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성곽과 4대문
이번 시간에는 현직 역사 선생님께서 투고해주신 글을 올려드리겠습니다.
1392년 조선 개국 이래, 600여 년 간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 전통 성곽과 고층 빌딩이 한데 어우러진 서울은, 매우 바쁘고 현대적인 도시이지만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역사 도시이기도 합니다. 조선의 창업주 태조 이성계(1335~1408)는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했어요. 산세가 좋아 적을 막기에 좋고, 한강이 흘러 조세 운반에 좋으며, 국토의 가운데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지요.
새로운 도시를 설계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특히 한양 방위를 위해 성곽을 어떻게 쌓아야 할 것인가는 큰 고민거리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한양에 많은 눈이 내렸는데, 다른 곳에 비해 눈이 잘 녹지 않는 곳이 있었어요. 북악산과 인왕산을 이은 능선이 바로 그곳이었지요. 이를 유심히 바라보던 개국 공신 정도전은 바로 이곳을 따라 성곽을 쌓고, 유교 이념에 따라 4개의 대문(大門)과 4개의 소문(小門)을 지었답니다.
한양의 4대문은 동, 서, 남, 북의 사방을 늠름하게 지키고 있었어요.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럼 각 대문이 담고 있는 의미를 살펴볼까요?
한양의 동쪽에 해당하는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인(仁 : 어질고 착함)을 일으켜 흥하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서쪽의 돈의문(敦義門)은 ‘의(義 : 의로움)를 돈독하게 한다.’는 의미이지요. 남대문인 숭례문(敦義門)은 ‘예(禮 : 공손하고 예의바름)’를 숭상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북쪽의 숙정문(肅靖門)은 ‘지(智 : 지혜로움)로서 백성을 평안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지혜로울 지(智)와 의미가 같은 정(靖)을 대신 쓰고 있지요.
인‧의‧예‧지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으로, 유교 윤리의 중심이 되는 덕목이에요. 이는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유교 문화권에서 수천 년 동안 매우 주요한 사상으로 자리 잡았답니다. 조선이 유교를 숭상하는 국가임이 한양의 4대문에도 상징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지요.
한편 한양의 성곽과 4대문은 조선의 축성기술을 보여주는 유적이기도 해요. 세종 4년(1422)과 숙종 30년(1704)에 대대적인 수리를 거쳤는데, 이를 통해 조선의 축성기술이 점차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리시기에 따라 쌓는 방법과 돌의 모양이 달라졌거든요.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훼손된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이에요.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일제의 도시 계획으로 철거된 돈의문은 현재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아요. 또한 해방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더욱 많은 부분들이 파괴되었고요. 2008년 2월에는 토지 보상에 불만을 가진 한 노인이 숭례문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일어나 대중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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