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4일 한 보수단체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칭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게 항소심(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 최한돈 부장판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최한돈 부장판사는 8월27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고 전 이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우선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이 허위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봤다. 단순히 피해자(문재인 대통령)가 부림사건의 변호인이었다는 적시만으로는 사회적 평가를 저해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 사실이 공산주의자임을 논증하는 근거로 사용되면 다르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재판부는 “고 전 이사장은 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논증했으므로 결국 진위를 가릴 정도로 구체화했다”며 “결국 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이고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것은 부림사건 피해자들로부터 들은 사실을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됐던 부림사건은 1981년 ‘공산국가 건설을 위한 의식화 교육’ 등의 혐의로 관련자들이 유죄를 받은 사건이다. 2009년 재심에서는 계엄법 위반 혐의 무죄, 국가보안법 위반은 유죄였으나 2014년 재심에서 국가보안법·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문 대통령이 1981년 부림사건 당시 변호인이었다는 고 전 이사장의 발언과 달리 2014년 재심 사건의 변호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고 전 이사장은 부림사건 당시 부산지검 공안부 수사검사였다.
재판부는 “동족상잔과 이념 갈등 등에 비춰 보면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다른 어떤 표현보다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이라며 “발언 내용의 중대성과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된 결과,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이념 갈등상황에 비춰 보면 피고인의 발언이 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서 적법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공산주의자라고 볼 근거는 피고인의 논리비약 외에는 없다. 피고인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이념 갈등을 부추겼고, 이는 헌법 정신에 명백히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발언이 문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에 타격을 입힐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연설 요청에 즉흥적으로 응한 결과라는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선고에 앞서 재판부는 “법률과 양심에 따라 이 사건을 결론 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앞서 재판에서 피고인의 변호인이 말한 것처럼 피해자로부터 어떤 압력도 받은 바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고영주 변호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최한돈 부장판사(28기)는 법원 내 진보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전신 우리법연구회) 소속으로 인천지법 부장판사 재직 시절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를 요구하며 사직서를 제출했었다. 2018년 2월 정기 인사 때 서울중앙지법으로 발령났다.
앞서 2018년 8월23일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김경진 판사)는 “문재인은 부림사건 변호인으로서 공산주의자”라는 고 전 이사장의 발언에 대해 “당시 변호인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재인 대통령의 사회적 가치 저하라고 볼 수 없다. (문 대통령이) 부림사건을 맡은 변호인이 아닌 것을 알고 그런 주장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었다.
1심 재판부는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칭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산주의자란 표현은 북한 정권과 내통하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북한 정권에 우호적이고 유화 정책을 펴는 사람을 뜻한다”며 “고 전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판단하게 된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고 이것을 근거로 입장을 정리해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는 공론의 장에서 논박을 거치는 방식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고 전 이사장이 제출한 서면 자료나 진술을 보더라도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인격적으로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로 보이지 않는다”며 “명예훼손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