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은 울란우데를 거쳐 러시아 나우쉬키를 지나 몽골 수흐바타르를 거쳐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2006. 8.4 울란우데역)
세 개의 침대가 아직 임자를 만나지 못한 오늘 밤, 그 넓은 방은 온전히 나의 차지였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벌써 아침, 침대 임자들이 몰려온다.
인상좋은 프랑스 사람, 그의 부인인 몽골인 그리고 동네 아줌마 같은 스웨덴 사람.
밖으로 나갔다.
신선한 아침공기가 가득한 그곳은 브리야트공화국의 수도인 울란우데.
몽골족의 한 갈래인 브리야트족이 터전을 잡은 이곳이 러시아에 의해 점령당한 지 오래였다. 몽골이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었을 때, 본토 몽골인들을 지배한 것은 바로 이들이었다. 브리야트인들은 몽골티를 벗기 위해 러시아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누구보다도 열심이었지만 러시아인들이 보기에 이들은 여전히 몽골인이었다.
(2006. 8.4 나우쉬키 가는 길)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던 기차는 머리를 돌려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 저녁 무렵 쯤에는 몽골로 접어들 것이다.
초원을 가로 지르는 기차, 그 옆으로 스치는 풍경들. 파란색과 녹색, 두 가지 색이 눈에 가득하다. 맑고 명료하며 깨끗한 색들.
간간이 만나는 작은 마을로 그 땅은 더욱 따뜻하다.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르는 한 채도 보이지 않고 울타리를 둘러친 나무집만이 손에 잡힐 듯 따라온다.
게르가 보이면 그 땅이 바로 몽골일 것이다.
비슷한 자연조건 속에서도 살아가는 방식은 전혀 다를 수 있다.
(2006. 8. 4. 나우쉬키역)
기차는 러시아 마지막역인 나우쉬키에 들어섰다. 마지막역이라는 이름끝에는 약간의 설레임이 따라 붙는다.
러시아, 바이칼. 이 두 단어는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에 다녀 온 것이 아니라 바이칼에 다녀왔다는 느낌이 강하다.
내게는 몽골의 이미지 그리고 이와 연결된 의미의 바이칼이 강했던 탓이리라.
이르쿠츠크를 제대로 보았다면 달리 생각되었을 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는 것을 보니 이곳에서는 제법 시간이 걸릴 모양이다. 열차를 떼어내고 출국심사를 하기 위한 시간들.
이제 땅을 밟을 시간. 오랜 만에 기차에서 걸어 나가니 자작나무가 솟아 있는 작은 공원이 나온다.
햇살은 강렬했지만 자그만 마을에 느껴지는 나른함이란.
그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2006. 8. 4. 나우쉬키역 앞 시장)
(2008. 8. 4. 아이들의 즉석 공연. 나우쉬키역 마을)
이리저리 쏘다니던 일행은 마을회관 비슷한 곳으로 들어갔다.
누가 먼저랄 섯도 없이 들어간 것은 이곳 문이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들리는 음악들. 안에서는 마주르카에 빠진 아이들로 시끌시끌하다.
우리 일행과 마주친 선생님.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무언가 이야기를 하니 아이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훼방꾼이 되었을까. 갑작스런 이방인의 출현.... 잠시 후 우리는 믿지 못할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갑작스런 이방인들을 위해 아이들이 펼친 즉석 공연. 퍽퍽했던 러시아에 대한 기억이 극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춤과 노래가 삶이라던 러시아인들.
아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노래와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2008. 8. 4. 아이들의 즉석 공연. 나우쉬키역 마을)
(2008. 8. 4. 아이들의 즉석 공연. 나우쉬키역 마을)
(2008. 8. 4. 아이들의 즉석 공연. 나우쉬키역 마을)
(2006. 8. 4. 수흐바타르역에서 만난 아이)
몽골이란 나라.
몽골로 여행을 가기 전 몽골에 관한 관심사는 칭기스칸의 무덤이 어디에 있을까,
몽고 간장과 몽골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정도였다.
그후 몽골에 여러 차례 다녀오고 이것저것 귀동냥을 하면서도 몽고 간장과 몽골과의 관계는 알 수 없었지만,
한 때 제국을 건설한 그들의 역사 또한 우리 역사 처럼 간단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게 있었다.
원이 붕괴하고 중국을 장악한 명나라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외교정책은 몽골을 분열시키는 것이었다.
뒤이어 등장한 청은 한 걸음 나아가 몽골을 식민지로 삼았다.
1900년대 초 중국이 혼란한 틈을 타 몽골은 독립을 선언하였고 러시아에 이어 사회주의의 기치를 내걸었다.
이때 활약했던 사람이 수흐바타르로. 그는 칭기스칸과 더불어 몽골 최고의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지금 도착한 국경역 수흐바타르는 그를 기념하여 이름 한 역이다.
몽골 입국 심사는 러시아에 비하면 번갯불에 콩궈 먹듯 재빨리 이루어졌다.
역시 몽골이 좋아.
두 량만 달랑 남아 있던 국제열차에 차례차례 열차가 연결되더니 잃어버린 가족을 모두 만난 긋 제법 열차다운 티가 났다.
열차가 떠나기까지 남아 있는 두 시간. 이제 우리의 시간이다.
열차에서 내리자미자 코끝을 자극하는 양고기와 치즈 냄새.
드디어 다시 왔구나.
역 근처에 좌판을 벌인 시장(시장이라고 해도 십 여명이 좌판을 벌이고 있는 곳이지만)으로 가서 아이락을 사서 한 모금 들이켰다. 목과 입을 타고 내려오는 시큼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이 맛!
역 안으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울란바토르가 종점인 기차를 타기 위해 온 사람들, 그들을 전송하러 나온 사람들 그리고 국제열차 동행들.
역에서 많은 몽골 사람들을 만났다.
비록 몽골어는 할 수 없었지만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2006. 8. 4. 수흐바타르역에서 만난 아이)
아이락을 먹으며 배회를 하다가 만난 꼬마.
나도 어렸을 때 저랬을 텐데.
(2006. 8. 4. 수흐바타르역에서 만난 아이)
(2006. 8. 4. 다르항으로 가는 길)
열 시가 넘어가자 어두워진 초원.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차는 바퀴소리 마저 조용하다.
사진 찍는 우리들에게 유난히 관심을 보이던 털보 아저씨도 사라진 복도에는 우리 일행 몇몇만 배회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창 밖을 보며 아 공기 시원하다! 라고 외칠 때 눈앞을 스치듯 불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러길 여러 번.
거리를 알 수 없는 초원 저편에서 번개가 내리치고 있는 것이었다. 작년 홉스굴에 갔을 때 번개를 사진에 담아보려다 실패한 나였기에 번개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번번이 번개는 내 카메라를 벗어나 버렸다.
(2006. 8. 5. 울란바토르)
어! 하는 사이에 울란바토르가 보이기 시작하였고 열차 안은 짐을 챙기는 소리가 가득하였다.
서른 네 시간의 짧았던 기차여행도 이제 마무리를 할 때가 되었다.
침대 밑에 놓였던 짐을 찾고 그간 빼어놓은 짐을 집어 넣었다.
러시아를 기념하여 샀던 자작나무 통이 깨질새라 다시 한 번 고이고이 싸서 조심 스레 배낭 안쪽에 찔러 두었다.
드디어 열차는 역 안으로 들어간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고향에서 느끼는 묘한 기분과 같은, 그런 느낌이 몰려온다.
(2006. 8. 5. 울란바토르역)
이 열차의 종착역인 울란바토르.
열차 밖에는 마중나온 사람들로 가득하였고 복도에는 승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같은 방을 썼던 프랑스인 부부와 스웨덴 아주머니와 가볍게 인사하고 여행베테랑 영국인 아주머니, 스위스 청년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짧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갑자기 친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공간에서 경험했던 여러가지 일들이 사람들 사이의 긴장감을 해소하게 되고 그래서 친밀해 지는 것 같다.
생기발랄하던 덴마크 여대생들도 휙하고 사라지고 방구쟁이 네덜란드 대학생 커플도 눈물을 글썽이며 헤어졌다.
바리바리 짐을 들고 나온 플랫홈. 거기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느닷없이 이산가족이 되었던 우리 일행들. 마치 오랜 시간 헤어진 가족이나 되는 것처럼 반갑고 또 반갑다.
게다가 운전기사 벗떠 아저씨가 웃으며 우리를 맞이하였다.
아저씨와의 세 번 째 만남. 늘 넉넉한 웃음을 머금은 아저씨.
이제 여행 4부가 시작되려 한다.
첫댓글 러시아에 몽골인들이 많은 곳이 바로 울란우데군요. 그전에도 시베리아 횡단열차 영상 보다가 몽골인들이 여기도 살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