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면적은 약 110만㎢, 인구는 2,288만 명(1998)이다. 약칭은 네이멍구[內蒙古]이다. 해발 1,000m의 광활한 고원지대이며, 모래지대는 11만㎢, 사막지대는 8만㎢이다.
행정구역은 8개의 맹(盟)과 4개의 시, 16개의 현급 시, 17현 49기(旗)와 3개의 자치기(自治旗)로 나뉜다. 수도는 후허하오터[呼和浩特]이다.
황하[黃河]의 북쪽 기슭에 있는 하투[河套]평원에 위치하며, 북동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가로놓여 있어, 동에서 남으로 길림[吉林]·요녕[遼寧]·하북[河北]·섬서[陝西] 등의 여러 성 및 영하회족[寧夏回族]자치구와 접하고, 북에서 서쪽으로는 외몽골과 국경을 맞닿아 있다.
=====>영하성 북부 지역과 감숙성 경계지역에 육반산이 있으며 원나라는 글안을 정벌하기위해 이 산을 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육반산에 대한 기록중 우리가 주의해야 될점은 징기스칸이 금나라를 정벌키 위해 이 육반산맥을 넘어오다 병사했다는 기록이다.
따라서 금나라가 동북삼성 또는 그곳 주위에 있었다는 기존의 역사 해설은 사기극일수 밖에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왜곡되고,조작되어진 역사 해설에 너무 순진하게 길들여져 있다.생각해봅시다.
동북삼성 지대에 있던 금나라를 정복하려는 욕심때문에 수많은 군병을 출정시킨 대영웅 징기스칸이 금나라가 있던 동북삼성 지역을 가기위해 험준한 육반산맥을 넘어 동북삼성 지역으로 진군했다....
황당한 역사 해설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육반산맥을 넘어 녕하성,섬서성,산서성,하북성을 지나야 하는데
그곳은 당시에 무인지경이었읍니까,아니면 이미 정복한 징기스칸의 영토였읍니까,코메디극보다도 못한 해설일 수밖에 없읍니다](이 글은 우리역사의 비밀 문무님의 글입니다)
북동부에서 남서쪽으로 대흥안령[大興安嶺]산맥이 뻗어 있고, 황허 북부에는 음산[陰山]산맥이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다.
대흥안령산맥 서쪽과 음산산맥 북쪽지역은 해발 1,000m 내외의 고원지대로, 고비사막에 속하는 사막과 초원이 펼쳐진다. 인산산맥 남쪽 기슭에는 황허의 북쪽 기슭을 따라 비옥하고 수리가 좋은 허타오평원이 해발 900∼1,000m의 고원지대에 펼쳐지고, 그 동쪽은 분지와 구릉이 뒤섞인 황토지대이다. 황허 이남의 오르도스고원은 대부분 사막을 이룬다.
1206년 철목진[鐵木眞]이 중국 북방지구를 통일하고 몽고한국(蒙古汗國)을 세웠고, 1271년 후비리에[忽必烈]가 원(元) 왕조를 건립하였다.
현재의 몽골공화국 지역인 외몽골과 구분하여 내몽고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664년 청(淸)나라 때부터이며, 이렇게 구분하여 부를 만큼 네이멍구와 중국과의 관계가 밀접하였다.
네이멍구에는 일찍이 한족(漢族)의 이주가 이루어져서 18세기 말에는 한족의 수가 몽골족의 수를 넘어섰다.
예전에는 모직물·양탄자·피혁제품 등 축산가공업 위주였으나, 최근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포두[包頭]에 중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안산[按山]·무한[武漢] 등지와 함께 3대 중공업기지 중 하나가 되었고, 그 밖에 오달[烏達]·해발만[海渤灣] 등지도 신흥 공업도시로 성장하였다.
내몽고자치구는 1947년 5월 1일 건립되었고,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성립된 민족자치 지방이다. 전국시대에는 조나라에 속하였고, 연나라와 중국 북방 고대 민족인 흉노, 동호족의 주무대였다.
===>선비족 모용씨,탁발씨가 세운 연나라와 위나라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요??
선비족은 대륙사서에 분명 서역에 있었던 나라이며 이곳에서 중원에 진출하기위해 동진 내지는 남진하는것으로 역사서는 기록합니다.
이러한 선비족의 나라인 연과 위나라가 과연 현 하북성일대에 있었을런지는 큰 의문입니다.
진한시대에는 흉노, 오환, 선비와 오원, 삭방, 운중, 상곡, 우북평, 료서, 무위, 장액 등의 군에 속하였다. 당직풍, 승, 운, 영, 령, 하, 량, 감, 숙 등 주가 되었다. 원대에는 상부에 속하여, 집령, 전령, 정주, 응창 등의 로(부)가 되었다.
====>신구오대사에는 내몽고 음산산맥 남쪽을 요서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자치통감및 후한서에는 영하성 은천에서 내몽고로 흐르는 황하가 곧 요하,요수이며 이 요하를 기준으로요동,요서가 구분된다고 합니다.
대륙측 내몽고의 역사연혁에 상곡 우북평 요서가 내몽고에 있다고 적혀있는건 정말 놀라운발견입니다. 마찬가지로 요서가 내몽고에 있다면 요동 역시 내몽고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상곡 우북평은 고구려가 漢나라를 침공한 지역이며 요서 역시 고구려 태조대왕 때 한나라의 침입에 대비..성을 쌓았으며 요서에서 한나라와 전쟁을 벌였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합니다.
요동 요서가 내몽고에 있다는 중국의 이러한 각성에 대한 정보는 대륙사서의 기록과도 정확히 일치해 그 놀라움을 더해줍니다.
오원...한나라가 흉노를 토벌하기 위해 내몽고 황하를 건너 오원으로 진군했다는 대륙사서속
의 오원을 말하여 그 이전에는..................
연나라 장수 진개가 동호(한단고기에는 번조선으로 나옴)를 침략해 빼앗은 땅 2천여리와
그후에 오원 북쪽 9백리에 장성을 쌓았다고 대륙사서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청에 와서는 육맹이 설치되었고, 맹은 또 부로 나뉘고, 부는 또 기로 나위었으며, 중앙리판원에 속해서, 내몽고라 칭하였다.
민국 초기에는 내몽고가 열하, 찰합이, 수원 등의 3개 특별구로 설립되었고, 1928년 열하, 찰합이, 수원 등의 성으로 분리되었다.
1947년에 동북서부와 원열하, 찰합이 두 개 성의 북부는 각각 자치구를 설립했다. 1954년~1956년에 선후로 구수원, 영하양성 부분지역과 감숙성은 각각 분리되어 이 자치구에 속하였다.
내몽고자치구의 자연지리
ㅇ지형
내몽고는 넓고 광활한 고원 지형이며, 해발이 1,000~1,500m 정도 된다. 최고로 높은 곳은 중부 랑산의 호화파십격으로서, 해발이 2,364m이다. 내부는 5개의 지형구로 나뉜다.
①대흥안령산지 : 내몽고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동쪽 방향이며, 최고로 높은 봉우리는 황강량으로 해발이 2,029m이다.
②내몽고 고원 : 대흥안령 서쪽, 음산산맥과 하서주랑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초원과 사막이 있다.
③음산산맥 : 중부의 내몽고 고원과 하투평원의 사이로, 거의 동서향이며, 남쪽이 경사가 심하고, 북쪽이 완만하며,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④악이다산평원 : 남부에 있으며 황하를 포함하고 있으며, 해발이 1,200~1,600m 정도이며,사구와 염호가 있다.
⑤하투평원 : 음산산맥과 악이다사평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머리쪽을 포함하여 동쪽을 전투평원 혹은 토묵천평원이라고 하고, 서산추(오라특전기)의 서쪽을 하투 평원이라고 한다.
대흥안령, 음산산맥, 하란산을 경계로 하여 동부 남부는 외류구가 되고, 서부 북부는 내류구가 된다. 외류구 중에 동에서 서로 흑룡강수계, 요하수계, 양하와 해하수계, 황하수계 등에 속한다.
====>흑룡강,요하 역시 내몽고 하투평원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동북삼성의 흑룡강,요하와 내몽고 흑룡강,요하 둘 중 하나는 최근세사에 중국에 의해
고의적으로 옮겨진 것이 분명합니다.
호수도 1,000여 개 정도 되며, 염수호와 담수호에 속한다. 주요 호수는 호륜호(면적이 2,210㎢), 패이호(600㎢), 달래약이, 찰간약이, 오량소해, 대해, 거정해 등이 있다.
첫댓글 헌데 제가 알기로는 칭키스칸이 금나라 징벌에서 죽은것이 아니라 현재 감숙성에 있던 서하(西夏)국 징벌에 나섰다가 죽은걸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