 보다)이며 '연화(年華)'는 황금 같은 시절의 짧은 젊음을 뜻하는 단어라 한다. 얘네 둘이 크로∼스! 마침내 '화양연화'라는 제목으로 합체되나니 짧고 야릇한 사랑의 감정, 혹은 평생 단 한번 있을까 말까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란 뉘앙스를 마구 풍겨대는 것이다. 심화 학습. 국내에 <해피투게더>로 알려진 故 장국영 형님의 대표작 <춘광사설>은 봄 햇살[春光]이 순식간에[乍] 사라져버린다[設]는 뜻이다. 주어+부사+서술어의 문장 구조다. <패왕별희>는 '패왕(覇王)'이 애첩 '희(姬)'와 '이별[別]'한다는 뜻이다. 단 네 글자만으로 주어+동사+목적어의 완벽한 3형식 문장을 만들었다. 이쯤되면 4자 제목이 창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인의 언어 습관에서 '네 글자로 말하기'가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화술이자 문화적 권위를 담고 있는 어법이라 한다. 김교수님은 "중국영화들이 네 글자 제목을 통해 나름의 내면적 무게감을 담아보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하신다. "조폭들의 정장 차림에 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왠지 있어 보임'을 전 국민적 가치관으로 섬기는 대륙인의 허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님이 지적한 대로 최근 4자 제목의 강고한 전통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3자 제목이 유행이다. 앞서 잠깐 말했듯이 중국어 특성상 세 글자는 '역동적인 형용구'를 만드는 데 적합하단다. '첨밀밀'이 '꿀같은 달콤함'을 뜻하고 '소친친'이 '귀여운 입맞춤'을 의미하는 게 그렇다. 반면 '무간도'는 조금 특이한 문장 구조다. 알려진 대로 불교에서 말하는 18지옥 중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변용하면서도, 이중 생활을 뜻하는 '무간(無間)'에 흑도(조폭)나 백도(경찰)를 표현할 때 쓰는 '도(道)'를 합해 만든 합성어라는 것이다. 김교수님은 이런 세 글자 제목들이 기존 네 글자 제목의 식상함 및 '왠지 있어 보임'을 위한 '열라 가오잡음'의 상투성을 탈피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하신다.
한국영화 중에도 네 글자 제목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네 글자 제목을 지으면 망한다는 낭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멀리는 <복수혈전>과 <납자루떼>, 가까이는 <4발가락> <유아독존>, 더 가까이는 <아유레디?>의 참상이 그런 생각을 부추겼나 본데 <공공의 적> <색즉시공> <품행제로>를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네 글자 제목이 기억하기 쉬워 좋다는 사람도 (어딘가에) 있다. 송대관의 '네박자'가 그랬던 것처럼 네 글자 운율이 한국인의 신명을 자극한대나 뭐래나. 참말로 어불성설이요, 정말로 우격다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선 네자는 왠지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고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4자성어처럼 대립이나 댓구 조합도 용이하구요. 우리 나라는 네자보다는 세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균형감 있고 길지 않잖아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택도 사고도 중간을 선호하구요. 많은 사람들이 그걸 객관이라 생각들하죠.
첫댓글 화양연화 정말 잘 보았는뎅.. 그때 함께 보았던 그 녀석은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나?
우선 네자는 왠지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고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4자성어처럼 대립이나 댓구 조합도 용이하구요. 우리 나라는 네자보다는 세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균형감 있고 길지 않잖아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택도 사고도 중간을 선호하구요. 많은 사람들이 그걸 객관이라 생각들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