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은 그리 알려지지 인물을 아니지만 후손이 친일 인사로 등재되었는데
누구의 평가로는 처세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기록은 조선말기인 철종이나 고종시대에는 많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양자가 더 유명하여 우리나라에서 잊어지지 않는 인물이다.
즉 이완용의 양부이다.
이호준은 전라도 감사를 먼저하고 1886년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는 데 조선 말기에 전라도와경상도의 관찰사를
지내어 지방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와 식견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호준도 양자 들어 갔고 이완용을 양자를 들인 특이한 경우이다.
특히 아들이 이윤용이 있어도 양자를 들였는데 이윤용은 서자이기에 대를 잇지 못하기에 들였지만 대부분의
재산은 이윤용이 물려 받는다.
이호준의 혼맥을 보면 아래와 같다
이윤용(서자)---흥선대원군의 사위
딸-------조영하의 마누라--조영하는 조대비의 조카이다.
위에서 보듯이 당대의 실세와 혼맥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호준이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는 시기는
조선왕조 실록에는 나오지 않는데 승정원 일기에는 나와 있다,
[고종 23년 병술(1886) 6월 14일(을해) 맑음
이조가 경상 감사에 이호준을 단부하였다
○ 이조가 경상 감사에 이호준을 단부하였는데, 제수하라는 전지를 받든 것이다.]
위에 글에 보이는 단부 하였다는 홀로 이조에서 추천하니 임금이 이에 따랐다 뜻이다.
그 당시에는 기록에는 경상수군 절도사에도 제수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원래 관찰사는 겸직이 육군절도사와 수군절도사를 겸직하였다.
경상도에 남아 있는 이호준 관찰사의 불망비를 나열 하면 곳곳에 있지만 경상도 보다는 전라도에 많이
남아 있으며 이번에는 경상도에 남아 있는 선정비만 나열하면 본다.
▲부산 영도에는 있는 순상국 이호준 불망비
▲ 대구 상덕사에 있는 도순찰사 친군 남영사 이호준 불망비
▲ 김천에 있는 마애 불망비 이지만 마모가되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윤곽을 자세히 보면 이호준 불망비로 보인다.
군위에 있는 이호준 불망비
함양 대관림에 있는 이호준 불망비 희미 하지만 자세히 보면 관찰사 이호준이라 되어 있다.
칠곡에 있는 이호준 불망비 인데 이길을 옛날에 한양으로 가는 길이지만 현재는 마을 안에 있어서
찾기가 상당히 어렵다.
관찰사는 일년에 한번 내지 두번은 지방을 순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당시는 관찰사라기 보다
순찰사로 부르거나 더 높여서 순상국이라 부른다.
한 사람의 선정비가 많이 세워지는 경우는 유명악의 경우 72개 마을에서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관찰사의 경우는 각 도의 수령이라 현감이나 군수, 부사나 해결하지 못한 민원을 해결 해
주는데 대부분 순력에 의한 방법이어서 관찰사 선정비가 있는 곳은 관찰사의 순력의 길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지만 공사와 도로의 확장으로 옮겨서 옛 자료를 잃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정비를 하나 세우려면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가므로 백성들의 고생은 이만저만 아니지만
현재는 남아서 역사의 기록을 남겨주기에 좋은 자료로 생각된다.
이호준이 활동하지 않을 시기에 이완용이 출세를 하여 끝내는 매국노 까지 가지만
이호준과 이완용의 활동시기는 거의 겹치지 않아서 선정비가 남아 있는 경우로 생각된다.
고령에는 이호준의 서자인 이윤용의 관찰사비가 있다.
이윤용과 이완용의 같은 시대에 활동하여 둘다 친일파로 이름을 남기고 있으며,
보기 드물게 경상도에서 부자지간에 관찰사를 역임하여 선정비를 남겼다.
벽라 이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