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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105년 11월 14일 청년법회
정산종사님과 기연편 문답법회
설교 : 박세훈 교무님
타이핑 : 소현진
반갑습니다. 대종경 공부를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종경이 다 끝나고 정산종사법어가 됐습니다. 최근에 새로 오신 분들도 계시고, 오늘도 새로 오신 분들도 계셔서 안암교당 청년법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조금 말씀은 드리면, 첫 주에는 우리 원불교 교전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데, 지난 법회까지는 원불교를 창교하신 대종사님의 언행록인 대종경을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원불교의 2대 종법사, 두 번째 리더가 되시는 정산종사님이 하신 말씀을 기록해놓은 언행록인 정산종사법어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 법어를 테마별로 나눴는데, 15편이에요. 그 중에서 오늘은 기연편이 되겠습니다.
저는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은 못 뵀는데, 대산종사님부터 뵀는데, 원불교의 2대 종법사이신 정산종사님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녹아버리는, 편안해지는,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그런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 제자들이 공통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세요. “머리가 복잡하거나, 고민이 있거나, 힘들거나 어려울 때 찾아가서 그 분의 얼굴만 바라보면 마음이 풀어졌다.” 라고 해서 어느 정도 그랬나. 종교라는 것은 호교론적이잖아요, 자기 종교가 최고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객관적으로, 왼 쪽에 계신 분이 안병욱 숭실대 교수님이세요. 유명한 한국의 철학가셨죠. 그래서 와세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숭실대에서 교수생활을 오래 하신 유명한 철학자이신데, 이 분이 1961년에, 여기서 태어난 사람 아무도 없었겠죠? 저를 비롯해서. 1961년에 교무들도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외부사람들을 초청해서 강의를 들었대요. 그 중에 이제 이 안병욱 교수님이 그 당시에 아주 유명한 철학가시니까 초청을 한 거예요. 원광대에서. 그래서 교무들을 불러다가 강습회를 했습니다. 류기현 교무님이 이제 유명한 원불교의 4대 박사라고 하시는 유병덕 교수교무님이신데 이 분이 이제 초청해서 강의를 하고나서 이 분이 이제 정산종사님을 그 때 칭경하신거예요. 1961년이면 정산종사님이 돌아가시기 1년 전이에요. 정산종사님이 1962년에 돌아가셨으니까 1년 전인데, 저 사진 정도 때인 것 같아요. 제가 찾아갔을 때는. 원불교 2대 종법사이신 정산종사님을 뵙고 나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다’라고 하시면서 동아일보에다 기고를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얼굴’ 제가 그 기고문을 가져왔어요. 너무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기사를 제가 한 번 그 분이 쓰신 그대로 읽어드릴게요. 가장 아름다운 얼굴. 얼굴은 정신의 초상이라고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말했다. 안병욱 교수가 신문에 기고한거에요. 내가 이 세상에서 본 한국인의 얼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이리, 그 당시엔 익산이 아니라 이리였어요. 지금은 이제 이리와 익산군이 통합해서 익산시로 바뀌었지만은. 이리 원불교의 본부에서 본 송정산 선생의 얼굴이다. 정산종사님 호가, 법호가 정산이니까요, 송정산 선생의 얼굴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한 동안에, 깊은 화열의 표정이 넘친다. 따스함이 넘친다는거죠. 불그스름한 얼굴은 백발과 조화가 되어 노숙의 품위가 넘치며, 단아무비한 얼굴이다. 차근차근 조용히 말씀하시는 그 음성과 태도에는 깊은 정신의 수양을 쌓은 종교인의 면모가 저절로 우러나온다. 나는 황홀한 마음으로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사십 평생에 그렇게 좋은 얼굴은 일찍이 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품위와 예지와 성실의 빛이 흐르는 얼굴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에 속한다. 얼마나 정성껏 수양의 생활을 쌓았기에 저와 같이 화열과 인자가 넘치는 얼굴이 되었을까. ‘나는 아직 멀었다. 저분을 보라.’ 하고 무엇인가가 나를 후려갈겼다. 얼굴은 인간의 생활사요, 정신사다. 생활의 결점이 얼굴에 새겨진다. 나는 송정산 선생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저 청승과 화열의 표정이 깊이 조각되기까지에는 얼마나 정성된 노력을 하였을까 생각된다. 조금 생략합니다. 그 후 선생님의 화열단아한 얼굴을 또 한 번 뵈러가야겠다고 벼르다가 나는 미국에 가게 되었다. 귀국 후, 선생님의 별세를 알고 서운한 생각을 누를 길이 없었다. 송정산 선생은 정말 좋은 얼굴의 소유자였다. 지금도 한 번 다시 한 번 더 뵈러가지 못 하여 아쉬운 생각뿐이다. 이렇게 이제 동아일보에 기고를 했어요. 쉽지 않죠. 그 당시에 제가 알기론 이 분이 한국의 최고의 철학자셨거든요. 그 분이 이제 정산종사님을 보고나서 이렇게 기사에다가 쓴 거예요. 정산종사님 얼굴을 보면, 화면에 보시면 정말로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편하지 않아요? 화질이 안 좋은데, 저는 제일 멋진 사진이 정산종사님하고 대산종사님이 같이 찍은 사진이 있어요. 두 분이 웃으시는 모습이 있는데 아 진짜.. 백만 불이 아니라 일억 불짜리 미소인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제가 마음이 좀 요란해지거나 복잡해질 때 이 두 분의 미소를 보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왜 기연편에 앞서서 이 말씀을 드리냐면, 정산종사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보면 훨씬 더 법문이 마음에 와 닿으실 것 아니에요? 기연편은 특별한 내용이 없어요. 정산종사님과 대종사님의 마음이 핵심이에요. 한 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1대 대종사님과 2대 종법사이신 정산종사님의 만남.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건데 제가 또 이런 것들을 느껴요. 코로나가 되면서 전 걱정을 많이 했어요.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또 법회를 많이 못나오겠다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제 예상보다는 법회에 크게 많이 나와주시고, 코로나 때문에 마음이 더 외롭고 힘들 때 교당을 찾아왔다는 분들이 꽤 많아져서, 여러분들이 우리 정산종사님 분신으로서 맞아주니까 교당에 찾아오는 것이, 제가 가만히 보면 제 설교를 들으러 오는 게 아니라, 우리 청년 분들, 새로 오신 분들 얘기 나눠보면은, 여기 계신 한 분 한 분이 마음이 따뜻해서 온다는 말을 많이 해요. 여기 오면 좀 푸근한 거예요. 각박한 세상에, 코로나19 때문에 더 각박하잖아요. 그쵸? 근데 여기 오면 여러분들 마음 편안하잖아요? 여기 오신 분들이 우리 정산종사님의 분신으로서 맞이 해주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앞으로 정산종사님의 법어를 읽으면서 나이 사십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어요. 전성욱 교무님하고 저는 책임을 져야하는 나이인데, 부끄러운 마음이 좀 있지마는. 여러분들 지금 마스크 가리고 있지만, 얼마 안 남은 사람도 있을테고. 제가 이제 2년이 다 지나가는데 제가 보기엔 여러분들이 얼굴이 많이 좋아진 거 같아요. 원불교 다니면서. 여러분들은 모르시죠? 오늘 가서 거울을 한 번 보세요.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그래서 수양을 하면 얼굴이 좋아져야 해요. 분명히 여러분들이 정산종사법어를 공부하시면서 아마 얼굴이 따로 좋은 화장품 바르지 않아도 빛이 날겁니다. 확실히. 마음도 이뻐지고 몸도 이뻐지는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있는 정산종사님을 한 번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산종사법어는 교전이 있는데, 1부 2부로 되어있어요. 여러분들 너무 잘 아시잖아요. 그렇죠? 1부, 세전. 세상을 바르게 하는 경전, 세전. 다르게 이야기하면 세전은 생애 주기별 마음공부. 제가 좀 쉽게 이야기하면 생애 주기별. 어렸을 땐 어떻게 하고, 대학생 땐 어떻게 마음공부 하고, 나이가 들어선 어떻게 하고, 해서 이제 열반에 천도의 도까지 들어가 있어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마음공부. 생애 주기별 마음공부. 그리고 2부는 법어라고 해서 정산종사님이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있죠. 우리도 그렇잖아요, 정전과 대종경을 원불교 교전이라고 하는데, 원불교를 창교하신 분이 쓰신 것. 정전은 대종사님이 직접 쓰셨잖아요. 그리고 우리 정산종사님이 같이 이제 대종사님의 감수를 받아가면서 하셨는데, 세전도 마찬가지예요. 정산종사님이 100%다 쓰진 않으셨지마는, 정산종사님께서 편차를 친정하셨어요. 어려운 말이죠? 목차를 다 정했다는 거예요. 논문쓸 때 목차 정하면 다 쓴 거잖아요. 그 사람이. 그쵸? 논문 쓰신 분들 공감하실텐데, 편차를 친정했다는 것은 머릿속에 설계를 하셨다는 거예요. 집을 짓는 데에 설계를 하시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직접 쓰셨어요. 그러니까 세전은 직접 쓰신 거죠. 그리고 이제 법어는 정산종사님이 하신 것을 제자들이 받아 적어서 제가 보니까 한 오백편인가 천편인가 되는데 그 중에서 또 추린 거예요. 정산종사님의 그 스승을 모시는 마음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대종경이 몇 품이에요? 십오품인데, 정산종사법어는 대종경에 준해서 십오편이에요. 이것까지 맞췄어요. 대종사님하고. 아이 참 마음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대종경이 십오품인데에 준해서 십오편으로 편차를 했고요. 1972년에 출판했는데 정산종사님이 돌아가시고나서 10주년 기념해서 이게 배포가 돼요 62년에 열반하시고, 72년에 정산종사법어가 나왔죠. 이런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경전이 정산종사법어입니다. 바로 이제 질문을 들어가면은, 코로나19가 오늘 또 이백명이 넘어가서 마이크를 여러분들에게 돌리면은 혹시라도 전파가 우려가 있어서 직접 제가 읽어드릴게요. 그리고 준성교우는 오진 않았는데 지금 유튜브에서 보고있네요. 제가 카페 중에서 가장 잘생겨보이는 사진을 골랐는데 본인은 마음에 안 들어도 뭐 어쩔 수 없습니다. 제 맘이니깐. 저 때는 좀 어렸네요(웃음) 없을 때 좀 놀려야지. 이렇게 물어봤어요.
Q. 박준성 교우님
기연편을 읽다보니 정산종사님께서 대종사님을 만나 어떤 마음으로 공부하셨는지 대종사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말씀해주시는 내용이 주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 듣듯이 술술 읽히기는 했는데 기연편을 관통하는 주제, 본의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박세훈 교무님
갈수록 질문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 같아요. 준성교우가 본 것이 맞고요. 기연편에서 ‘기연’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보면, ‘기’라는 것은 뭐냐면 기와 연이 합쳐진 거예요. 여러분들. ‘기’라는 것은 중생의 근기를 말해요. 근기. 그리고 ‘연’은 뭐냐면 부처님의 교화를 받을 만한 연줄. 부처님의 인연. 그래서 저 ‘기’자가 어디에 많이 쓰이냐면 ‘근기’할 때 쓰는 ‘기’자예요. 근기라는 것은 뭐냐면 ‘불법을 받을 수 있는 능력’. 그래서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 하잖아요. 그래서 ‘근기’라는 것은 ‘불법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고 저 ‘기’자가 또 어디에 쓰이냐면 ‘기회’할 때도 저 ‘기’자가 쓰여요. 그래서 ‘기연’이라는 것은 뭐냐면 이렇게 봐요. ‘기’라는 것은 제자의 입장이고 ‘연’이라는 것은 스승의 입장인 것 같아요. 그죠? 스승이 제자가 법을 받을 만한 그릇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지 스승이 그 제자가 찾아와도 알아보잖아요. 스승이 아무한테나 법을 전하지 않잖아요. 여러분들도 오늘도 자기 친구 데려온 사람 있을 거고, 지난주에도 있겠지만 아무나 못 데려오잖아요. 여러분들. 데려와요? 친구 중에서 아무나 못 데려오잖아요. 여기 데려왔을 때 우리 원불교를 이해 할 만 한 사람을 데려오잖아요. 그렇죠? 아, 이 사람은 충분히 그릇이 된다. 우리 불법을 받을 만 한 사람을 데려오잖아요? 그게 이제 ‘기’가 되겠죠. 그리고 ‘연’이라는 것은 ‘기가’, 그릇이 있어도 그 스승이 없으면 그릇을 채우질 못하잖아요. 그죠? 스승의 인연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부처님도 뭐라 그랬죠?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할 수 없다’고 그랬어요. 그렇죠? 스승의 원력과 제자의 근기가 딱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기연’인 거죠. 그렇죠? 스승과 제자. 만나는 것. 그러면 정산종사의 기연은 뭐예요? 정산종사님과 대종사님의 만남이 기연이 되겠죠. 그거예요. 기연편은. 정산종사님과 대종사님의 만남. 그런데 정산종사님은 근기가 있으셔가지고 좀 다르게 만난 거죠 그렇죠? 우리가 정산종사님 만난 거하고 우리가 대종사님 만난 거하고 다른 거예요. 그릇이 다르니까. 받는 게 달라요. 우리는 넘쳐버릴 텐데. 넘치지가 않으시죠. 다 수용하시는 거죠. 그래서 기연편이라는 것은 제자와 스승의 만남이라고 보면 돼요. 불교에서는 그렇게 많이 해석해요. 기연이라는 것은.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의 만남이 왜 중요한가. 한 번 보면 왜 중요하겠어요? 여러분들 종교가요, 오래가려면 두 번째 제자. 그러니까 두 번째 전승자가 잘 나와야 해요. 두 번째 전승자가 잘 안 나오면 그 종교는 사라져요 거의. 대부분 그랬어요. 종교를 처음 만드신 창교자가 제일 중요하지만 그 두 번째가 정말 중요해요. 그 두 번째 분이 없으면 거의 없어져요. 지금 대부분 종교들이 두 번째가 좀 약하면 거의 사라졌어요. 여러분들 잘 보세요. 종교의 역사를. 그런데 두 번째가 탄탄한 종교들은 다 살아남았어요. 살아남았다는 말은 좀 그렇고 더 종교가 크게 융창했어요.
자 불교를 봅시다. 불교의 전승자. 두 번째 전승자가 누구셨죠? 마하가섭이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이제 제자들이 있어요. 교자가 나오면 구름 같은 대중이 오잖아요? 그 중에서 이제 뛰어난 사람 열 명 정도를 뽑아요. 그걸 10대 제자라고 하잖아요? 그 중에서 이제 마하가섭이라고 하는데, ‘마하’라는 것은 크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 한자로 하면 ‘대가섭’이죠. 대가섭. 마하가섭. 두타제일. 두타라는 것은 수행이거든요? 수행제일 하는 마하가섭. 그래서 저게 이제 연꽃을 딱 부처님이 드셨는데, 어느 분만 웃었죠? 마하가섭만 웃으셨어요. 제가 이야기하면 끄덕끄덕 하시면 저도 신이 나잖아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꽃을 딱 드셨는데 가섭이 웃으시니까 이해한 거죠. 아 부처님 말씀 이해하겠다. 그래서 법이 전해지잖아요? 그래서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법을 받아서 부처님 결집까지 다 해서 불교가 대승한 거예요. 크게 지금까지 내려온 거예요. 마하가섭이 없었으면 사라졌을 지도 몰라요. 두 번째가 그렇게 중요해요.
자 옆에 있는 분은 누구예요? 증자에요 증자. 공자님께서 오래 사셨는데 공자님의 수제자. 법을 전한 사람이 증자님이세요. 증자. 그래서 이 증자님한테 법을 받아서 맹자로 넘어가고 그러면서 이제 점차 유교가 끊어지지 않고 왔어요. 여기도 이제 증자라는 위대한 전승자가 있어서 유교가 살아있는 거예요 만약에 없었으면 증자라는 분이 법을 잇지 않았으면 그 당시에 끝났을 거예요. 불교도 마찬가지고, 두 번째가 아주 중요합니다.
기독교는 어때요? 기독교는 두 번째가 누구세요? 여러분은 1등만 기억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기억 못해요?(웃음) 기독교는 베드로. 그죠? 십이사도. 베드로가 어떤 분이에요? 여러분들 시몬 알아요? 시몬? 베드로의 원래 이름이 시몬이었어요.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뛰어난 걸 알고 이름을 바꾸죠. 시몬에서 베드로로. 시몬이라는 거 많이 나오죠. ‘너는 아느냐’ 이렇게 하면서. 베드로로 바꿔요. 베드로가 무슨 뜻이냐면 반석이라는 뜻이에요 반석. 그니까 이제 이 사람이 반석같이 내 법을 탄탄하게 이어줄 것을 아시고 반석이라는 의미의 베드로로 이름을 바꿔줘요. 그러면서 이제 이런 말을 하죠? ‘내 이 양들을 부탁 한다’고 해요. 양들. 기독교에서 양이란 건 뭔 지 알죠? 기독교에서는 양이랑 어린 양이 있어요. 양은 뭐예요? 성직자를 양이라 하고, 어린 양은 신도들이예요. ‘양과 어린양들을 부탁한다.’ ‘성직자와 신도들을 잘 이끌어 달라.’ 해서 이제 베드로가 두 번째 받죠? 이 분이 1대 교황이에요. 기독교에서, 천주교에서. 1대 교황 베드로.
그 다음에 최시형은 어떤 분이에요. 최시형은 동학의, 천도교의 두 번째시잖아요. 최재우를 이어서 최시형이 나오셔서 이 분이 최재우 교조가, 동학의, 천도교의 교조가 쓰신 동경대전을 출판은 최시형이 하세요. 대종사님도 출판을 본 것은 정산종사님이 하시잖아요. 그러니까 2대가 엄청 중요해요 여러분들. 최시형. 이 분이 최재우의 그 책들을 내셨죠. 동경대전 용담유사 이런 거. 이 분이 없었으면 동학도 없었을 거예요. 그죠. 경전이 없는데? 그러면서 이제 최재우 이 교조가 최시형 2대 교조 분한테 보따리 하나 주잖아요. 그게 이제 책 내라는 거예요. 내 경전. 그래서 ‘최보따리’라고 했죠. 하도 그것을 죽을 때까지 갖고 다니셨기 때문에. 해서 2대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2대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종사님이 어떻게 했어요. 정산종사님하고 대종사님하고 구사고행상까지 거의 비슷해요 삶을 보면. 정산종사님은 성주에 계셨잖아요? 아주 큰 유학가의 집안이었거든요? 그러다가 17세 때 나라가 어지러우니까 정치나 과거가 아니라 종교에 관심을 가져요. 그 때 그 쪽에 큰 스승이 없으니까 누가 그러는 거예요. 전라도에 송찬오라는 사람을 찾아가면 큰 스승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분이 이제 나중에 송적벽이 되는 거예요. 찾아가는 와중에 증산교의 인물들을 만나요. 증산교를 창시하신 분이 누구시죠? 강증산분은 못 만나요. 10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러면서 이제 증산교가 막 분파를 엄청나게 했어요. 그 중에서 이제 차천자라고 해서 차경석 이 분이 이제 그 때 한 때 교도가 60만이었다고 하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그 분을 만나게 되는데, 그 때 이제 만나고 났는데 그 분이 이제 마음에 양에 안 차는 거예요. 뭔가 이게. 저건 정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좀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모악산 대원사로 가서 다시 구도를 하세요. 그러다가 이제 김해운이라는 분을 만나거든요? 김해운이라는 분은 할머니 뻘이에요. 이 분이 정산종사를 딱 보자마자 알아본 거예요. 도인이라고. 그래서 내가 옆에서 시봉할테니까 우리집 와서 수행하라고. 내가 다 밀어줄테니까. 그래서 데리고 와요. 그게 어디예요? 정읍 화해리예요. 정읍 화해리로 데려가요. 거기서 1년 정도 수행을 하시는데 이제 머릿속에서 자꾸 뭐가 떠오르는 거죠. 어떤 후덕한 어르신이 떠오르고 바닷가가 떠올라요. 그 후덕한 어르신은 누구예요? 대종사님이고, 바닷가는 영광이잖아요 그죠? 그 당시에 대종사님은 원기 3년인데 뭐 하셨을까요? 그 당시엔 대각하시고 나서 한참 최초법어 하시고 법을 펴시려고 구름같이 모인 40명 중에서 표준제자, 그러니까 조금 내가 같이 더 잘 할 수 있겠다는 8명을 뽑아놔요 그죠? 뽑아놨는데 중앙은 안 뽑아요. 최고 수제자는 안 뽑아 놓은 거예요. 그래서 그 수제자 자리를 2년 동안 비워놔요 여러분들. 우리 청년회 회장님이 2년 동안 비워놓으면 힘들잖아요. 그죠? 2년 동안 비워놓은 거예요. 그 자리를. 그래서 정산종사님이 19세 때 대산종사님께서 찾아가잖아요? 정읍 화해리로? 그래서 19세 정산종사와 28세의 대종사가 만납니다. 우리 19세는 없고요, 우리 교당에. 20세는 있잖아요? 있죠? 20세의 신입생 1학년과 28세 있나요? 밀운 교우 28세인가요? 아까 있었는데, 이렇게 만난 거예요. 지금 보면 엄청나게 나이 많으실 때 만난 것 같지만 28세하고 19세가 만났어요. 우리 청년회에서 봐도 밑이잖아요. 그죠? 이 때 만나서 이 때 역사적인 만남이 정읍 화해리에서 이루어져서 그 때 이제 저 사진이 총부에 가면 있죠? 저 때 이제 형제의 의를 맺어요. 9살 많으니까 형제의 의를 맺다가 그게 이제 1918년 3월이에요. 그러다가 이제 그냥 만나고만 다시 돌아오세요. 대종사님이. 그리고 7월에 다시 불러요. 그 때 이제 정산종사님과 만나서 사제의 의로 바꿔요. 형제의 의에서 사제의 의로. 2년 동안 비워놨는데 자리에 왔어.
여러분들 생각해봐요. 청년 회장 자리를 2년 간 비워왔는데 청년회장이 온대, 2년 만에. 근데 스무 살이야.(웃음) 청년들은 다 40살 이렇게 되는데 스무 살이래요. 2년 동안 기다렸는데. 그리고 다 그 때는 전라도잖아요? 전부 다 전라도인데 한 분만 온대. 그런데 경상도에서 온대. 그 당시에 경상도에서 전라도 오는 것은 엄청난 거예요. 나이 스무 살에다가 경상도에서 온다니까 완전 엄청난 혁신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가장 나이 많았던 분이 김성섭이라고 하거든요? 법명이 김광선이에요. 팔산. 그 분하고 스물한 살 차이에요. 스물한 살 차이인데 자기보다. 청년 회원이 있는데 자기보다 스물한 살 많은 사람이 있는 거예요. 청년 회장이 열아홉 살인데. 얼마나 중요한 분이면 이렇게 하셨겠어요? 그렇죠?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얼마나 중요한 분이면 이렇게 하셨고, 대종사님은 얼마나 혁신적이면 자기 후임을 이을 사람을 19세를 경상도에서 모시고 오고. 그죠? 그 때의 심정을 이렇게 정산종사님께서 표현하셨어요. “다행히 대종사를 뵈어 온 그 날부터는 그 모든 고통이 일소되고, 다만 나의 심리 작용이 추호라도 사에 끌리어 허공같이 되지 못하는 가 걱정이요 삼대력이 부족하고 공심이 널리 미치지 못하는 가 근심이 될 뿐, 학문이나 기술이나 명리 등에는 조금도 끌리거나 부러운 바가 없었노라(기연편 9장)” 그러니까 대종사님 말대로 실천할 것만 걱정됐지, 아무 것도 걱정되는 것이 없었다. 걱정 하나 딱 그거다. 대종사님 말대로 실행할까. 이에 대해서 대종사님 이렇게 말씀하셨죠. “내가 송 규 형제를 만난 후 그들로 인하여 크게 걱정하여 본 일이 없었고, 무슨 일이나 내가 시켜서 아니 한 일과 두 번 시켜 본 일이 없었노라.” 그러니까 뭘 시켰는데 시켜서 안 한 일이 하나도 없었고 두 번 시켜 본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그 들의 마음이 되고 그 들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 되었나니라(신성품 18장)” 이게 ‘기연’이죠. 이 앞에 말 한 것은 ‘기’예요. 정산종사님의 근기이고, 뒤에 ‘연’이잖아요. 스승의 사랑과 제자의 근기가 만나서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 기연편이에요.
여러분들. 자 그러면 이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여러분들의 기연편을 만들어본다면 어떻게 돼요 여러분들? 나의 기와 연은 어떻게 돼요? 우리 현승교우. 기와 연이 어떻게 돼요? 현승교우의 그릇과 스승과의 인연은 어떻게 돼요? 나의 간절함과 스승의 지도가 만날 때 기연편이 이루어져요. 여러분들 지금 기연편을 쓰신 분도 있고 아직까지 못 쓰신 분도 있을 거예요 그죠? 스승은 막 사랑을 주려고 하는데 안 받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아니면 그릇이 안 돼서 스승을 못 만날 수도 있고, 간절함과 스승, 둘 중에 하나만 없어도 기연편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여러분들도 이제 여러분들의 기연편을 써야겠죠?
자 두 번째 질문. 오늘 질문 세 개예요. 우리 주진성 교우가 질문해줬어요. 진성교우도 제가 보기에 제일 잘 생겨 보이는 사진으로 골랐어요. 댓글에도 잘 생겨 보인다는 댓글이 있더라고요 저 사진이? 이렇게 질문했어요.
Q. 주진성 교우님
<옛 법을 개조하시나 대의는 더욱 세우시고 시대의 병을 바루시나 완고에는 그치지 않게 하시며> ‘완고에는 그치지 않게 하셨다’는 것이 융통성 있게 법을 만드셨다는 뜻인지 알고 싶습니다. 진성 교우 입교한 지 얼마 안됐는데 참 대단하지 않아요 여러분들? 우리 오래 다니신 분들 분발하셔야 해요. 이거 되게 좋은 질문이거든요? 첫 번째 질문입니다. ‘완고에는 그치지 않게 하셨다’는 게 무슨 뜻이냐,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봐요. <만법을 하나에 총섭하시나 분별은 오히려 역력히 밝히시고>와 <안으로는 무상묘의의 원리에 근거하시고 밖으로는 사사물물의 지류까지 통하시어> 두 문장의 해석이 어려워 같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훌륭해요. 이걸 해석하려고. ‘만 법을 하나에 총섭’이 ‘무상묘유의 원리’이고, ‘분별’이 ‘사사물물의 지류’라고 생각됩니다. 두 문장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A. 박세훈 교무님
크게 봤을 때 맞게 한 거죠. 준성교우가 그래도 전체적으로 틀을 맞게 봤어요. 근데 이제 조금 더 들어가면 ‘완고에는 그치지 않게 하셨다’는 뒤에 살펴보고, ‘만법을 하나에 총섭하시나 분별은 오히려 역력히 밝히시고’와 ‘안으로는 무상묘의의 원리에 근거하시고 밖으로는 사사물물의 지류까지 통하시어.’ 무상묘의라는 것은 뭐예요? 무 없을 무(無) 위 상(上). 묘할 묘(妙)자, 뜻 의(意)자. 그러니까 위가 없는 묘한 진리를 말하는 거예요. 일원상의 진리를 말하는 건데 이것보다 높은 무상대도 이런 거랑 비슷하겠죠. ‘만법을 하나에 총섭하시나 분별은 오히려 역력히 밝히시고’ 여러분들 살면서 이렇게 되거든요. 하나를 강조하다보면 하나가 약해져요. 그렇죠. 대부분 그렇지 않아요? 이제 저런 게 있잖아요. 코로나 방역도 방역에 너무 집중하다보면 국민의 자율권을 침해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항상 균형감 있게 필요한 거잖아요? 그동안의 종교에서 만법을 하나에 총섭 하는 것에다가만 중점을 뒀어요. 그 없는 자리. 무자리. 공자리. 그죠? 모두가 하나인 자리에 집중하다보니까 분별이 역력히 밝은 자리. 하나이지만 이 자체로 역력하게 다 큰 일원상이 돌면 작은 일원 상도 도는 그 자리는 같이 못 밝힌 경우가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 때는 사람들의 인지 수준이 두 개를 다 알려주면 두 개를 다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자들이 하나만 밝혔단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대종사님께서는 없는 자리도 밝히고 있는 자리도 밝힌 거예요. 그래서 일원상의 진리를 어떻게 봤죠? 비었다. 밝다. 조화롭다. 세 가지 측면을 밝혔잖아요.
과거에는 어떤 측면을 밝혔어요? 비어있는 측면을 많이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이제 스님들이 많이 없다. ‘무’이야기 많이 하시고 ‘공’이야기 많이 하시고 그죠? 근데 이제 대종사님은 없는 자리만 밝히면 안 되고 거기서 역력히 나타나는 자리까지 나와야 한다. 그래야지 생활 종교가 되잖아요. 그죠? 아니면 다 산으로 가야 하잖아요. 없는 자리하면은. 그 얘기에요. 균형감 있게 자리를 밝혔다. 하나만 강조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완고에는 그치지 않게 하셨다’는 건 뭐냐면 그 앞에 글을 봐야 해요. ‘시대의 병을 바루시나’ 우리도 그렇잖아요. 우리 청년회가 있는데 청년회에서 뭔가를 고치려고 하면 부드럽게 이야기 할 수가 없잖아요. 뭔가 기강을 잡아야 할 때 어떻게 해야 해요. 강하게 하죠. 강하게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대의 병을 바루는 건 어떻게 하겠어요. 그냥 ‘한 번 해봐. 좋을 거야’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강하게 밀어붙여요.
대종사님이 계셨던 시기에 시대의 병이 뭐였어요. 여러분들. 일제 강점기 때 조선 끝물에, 반상의 차별. 차별이었잖아요. 그 시대 병 때문에 민중의 분노가 엄청나게 올라왔잖아요. 그래서 그 시대의 병을 바루기 위해서 동학은 어떻게 했어요. 동학혁명을 일으켰잖아요. 그죠? 그것만 주장하면 완고에 그치게 돼요. 시대의 병을 바루시나 시대의 병을 고쳐야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잖아요. 이 반상의 차별, 적서의 차별, 여러 가지 자력이 없는 병, 대종사님은 원망의 병, 여러 가지 이야기했는데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그동안의 민중의 분노가 쌓여있어서 동학은 그 중에서 혁명이라는 수단으로 그 시대의 병을 바루려고 했어요. 근데 대종사님은 어떻게 했죠?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 당시에 저는 필요했다고 봐요. 왜냐하면 시대의 병을 바루기 위해서는 강한 것도 쓰고 약한 것도 같이 써줘야 하거든요? 근데 이게 ‘시대의 병을 바루시나 완고에는 그치지 않았다’는 것은 대중을 교화하는데 하나만 하는 것이나 양쪽을 다 썼다는 거예요. 사탕과 매를 같이 썼다는 거예요. 혁명도 하지마는 교육도 같이 해야 할 거 아니에요. 계속 혁명만 할 수 있어요? 혁명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쳐야 해요. 그것이 완고라는 거예요. 완고라는 것은 고집이거든요? 한 가지 방법만 쓰는 것이 완고인데, 이 때, 일제 시대 때 뭔가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 동학은 혁명을 일으켰어요. 그 때 이제 2대 최수운 이 분은 끝까지 많이 반대를 하시다가, 혁명은 안 된다고 하시다가 마지막에 이제 너무나 민중의 분노가 많으니까 하신 거거든요? 대종사님은 그 때 어떻게 했어요. 시대의 병을 바루기 위해서. 백지혈인 기도했죠? 그리고 방언공사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뭘 하셨죠? 강자 약자 진화상의 요법 하셨잖아요. 그 당시의 일제강점기 때 시대의 병을 바루기 위해서 가장 많이 했던 게 뭐냐면 일제에 대항하는 거예요. 독립운동. 그런데 그렇게 해가지고는 전투적으로 해서는 뭔가 세상이 뒤집어 질 순 있겠지만 민중들이 교육이 안 되면 또 다시 그 세상에 어둠이 또 오는 거잖아요 그죠. 교육이 안 되면 다른 사람이 또 억눌러요. 그죠? 그러니까 대종사님께서 강자 약자 진화상의 요법을 말씀하시면서 약자를 강자로 만들어야 한다. 강자를 대항하기로만 하면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된다. 약자가 강자가 되어야지 근본적인 해결이 된다고 하신 거예요. 저는 그것이 이제 대종사님께서 완고에만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대의 병을 고쳤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한 가지 방법만 쓰면 완고인거예요. 그런데 여러 가지 방법을 같이 쓰는 것은 완고에 그치지 않는 거죠. 이해가 되시죠? 그 다음에 세 번째 질문.
Q. 남궁부 교우님
<3. 우리는 사은의 근본 원리를 알았으니 어떠한 역경이나 원망할 일을 당할 지라도 끝까지 이 감사 생활을 변하니 아니하겠나이다.> 위에 말씀 중 다른 건 이제 많이 공감이 가나(삼학 등). 그러니까 수행은 공감이 가는 것 같아요. 우리 부교우가. 그런데 신앙이라는 것은 억지로 안 되잖아요. 느낌이거든요. 감성이에요 신앙은. 3번 ‘사은->감사생활’로 연결시키기 어려워서 자신이 없는데 혹시 어떻게 하면 나아지는 건지?(사은은 누구나 비슷하게 주므로 동일선상의 기준일 뿐이지 나에게 특별한 사항이 아니라서 그런지)
A. 박세훈 교무님
그러니까 우리가 사은을 공부하고 있잖아요. 천지은 부모은 동포은 법률은. 원불교에서는 네 가지 은혜를 얘기하잖아요? 천지의 은혜, 부모의 은혜, 동포의 은혜, 법률의 은혜. 그런데 부교우 생각에는 내가 보기에는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이 나한테만 특별히 많이 주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 다 비슷하게 주니까 뭔가 사은이란 것이 감사생활로 연결이 잘 안 된다. 이런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맞나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은을 통해서 감사생활이 우러나게 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는 거잖아요 그죠? 사은을 공부하는 것만 가지고는.
첫 번째 이야기하자면, 부교우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에요 이게. 왜냐면 우리 교전 공부에 대해서 쓰신, 교리의 정통하신 법타원 종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은혜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사은의 도를 체받아야한다. 근데 그것을 한 마디로 하면 도통을 해야 한다.” 도통을 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깨우쳐야 한다는 거예요. 깨우치면 은혜를 느끼지 말라고 해도 느껴지는데 깨우치기 전까지는 느껴지지 않아요. 그게. 그래서 그 사람이 견성한 지 안 한지를 보려면 그 사람이 감사생활 하는 지 안 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감사생활과 견성은 연결되는 거예요. 일단은 깨우쳐야 해요. 첫 번째는. 그런데 깨우치는 게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그죠? 그러면 내 수준에 맞게 하려면 어떻게 하냐. 우리들의 수준에 맞게. 첫 번째는 뭐냐면 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해요. 첫 번째. 지금 제가 계속 얘기하지만 여러분들 가만히 있으면 내 마음 속에 뭐가 있냐면 욕심하고 잡념이 들어가 있어요. 욕심은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으로 끌려가는 거예요. 좋은 사람 만나고 싶은 것. 이런 것들. 이게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니라 향해가게 돼있어요. 본능으로. 그리고 그것이 아니면 잡념. 잡념은 뭐냐면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두려움. 이것이 꽉 차있어요. 여러분들 자세히 봐요. 99% 그래요. 지금도 잡념이나 욕심이 있을 수도 있어요. 딴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단 말이에요. 딴 생각 하고 있으면 은혜는 못 느껴요. 안 보여요. 내 마음 속에 욕심하고 잡념이 있으면 은혜가 옆에 있어도 안 보여. 옆에 동포은. 나랑 같이 친구가 있어도 동포은으로 보이지가 않아. 내 고민에 빠져있으니까. 옆에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안 보여요. 그러니까 일단 은혜를 느끼려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해. 마음의 여유가 여유를 찾아야 해요.
부교우님께서. 그래서 이런 시가 있어요.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제 ‘고은’이라는 시인의 <그 꽃>이라는 시의 전문이에요. 내려갈 때는 보았어요. 올라갈 땐 못 보고. 올라갈 땐 왜 못 봐요. 욕심과 잡념이 있는 거예요. ‘정상 가야겠다.’밖에 없어요. 뒤에 누가 쳐지든 말든 정상 가야해. 그러니까 안 보이다가 내려올 때는 정상 봤어. 마음에 좀 여유가 생겨. 그러니까 올라갈 땐 못 본 꽃이 보여요. 뭐예요. 올라갈 때는 은혜를 못 느꼈다가 내려올 땐 느꼈어요. 왜 느꼈어요. 여유가 생긴 거잖아요. 그러니까 여유가 있어야 해요.
두 번째. 세 번째는 감사도 훈련이에요. 연습을 해야 해. 감사 훈련. 지금 교당에서 감사 훈련 하고 있잖아요. 두 가지. 여러분들 감사 일기 쓰고 있잖아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감사도 해 본 사람이 잘 해요. 그리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말을 반복하다보면 감사도 느껴지는 거예요 이게. 그러니까 감사 훈련을 해야 해요 여러분들이. 그러다보면 감사생활을 하게 돼요. 그래서 아까 두 가지를 말하는 거에 깨우침을 줬겠지만 깨우치기 전까지는 마음에 여유를 가져야 해요, 지금도 여유가 있어야지 감사함이 느껴져요. 그렇죠? 그리고 두 번째는 훈련을 좀 해요. 감사 훈련. 여러분들끼리. 그러면 감사 생활이 될 겁니다. 대답이 좀 됐나요? 네.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 오늘 공부한 걸로 정산종사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된 것은 수양의 힘이잖아요. 제가 보기에 여러분들이 지금 얼굴이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졌어요. 이제 정산종사법어를 더 공부하시면서 더 몸도 마음도 얼굴도 다 아름다워지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현진교우님~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잘 읽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