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들나무에 새잎이 돋는 봄을 맞아 강남 갔다 온 제비가 짝을 지어 노니는 그림 한편을 소개합니다. '오뚝이의 삶과 여정'이라는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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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범선도(柳汀帆船圖)
張始興, 종이에 채색, 26.0×44.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별로 알려지지 않은 화가 방호자(方壺子) 장시흥(張始興)의 산수도입니다. 버들에 새 순이 돋아나는 새 봄에 제비가 찾아와 노닐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제화시의 원문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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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花浥露紅浮水(도화읍로홍부수) 복사꽃이 이슬에 젖어 붉게 물에 뜨고
柳絮飄風白滿船(유서표풍백만선) 버들 솜이 바람에 날려 하얗게 배에 가득 찼네.
方壺子 방호자
[출전] 작자 미상의 ‘십재경영(十載經營)’
※ ‘十載經營’은 <海東歌謠>, <樂學拾零> 등에서 전해오는 작자 미상의 시로서 詩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愛唱되어 왔다.
[출전의 원문과 내용]
十載經營屋數椽(십재경영옥수연) 십년간 계획하여 몇 칸의 집을 지으니
錦江之上月峰前(금강지상월봉전) 금강의 상류 월봉 앞이네.
桃花浥露紅浮水(도화읍로홍부수) 복사꽃이 이슬에 젖어 붉게 물에 뜨고
柳絮飄風白滿船(유서표풍백만선) 버들 솜이 바람에 날려 하얗게 배에 가득 찼네.
石逕歸僧山影外(석경귀승산영외) 돌길을 돌아오는 승려는 산 그림자를 벗어나고
烟沙眠鷺雨聲邊(연사면로우성변) 안개 낀 모래밭 빗소리 곁에 백로가 잠드니
若令摩詰遊於此(약령마힐유어차) 만약 마힐이 이곳에 유랑한다면
不必當年畵輞川(불필당년화망천) 그해에 망천도를 그릴 필요는 없었으리라.
* 摩詰(마힐) : 당나라 때 문인이며 화가였던 왕유(王維)의 자(字)
[감상]
그림은 강을 경계로 하여 상단과 하단으로 양분되어 있는데, 상단은 강 언덕 위로 바둑판처럼 반듯한 논이 보이는데, 논은 모내기를 위해 논갈이를 하고 물이 들어차 있어 새 풀이 약간씩 돋아나 있는 모습입니다.
하단은 강의 반대편 기슭으로써 돛대가 달린 배가 정박해 있는데, 복숭아나무에 복사꽃이 피었다 지면서 잎이 나오고 있고 그 옆으로 새순이 돋아난 버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데 제비가 방금 강남에서 돌아온 듯 한 쌍은 뱃전 지붕위에 앉았고 다른 한 쌍은 돛대 쪽으로 날아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초봄에 식물의 새순이 돋아나고 복숭아꽃이 피었다 질려는 시기로 현재의 율력으로 본다면 4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가 될 것입니다.
그림의 상단에 적혀 있는 제화시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 구전되며 애창되던 작자 미상의 시(詩) '십재경영(十載經營)' 중 대구를 이루는 함련(含聯)이 적혀 있는데, 이 시의 원시는 조선 중기에 비운의 개혁정치가 조광조(趙光祖)의 제자였던 정문손(鄭文孫)이 지은 '금강정(錦江亭)'이라고 하는 설도 있습니다.
금강정(錦江亭)은 1519년 조광조가 훈구파의 모함으로 지지자 70여명과 함께 화를 당하자 나주 출신을 중심으로 한 성균관 유생 10여명이 주동이 되고 다른 유생 200여명과 함께 조광조 구명을 위한 집단 상소를 올렸는데,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들은 모두 낙향하였고 귀향한 뒤에도 주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는데 이 모임을 금강계라 하였으며, 영산강 가에 금강정이라는 작은 정자를 지어 모임의 장소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시의 詩情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운에 절명한 개혁가 조광조가 추진하던 시기를 그리워하며 그의 이루지 못한 꿈을 애닯아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림의 상단에 보이는 반듯한 논경지는 만백성이 사는 세상을 말하며, 목선의 돛대는 국가를 이끄는 정책인데 배가 정박해 있으니 훌륭한 정책이 취소되었거나 시행되고 있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식물에서 돋아나는 새 잎은 해가 바뀌었음이니, 이는 왕조가 바뀌어 새 임금이 들어섰음을 상징하며 제비는 예로부터 9월 9일 중양절에 강남으로 갔다가 3월 3일 삼짇날에 온다고 하는데, 이와 같이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에 갔다가 양수가 겹치는 날에 돌아오는 새이므로 길조로 여기며, 좋은 일의 조짐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제비가 ‘시시비비(是是非非)’ 하고 울어댄다고 해서 시비를 가릴 줄 아는 새로 여겼고, ‘지지위지지(知之謂知之), 부지위지지(不知謂不知), 시지야(是知也)’ 즉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다'라고 운다 하여 <論語>를 아는 새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림에서 표현된 제비는 모두 네 마리로 크게 두 쌍인데, 한 쌍은 뱃전의 지붕 위에 앉아있고 다른 한 쌍은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과 돛대 사이의 공중에서 어디로 갈까 왔다갔다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명리학(命理學)에서 숫자 운수학적으로 ‘4’는 ‘요절과 방탕으로 불안에 떨며 재난과 앙화가 꼬리를 물고 다니는 수리‘라는 의미가 있는데, 표현된 네 마리의 제비가 이 패 저 패로 나뉘어 따로 노니는 느낌이 있고 뱃전의 지붕에 앉은 두 마리의 제비 옆에 버들잎이 일부 떨어져 있어 이와 같은 생각을 더욱 짙게 합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왕조가 바뀌고 새 임금이 등극하였으나 조정은 사분오열된 당파주의에 빠져 있으니, 조광조와 같이 진정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펴고자 하는 저 배는 언제 세상이라는 강물에 띄울 수 있을까 하는 한탄의 마음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시흥(張始興, ?~?)
호가 방호자(方壺子)라는 것 외에는 집안과 생애, 행적 등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화가를 거의 망라한 오세창(吳世昌)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조차 들어 있지 않다. 정선(鄭歚)으로부터 화법을 배워 강희언(姜熙彦)․김윤겸(金允謙)․정황(鄭榥)․정충엽(鄭忠燁)․김응환(金應煥)․김석신(金錫臣) 등과 함께 정선파로 분류된다.
전하는 작품으로는 ‘만풍도(晩楓圖)’(국립중앙박물관), ‘무릉도원도(武陵桃源圖)’(고려대학교박물관), ‘필운대도(弼雲臺圖)’ ‘독락정도(獨樂亭圖)’ ‘노량진도(鷺梁津圖)’ ‘동소문도(東小門圖)’ 등이 있다. 특히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만풍도’는 세로 140.9cm, 가로 94.2cm의 대작으로 대범하고 호방한 필치의 수작이다.